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차기 대선 후보]김대중-노무현의 '적통' 정세균, 이낙연, 이재명은?
[여권차기 대선 후보]김대중-노무현의 '적통' 정세균, 이낙연, 이재명은?
  • JBC
  • 승인 2021.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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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확실한 친김대중-범노현계
이재명 친김대중-친노무현계도 멀어
이낙연 친김대중계 확실-친노무현계 글쎄

사공명주생중달(死孔明走生仲達)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이는 중국 소설 삼국지에 등장하는 말이다. '죽은 제갈량 공명이 산 사마의 중달을 도망치게 한다'는 뜻이다.

내년 치러질 차기 대선이 이 같은 형국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여권에선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세균 국무총리 등 제3의 인물이 부각되고 있다.

야권에선 윤석열 전 검찰총장, 홍준표 무소속 의원, 국민의힘 유승민, 국민의당 안철수, 우리공화당 조원진 대표가 나갈 태세다.

여야 대권 후보 중 조 대표를 제외한 모두가 사공명주생중달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란 해석이다. 이는 작고한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여야 대선 후보를 결정지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들은 작고했지만 그만큼 정치적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차기 대선은 작고한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 산 박근혜의 대결이 될 것이란 전망도 없지 않다. 이들의 '적통'이 누구일까.

본지는 3회에 걸쳐 차기 대선 최종 후보가 누가 될 것인지에 대해 예측을 해본다. <편집자주>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나란히 걷고 있다. 그 뒤로 문재인이 보인다.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나란히 걷고 있다. 그 뒤로 문재인이 보인다.

여권 내 차기 대선 후보가 이재명 경기지사(이하 이재명)와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이하 이낙연)양자 간 대결로 좁혀지는 듯 하다. 그러나 이같은 양자 구도가 계속 이어질 지는 미지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선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를 달렸던 이낙연은 이재명에게 밀리는 형국이다. 이재명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엎치락 뒤치락 했던 두 사람의 격차가 이젠 이재명의 압도적 1위 굳히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돌발변수가 생겼다. 검찰총장직에서 내려온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두 후보를 따라잡았다.  

윤 전 검찰총장이 총장직을 내려놓은 이후 차기 대선 지지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연달아 1위를 기록하면서 여권의 대선 구도도 흔들리고 있다.

윤 전 총장이 야권의 대선후보로 나선다면, 그와 경쟁해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는 정치인을 내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여권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당장 이재명 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의 경쟁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고 있다. 여권에선 지금까지 주목받지 않았던 새로운 후보로 윤석열과의 경쟁구도를 끌고 가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이렇다보니 제3의 인물을 내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탄력을 받고 있다.

이재명과 이낙연이 아닌, 새로운 인물로 대선 구도에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당의 차기 대선 후보로 2’가 아닌 3주자가 나올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민주당 내에선 제3의 인물은 김경수 경남도지사, 김부겸 전 의원, 김두관 의원,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광재 의원, 최문순 강원도지사를 비롯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까지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대체로 민주당 내 친문 주류에 해당하는 인사들이다. ‘비문에 속하는 박용진 의원도 대선 출마 선언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이들이 여권의 확실한 대선 후보군인지에 대해선 논란이 없지 않다. 야권과 대결에서 승리할 인물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친김대중계'와 '친노무현계'의 '적통'인가 여부다.

차기 여권의 대선 후보는 이 범주에 드는 인물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정세균 국무총리
정세균 국무총리

#정세균 확실한 친김대중-범노현계

현재 유력한 제3주자로 꼽히는 이는 정세균 국무총리다. 정 총리는 오랜 정치경험을 바탕으로 조직력과 인지도 면에서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약점은 낮은 지지율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 총리가 얻은 지지율은 3%대 내외다. 그러나 그가 본격적인 총리직 사임 후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재개하면 지지율이 단숨에 뛰어오를 것이란 분석이다.

여권에서 차기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해선 우선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하나는 김대중계이어야 하고, 또 친노무현계(친문계)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엄격히 따지자면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김대중계와 노무현계가 섞여 있다그 뿌리는 김대중계다. 김대중계는 호남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다. 노무현계는 386 출신 등 운동권 좌파 세력이다.

김대중계가 중도적 좌파 성향이라면, 노무현계는 극좌적 형태를 띠고 있다. 이 같은 여권의 인적구성을 바탕으로 차기 대선 후보군을 검증하면 누가 차기 대선 최종 후보가 될 것인지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범주에 드는 인물은 이재명도, 이낙연도 아니다는 지적이다. 3의 인물들도 보다 더 검증이 필요한 상황에서 정세균만이 이에 딱 부합되는 인물이다.

1950년 전라북도 진안군에서 태어난 정세균은 DJ의 비서실장 박지원 국정원장이 인정한 김대중의 후계자였다. 김대중이 사망한 이후 가신그룹 중심으로 누가 김대중의 대를 이어서 민주당 호남계 좌장이 누가 되어야 하는가로 기싸움이 치열했다. 박지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언을 언급하면서 정세균을 밀어줬다.

정세균은 선거계의 조용한 제왕으로도 불린다. 경선 통과 후 출마한 모든 국회의원 선거에서 승리했다. 특히 20대 총선에서는 오세훈과의 대결에서 승리했다.

정세균은 대통령만 안 해봤지, 6선 의원에 장관, 당대표, 국회의장까지 역임했다. 현재 국무총리를 역임중이다. 정세균은 18대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갔지만 친노계가 문재인을 밀어주는 바람에 완패했다.

정세균은 처세의 달인이다. 보수 정당계 정치인들과도 친분이 상당히 두텁다. 정세균의 활동을 보면 뚜렷한 개성, 카리스마 등과 같은 화려한 정치적 매력을 갖춘 '스타' 정치인은 아니지만, 상당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가결 사태 때 분노를 금치 못하고 의장석을 점거하고 가결을 막기 위해 달려들기도 했다. 정세균은 2003년 노무현 지지 세력이 주축해서 만든 열린우리당 창당에도 이름을 올렸다.

열린우리당 당 의장을 두 차례 역임했다. 따라서 정세균은 민주당 대선 후보군 중 김대중과 노무현계와 동시에 확실히 맞닿아 있는 정치인이다. 그가 본격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면 중도 보수층에서도 지지자를 끌어모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여권 일각에선 그를 두고 정감록(鄭鑑錄)에 나오는 정도령이다는 말도 회자되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
이재명 경기지사

#이재명 친김대중-친노무현계와도 멀어

이재명은 친김대중계도, 친노무현계와도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그가 운동권에 기반을 둔 정치인도 아니다.

이재명은 성남시장을 두 차례 역임한 초선 경기지사다. 여의도 중앙무대에서 정치경험도 전무하다. 이것이 그에게는 신선한 이재명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지만 정치에서 신선함과 검증은 다른 차원이다.

80년대 운동권 투쟁이 가장 격렬 했을 때가 1981년부터 1986년 사이다. 82년 중앙대에 입학한 그는 86년 사법고시에 패스했다. 89년 사법연수원을 거친 후 그는 변호사가 되었다.

이것은 당시 그가 전두환 정권 타도 투쟁 현실을 외면한 채 출세욕에 사로잡혀 공부만 했었다는 방증이다. 당시 80년대 분위기가 도서관이 아닌 아스팔트에서, 전공책이 아닌 이념서적을 심취해 있을 때다.

그가 운동권 인맥은 물론 김대중과 노무현계와도 관계를 맺지 못했던 이유로 짐작된다. 만약 그가 386 운동권 출신이었다면 김대중, 노무현과는 직간접적 연이 다았을 것이다.

이재명은 변호사가 된 후 현실 정치에 눈을 떴다지만 그때는 전두환 정권이 물러가고 903당 통합이 되면서 민주화 바람이 일 때 였다.

이재명에게 운동권 족보가 없다는 것은 여권의 386과 범좌파들은 이재명을 외면할 것이다란 분석이다. 문재인 좌파 정권은 운동권 카르텔을 이미 형성했다.

문재인 통치행위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386 운동권이 정재계와 공직, 법조, 문화 예술계에 광범위하게 포진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이재명은 노무현과 인연을 들먹이지만 서로가 만난적도 없다. 이재명은 범동교동계와도 거리가 멀다.  김대중 측과는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이재명은 2006년 지방선거를 즈음하여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여 단수 공천으로 성남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이재명은 정치초기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정통들) 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다. 지금은 멀어졌지만 그가 정동영계와 연을 닿고 있었다.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낙연 친김대중계 확실-친노무현계 글쎄

이낙연은 김대중의 발탁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1979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2000년 정계로 진출할 때까지 21년간 동아일보에서 기자로 근무했다. 대통령과 알게 되어 친분을 쌓게 되었고, 결국 정치권에 입문하게 됐다.

1989년 국회의원 보궐선거 때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가 호남 지역구를 공천해 줄 테니 정계에 입문하라고 적극 권유했다.

하지만 당시 도쿄 특파원으로 내정되어 있었던 이낙연은 김대중 총재의 국회의원 출마 권유를 거절했다. 기자 시절 김대중이 이낙연 당시 기자를 얼마나 아꼈는지 이런 일화가 전해진다.

어느 날 기자회견을 할 일이 있었고, 타 신문사 기자들은 다 모였는데 이낙연 기자가 보이질 않자 시작을 안 하다가, 이낙연 기자가 조금 늦게 도착하니 그제서야 기자회견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전라남도 함평군-영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새천년민주당 대변인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언론인 출신의 정치인 중 성공적인 길을 걷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노무현을 지지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당시 떨어진 지지율을 이유로 후보교체를 주장하면서 노무현을 흔들고 있던 후단협 소속의원들에게 "지름길을 모르거든 큰길로 가라. 큰길을 모르겠거든 직진하라. 그것도 어렵거든 멈춰 서서 생각해 보라"라는 논평을 내었다.

그러나 이낙연은 2003년 범 친노계 정치인들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할 때 따라가지 않았다. 당시 범동교동계가 열린우리당 창당에 부정적이었고, 이낙연도 이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동참하지 않았다. 이로인해 그가 범노무현계와 일정 균열이 생기지 않았냐는 의문이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당시 발의자 명단에는 올랐지만 본회의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그러나 당시 노무현계들은 탄핵에 이름을 올린 그에게 배신행위를 했다는 비난도 서슴치 않았다.

이낙연은 당내 기반에선 확신한 김대중계인 것만은 틀림없지만 노무현계라는 것에 대해선 반신반의한다.

총리 시절 문재인 정권의 넘버2’로 활약하며 얻은 인기는 문재인의 후광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낙연은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의 유례없는 압승을 이끈 주역이었지만, 당 대표를 역임하며 오히려 그의 지지율은 조금씩 하락했다.

특히 이낙연은 올초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론을 들고나와 논란을 빚었다. 이후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 불신을 사기도 했다.

그의 이 같은 제안은 국민대통합차원에서라는 전제를 깔았지만 친노(친문)계와 대깨문들이 크게 반발했다. 이낙연 지지율이 멈춰지고 하락의 발목을 잡히고 말았다는 분석이다.

이들 외 민주당내에서 거론되는 3후보가 친 김대중 친 노무현계가 있느냐는 것이다. 대부분 노무현계에 가깝지만 이들이 친 김대중계의 지지를 얼마나 이끌어내고, 중도 좌파 표심까지 공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로선 정세균이 가장 여기에 부합되는 '적통'이다. 다만, 정세균이 윤 전 총장에 대한 경쟁력을 갖추었냐가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