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BC의 시각]김종인 '보수폐기론'과 유승민 '보수대통령'
[JBC의 시각]김종인 '보수폐기론'과 유승민 '보수대통령'
  • JBC까
  • 승인 2020.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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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보수라는 말을 앞으로 안 쓰는 게 낫다"
유승민 "제가 우리 보수 쪽의 단일후보가 되겠다"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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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5년에 문을 연 교토의 혼케오와리야 본점(本家尾張屋). 교토의 대표적인 관광지 기요미즈데라(淸水寺) 인근에 위치한 이곳은 일본 천황이 교토를 방문하면 들리는 소바 맛집으로 유명하다.

올해로 정확히 555년 째다. 우리나라로 치면 세조 11년에 문을 연 식당이다. 고급레스토랑에 익숙되어온 한국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면 두 가지에 실망한다. 우선 맛에 대해 실망하고, 낡은 건물을 보고 실망한다. 한국 같으면 상상이 되지 않을 게다. 555년 된 식당이고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면 과거를 허물고 새로운 건물을 지은 후 식당을 재오픈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혼케오와야리는 고집스럽게 전통과 555년 전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다. 만약 이 소바집이 일본 젊은층이 좋아하는 라면과 한국인 입맛에 맞는 자극적이고 진한 국물을 곁들인 소바를 만들고, 서양인들의 입맛에 맞는 파스타식을 가미했다면 555년 전통은 하루 아침에 사라졌을 것이다.

왜 갑자기 교토의 혼케오와리야 소바 집이 떠올라졌냐면.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내정자가 최근 잇따라 보수폐기론 주장을 펼치면서다. 1948년 건국 이후 대한민국 자유 우파의 근간을 이루어온 보수를 폐기하자는 소리가 마치 혼케오와리야 가게의 주 메뉴 소바를 폐기시키자는 소리처럼 들렸다.

27일 김 내정자는 "보수냐 진보냐 이념으로 나누지 말자"고 말했다. 이어 이날 한 신문에 통합당이 한낱 보수, 보수하는 정당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고 밝혔다. 앞서 김 내정자는 지난 25일 한 방송과의 전화인터뷰에서는 "보수라는 말을 앞으로 안 쓰는 게 낫다"고 밝혔다.

그의 말을 요약하면 핵심은 보수를 버리자는 것이다. 미통당을 식당이라 가정한다면 주메뉴가 보수. 이는 혼케오와리야 식당이 주메뉴 소바를 버리고, 시대에 맞는 면을 만들자는 것과 뭐가 다른가.

김 내정자가 보수를 폐기처분을 들고 나온 것은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라 했다. 오늘날 시대정신이 보수를 외면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시대정신은 그 시대의 가치관과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80대 노구 김 내정자의 시대정신 인식은 위장 기회주의 보수와 비슷하다.

그가 보수 폐기론을 들고나온 것은 미통당이 전국 단위 선거에서 네 차례 연속 패했기 때문이다. 잇단 선거 패배로 무기력해진 야당이 근본적인 쇄신을 하려면 보수 폐기는 물론 전면적인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김종인,황교안, 유승민(왼쪽부터) 출처=채널A 캡처 네이버 이미지
김종인,황교안, 유승민(왼쪽부터) 출처=채널A 캡처 네이버 이미지

그가 역사와 현 시대를 바라보는 인식 판단이 흐려져 있다는 것은 보수몰락의 근본을 엉뚱한 데서 찾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국민들은 를 가리키는 데 그는 을 보면서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한다. 사실 그가 굳이 보수폐기를 주장하지 않더라도 지난 2016129일 보수 정치인이 보수 대통령 탄핵에 가결하면서 오늘날 한국 보수는 폐기처분됐다. 문제는 이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인식을 하지 않고 보수를 버려야 한다는 그의 인식에 놀라울 따름이다.

김 내정자는 보수를 먼저 폐기처분 할 게 아니라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면서 보수를 망가뜨린 사탄파(사기탄핵찬성파) 폐기 처분을 우선해야 했다.

'암'은 덩어리를 제거해야 한다. 미통당이 살아남기 위해서 암덩어리만 제거하면 보수가 새살 돋 듯 살아난다.

가장 본질을 해결하지 않고, 그저 보수 폐기를 운운하니 국민들이 미통당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김종인에게 말하고 싶다. 미통당과 보수는 엄연히 구분짓자. 왜 미통당 잘못을 괜한 보수에 화풀이인가. 보수는 사람이 아닌 이념과 사상을 내포한 명사다.  

차라리 김 내정자는 솔직해져라. 한국 보수 정통성은 이승만 건국정신, 박정희 부국강병 정신으로 계승 발전되어 왔다. 그렇다면 김 내정자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신을 폐기처분 하자는 게 더 시대정신에 걸 맞는 것이 아닐까.

보수주의의 창시자 에드먼드 버크(1729~1797)"극단적인 시대라 할지라도 변혁은 문제가 있는 부분에만 한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변혁은 시민적 정치적 집합체를 분해해버리는 일 없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버크가 1789년 프랑스혁명의 전후 전개 과정을 보면서 한 말이다.

프랑스 혁명은 민중의 승리였다. 인권선언문이 낭독됐고 왕과 귀족들은 민중 앞에 무릎을 꿇었다. 버크는 이를 보면서 기존 질서를 적폐로 몰아 일거에 해체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내려는 혁명가들의 오만과 무지를 질타했다.

혁명의 영광 이면에는 음모와 살인, 잔혹한 숙청이 난무했다. 공포정치를 가져왔다. 자유와 평등을 부르짖으며 시작한 혁명이 또 다른 억압과 공포를 가져온 것이다. 버크의 우려는 정확히 적중했다.

지난 201810월 프랑스를 방문한 문재인은 "프랑스 혁명의 정신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들었던 촛불 하나하나에서 혁명의 빛으로 되살아났다"고 말했다.

지금 김종인 눈에는 촛불혁명으로 대한민국 역사와 체제를 바꾸려는 저들, 기존 질서를 적폐로 모는 저들, 대한민국을 사회주의로 몰고가려는 저들의 오만한 좌파 독재가 보이지 않는가.

버크는 프랑스 혁명의 이런 모순을 지적하면서 헌정(憲政)의 전통을 지키고 체제의 모순을 점진적으로 개혁해온 영국의 체제를 찬양했다. 이것이 그가 말한 보수의 정신이요, 품격이다.

김종인이 맞서야 할 상대는 이번 총선에서 177석 수퍼 여당이 된 오만하고 독재스러운 문 정권이다. 그런데 그는 보수폐기론을 들고나왔다. 우연인지 아닌지 김종인의 '보수페기론'과 문재인 좌파 정권이 주창해온 '보수궤멸론'이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 

문 좌파 정권 추종자들은 보수를 궤멸시켜 앞으로 100년 좌파 정권을 이어가겠다고 했다김종인이 미통당의 해결사가 아닌 보수파괴론자에 가깝다는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김종인은 이미 '좌파 부역자' 전력을 갖고 있다.

유승민 의원은 26일 자신의 지지자 모임 인터넷 커뮤니티인 유심초에 올린 영상메시지를 통해 “202239일 대통령 선거에서 제가 우리 보수 쪽의 단일후보가 돼 민주당 후보를 반드시 이기겠다는 각오라고 밝혔다. 김종인은 보수폐기론 이전, 유승민이 밝힌 보수대통령에 대한 입장부터 정리하라.

버크는 "인간은 실수를 할 수 있다. 감정에 휘둘리며 잘못된 판단을 한다. 급진적인 순간과 상황일수록 이런 오류가 많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신중한 지도자가 국민에게 아첨하는 지도자에게 패배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보수를 지키려는 정당과 정치인이 외면당하고, 보수를 파괴시키는 정당과 그 정치인이 관심을 받고 있다. 이것이야 말로 버크의 통철한 인식이다. 어쩜 그렇게 한국의 현실을  콕 짚어 예언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