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순이’ 진순정, 알고보니 수학올림피아드 대표
‘똑순이’ 진순정, 알고보니 수학올림피아드 대표
  • JBC까
  • 승인 2020.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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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공화당 진순정 최고위원 후보 성장 배경 화제
초등학생 시절에는 수학 올림피아드 학교대표
‘악바리’, ‘똑순이’, ‘캔디 진순정’ 당당한 길

 

초등학교 사생대회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진순정 우리공화당 최고위원 후보.
초등학교 사생대회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진순정 우리공화당 최고위원 후보.

우리공화당 진순정 최고위원 후보의 성장과정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진 후보는 지난 24일 자신의 정견발표를 하면서 살아온 배경과 성장 과정까지 함께 밝혔다. 그동안 태극기 집회 사회자로만 비쳐졌던 진 후보의 또 다른 면모를 보았다는 격려와 지지의 글도 잇따랐다.

진 후보는 이날 태극기 집회 사회자 진순정이라는 단편적인 사실보다 현재의 진순정의 깡다구나 투쟁력이 어디에서부터 기인한 것인지, 인간 진순정을 알고 최고위원 후보로서의 진순정을 평가해주시면 감사하겠다면서 이같은 글을 올렸다.

1978730일 경남 마산에서 출생한 진 후보는 어려서부터 남달리 승부욕이 강했고 눈치가 빨랐으며 조숙했다고 자신을 평가했다.

진 후보는 초등학생 시절에는 수학 올림피아드 학교대표였고, 중학생 때에는 작곡과 청음에 재능을 보여 학교 특별 장학생으로 대학에서 개인레슨을 받았고, 전교학생회장에 당선될 정도로 성적도 인기도 좋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자신은 고등학생 때부터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냈다고 전했다. “어느 날 집에 가니 드라마에서나 보던 빨간 딱지들이 붙어 있었고, 갑자기 우리 다섯 식구는 방 두 칸짜리 전셋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원망스러웠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도 힘들었다. 방 두 칸짜리 집보다는 독서실에서 자는 날이 많았고 전업주부였던 어머니는 돈을 벌러 또 돈을 빌리러 나가셨으며 건설업을 하다 실패하신 아버지는 미련을 못 버리시고 가족을 희망고문했습니다.”

진 후보는 고3때 입학원서 구경 한번 해보지 못하고 창원대 행정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좋지 않은 형편에 아래로 대학에 갈 동생이 둘이나 더 있다는 이유로 집에서 버스 타고 다닐 수 있는 국립대로 진학했다는 것이다.

진 후보의 대학생활은 그야말로 처절했다. 그는 친구들과 어울리고 공부할 시간에 과외에, 서빙에, 주방알바까지 닥치는 대로 돈을 벌어야 했다. 무너지는 저의 자존심을 달래고 절망감을 떨쳐내려 매일매일 내면의 저와 싸웠고 멀어져가는 저의 꿈들을 붙잡기 위해 악착같이 지내던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스스로 아팠던 청춘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고 자부했다. 알뜰하고 꾸준하게 경제활동을 했고 운 좋게도 재테크에도 성공해서 29살에 자신만의 가게를 가지게 되었다고 밝혔다.

자신의 첫 가게가 족발집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가게를 하면서 거래처, 손님, 심지어 알바생들로부터도 무시를 당했다고 했다.

진순정 우리공화당 최고위원 후보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가 동경의 모델이었다.
진순정 우리공화당 최고위원 후보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가 동경의 모델이었다.

매일 울었고 또 매일 울지 않겠다다짐했다. 매일매일 악바리 같이 이를 악물고 깡다구로 버텼다. 그렇게 단단하게 사회구성원의 한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또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그 후, 향긋한 커피향이 있는 베이커리, 100평 규모의 일본식 카레점을 운영했고, 지금은 대형 쇼핑몰 내 베트남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게 된 계기도 밝혔다. “2016년 어느 날. TV에 나온 촛불집회 장면은 경악케 했다. 정치에 문외한이었지만 항상 관심은 많았고, 촛불집회를 통해 민중민주주의의 서막이 열리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언론이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진 후보는 20161119일 망설임 없이 서울역으로 갔다. 그때 서울역행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줄 그땐 정말 몰랐다고 했다.

진 후보는 2017310일 대한민국의 법치가 사망한 날, 피로 얼룩진 아스팔트를 뇌리에 새기고 배로 갚아줄 날을 위해 대한애국당 창당에 적극적으로 임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기탄핵을 바로 잡고 죄 없는 대통령님을 석방시키기 위해, 이 땅의 붉은 주사파 세력들을 몰아내고 위대한 대한민국의 역사를 새로 쓰기 위해 당시 제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태극기 집회에 꾸준하고 열심히 참여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태극기 집회 사회를 보고 있는 진순정 우리공화당 최고위원 후보.
태극기 집회 사회를 보고 있는 진순정 우리공화당 최고위원 후보.

진 후보는 조 대표의 권고로 태극기 집회 사회를 보게 되었다고 밝혔다. “201712월 태극기집회의 사회를 부탁하시는 조 대표님께 차마 거절의 말씀을 올리지 못하고 지금까지 집회 사회자로, 우리공화당의 대변인으로 책임감 있게 임하고 있다.”

진 후보는 단 한주도 쉬지 않고 창원과 서울을 주 몇 회씩 오가며 대한민국과 박근혜 대통령과 우리공화당을 위해 싸워왔다고 자부했다.

그는 20176.13 지방선거에서는 당의 명을 받아 기초의원비례대표로 출마했고, 20194.3 보궐선거도 한 치의 고민 없이 출마를 결정했다.

그는 자신을 억척같이 삶을 일구어 남부러울 것 없는 자신만의 인생을 사는 당당한 여성이다고 소개했다. ‘악바리’, ‘똑순이’, ‘캔디 진순정이 불의에 맞서 투쟁한지 어언 4년이 흘렀다고 회고했다.

그는 어떠한 후회도 없다고 밝혔다. 그는 다시 이같은 길이 주어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우리공화당만이 대한민국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진 후보는 자신의 삶 자체가 투쟁이었다고 전했다. “삶의 투쟁에서 승리를 맛본 사람으로서 우리의 긴 투쟁도 반드시 승리로 이끌 것이다. 시장경제와 실물경제를 몸소 겪은바 지유민주주의라는 체제의 소중함을 교과서가 아닌 경험으로 배웠습니다.”

진 후보는 우리공화당 당원임을 아주 자랑스러워 했다. 진 후보는 우리 모두는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겨야 한다. 우리가 스스로 만든 정당 우리공화당의 당원 여러분들이 역사의 주인이며 총성 없는 이 전쟁의 전사들임이 저는 자랑스럽고 또한 여러분들을 존경한다고 밝혔다.

진 후보의 글을 본 사람들은 무한한 신뢰와 존경을 보낸다”, “앞으로 우리공화당을 이끌 소중한 인재다”, “진순정 파이팅을 외치기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