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스가 죽었습니다' 비서관의 이말에 홍정욱은 정치판을 떠났다
'잡스가 죽었습니다' 비서관의 이말에 홍정욱은 정치판을 떠났다
  • JBC뉴스
  • 승인 202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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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12일 당시 한나라당 홍정욱(서울 노원병) 의원이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에서 19대 총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갖고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 News1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홍정욱 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은 자신이 정치를 그만 둔 결정적 계기가 스티브 잡스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매주 자신의 삶과 생각을 에세이 형식으로 발표하고 있는 홍 전 의원은 14일 오후 5번째 에세이를 통해 19대 총선(2012년) 불출마를 선언한 배경을 설명했다.

홍 전 의원은 38살의 나이로 18대 국회에 발을 들였지만 Δ 진정성없이 수박 겉핧기 식의 지역구 관리 Δ끝없는 정쟁 Δ 당과 지지층만을 위하는 정치에 환멸을 느끼던 순간 Δ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이라도 지금 하던 일을 계속할 것인가라는 잡스의 말에 깨달음을 얻어 정치판을 벗어났다고 했다.

◇ 하루 10차례 지역구 행사…국회의원, 법을 만드는 이 아닌 행사 도는 사람

그는 "봄과 가을은 지역구 국회의원에게는 곤혹스런 시기로 연일 이어지는 지역의 운동회, 친목회, 동창회 등에 얼굴을 내밀어야 했기 때문이다"고 했다.

홍 전 의원은 "주말이면 하루 10여 개의 행사를 돌아 주민들과 소통은 커녕 대부분 10분 남짓 머물며 악수를 나누고 축사 한마디 한 뒤 자리를 뜨는 일정이었다"며 "국회의원은 법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행사를 도는 사람이라는 동료 의원의 한탄이 떠올랐다"고 했다.

이어 "다만 모두 이를 당연한 의무로 여겼으며 다들 발가벗고 있으면 나도 벗어야 하는 압박을 느끼듯, 경쟁자들이 다 하니 나 또한 최소한의 방어를 위해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 끊임없는 정쟁, 국가와 국민 아닌 당파와 지지층만 위한 정치에 환멸

홍 전 의원은 "국회의원직에 대한 고민은 당선 직후 미국산 쇠고기 사태로 사회가 양분되고 국회가 공전하는 상황을 지켜보며 시작했었다"며 "그 후 끊임없는 정쟁과 반복되는 몸싸움 속에서 초선 의원의 미약한 날갯짓을 계속하며 내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고 했다.

또 "비전으로 시작해 성과로 끝나는 경영과 달리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는 곳, 국가와 국민 대신 당파와 지지층을 위해 일하는 곳에서 소명의 감동을 찾기는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 스티브 잡스 "오늘이 세상 끝이라도 지금 일을 계속할 것인가?"

홍 전 의원은 "2011년 가을 보좌관과 함께 다양한 행사들을 돌고 있던 중 비서관으로부터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다"며 "그 순간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상실감에 휩싸였다"고 했다.

"그는 내게 가슴의 소리를 따른다는 게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 영웅"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때 홍 전 의원은 "갑자기 그가 남긴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이라도 지금 하던 일을 계속할 것인가?'라는 말이 떠 올랐다"며 "그날 나는 잡스의 질문에 마침내 '아니다'고 명확히 답할 수 있었고 한 달 뒤 나는 제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고 설명했다.

◇ 홍정욱 "직분 다 못하면 당장 떠나는 것이 공직자...고집스레 버티면"

홍 전 의원은 "진정한 성공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이 아니라 하기 싫은 일을 안 해도 되는 삶,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일을 안 해도 되는 삶, 시간과 노력의 낭비가 없는 삶이다"고 정의했다.

이에 의원직을 포기했다는 홍 전 의원은 "부족한 나를 믿고 응원해 준 상계동 주민들과 당원들이 끝까지 마음에 걸렸지만 '벼슬을 하는 자는 직분을 다 못하면 떠나고, 꾸짖음을 맡은 자는 말이 안 통하면 떠나야 한다'라는 맹자의 말을 쫓아 내 역량의 부족을 꾸짖으며 국회를 떠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三揖一辭(삼읍일사), 세 번 읍하며 어렵게 나아가고, 지체없이 한 번에 물러나는 것이 벼슬길"이라며 "경박하게 나서고 고집스레 버티는 공직 후보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가르침"임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