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BC 역설 ]미친 좌파에 미쳐가는 대한민국
[JBC 역설 ]미친 좌파에 미쳐가는 대한민국
  • JBC까
  • 승인 2020.05.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한민국이 미친 자로 득실 된다. 성공을 위해 일에 미친 자들은 아름다운 미침이다.

그러나 세상과 동떨어진 이념에 사로잡혀 자신들만이 옳다고 진리하고 믿는 자들은 추악한 미침이다.

문재인 좌파 정권이 들어선 후 곳곳에서 미친 자들이 창궐했다. 이젠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미친 자들이 설쳐대고 있다. 이 정권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사고와 의식수준, 윤리의식과 도덕성을 하나하나 들추면 정상인과 거리가 멀다.

이런 자들은 흔히 정신병자라 부른다. 의학적으로 상식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 정신병자라 칭한다.

영화 식스센스에서 어른이(말콤 크로우·브루스 윌리스 분) 어린애(콜 시어·할리 조엘 오스멘트 분)를 유령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 유령은 어른이었고, 어린 애는 아니었다. 미친 자의 세상은 뒤바뀐 유령처럼 이렇듯, 미친 당신이 되레, 미쳤다고 하는 사람을 공격한다.

문 정권 하반기로 가면서 평등과 공정, 정의를 내세웠던 자들의 실상이 벗겨지고 있다. 이런 자들에게 울분을 느끼고 사퇴를 요구한 사람들이 공격당한다. 좌파 정치인들은 앞장서 이런 자들을 감싸고 있다. 윤미향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민낯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를 앵벌이 삼았다는 비난이 거세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인질로 삼은 이들에게 포주라는 맹비난도 이어지고 있다.

미친 자들의 특성은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 상대가 잘못을 들춰내려 하면 억지를 부리거나 말을 돌리고 거짓이라며 화를 낸다. 이들은 이것을 저항이라고 한다. 조국 전 법무무장관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도무지 인간의 보편적인 지식과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다. 법칙와 윤리 도덕을 자신의 눈으로만 본다. 이들에게 이런 이성을 기대하기란 애초부터 순진한 생각일까.

인간은 뇌로 생각한다. 생각은 뇌에서 신경회로를 통해 전달된다. 이것이 뇌 한쪽에 이념으로 정착한다. 이 이념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실제로 인간의 뇌는 의식에서 이루어진다. 정상적인 인간의 뇌 안에는 도덕적 윤리적 사회적, 정치적 신념을 결정짓는 것이 자리 잡고 있다.

이성'은 무엇인가? ‘이성'은 인간의 인식능력이다. 철학자 칸트는 “‘이성'은 인간의 최상의 인식능력' 전체를 일컫는 말이다. 즉 넓은 의미에서 이성'지성', ‘판단력', 그리고 좁은 의미의 이성'을 대표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미친 좌파 이념가들은 저 높은 곳에 이념을 걸어놓고 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내로남불'이 일상화 된다. 염치와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인간이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모든 정치는 도덕적이지만, 그 도덕적 관점이 똑같을 수 없다.

그러나 이념에 빠진 자들은 이런 것을 밀어낸다. 친일, 독재, 기업은 항상 가해자이고 항일, 민주화, 노동은 언제나 피해자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갖고 있다. 이를 통해 피해자의 한풀이를 마치 자유 정의의 실현자로 착각하게 만든다.

이들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들이 너무나 위대한 역사적 과업을 수행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내로남불은 아무 문제도 안된다. 그래서 개인에 대한 비판은 위대한 과업을 방해하는 음모쯤으로 취급한다. 이들은 윤미향의 각종 비리와 문제를 음해 내내지 모함으로 몰고 있다.

이들이 무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해와 피해의 편견에서 벗어난 어떠한 역사적 사실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의연의 각종 의혹과 문제점에 대해 일본의 반인륜적 전쟁범죄를 밝혀내고 이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활동”, “이들에 대한 공격은 결국 친일 이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사실의혹에 친일낙인을 찍어 진영의 논리로 맞서고 있다.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만이 진리라는 착각이다. 프레임의 전형이다. 프레임에 갇히면 보이는 대로 보지 못하고,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들리는 대로 듣지 못하고, 듣고 싶은 대로만 듣는 흐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인간은 네모난 창을 통해 밖을 보면 네모로 보이고, 세모난 창을 통해 밖을 보면 세모로 본다는 것인데, 아무리 네모가 세모라 한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맥락이다.

미국의 미디어 연구자인 토드 기틀린은 프레임은 프레임은 사회 통제적 수단의 한 방법으로 악용되어진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집단적 광기를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한 대상자를 프레임에 가두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미친 좌파들은 보수 우파를 친일 프레임속에 갇혀버리게 한 후 좌파의 공격을 이끌고 있다. 미디어가 어떤 사건과 현상을 프레임 속에 가두어 버리면 결국 그것이 여론화되면서 때론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된다.

인간사회에서의 본질적 폭력의 역할을 밝힌 프랑스 학자 르네지라르는 인간은 모방욕망과 형이상학적 경쟁으로 비이성적 상태에 빠지기 쉽다라고 주장했다. 인간이 폭력을 해소시킬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을 분노케한 대상, 즉 희생양에게 집중시키는 것이다. 희생은 폭력의 또 다른 이름 대체 폭력이며, 만장일치의 폭력이다.

사람들은 광기어린 폭력에 빠져들면 급기야 마녀사냥 폭력을 가한다. 프레임에 갇히면 사람들은 더 이상 진실이 무엇인지 중요시 여기고 있지 않는다.

이념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이런 미친 자들이 머무는 곳은 과거다. 과거는 어둠이다. 미친 자들은 밝음보다 어둠을 좋아한다. 사탄은 어둠속에서 활약한다. 사탄은 이미 하나님을 밀어내고 이념에 사로잡힌 미친 자들을 충견으로 만들어 버렸다.

하나님을 향해 저들을 심판해주옵소서!” 마냥 기도만 할 수 없다. 대한민국은 저 미친 자들에 의해 썩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