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BC의 감성터치] 해운대여, '울지마라'
[JBC의 감성터치] 해운대여, '울지마라'
  • JBC까
  • 승인 20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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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전경
해운대 전경

내가 나고 자란 곳이 부산 해운대다. 여름철 해운대는 늘 활기가 넘치고 각종 화제성 뉴스가 차고 넘쳤다.

최근 해운대발 우울한 뉴스가 터져나왔다. 부산 해운대 고층 아파트 창문 유리창이 태풍 마이삭하이선으로 인해 와장창 깨졌다. 주민들이 불안을 호소하고 혹시 더 큰 대형 태풍이 몰아치면 건물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소리도 들린다.

전문가들은 해운대 고가 아파트 유리창이 깨진 것은 빌딩풍때문이라 진단한다. 태풍이 빌딩 사이로 들어오면 소용돌이를 일으켜서 더 세진다 것이 빌딩풍이다. 틀린 진단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 원인이 되지 못한다.

기후변화를 예측하지 못하고 난개발 등으로 인해 해운대 그 자연을 파괴시켰기 때문이 아닐까. 기상이변과 무분별한 인공구조물 개발로 해안선 훼손이 심화되면서 태풍 앞에 빌딩이 무기력하게 당했다고 본다.

인공구조물 건설에 따른 해수흐름의 변화와 특히 해안가 인근에 해안도로나 건물을 환경적 고려 없이 만든 것이 그 원인으로 지적하고 싶다.

태풍이 세게 불어도 견딜 수 있는 공사기법, 파도가 덮쳐도 견딜 수 있는 구조물. 그것은 그 잘난 전문가들의 이론일 뿐이다.

나는 그들에게 반문한다. 그대들은 해운대서 살면서 진짜로 들이닥친 태풍의 위력을 제대로 본 적 있는가.

지구온난화는 더욱 강한 태풍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그 태풍은 성난 파도를 만들어 해운대를 덮칠 것이란 생각을 해본 적 없는가.

나의 상상력이 해운대를 파괴한 죄 값을 치를 것이다는 반감이 아니다. 이런 소릴 하면 미친놈소리 듣기 일쑤다. 정말이지 그런 대재앙이 어리석고 쓸데없는 생각이길 바랄 뿐이다.

해운대를 죽이고, 밟고, 찢어놓은 후 이제 와서 무사안일을 기원하고 그 원인을 빌딩풍으로 돌린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인간은 자연의 소유자가 아니다. 인간은 자연을 잠시 빌려 쓰는 존재다. 해운대는 한국인 자연의 원천이다. 해운대와 바다 백사장 그것은 분리 될 수 없다. 백사장 모래와 파도소리, 바다는 함께 어우러진 해운대 그 모습이다.

해운대 바다 모래는 조개껍질과 바위가 부서져 만들어졌다. 파도가 훑고 지나갈 때 사르르르하는 소리가 들린다. ‘택리지를 지은 조선의 학자 이중환은 이를 우는 모래(鳴砂)’라고 했다.

해운대 백사장 모래 특징은 몸에 닿으면 잘 털어지지 않는 진득한 게 아니다. 손으로 털면 바람처럼 날아가는 게 해운대 백사장 모래다.

그런데 개발은 해운대 모래까지 사라지게 했다. 그 자리에 매년 족보없는 모래가, 진흙같이 부드러운 모래가 해운대 백사장에 채워지고 있다.

해운대 백사장에 유입된 족보없는 모래.
해운대 백사장에 유입된 족보없는 모래.

해운대 백사장 모래유실의 주요 요인이 있다. 그것은 해운대 해안가를 중심으로 한 호화스런 고층 아파트와 리조트 빌딩 때문이다.

해풍이 해운대 고층 빌딩 벽면에 맞부딪히면서 반사되어 해풍의 역소용돌이가 현상을 일으켜 모래를 공중으로 유실시키고 있다. 이것은 빌딩풍 원인이기도 하다.

역소용돌이 현상으로 유실되는 모래는 막을 수가 없다. 또 빌딩풍도 막을 방법이 없다. 해풍을 타고 모래가 사라지는 것을 무슨 수로 막겠다는 말인가. 빌딩속에 갇힌 태풍이 빌딩풍을 일으키는 데 이것을 어찌 대비한단 말인가. 빌딩숲을 파괴할 수도 없지 않는가.

해운대 주산은 장산(萇山)이다. 장산을 넘지 못한 태풍과 바람이 역풍으로 바다로 치고 나가야 한다. 빌딩 숲이 그 태풍의 길을 가로막고 있다. 빌딩 숲에 갇힌 태풍이 빌딩풍을 일으키면서까지 바다로 벗어나려고 한다.

이 역풍이 모래 유실을 막았고, 또 지난 수천 년 간 해운대 바다를 유지토록 했던 그 법칙이다.

태풍이라도 올 때면 파도는 백사장을 끝까지 혹은 항구 끝까지 온 후 모래를 끌어내서 갔다가 다시 모래를 밀고 온다. 일종의 강한 밀물 썰물 현상이다.

그런데 수천 년 동안 그 자유롭게 해운대를 오가면서 놀았던 파도가 어느 날 개발로 빌딩이 들어서면서 탈출구가 막혀버렸다. 그 파도는 오갈 곳이 없다. 길을 잃어버렸다. 해운대 백사장 방향으로 좁혀 올 수 밖에 없다. 해운대 고층 빌딩이 하나씩 생겨날 때마다 백사장 모래는 줄어든다.

해운대 영화 한 장면.
해운대 영화 한 장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쇠퇴와 소멸의 어두운 그림자가 덮칠 때쯤 철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땐 이미 늦었다.”

나는 이런 어리석음에 반문한다. 더 늦기 전에 해운대를 지켜야 한다는 명제만큼은 단호하다. 이러다간 끝내 해운대의 아름다운 자연을 완전히 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개발로 해운대는 파괴되고 말았다. 내 고향 해운대가 사라질 것 같은 같다고 생각하면 하면 할수록 가슴이 답답하디. 때론 두렵기도 하다.

우리는 지금 해운대 파괴를 일컬어 발전이라고 찬양하는 문화의 모순 속에서 살고 있을지 모른다. 환경 보존과 발전은 분리된 과제가 아니다. 두 문제는 철저히 융합되고 결합돼 있어야 한다.

개발이라는 개념에는 이렇듯 파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해운대 파괴의 경고를 도외시했다. 해운대 주변을 개발해서 신천지를 만들어한다는 그 개발 논리에 갇히면서 해운대의 자연은 조각조각 파편이 될 것이다.

해운대는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자연선물이다. 인간은 그 신이 준 자연을 빌려 쓸 뿐이다.

한낱 빌딩풍이 이 호들갑인데, 진짜 지진과 해일이 들이닥치면 어떻게 될까.

이 의문은 어릴 적부터 품어왔다. 흔하지는 않았지만 어릴 적 가끔식 '진동'을 느끼며 살았다. 동네 사람들은 이 진동이 지진이라는 것을 알고 허겁지겁 '대나무' 밭 쪽으로 달려가곤 했었다.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진이 발생하면 대나무 밭이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까닭이다.

지금 해운대에서 '진동'이 감지되면 곧바로 뉴스로 전해지지만 70년대는 그렇지 않았다. 이 말인즉, 해운대는 오래전부터 지진이 감지되었고, 나아가 이제 한반도는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는 말이다.

일본 지질 전문가들도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은 지진에 대해 너무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일침했다.

어릴 적 자연 그 해운대가 이제 내 머릿속 상상에만 머물러 있다. 그 시절 해운대가 너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