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평환, 백선엽 장군 애도 “자유대한민국을 지킨 불세출의 소박한 영웅”
허평환, 백선엽 장군 애도 “자유대한민국을 지킨 불세출의 소박한 영웅”
  • JBC까
  • 승인 20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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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저녁 작고한 백선엽 육군 대장의 영정 사진
10일 저녁 작고한 백선엽 육군 대장의 영정 사진

허평환 전 국군기무사령관이 지난 10일 저녁 100세로 별세한 살아있는 6·25전쟁 영웅백선엽 예비역 육군대장을 기리는 애도문을 보내왔다.

뇌경색으로 입원 치료 중인 허 전 사령관은 병실에서 백 장군의 별세 소식을 접한 후 비통한 마음에 애도문을 써 내려갔다.

허 전 사령관은 허튼말 허튼 행동 하나 없었던 백 장군님은 알면 알수록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훌륭한 인격자 였다고 회고했다.

허 전 사령관은 백 장군님은 지난 2000년 국방부 6.25전쟁 50주년기념사업단에서 사업위원장과 부단장 관계로 처음 만났다고 인연을 소개했다.

허 전 사령관은 백 장군님은 6.25 전쟁에서 대한민국을 구한 불세출의 전쟁영웅이셨다“6.25 전쟁 때 백 장군님이 없었다면 오늘날 자유 대한민국이 있었겠냐고 반문했다.

1950년 다부동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백선엽 전 육군 대장.
1950년 다부동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백선엽 전 육군 대장.

다부동 전투(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낙동강선 다부동 일대에서 국군 1사단이 북한군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방어한 전투)에서 무너지면 대구가 함락되고 부산이 점령되어 전쟁이 끝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다부동 유학산을 지키던 사단 장병들이 북괴군에 밀려 퇴각하는 것을 목격한 장군은 이들 앞을 가로막고 서서 "여기서 밀리면 더 이상 갈곳이 없다 내가 앞장서 갈 테니 갈 사람은 가라. 나도 가다가 두려워 돌아설지 모른다. 내가 돌아서거던 나를 총으로 쏘고 전진하라"고 하셨다.

29세의 청년 장군 백선엽은 청사에 빛나는 이 한마디 말을 남기고 유학산을 향해 걸었다.

퇴각하던 장병들이 뒤돌아서서 장군과 함께 돌격하여 유학산을 되찾고 다부동을 지켰다. 이로 인하여 낙동강 전선이 사수되고, 이후 인천상륙적전이 가능했던 것이다.

허 전 사령관은 그런 백 장군을 향해 일부 좌파세력들이 장군님을 친일파로 매도하며 국립묘지 안장을 반대하고 나선 것에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

허 전 사령관은 과연 이 시대 자유대한민국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고있는 우리가 좌파 우파를 떠나 이 노병에게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가끌탕했다.

그는 백 장군에게 왜 만주군관학교에 가 친일파란 오명을 썻는냐고 물었다. 장군께서는 "당시 제대로 된 군사학을 배울 수 있는 곳은 그곳밖에 없었다. 거기서 배운 군사 지식으로 6.25때 대한민국을 지켰다"고 했다.

그러면서 허 전 사령관은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고 일구신 불세출의 소박한 영웅 백선엽 장군님을 우리 모두 편히 보내드리자고 했다.

100세를 일기로 별세한 백선엽 장군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5일 육군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15일 아침이며, 장지가 국립 대전현충원 장군 2묘역으로 확정됐다.

허평환 전 국군기무사령관.
허평환 전 국군기무사령관.

허평환 전 기무사령과 백선엽 장군 애도문

! 불세출의 소박한 영웅 백선엽 장군님 영면하소서

백선엽 장군님께서 어제 100세의 일기로 운명하셨다.

육군장으로 대전현충원에 안장하기로 했다.

일부 좌파세력은 장군님을 친일파로 매도하며 국립묘지 안장을 반대하고 나섰다.

과연 이시대 자유대한민국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는 우리가 좌파 우파를 떠나 이 노병에게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인가?

나는 그분을 2000년 국방부 6.25전쟁 50주년기념사업단에서 사업위원장과 부단장 관계로 처음 만났다.

그분은 알면 알수록 존경하지않을 수 없는 분이었다.

첫째 훌륭한 인격자다. 허튼말 허튼행동 하나 없었다.

온화한 표정 단정한 걸음걸이 맑은 음성 그 어느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

둘째 6.25 전쟁에서 대한민국을 구한 불세출의 전쟁영웅이다. 다부동이 무너지면 대구가 함락되고 부산이 점령되어 전쟁이 끝나는 절체절명의 순간 다부동 유학산을 지키던 사단 장병들이 북괴군에 밀려 퇴각하는 것을 목격한 장군은 이들 앞을 가로막고 서서 "여기서 밀리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내가 앞장서 갈 테니 갈 사람은 가라. 나도 가다가 두려워 돌아설지 모른다. 내가 돌아서거던 나를 총으로 쏘고 전진하라."

29세의 청년장군 백선엽은 청사에 빛나는 이 한마디 말을 남기고 유학산을 향해 걸었다.

퇴각하던 장병들이 뒤돌아서서 장군과 함께 돌격하여 유학산을 되찾고 다부동을 지켰다. 이로 인하여 낙동강 전선이 사수되고, 이후 인천상륙적전이 가능했던 것이다.

셋째, 육군참모총장시 휴전 조건으로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설득하여 중무장한 20개 사단을 확보하여 국군 현대화의 기반을 닦았다.

넷째 한국비료 사장시 비료를 자급 생산하여 식량자급을 이루고 배고픔을 해결하는데 기여했다.

다섯째 교통부 장관시 지하철 1호선을 건설하여 지하철 시대를 열어 교통난을 해소하고 값싼 대중교통 시대를 열었다.

여섯째, 지극한 인간애를 갖춘 분이시다. 전쟁말기 지리산 공비 토벌작전을 지휘하는 백야사령관 임무를 수행했다. 작전 종료 후 오갈데 없는 공비들의 어린 자녀들을 모아 전남 송정에 고아원을 세워 아이들을 돌보았다.

그 고아원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백선엽 장군께서는 지금까지 후원을 하여 그 고아원 운영을 돕고 있다.

위의 모든 것은 당시 장군 백선엽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왜 만주군관학교에 가 친일파란 오명을 썻는냐고 물었다.

장군께서는 "당시 제대로된 군사학을 배울 수 있는 곳은 그곳밖에 없었다. 거기서 배운 군사 지식으로 6.25때 대한민국을 지켰다"고 했다.

6.25전쟁 전에 대한민국으로 월남했느냐고 물었다 장군께서는 "소련 공산치하의 북한은 사람 살곳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으로 가면 먹고 싶은 것 실컷 먹고 잠이라도 푹 잘 수 있을 것 같고 가고 싶은 곳 자유스럽게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왔다"고 했다.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고 일구신 불세출의 소박한 영웅 백선엽 장군님을 우리 모두 편히 보내드리자. 장군님 아무 걱정 마시고 영면하소서.

2020 712일 전 국군기무사령관 예비역 육군중장 허평환 헌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