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조국은 탄핵불가를 외쳤다. 문 정권 촛불정권 아니다"
진중권 "조국은 탄핵불가를 외쳤다. 문 정권 촛불정권 아니다"
  • JBC까
  • 승인 20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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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57) 전 동양대 교수가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천년의상상)라는 책을 냈다. 현정권에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는 진 전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진보 좌파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그의 책에는 탄핵 관련, 흥미로운 내용이 등장한다. 이를 옮겼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사실 문재인 정권은 촛불정권이라 하기 어렵다. 원래 민주당 사람들은 탄핵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조국 교수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탄핵불가를 외친 바 있다. 먼저 소추안 통과에 필요한 의석이 부족하고, 통과돼도 황교안 당시 총리가 권한을 대행하며, 헌법재판소의 구성상 인용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정권 사람들은 원래 촛불을 든 민중의 힘을 믿지 않았다. 말이 촛불정권이지 문재인 정권은 이른바 친노폐족이 운좋게 국정농단 사태를 만나 권력을 거저 얻은 것에 더 가깝다.

그런데도 권력은 자신을 성공적으로 촛불정권이라 브랜딩 했다. 그리고 스스로 적폐청산의 역사적 사명을 짊어졌다. 개혁의 주체는 자신, 대상은 물론 전 정권이다. 이 작업이 단락되자 그들은 새로 검찰·경찰·법원·언론을 청산해야 할 적폐로 꼽았다. 청산 작업의 논리적 전개는 정권은 깨끗하고 바깥은 더럽다라는 것. 권력이 40% 지지자들의 머릿속에서 날조해 심어준 환상이다.

그런데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가상 속으로 주책없이 유재수 비리라는 실재계의 요소가 침투한 것이다. 권력은 신속이 움직였다. 민정수석이 이를 덮었다. 사태는 저지되는 듯했다. 하지만 일개 수사관이 이를 폭로해버렸다. 그러자 권력은 재빨리 그의 뒤를 캐서 묻어버렸다.

이로써 사태는 저지되는 듯 했다. 조국 사건도 비슷하다. 그의 아내가 표창장을 위조하다가 발각되었다. 이는 노무현에서 조국으로 이어지는 신통기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돌발사태였다.

혹시 이 거룩한 분도 적폐가 아닐까?’ 이 의심의 확산을 막으려 권력은 대학총장의 뒤를 캐 그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어버렸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도 마찬가지다. 정권의 지지자들은 그런 짓은 이명박근혜의 적폐청산에서나 하는 짓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 환상을 깨는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검찰의 서랍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 사건이 18개월만에 서랍에서 나왔을 때만 해도 권력은 이 일련의 돌발사태가 무난히 저지되리라 믿은 듯 하다.

검찰총장을 세운 것이 바로 자기들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총장이 하필이면 윤석열이었다는 것. 그들의 프로그램에서 윤석열은 곧 치명적인 버그(오류)로 드러난다.

40% 지지자들의 머릿속에서 그들은 늘 개혁의 주체였다. 그런데 검찰의 수사로 인해 그들 또한 청산의 대상, 또 다른 적폐라는 사실이 폭로될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를 참을 수 없었던지 권력은 얼마 전까지 개혁의 주체였던 검찰을 개혁의 대상으로 격하해버렸다. 적폐를 청산하던 검찰은 졸지에 적폐로 전락했다.

권력을 향한 수사는 개혁에 대한 저항으로 간주됐고, 그 저항을 진압하기 위해 권력은 지지들을 서초동으로 불러냈다. 권력은 부패한 자들을 쳐내는 대신 그들이 무죄인 가능세계를 창조하는 길을 택했다.

그러려면 일단 대중을 실재로부터 단절시켜야 한다. 이제 권력 실세들의 범죄 혐의에 대한 보도는 모두 검찰이 기레기를 통해 흘리는 허위정보로 매도한다. 그로써 그들의 부패는 없던 일이 된다.

실제를 겨냥한 공격에는 권력이 사육하는 언론인과 지식인들의 선동이 큰 역할을 한다. 자칭 어용지식인이 유튜브에서 내뱉은 한마디에 심지어 지상파 방송 법조팀장이 해체되기까지 했다.

검찰총장을 임명하며 대통령은 그에게 죽은 권력만이 아니라 산 권력에도 칼을 대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 약속이 지켜졌다면 아마 고전적 저지전략의 상황이 펼쳐졌을 게다. 즉 비리에 연루된 이들을 쳐내고 촛불정권으로서 계속 개혁적인 척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일로 권력은 위대함의 후광까지 얻을 수도 있었다.

보라, 이렇게 산 권력에까지 검찰이 칼을 대도록 허용하는 게 다른 정권과는 구별되는 문재인 정권의 도덕성이다.’

솔직히 나는 촛불정권의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았다. 외려 권력이 이 방식을 사용해 그 환상을 계속 유지하기를 바랐다. 그렇게 했다면 촛불혁명이라는 권력의 연극을 도울 의향까지 있었다. 하지만 권력은 부패한 자들을 품에 끌어안았다. 그리고 자신들을 맹신하는 40퍼센트 지지자만을 위해 그 부패한 자들이 부패하지 않은 대안세계를 날조하기 시작했다.

나머지 60퍼센트의 시민들은 권력이 촛불정권이라는 번거로운 허울을 벗어던지고 아예 이익집단으로 제 알몸을 노출하는 민망한 장면을 두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

권력은 부끄러움을 감추는 대신 아예 모르기로 한 모양이다. 비리가 비리가 아니고, 부패가 부패가 아니며, 범죄가 범죄가 아니라고 강변하다가 사실과 도덕의 기준마저 무너뜨렸다. 그로써 사회는 논리와 윤리의 아노미 상태에 빠져들었다.

이 보편적 혼돈이 시인의 감성마저 바꿔놓은 걸까.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던 시인은 평생 연탄재를 볼 일도 없을 어느 강남 사모님을 위해 이렇게 노래했다.

나는 강남에 건물을 소유해 앞으로 편히 살고 싶다. 이런 꿈을 꾸는 것이 유죄의 증거라고? 대한민국 검찰은 꿈을 꾸는 것조차 범법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꿈을 꾸지 말자. 미래에 대해, 앞날에 대해, 그리고 다가올 시간에 대해.’

과연 시인은 솔직하다. 대중이 매트릭스 안에서 허황하게 평등사회의 꿈을 꿀 때, 그 세계의 아키텍트들은 매트릭스 밖에서 야무지게 강남에 건물을 소유해 편히 살꿈을 꾼다. 대중의 꿈이 관념적이라면, 아키텍트들의 꿈은 유물론적이다. 이것이 매트릭스의 기능이다. 매트릭스는 바로 이 때문에 존재한다. 영화 매트릭스 주인공 네오는 아키텍트가 날조한 세계에 산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펴낸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표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펴낸 '진보는 어떻게 몰락하는가'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