[애국의 전사들에게 듣는다(1편)]우리공화당 청년 사회자 한근형 최고위원
[애국의 전사들에게 듣는다(1편)]우리공화당 청년 사회자 한근형 최고위원
  • JBC까
  • 승인 2020.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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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나라를 좌경화 시키려는 자유체제 전복이다”고 강조하셨던 아버지
전자공학도 꿈을 걷던 어느날, 촛불집회를 본 후 국가를 지키겠다고 결심

JBC까는 매주 한 두 번, ‘애국의 전사들에게 듣는다편을 연재합니다. 이번 총선에 출마하는 우리공화당 후보입니다. ‘후보자가 아닌 전사란 표현을 쓴 것은 이번 총선은 체제전쟁입니다. 총선에 출마하는 후보자가 체제를 지키기 위한 전사같아서 그렇게 칭했습니다. 많은 격려와 관심 부탁드립니다.<편집자 주>

이번 4.15 총선에 출마하는 한근형  우리공화당 최고위원이 선거 벽보 앞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번 4.15 총선에 출마하는 한근형 우리공화당 최고위원이 선거 벽보 앞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대한민국이 망해서, 공산화되면 다 죽어.” 201611월부터 시작된 아버지의 넋두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퇴진을 위해서 좌파들의 촛불 시위가 고조됐을 때 였다.

적화통일된다, 대통령 탄핵시도는 좌파들의 체제전복 음모다, ‘박 대통령은 아무런 죄가 없어

청년은 아버지의 그런 한탄이 이해되지 않았다. 행여 술이라도 드시면 아버지의 한탄 섞인 발언은 더했다. 당시 여론조사를 보면 전 국민 95% 이상이 박 대통령 탄핵과 퇴진을 지지했었다.

아버지의 그런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가 왜 계속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촛불집회가 진짜 좌파들이 노리는 체제전복인가. 촛불이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인가.

청년은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201611월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을 찾았다.

그가 도착한 광화문 광장은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박 대통령 퇴진과 탄핵을 외쳤다. 대부분 민노총, 전교조 등 소위 좌파층과 또래 청년들이었다.

박 대통령을 향한 저주와 온갖 증오로 가득한 전단지와 인쇄물들이 광화문 광장을 도배 했었다. 분노로 가득한 마녀사냥 그 현장 자체였다.

그는 각각의 단체에서 나누어주는 전단지를 받았다. 그 전단지 중 손에 들어온 것이 사회주의가 답이다였다.

순간, “촛불은 나라를 좌경화 시키려는 자유체제 전복이다고 강조하셨던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그 청년은 촛불현장 한번 와서 본 후 아버지 말씀대로 이것은 단순히 박 대통령 탄핵과 퇴진을 바라는 시위가 아니라, 대한민국 자유 체제를 전복시키기 위한 음모로 보았다.

그 청년이 한근형 우리공화당 최고위원(28)이다. 그는 오는 421대 총선 부산해운대 을에 출사표를 던졌다.

저는 아버님이 촛불시위가 자유 체제를 전복시키기 위한 좌파들의 준동이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집에만 오시면 그렇게 말씀하시길래 촛불집회가 진짜 그러한 전복을 꿈꾸는 것인지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보러 갔었는데, 아버님 말씀이 옳았습니다.”

당시 한 최고위원은 전자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었다. 그는 공학도의 꿈을 키우기 위해 24시간 연구소에서 책과 씨름했었다.

한 최고위원은 공부도 나라가 공산화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 아버지와 함께 태극기를 들고 서울 태극기 집회 현장으로 달려갔다. 거기에는 나이 드신 아버지 또래가 많았지만 그들이 외치는 탄핵무효에는 진실과 정의, 법치를 지키겠다는 사람들의 의지가 담겨져 있었다.

그도 그 현장에 서서 탄핵무효를 외쳤다. “20대인 제가 태극기 집회 현장에 와서 탄핵무효를 외치니 사람들이 약간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습니다. 저를 보고, 기특하다고 하셨고,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신 분도 계셨습니다.”

당시 20대 또래 청년들이 촛불을 들었을 때 한 최고위원은 태극기를 들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대한애국당 시절 무대차량에 올라타서 탄핵무효를 외치는 한근형 우리공화당 최고위원
대한애국당 시절 무대차량에 올라타서 탄핵무효를 외치는 한근형 우리공화당 최고위원

젊은 한 최고위원의 태극기 집회 참석이 신선했었는지 당시 집회 주최측에서 연설을 한번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연설이 한 최고위원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무대에 한 번도 서서 정치적 발언을 해본 적 없었습니다. 그런데 무대서 연설하는 데 저도 모르게 마음속 어디선가 형언할 수 없는 북받침이 밀려왔습니다. ” 그 후 그는 아버지와 함께 틈만 나면 서울에서 개최되는 태극기 집회에 와서 탄핵무효를 외쳤다.

그의 운명이 또 한차례 바뀌었다. 박 대통령 탄핵 후 당시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을 만나면서 였다.

솔직히 저는 당시 조 의원님을 잘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조 의원을 눈여겨 보았다고 했다. 당시 정치인 모두가 탄핵에 대해 입을 닫고, 심지어 새누리당 소속 의원 62명이 탄핵에 동조했다. 조 의원이 탄해무효를 외치니 색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조 대표 연설은 한 최고위원의 심장을 더욱 뛰게 했다. 아버지가 말한 진실과 정의는 현재는 빛을 발하지 않겠지만 먼 훗날 드러난다는 사실. 조 대표가 그 같은 사실을 강조했다.

그러나 좌파들의 촛불파고는 막을 수 없었다. 대한민국 사회를 덮치고 말았다. 국회가 박 대통령 탄핵을 가결시켰고(2016129), 촛불광풍에 의해 헌법재판소, 스스로 법치를 파괴시키면서 박 대통령 탄핵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2017310)

태극기를 든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은 그날의 좌절감 절망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죠. 저 자신도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한 무력감에 절망했습니다. 제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태극기 집회에 나가지 않고 공부를 다시 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대통령 탄핵 이후 다시 전자공학도의 꿈을 이어 가기 위해 공부에 매진했다. 현실과는 거리를 두고 공부와 연구에 전념했다.

그러나 그에게 다가온 운명은 좀처럼 공학도의 길을 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구속되면서 시국은 대선국면으로 전환됐다.

당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가 홍준표 전 경남지사였다. 여권이 새누리당을 해체하고, 자유한국당을 창당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씨를 대선 후보로 낙점했다.

당시 조원진 의원도 대선에 뛰어들었다. 태극기 우파세력들은 박 대통령 피와 땀이 서려 있는 새누리당 정통성을 이어갔다. 조원진 대표와 함께 새누리당을 재창당했다.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조원진 의원 이었다.

그 해 4월 경, 조 의원님이 선거유세차 부산에 오셨습니다. 그 때 조 의원님 보좌관 분이 연락 와서 지원유세를 부탁했습니다. 저는 혼쾌히 받아들이고 연설 무대에 섰습니다.”

당시 태극기 우파들은 홍준표 후보 쪽으로 몰려갔었다. 조 의원이 단일화 하지 않고, 홍 후보를 밀어주지 않자 그에 대한 비난이 고조됐을 때였다.

제가 주변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조 의원님 대통령 연설 연단에 선 딱 한가지 이유가 거기에 진실과 정의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사소한 감정에 휩쓸렸다면 대선 당선 가능성이 없었던 조 의원님 편에 섰겠습니까.”

그는 그 후부터 조원진 후보 선거 운동에 뛰어들었다. 조 대표가 당시 대선에 출마한 것은 당선이 목적이 아니었다. 탄핵무효의 진실과 박 대통령 구속의 부당성을 알리고, 대한민국 자유를 지지키 위함이었다.

그는 탄핵정국 때도 느꼈지만 조 후보를 지지를 했을 때 주변의 시선이 더욱 차가웠다. 그를 극우내지 친박세력으로 몰고갔다.

제 친구들은 물론 학교에서 조차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주 따가웠습니다. 모두가 문재인을 연호하고, 박 대통령 탄핵을 정당하다가 보았을 때 였으니 말입니다.”

그는 자신의 길을 단 한번도 후회한 적 없었다고 한다. “주변의 이런 시선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이 거짓과 불의에 속고 있다는 사실이 더 안타까웠습니다.”

그가 태극기 무대에 선지도 어느덧 3년이 훌쩍 넘었다. 지금은 우리공화당 집회 사회자다. 그는 자신이 걷는 길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리고 계속 이 길을 가겠다고 했다. 그는 이 길을 역사적 책무라 했다.

제가 지금 다시 공학도의 길을 갈 수 있을까요. 이 길이 제가 가야 할 운명이라 생각합니다. 자유를 되찾고 진실과 정의가 반드시 이기는데 미력하지만 제 운명을 바칠겁니다.”

한 최고의원은 일주일 두 세 번 부산서 올라온다. 매주 월요일 최고위원 회의에 참석하고, 토요일 집회 사회를 보기 위해 금요일 저녁 혹은 토요일 아침에 서울로 온다. 일주일 중 반은 서울, 반은 부산서 보낸다.

그는 지금도 태극기 집회 무대에서 사회 보는 게 중압감을 느낀다고 토로 했다. 혹시 작은 실수라도 해서 우파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여서다.

그는 애국의 재단에 몸을 바친다는 심경으로 사회를 본다고 했다. 사회를 보는 횟수가 거듭 될수록 더욱 애국심이 쌓여간다고 했다.

그 무대 위에서 자유를 사랑하고, 박근혜 대통령님 탄핵 무효와 석방, 문재인을 끌어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의 진심어린 애국심을 봅니다. 그 분들은 고통의 칼날에 스스로 서신 분들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 고통스럽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자유를 지키기 위해 내 목숨이라도 던지겠다는 애국심으로 뭉친 분들입니다.” 그는 이 길이 '고통의 길'이 아닌, '꽃길'이라고 했다.

한근형 최고위원 선거를 돕기 위해 모인 자원봉사자들
한근형 최고위원 선거를 돕기 위해 모인 자원봉사자들

그는 이번 4.15 총선에 해운대을로 출마했다. 선거사무실(해운대구 선수촌로 83,3)도 마련했다. 오는 18일 오후 선거 사무실 개소식이 열린다.

이번 총선은 체제 전쟁이다. 그는 이 체제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선거에서도 자유를 되찾고 박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의 부당성을 알리고 위정자가 판치는 이 더럽고 추잡한 정치판을 완전히 바꾸어보겠습니다.”

그의 선거사무실에는 전국에서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분들이 쇄도하고 있다. 그의 선거사무실은 우리공화당 태극기 기수 정선미씨(60)가 살림을 맡았다. 장 씨는 선거사무실에서 먹고 자려고 이부자리와 살림 도구까지 챙겨놨다.

태극기 사회자와 기수, 그리고 자유 우파 국민들이 뿜어내는 진실과 정의의 힘은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바꿀 기세다.

김일성의 6.25 남침 후 대한민국이 공산화 일보 직전이었지만 부산에서 밀고 올라가 자유를 지켰습니다. 부산은 자유의 젖줄이요, ‘자유의 어머니 도시입니다. 부산사람들이 깨어나서 자유가 지켜 쥘 수 있도록 다시한번 자유기적을 창출해내겠습니다.”

그는 조원진 대표가 걸으셨던 우직한 애국의 길을 따라 걷겠다고 했다. 그는 이것을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선거 사무실 벽보에 걸려 있는 현수막 글귀가 눈에 띄었다.

정치놀음하는 위선자들이 싫다

한근형 우리공화당 후보 선거 포스터
한근형 우리공화당 후보 선거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