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할복에 대해
박근혜 할복에 대해
  • JBC까
  • 승인 2017.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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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광화문 광장에 모인 백만 시민은 촛불을 들고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다. 더이상 '박근혜 대통령으로는 안된다'는 민의의 폭발이었다. 

현재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향후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무엇일까. 

현재 박 대통령의 향후 진로에 대해 각 방송은 정치 전문가 내지 법조인들을 출연시키고 온갖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신문도 마찬가지다. 

너무 다양하고 복잡한 해법제시에 머리가 '핑' 돌 정도로 어지럽다. 종편방송을 보고 있노라면 각 방송의 출연진만 바뀌었을 뿐, 그 해법이 그 해법이다. 

그런데 방송과 신문에서 하고 싶지만 감히 내뱉지 못하는 말이 있을테다. '박근혜 할복'이다. 이 말인 즉, 자결하라는거다. 

언론이 할복이든, 자결이든 그런 죽음을 부추기는 내용을 내보내는 순간, 논란과 큰 비난에 휩싸일 수 있다. 

그런데 언론은 아니지만 최근 들어 ‘박근혜 할복론’ 내지 '박근혜 자결론'이 심심치 않게 거론되는 공간이 있다. SNS와 인터넷 등에다.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허용된다지만 SNS와 인터넷 공간에 한 나라의 대통령을 향해 ‘자결’과 '할복'의 글을 올리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분명 잘못됐다. 이는 질타의 대상이다. 

모든 인간은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 이는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군주가 천인공노할 죄를 지었다고 해도 이것을 국민적 감정 분노로 연관시켜 자결론 운운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간접 살인이다. 

그러나 인터넷과 SNS를 통해 번져가는 '박근혜 자결'은 한번쯤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네티즌들이 오죽하면 그렇게까지 표현할까. 

문제는 박 대통령을 향한 자결론 운운은 인터넷과 SNS에서만 번져가는 게 아니다. 저녁 술자리나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이들의 말을 빌면, 박근혜가 자결해야만 이 지긋한 최순실 악연이 끊어지고, 국정이 정상화로 돌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자결해야 하는 이유는 국정 농락은 물론,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이름을 더럽혔고, 자신을 지지했던 보수세력을 완전히 죽였고, 결국 현직 대통령 사상 처음 검찰 조사까지 받는 처지가 됐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더 비참한 상황까지 내몰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할복해야 한다는 것이 술자리의 이구동성이다. 자결이든 할복이든 인간의 극단적 선택만이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일까. 

프랑스의 소설가·극작가 알레르 까뮈(위 사진 1913년 11월 7일- 1960년 1월 4일)는 그의 작품 ‘시지프스의 신화’를 통해 이와 유사한 메지지를 던졌다. 

까뮈은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욕구와 그에 무관하게 인간의 삶은 부조리 한 것이라 지적했다.  

인간은 어떤 특정한 상황에 부딪혔을때 자신의 부조리를 느끼게 된다. 또 그런 상황에 닥쳤을때 인간에게는 세가지 선택이 주어진다고 했다. '자살', '믿음의 도약', '인정'이다. 

까뮈은 왜 굳이 자살을 들먹였을까. 그는 자살은 곧 인생은 살 가치 또는 의미가 없음을 자백함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것은 삶이 감당하기 너무 힘들다는 것을 자인 하는 것이다. 

나는 박 대통령에게 극단적 삶을 선택하라고 외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은 전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만약 또 한명의 대통령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동시에 국민까지 죽이는 살인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자결론을 들먹이면서 일각에선 일본의 자결 문화를 들먹인다. 사무라이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결을 선택한다. 할복 제도는 1873년 (메이지6년)에 공식적으로 폐지되긴 했지만 메이지 시대 이후에도 군인과 우익 인사 사이에서 할복 자살은 계속되었다. 

메이지 천황의 죽음에 노기 마레스케 육군대장의 자결과 1945년 8월 25일 도쿄 요요기 연병장에서 14인의 할복, 1970년 우익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육상 자위대에서 연설 후 할복자살한 사건 등이 있다. 할복은 제도적으로는 없어졌지만 무인다운 명예로운 자살이라는 사상은 아직도 남아있다. 

그러나 박근혜는 사무라이가 아니다. 자결을 통해 대의를 보여주는 것은 군주가 해야할 일이 더더욱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그 무엇인가 짓누를때 죽음을 떠올린다.

박 대통령도 인간이다. 그 역시 죽음을 떠올려봤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을 떠올리는 것 역시 국민을 향한 살인 행위다. 

까뮈은 인간의 자유와 인생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기회는 바로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 달려 있다고 했다. 자살이 아니다고 항변했다.

박 대통령에게 지금의 현실은 지옥이다. 그러나 국민중에는 박 대통령에게 마녀사냥을 한다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드러난다. 박 대통령은 그 진실을 밝혀 우매했던 국민을 일깨워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