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 김재연 "유신 독재 알고 말하는가"
통진당 김재연 "유신 독재 알고 말하는가"
  • JBC까
  • 승인 2017.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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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유신 독재였다면 통진당 어떻게 됐을까

삭발 단식중인 통진당 의원들

"유신독재의 회귀다."

통합진보당 김재연 대변인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투쟁 키워드’다.

김 대변인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계단에서 ‘민주주의 수호, 통합진보당 사수 결의대회’를 열고 정부의 통진당 정당해산심판청구에 반발하며 삭발식을 단행했다.

삭발식 직후 김 대변인은 “유신독재 정권의 민주주의 파괴에 맞서 함께 싸워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앞서 김 대변인은 법무부가 국무회의에 통합진보당 위헌정당 해산 심판을 상정한 데 대해 “유신독재, 긴급조치의 부활”이라고 비난했다.

김 대변인은 5일 JTBC 뉴스9에 출연해 정부가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청구한 것에 대해 “정부의 청구는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민주주의 파괴 행위로 유신독재, 긴급조치의 부활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통진당 존폐가 걸린 마당에 통진당 ‘입’ 김 대변인이 박근혜 정부를 향해 이 보다 더한 독설 투쟁 구호를 외칠 수 있다.

 왜냐면 유신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고, 그 딸이 박근혜 대통령 아닌가. 

그래서 박 대통령에게 가장 큰 흠집과 타격을 입힐 수 있는 투쟁 키워드가 유신독재 구호 일거다.

 그런데 김 대변인에게 묻고 싶다.

진정, 유신독재를 아는가.

사실 필자도 유신시절 초등학교를 다녔던 터라 유신독재를 피부로 느껴보지 못했다.

김 대변인 나이가 궁금해 포털사이트에서 인물검색을 해보니 1980년생이다.

한국 나이로 34세.

 그는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이 탄생했을 때 출생했다.

 

김재연 대변인

유신(維新)은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 위헌적 계엄과 국회해산 및 헌법정지의 비상조치 아래 위헌적 절차에 의한 국민투표로 1972년 12월 27일에 제3공화국 헌법을 파괴한 것을 말한다.

이때의 헌법을 유신 헌법이라 하며, 유신 헌법이 발효된 기간을 유신 체제, 유신 독재라고 부른다.

 메이지 유신에서 이름을 따온 이 체제 하에서 대통령은 국회의원의 3분의 1과 모든 법관을 임명하고, 긴급조치권 및 국회해산권을 가지며, 임기 6년에 횟수의 제한 없이 연임할 수 있었다.

 유신 체제는 행정·입법·사법의 3권을 모두 쥔 대통령이 종신 집권할 수 있도록 설계된 1인 영도적(절대적) 대통령제였다.

 박정희는 1972년 10월 17일,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하고 국회를 해산한 후 정당 및 정치활동의 중지 등 헌법의 일부 기능을 정지시키고,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다.

 이에 따라 계엄사령부가 설치되었고, 계엄사령부는 포고를 통하여 정치활동 목적의 옥내외 집회 및 시위를 일절 금지하고 언론, 출판, 보도 및 방송은 사전 검열을 받도록 하며, 대학들을 휴교시켰다.

 

 유신 체제에 반대하는 국민의 반발과 저항이 거세어지고, 일부 학생들은 전국민주청년학생연합(약칭 '민청학련')을 조직하여 전국적인 연대투쟁을 벌였으며, 언론인들도 자유언론수호투위를 결성하는 등 저항의 강도를 높여 갔다. 1974년 11월에는 야당 정치인과 종교인 등이 중심이 되어 '민주회복국민회의'를 결성하였다.

직접 체험은 못했지만 유신독재 시절 민주주의 운동을 펼쳤던 사람들의 말을 종합했을 때 유신하면 떠오르는 것이 고문과 탄압이었다고 한다.

특히 국가체제에 조금이라도 반대하거나 북한과 연계됐다면 당장 잡아들여졌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도 했었다는 것.

 이석기 의원 등 당 관계자들이 내란음모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고, 한미동맹 해체,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등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정당, 애국가를 부르지 않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두둔하는 등 민주적 기본질서를 저해시킬 우려 요소들이 적지 않는 통진당.

 만약 유신 시절 통진당이 이런식의 활동을 했었다면 아마도 그중 일부는 사형대에 세워졌을 정도로 탄압을 받았을거다.

김 대변인이 책에서 보고 읽고, 선배들로부터 어느 정도 유신독재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지만 고문을 당했던 사람들은 ‘인간의 영혼이 타들어 갔다’고 치를 떨었다.

 지금도 현직 국회 출입기자인 전 합동통신(연합뉴스) 손주영씨(79).

 손 선배의 말이 기억난다.

“정형, 통진당 조직원들이 이걸 갖고 유신독재 운운하는 데 그들이 유신독재를 안겪어봐서 모른다오” 그는 아직도 유신만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고 한다.

 손 선배는 전두환 정권때는 남산 안기부로 끌려고 고초를 겪었는데, 그의 말은 유신에 비하면 고문과 탄압이 덜했다는 결론이다.

술자리에서 정부를 비판하고, 대통령을 욕하고, 마음대로 해외로 오갈 수 있고, 개인의 자유는 물론 인터넷상에서도 표현의 자유가 넘치는 2013년 11월6일의 대한민국.

 지금 그런 대한민국 정부를 향해 유신 독재라 부른다면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다.

물론 통진당은 나의 글을 보고 미친 극보수 놈의 습작이라고 치부하겠지만, ----

내 말은 김 대변인이 유신독재 시절 정치인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서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