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BC추적]기모란까지, 문 정권의 통혁당 인맥 사실인가
[JBC추적]기모란까지, 문 정권의 통혁당 인맥 사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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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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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획관 논란속 임명, 기세춘 통혁당 사건 연루 딸
문재인, 통혁당 핵심 신영복, 한명숙 전 총리 남편 박성준 존경
통혁당 사건은 대한민국 체제전복을 노린 6.25 이후 최대 사건
김어준이 진행하는 방송에 출연, 논란의 중심이 된 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획관.
김어준이 진행하는 방송에 출연, 논란의 중심이 된 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획관.

기세춘(奇世春, 1933~ )은 대한민국의 재야운동가이자 한학자이다. 호는 묵점.

1933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다.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전남대 법과대학에 입학했으나, 4.19혁명에 적극가담하고, 5.16이 일어나자 입산했다.

서울시에 근무하면서 1963년 동학혁명연구회를 창립, 후진국개발론, 통일문제를 연구했다. 1968년 통일혁명당(통혁당)사건에 연루되어 신영복 전 교수 등과 함께 옥살이를 했다.

이후 기세춘은 '평화통일연구회' '사월혁명연구회' '전북민주동우회'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국민화합운동연합' 등에서 사회운동을 했다.

그가 이번에 청와대 방역 기획관에 임명된 기모란의 아버지다. 문재인은 청와대 방역기획관직을 신설하고 기모란를 임명했다. 기모란은 그동안 정부의 코로나 방역 정책을 홍보하거나 비판적 지적을 방어하는 역할을 해왔다.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기세춘씨(오른쪽)가 양산갑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한 사위 이재영 선거 사무실에 들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기모란 남편인 이재영은 현재 민주당 정책위 부의장이다.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기세춘씨(오른쪽)가 양산갑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한 사위 이재영 선거 사무실에 들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기모란 남편인 이재영은 현재 민주당 정책위 부의장이다. 출처=이재영 블로그

기모란 통혁당 기세춘 딸

기모란은 정부의 백신 확보 지연 논란 당시 우리나라는 환자 발생 수준으로 봤을 때 백신이 급하지 않다” “화이자·모더나는 가격도 비싸다는 주장을 쏟아냈다.

기모란은 작년 2월 정부가 운영하는 대한민국정책브리핑 사이트에 기고문을 실으며 이번 코로나19는 메르스와 달리 환자들의 증상이 심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했다. 같은 달 CBS 라디오에선 중국발 외국인 입국 금지를 반대했다.

김어준 라디오에서 수도권 확진자 증가세와 관련해 “(보수 단체 집회의) 8·15발이 맞죠?”라고 묻자 기 기획관은 그렇다고 동의하기도 했다.

야권에서 기모란의 과거 발언과 행적을 문제삼아 임명철회 공세를 퍼붓었다. 우리공화당은 기모란은 문재인의 일그러진 ‘K방역의 얼굴 마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20일자 성명을 통해서는 문재인이 허구로 들통난 문재인 K방역의 호소인에 불과한 기모란을 청와대 방역기획관으로 임명했다며 철회를 촉구했다.

그런데도 청와대에서는 기모란 카드는 방역에 전문성을 더하기 위한 것일 뿐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문재인은 21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을 초청해 오찬을 갖고 기모란 임명 논란에 대해 "나는 전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22일자 조선일보 ‘만물상에 실린 ‘기모란까지, 문 정권의 통혁당 인맥' 삽화.
22일자 조선일보 ‘만물상에 실린 ‘기모란까지, 문 정권의 통혁당 인맥' 삽화.

기모란까지, 문 정권의 통혁당 인맥

22일자 조선일보 만물상에는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제목은 기모란까지, 문 정권의 통혁당 인맥’ .

이에 따르면 문재인은 유달리 통혁당 가담 인물들과 인맥이 두텁다는 것이다. 이날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기모란의 아버지가 통혁당 사건으로 복역했던 기세춘씨다고 밝혔다. 문재인이 왜 기모란을 감싸는 이유를 짐작케 했다.

이에 따르면 문재인은 신영복 전 교수를 유달리 좋아한다. 신영복 역시 통혁당 사건의 핵심인물이다. 1988년 사상 전향서를 쓰고 20년 만에 출소했다.

지난 2018년 동계올림픽 리셉션에선 펜스 전 미국 부통령과 북한 김영남 위원장을 앞에 두고 신영복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고 말했다.

김여정이 청와대를 방문했을 땐 신영복의 ()’ 글씨와 한반도 그림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으며 (·소통)으로 통(·통일)을 이룬다고 했다. 청와대 비서실엔 신영복이 쓴 춘풍추상(春風秋霜)’ 액자를 돌렸다. 대선 구호를 담은 현수막이나 대통령 시계 뒷면에도 신영복 글씨를 넣었다.

한명숙 전 총리의 남편인 박성준 전 교수는 신영복의 학교 후배로 통혁당 사건의 핵심인물로 함께 복역했다. 한 전 총리는 통혁당 사건 때 박성준의 포섭 대상자로 나온다. 박 전 교수가 문재인의 숨은 멘토라는 말도 있다.

문재인이 한 전 총리 신원(伸寃)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일 수 있다. 문 정부 초대 법무장관 후보자였던 안경환 전 서울대 교수는 신영복과 동향으로 친분이 깊다.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고민정 의원은 2016년 신영복 영결식에서 문 대통령을 처음 만났다고 한다.

통혁당 관련, 보도와 유인물. 출처=구글
통혁당 관련, 보도와 유인물. 출처=구글

통혁당 사건이란

통혁당 사건은 1964년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 1967년 동백림간첩단 사건과 함께 대한민국 체제 전복을 노렸던 대규모 간첩단 사건이다.

통혁당 사건에 검거된 158명 중 73(23명 불구속)이 검찰에 송치된 이 사건은 규모와 성격에 있어 6·25전쟁 후 최대 조직 사건이었다.

1968720일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은 기자들을 불러 남한 최대의 간첩단 사건, 이른바 '임자도 간첩단 사건'의 전말을 담은 발표문을 또박또박 읽어 내려간다. 관련자 118. 정태묵, 최영도, 윤상수 등 거물급만 27명으로……1961년부터 임자도를 중심으로 서해안과 전라남도 일대에 지하당을 조직하고 결정적 시기에 대비한 유격활동과 근거지 구축을 기도하며 서울과 목포를 비롯한 각지에서 위장기업을 운영하면서 각계각층에 대거 침투했다. (경향신문 1968720일자)

이어 1968824일 오전 중앙정보부가 일명 `통일혁명당 간첩단사건`의 진상을 발표, 이 사건 관련자 158명 중 73명을 송치하고 나머지 85명에 대해서는 계속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들 간첩단은 김종태를 우두머리로 하고 김질락(청맥사 주간)과 이문규(학사주점 대표)를 중심으로 서울 문리대를 비롯한 각 대학 출신 혁신적 엘리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모급은 전후 4차에 걸쳐 북한을 내왕하면서 김일성을 면담한 바 있다.

김종태는 북한공산집단의 대남사업총국장 허봉학으로부터 직접 지령과 공작금(미화 7만 달러와 한화 2,250만 원)을 받고 남파된 거물간첩이었다. 그는 운수업으로 위장하여 통일혁명당(북한노동당의 在南地下黨)을 조직하고, ()남로당원·혁신적 지식인·학생·청년 등을 대량 포섭하였다. 그리고 결정적 시기가 오면 무장봉기하여 수도권을 장악하고, 요인암살·정부전복을 기도하려 하다가 일망타진되었다.

중앙정보부는 이 간첩단이 모택동 공작전법 베트콩식 게릴라 전법 등을 원용, 민족해방전선 조국해방전선을 구성, `학사주점` 9개의 서클을 형성, 각종 정보를 수집, 북한에 제공해 왔다고 밝혔다.

이 사건과 관련되어 검거된 자는 모두 158명이었으며, 이들 중 73명이 송치되었고, 23명은 불구속되었다. 무장공작선 1, 고무보트 1, 무전기 7, 기관단총 12, 수류탄 7, 무반동총 1정과 권총 7정 및 실탄 140, 12.7mm 고사총 1, 중기관총 1, 레이더 1대와 라디오 수신기 6, 미화 3만여 달러와 한화 73만여 원 등이 압수되었다.

지난 681122일 오전 1050분 서울형사지법 합의6(재판장·이상원 부장판사·허정훈·윤상목 판사)심리, 서울지검 공안부 임두빈 이창우 김종건 이규명 검사관여로 대법정에서 첫 공판이 열렸다.

1968년, 공판에서 진술하고 있는 통혁당사건 주모자 김종태(왼쪽). 김종태는 1969년 7월 10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김종태가 사형을 당하자 김일성은 그에게 영웅 칭호를 수여하고, 해주사범학교를 김종태사범학교로 개칭하였다.
1968년, 공판에서 진술하고 있는 통혁당사건 주모자 김종태(왼쪽). 김종태는 1969년 7월 10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김종태가 사형을 당하자 김일성은 그에게 영웅 칭호를 수여하고, 해주사범학교를 김종태사범학교로 개칭하였다.

김일성 수괴 김종태 영웅 칭호

아래는 당시 중앙일보 기사.

재판부는 검찰에서 통혁당수괴로 단정한 김종태 피고인(42·일명 백두일)27명에 대한 인정심문을 끝내고 낮12시쯤부터 사실심리에 들어갔다.

70년 무장봉기획책 공소요지|삼엄한 경비 속에 인정심문

이날 맨 처음으로 사실심리를 받은 김종태피고인은 이창우 검사의 심문때 공소사실의 대 부분을 시인했다.

김피고인은 643월말 임자도를 출발, 북괴에 갈때는단순히 돈을 얻기위한 목적이었으나 나중에 북괴의 지령에따라 잡지청맥등을 발간한 경위등은 공소사실에 적힌 대로라 말했다.

검찰은 김종태를 수괴로 지도원 이문규, 그 아래 전위조직으로 김찬낙, 군법회의에 넘어간 신영복등과 함께 민족해방전선을 조직하고 학사주점·동학연구회등을 거점으로 욕구불만의 지식인들을 포섭하여 7만여달러와 일화90만원, 원화30여만원으로 지하세력을 확대, 70년대에 무장봉기를 꾀하려했다고 공소사실의 요지를 밝혔다.

피고인들은 성명·본적·주소·직업·나이를 묻는 재판장의 인정심문에 대해 작은 목소리지만 또박또박 짤막하게 대답했다.

첫 공만이 열리는 서울형사지법 대법정주위는 경비 나온 경찰관들로 경비가 삼엄했다.

이른 아침부터 피고인들의 가족들이 서울지검구치감과 대법정주위에서 서성거렸으나 상오 10시 피고인들이 모두 입정한 뒤 선착순으로120여명만이 방청할 수 있었을 뿐이다.

피고인들의 대부분은 머리카락과 덥수룩한 수염을 깍지 않아 초췌한 모습이었으며 전 국회의원 김상도피고인(54)은 회색마고자에 흰바지 차림이었다.

범죄수가 180가지라고 검찰에서 지적한 통혁당수괴 김종태 피고인은 고동색마고자 차림에 정면을 주시하면서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김종태 피고인은 이 사건에 관련, 기소된 후 수감중인 서울구치소에서 탈출하려다 실패, 특수도주죄가 추가 적용됐다.

이들은 지난 64315일 세칭 통일혁명당이라는 옛 남노당계의 지하망을 조직, 욕구불만의 지식인과 청년학생등을 포섭하여베트콩식의 자칭조선민족해방전선을 조직하려다 검거됐다.

이들은 이 조직으로게릴라전을 시도하면서 70년대에 가서는 결정적인 시기에 무장봉기를 하려고 꾀했다는 혐의로 기소했다.

이들 간첩단은 1969125일에 열린 선고공판에서 국가보안법, 반공법, 형법상의 간첩죄, 내란 음모죄 등을 적용, 김종태, 김질락, 이문규 등 5명은 사형, 신광현 등 4명에게 무기징역, 나머지 21명은 최고 15년에서 최하 3년까지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김종태는 1969710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김종태가 사형을 당하자 김일성은 그에게 영웅 칭호를 수여하고, 해주사범학교를 김종태사범학교로 개칭하였다.

이 사건은 박정희 정권이 만든 조작이라는 주장도 없지 않았지만 김종태도 공소사실을 시인했고 중정은 통혁당이 북한 조선노동당의 지령을 받는 남한 간첩조직이라고 주장했다. 통혁당 사건은 관련자들의 진술 등을 종합하면 실재했던 사건이다.

지난 2018년 2월 북한 김여정과 김영남이 청와대에 방문해 문재인과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뒤의 배경막엔 신영복의 글씨가 이철수의 판화와 함께 걸렸다. 배경막 좌측의 글씨가 신영복이 쓴 통(通)이란 글자다.출처 : 톱스타뉴스(http://www.topstarnews.net)출처 : 톱스타뉴스(http://www.topstarnews.net)
지난 2018년 2월 북한 김여정과 김영남이 청와대에 방문해 문재인과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뒤의 배경막엔 신영복의 글씨가 이철수의 판화와 함께 걸렸다. 배경막 좌측의 글씨가 신영복이 쓴 통(通)이란 글자다.출처 : 톱스타뉴스(http://www.topstarnews.net)출처 : 톱스타뉴스(http://www.topstarnews.net)

문재인 존경가 신영복

이들 중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한 사람이 복역 2020일 만에 1988년 광복절 특사로 출소했다. 그가 바로 베스트셀러가 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쓴 신영복 성공회대 전 교수 였다.

지난 89년 도서출판 '대동'이 펴낸 통혁당에는 통혁당이 1967년 발간한 비합법기관지 혁명전선의 내용이 자세히 언급돼 있다.

혁명전선은 제 3자가 아닌, 통혁당 주축 세력들이 비밀리에 기록한 글이다. 문재인이 존경한다는 신영복이 등장한다.

‘1964315. 역사적인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약속장소에 와서 보니 이미 김질락, 이문규 동지가 와 있었다. 신영복 동지가 들어오면서 분위기는 전보다도 훨씬 고조됐다.

그러면 전원 모이셨습니다. 민족의 태양 김일성 장군께서 교시하신 주체의 당 창건 방침을 받들고, 그 사이 동지들께서 필사의 노력으로 분투하신 결과 오늘로서 우리는 <통일혁명당 창당준비위원회>의 결성을 보게 됐습니다.

어디까지나 우리 당이 민족의 태양, 김일성 장군의 혁명사상을 구현하기 위한 한국혁명의 전위당인 만큼 당원과 각계의 애국민중을 하나의 혁명전선으로 결속해야 할 것이라는 정치활동의 목표로부터 출발해 우리 당 기관지를 <혁명전선>이라고 하면 어떤가 하고 생각합니다.

전원이 찬성했다...철필로 긁은 등사판으로 인쇄된 수십 부밖에 안 되는 신문이었지만 한국에서 발간된 최초의 김일성주의 출판물에 접했던 순간, 편집위원 전원의 눈이 잠시 뜨겁게 빛났다.

우리들은 이 힘 있는 정치선전수단으로 보다 많은 김일성주의자를 육성하고 각계각층 애국민중을 하나의 혁명전선, 통일혁명의 깃발 아래 강고하게 결집시키도록 합시다.’

혁명전선은 통혁당의 실체와 이념적 배경을 여실히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 받고 있다. 통혁당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지도 이념으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재인은 이런 신영복을 존경하는 인물이라 했다. 문재인은 신영복이 옥중에서 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추종자'가 됐다. 신영복은 처음처럼이란 소주 상표의 원저작자로 더 많이 알려진 인물이다. 오늘날 좌파들의 필독 입문서다. 통혁당 정신은 주사파 정신으로 이어져왔다. 오늘날 문재인 좌파 정권의 핵심을 이루는 세력들이란 분석이다.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체포될 당시 육군사관학교 교관으로 생도들에게 '경제학원론'을 가르쳤던 신영복은 20년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복역한 뒤에도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와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한명숙 전 총리의 남편 박성준 전 교수는 신영복이 통혁당에 영입한 케이스다. 신영복은 학교 후배인 박성준을 끌어 들여 <청맥> 발행을 이끄는 등, 그룹 내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왔다.

신영복이 사형을 구형받았다는 당시의 신문기사. 왼쪽이 신형복이다.
신영복이 사형을 구형받았다는 당시의 신문기사. 왼쪽이 신형복이다.

신영복, 한명숙 남편 박성준 포섭

통혁당 활동 혐의로 검거될 당시 박성준은 서울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인 학생 신분이었다. 그는 66년 신영복에게 포섭돼 김일성 사상 교육을 받고, 6.8부정선거 규탄 데모를 벌였다.

당시 중앙정보부 수사발표에 따르면, 박성준은 19676월 신영복에게 포섭된 당 소조책으로서 처 한명숙도 소조로 포섭했다. 당시 이대생이었던 한명숙은 1967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박성준과 혼례를 올렸다.

하지만 6개월 뒤 박성준·한명숙 부부는 신영복과 함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재판 결과 한명숙은 징역 1, 집행유예 1, 자격정지 1년 형을 언도 받으며 풀려났지만, 박성준은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고,

박성준은 서울 상대를 위시한 각 대학 출신 및 재학 중인 기독교계 학생을 모체로 결성된 기독청년 경제복지회를 주도하여 자본주의 경제제도를 비판하고 소위 사회주의적 복지경제를 주장하면서 북괴의 경제제도를 찬양, 이를 연구 보급했다는 것이다.

신영복의 설득에 넘어가 본격적인 공산화운동에 뛰어든 박성준은 연합서클인 경제복지회 활동을 하면서 당시 이대생이던 한명숙을 만났다.

81년 출소했다. 이후 반전평화를 내 건 반미색채의 저술과 활동을 벌여왔다. 출소 후 일본과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한 박성준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을 퀘이커파(개신교의 한파), 맑스주의자등으로 소개해왔다.

한명숙은 1979'크리스천 아카데미 사건'으로 2년간 감옥생활을 했다. 그후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한 후 여성부 초대 장관을 지내다가 2006년엔 헌정 사상 첫 여성 총리로 지명돼 화제를 모았었다.

한 전 총리는 미국에서 민족통신을 운영해온 대표적인 종북 재미교포 노길남(20204월 작고)과 지난 2014종북 토크 콘서트논란 등으로 강제 출국된 재미교포 신은미 씨 부부와도 절친한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명숙 전 총리가 종북좌파 민족통신 운영자 노길남과 만나서 악수를 하고 있다.
한명숙 전 총리가 종북좌파 민족통신 운영자 노길남과 만나서 악수를 하고 있다.

문재인 한명숙 구하기 집착 왜?

한명숙은 2007년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대선 경선 비용 명목으로 세 차례에 걸쳐 9억원을 받은 혐의로 2010년 기소됐다. 한 전 대표가 법정에서 진술을 뒤집어 1심서 무죄가 났지만, 2심에선 돈 준 증거가 인정됐다. 대법원서도 대법관 만장일치로 유죄 결정이 나 징역 2년형이 선고됐다.

여권은 작년 4월 총선에서 압승한 이후 일제히 한명숙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을 재조사하라고 요구했다. 잘못된 검찰 수사의 희생자라는 이유였다.

유죄의 증거가 명백하고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났는데도 건설업자 한만호씨의 증언 번복만 앞세워 무조건 무죄라고 했다.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한명숙 수사팀이 관련자들에게 위증을 강요한 의혹이 짙다며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조사토록 했다. 하지만 사실무근결론이 났다.

그러자 박범계 법무장관이 다시 지휘권을 발동해 재심의하라고 했다. 친정권 검사에게 이 일을 맡기고 수사권까지 줬다. 편집증에 가까웠다.

친문 인사들을 만나면 열이면 열 한명숙은 무고하다” “정치 보복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말한다. “수표가 나왔고 증거가 명백하지 않느냐고 하면 그건 비서가 받은 돈이지 한명숙과 무관하다고 했다. 비서가 한 전 총리 몰래 돈을 받아 한 전 총리 동생에게 건넸다는 얘기다. 한 전 총리의 무죄를 주장하느라 이 해괴한 설명에 매달린다.

왜 그럴까. 문재인이 가장 고맙고 애틋해하는 사람이 한명숙이라고 한다. 친노·친문의 대모(代母)이자 도덕성의 상징적 존재라는 것이다. 한명숙이 상처 입으면 진보 진영 전체가 오염된다고 했다.

이 정권이 대법원 판결이나 법 절차까지 무시한 채 막무가내로 한명숙 신원에 매달리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은 통혁당 연계란 지적도 없지 않다.

신영복과 고민정과의 인연이 눈길을 끈다. 고민정은 지난 2월 총선 출마 전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남편, 신영복, 문재인을 가장 존경한다고 밝혔다. 출처=구글
신영복과 고민정과의 인연이 눈길을 끈다. 고민정은 지난 2월 총선 출마 전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남편, 신영복, 문재인을 가장 존경한다고 밝혔다. 출처=구글

신영복 영결식 인맥 고민정부터 탁현민, 김제동

한편, 1989년부터 성공회대에서 정치경제학, 사회과학입문, 중국고전강독을 강의하던 신 교수는 이후 감옥 생활에서 느낀 한과 고뇌를 편지와 글로 풀어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펴내고서는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1·2', '강의-나의 동양고전독법', '처음처럼', '변방을 찾아서' 등 활발한 저술활동을 했다.

그는 2006년 성공회대에서 정년퇴직하고서도 석좌교수로 강의를 이어갔다. 그러나 2014년 희귀 피부암 진단을 받아 그해 겨울학기를 마지막으로 강단에서 내려왔다.

투병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2016115일 오후 930분께 자택에서 호흡이 멈춰 인근 이대목동병원으로 옮겨졌고, 당일 오후 1147분께 최종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향년 75.

당시 영결식은 김제동 사회로 진행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이재정 경기도청 교육감이 조사를, 진영종 성공회대 교수회의장·윤미연 서울여대 초빙교수·고민정 KBS 아나운서·탁현민 성공회대 겸임교수 등이 추도사를 낭독했다. 

고민정은 지난 2017년 5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타그램에 "선생님. 보고 계시죠?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되겠다"는 글과 함께 신영복 교수 묘지 사진을 올렸다.

고민정은 문재인과 신영복 영결식장에서 처음 만나 인연을 쌓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가수 정태춘씨가 추모곡을 불렀다.

빈소에는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와 정운찬 전 국무총리, 박원순 서울시장, 노회찬 전 의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안희정 충남지사, 이인영 의원, 유시민 의원, 박원석 의원, 안경환 전 인권위원장 등 각계 인사도 찾아 조문했다.

문재인은 지난 2017115일 성공회대학교 성미가엘성당에서 열린 고 신영복 1주기 추모식에 참석 추모사를 낭독했다. 당시 문재인은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이라며 고인에게 각별한 경의를 표했다.

22일자 조선일보가 보도한 문재인과 통혁당의 인맥에서 문재인은 통혁당에서 실질적인 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통혁당 핵심 신영복, 박성준과의 투터운 인맥은 통혁당의 정신을 이어져 오게 하지 않았느냐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는 발언으로 기소된 고영주 변호사는 문재인=공산주의자확신의 증거로 통일혁명당 관련 인물인 신영복이 나온다.

문재인이 야권의 반발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통혁당 기세춘 딸, 기모란을 방역기획관으로 임명한 것은 문재인이 왜 통혁당 사건 인맥을 집착하는지 짐작되는 이유와 까닭이다.

흥미로운 것은 기모란(奇牡丹)이름은 북한 평양시 기림리금수산에 있는 봉우리 모란봉(牡丹峰)의 한자와 같다

()는 수컷 모, ()은 붉은 단이다. 기세춘은 딸 이름 첫 자에 왜 수컷 모를 넣었을까. 북한 '모란봉'을 떠올리며 이름을 지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기세춘씨(오른쪽)가 양산갑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한 사위 이재영 선거 사무실에 들러 이 후보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  기모란 남편인 이재영은 현재 민주당 정책위 부의장이다. 출처=이재영 블로그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기세춘씨(오른쪽)가 양산갑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한 사위 이재영 선거 사무실에 들러 이 후보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 기모란 남편인 이재영은 현재 민주당 정책위 부의장이다. 출처=이재영 블로그

중앙정보부, 통일혁명당 지하간첩단 수사 발표(1968.08.24.)

지령내용=남조선 혁명은 남조선인민의 힘으로 완수할수있도록 혁명기반을 구축하라 혁신정당을 표방할 수있는 위장조직으로 통일혁명단을 조직하라 서울대학교문리대출신을 모체로한(혁신엘리트의 집결체) 각종학술연구서클을 조직, 당지도간부를 양성하라 개성서클에 핵심을 중점포치하여 당소조로 흡수하라 이동문고를 작성순회교양하고 기밀성을 최고도로 보장하라 ⑥「조선민족해방통일전선구성을 위한 연합전선형성을 구상하라 모든 조직은 장차 유격대로 발전시킬수 있도록 사상적 무장과 전술간부획득에 노력하라 서해안지역에 무기양육지점을 선정하고 비축방안을 강구하라 특수전술교관요원을 물색포섭하여 월북시키라 청맥지를 당기관지로 내용을 보강하라 무력투쟁에 있어서는 수도권을 장악할수있는 계획과 준비를 갖추라 모든 활동은 합법·비합법·폭력·비폭력의 배합투쟁을 과감히 전개하되 노출되지 않는 방향으로 경각성을 제고하고 항시 법테두리를 벗어나지않는 방법으로 탈법요령과 법정투쟁전술을 연구하라 당소조와 각 서클을 통한 6·8부정선거반대투쟁과 반미반정부선동을 과감히 전개하라 9에는9·9참석차 월북하라

압수금품=한화731천원 미화31백불 무전기 7난수표 2암호문건 7암서용화학약품 1권총7(실탄140) 라디오수신기 6녹음테테이프(김일성연설) 2타자기1복사기1북괴무장공작선 1(75) 동고무보트 1기관단총 12수류탄 782mm 무반동총 112·7mm 고사총 1중기관총 1레이다1

피의 사실

서클별 중요활동내용=간첩 김찬낙담당 당소조(민족해방전선) 새문화연구회(685월 월북한 서울문리대출신 이진영이 주도) 동회휘하에 역사분과위원회, 정치분과위원회, 사회분과위원회, 경제분과위원회, 문화분과위원회, 법률분과위원회의 6개 분과위원회를 두고 각분야별로 공산주의 교리에 입각한 학술연구와 현정부비판으로 사상무장을 하여왔으며 특히 청맥지 기고를 부담하는 한편 각분야정보를 수집.

청년문학가협회(성균관대출신 문학평론가인 임중빈이 주도) 각 대학출신의 혁신적인 문학가·평론가·시인·신문기자 등을 망라하여 공산주의적 관점에 입각한 현실비판, 저항, 선동 등의 문학작품을 쓰고 공산주의문학을 연구.

불교청년회(성균관대출신 김희순이 주도) 동회내에 송산수양회를 조직하고 당소조로 흡수코자 공작하였으며 주로 성균관대, 동국대출신을 모체로 일반신도층에 뿌리를박고 불교교리를 소위 자유자립적 민족주의에 관련시켜 외세를 배격(반미), 남북통일을 주장하면서 청년신도의 사상적 규합에 주력.

동학회(서울대문리대출신 노인영이 주도)서울대출신 및 재학생을 모체로 사회주의혁명 및 동사상을 기조로 한 적화통일을 주창, 동학난식 민중봉기방법을 연구.

민족주의연구회(동국대출신 권오창이 주도)동국대출신 및 재학생을 모체로 소위 민족자립 외세배격(반미) 민족주의통일책을 골자로한 자칭 순수민족주의를 주창하면서 북괴의 통일노선을 연구, 동조자포섭및 선동.

경우회(서울상대출신 이종태가 주도) 서울상대출신 및 재학생을 모체로 소위 자주경제, 자립경제, 반제, 반자본, 반매판을 주장하면서 사회주의 경제이론과 북괴의 경제체제를 연구, 이를 찬양하고 자본주의경제체제를 비판하면서 프롤레타리아사회건설을 선동.

기독청년경제복사회(약칭EWS=서울상대출신 박성준이 주도) 서울상대를 위시한 각 대학출신 및 재학중인 기독교계통의 학생을 모체로하여 전항과 대동소이한 이념밑에 자본주의경제제도를 비판하고 소칭 사회주의적 복지경제를 주장하면서 북괴의 경제제도를 찬양, 이를 연구보급.

청맥회(서울상대 출신 신영복이 주도) 이화여대출신 및 재학생을 모체로 한 여학생조직으로서 소칭 자주적민족주(반미)와 반제, 반자본, 반봉건을 표방한 사회주의국가건설을 지향하면서 북괴의 통일노선에 동조하는 학습회조직 및 그활동.

간첩이문규담당 당소조(조국해방전선) 학사주점(60년대학사회) 서울대문리대출신을 모체로 혁신적 엘리트를 자처하는 각 대학졸업생및 재학생등 소위60년대학사를 망라한 것으로(주주 60여석) 간첩이문규부부가 직접 경영하면서 지도한 당소조로서 소위 대화의 광장을 만들어 현실비판과 불만자학행위를 선동, 이동문고를 통한 사상교양으로 본격적인 조직활동체로 위장.

※「조선민족 해방통일 전선구성=가칭 통일혁명당당수인 간첩 김종태는 소칭베트콩식 연합전선을 구성할 의도하에 조선민족해방통일전선의 결성을 목표로 재일조총련의 국내조직인 가칭 남조선민족전략당과 제휴하기 위하여 동당총책 권재혁(서울문리대 및 미국조지타운대·몬타나주립대학출신이며 전 남노당원)과 접선, 연합전선결성에 합의, 북괴재일지도부의 재정지원하에 별도로 장차 연합전선형성에 있어 기본모체가 될수있는 새로운 형태의 지하당 조직에 착수하는 한편 6·8선거후 소위 당의 전위조직인 각서클에 지령하여 6·8부정선거반대」 「데모및 미험프리부통령 비난데모등 반정부·반미데모를 획책, 당시 연쇄적으로 수개처에서 데모를 전개하였다.

<개인별 피의내용>

김종태(43·운수업·동국대졸) 10·1폭동사건가담 북괴노동당입당 북괴에 4차 내왕 김일성과 면접 조선민족해방통일전선구성 청맥사 설립 공작금한화1350만원 미불 7만불수수 북괴9·9절 참석차 재월북 준비 중 통일혁명당 당수

김기락(34·무직·서울문리대졸) 청맥사 주간 674윌북괴에 월북 북괴노동당입당 통혁당지도부형성지도책 민족해방전선책임비서 공작금1백만원 수수

이문규(33·무직·서울문리대졸) 통일혁명당, 남조선 혁명당 지도부지도책 6754528일 북괴에 월북 북괴노동당입당 조국해방전선책임비서 공작금한화1백만원,암호문건 및 권총1(실탄l4) 수수

이재학(35·모 보험회사 홍보실장·서울문리대졸) 621월학사주점주주 675월 이문규에게 포섭 674월 공작금15천원수수 6712월 이문규로부터 월북권유받음 조국해방전선조직책비서

오병철(32·비봉중학교사·서울문리대졸) 647월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 6410월 공소취하석방 67년봄 이문규에게 포섭 678월 공작금12만원수수 681월 이문규로부터마르크스·레닌강좌 청취용 라디오1대 수수 통혁당교양책

윤상환(31·데이비드웡사상무·고대졸) 666월 이문규에게 포섭 667월부터 불온서적탐독 675월 조국해방전선 교양책

신향식(35·상업·서울문리대졸) 65560년대학사회 상무간사 673월 이문규에게 포섭 684월 이문규로부터 라디오1대 수수 686월 조국해방전선직속구성원

허정길(24·공무원·중앙대졸) 6610월 이재학에게 포섭 679월 중앙대생 박지학 등 포섭코자 활동

이해경(29·비봉중학교사·서울문리대재학) 오병철에게 포섭 학사주점핵심멤버

김병영(·33·숙대졸) 이문규의 공작금품은닉 ②「우리당의 노선원고를 타자제공이문규의 간첩행위방조

송준철(30·해군대위·경북의대대학원졸) 이문규가 간첩으로 수배의 정을 알면서 은닉 이문규 도피후 연락담당

권재혁(44·국제참지사 서울사무소지배인·서울문리대졸) 638월 이일재와 노농계급당구성 6511월 지하당조직자금을 조총련으로부터 수수모의 671월 노농군결성 모의 672월 도일하여 재일북괴지도원 천만기와 접선 6812차 조직확대회의에서 해방전선형성모의, 전략당 조직(총책) 683월 공작금품일화50만원 트랜지스터1대 암호문건 등 수수

이일재(45·무직·대구해성교졸) 469윌 남로당입당 (빨치산) 671월 권재혁과 2차 지하당조직모의 681월 전략당조직(지도원)

이강복(58·회사수위·조도전대중퇴) 678월 권재혁과 지하당조직모의 683월 권재혁으로부터 공작금8만원수수 전략당조직 지도원)

이형낙(가명 이권·38·상업·성도중학졸) 671681월 권재혁과 지하당조직 (대구조직책) 671월 권재혁이 재일북괴공작원과 접선된점을 알고 시계 등 수수 677683월 권으로부터 공작금128천원 수수

조현창(37·라디오부속상·진주고교졸) 671월 권재혁과 지하당(부산지구조직책) 676월 권으로부터 노동운동 지령받음 679월 권으로부터 동조자포섭 지령받음

나경일(39·한국나일론공원·일본상반중중퇴) 683윌 전략당에 가입 683월 구정권외 2명 포섭 674683월 이형낙으로부터 공작금21천원수수

김봉규(54·무허치의·평남의명중3년중퇴) 8·15후 북괴내무서장 671월 권재혁과 지하당조직 673월 오시황 포섭 681월 전략당 가입(청량리조직책) 681월 이수용포섭

노정훈(32·의류 제조업·건국대3연중퇴) 용공혐의로 군재에서 10년 선고를 받았으나 특사 656월 권재혁과 지하당 조직모의 656월 손정박 등 4명 포섭 671월 지하당기조직확대모의가담 681월 전략당가입 (마포조직책)

박점출(42·노동·국졸) 638월 권재혁 지하당조직모의 675월 전국련합노조에 침투 685월 전략당 가입 662684월 권재혁으로부터 공작금 113,000원 수수

오시황(41·운전사·탈영5개월 복역·사회대중당입당·자민당입당) 658월 이일재에게 포섭 673월 이일재로부터 교양받음 67년 운수노조에 침투 681월 전략당 가입 681월 이수용 포섭

노인영(31·과학기술처행정주사·서울대 대학원중퇴) 통일혁명당 구성원 신영복에게포섭 신영복으로부터 불온서적인 새벽길·조선경제사, 너는 누구의 아들이냐4권 수수 탐독 기세춘,김형래등을 포섭 그 명단을 신영복에게 보고(당소조책)

이종태(26·인구문제연구소연구원보·서울대대학원졸) 6612월초 신영복에게 포섭 8차에 걸쳐 김일성 전집등 불온책자를 수수, 탐독 신영복의 지시로 신남휴 박찬일 등 4명 포섭 사회주의사상주입 (당소조책)

임중빈(29·평논가·성균관대국문과졸) 간첩 이진영에게 포섭 청년문학가협회회원으로 조동일외 2명을 포섭, 사회주의사상교양 6712월 이진영으로부터 월북권유수락 이진영으로부터 공작금15천원 수수(당소조책)

김희순(32·전해군3급문관·성균관대법정대졸) 간첩 이진영에게 포섭 불온서적5권수수 불온 비라살포(당소조책)

임규택(32·회사원·동국대졸) 간첩 이진영에게 포섭 사회주의혁명에 대한 독서회 67630일 반미 반정부비라제작살포 68년 이진영 월북사실인지코 협조(당소조책)

권오창(32·무직·동국대대학원2) 이진영에게 포섭되어 사회주의혁명에 대한 학습회 참가 676월 반미반정부 비라제작살포 이진영 월북사실인지코 협조

신광현(44·상업·대구상업졸) 김종태에게 포섭 정종소 이장원 포섭 경상북도조직책으로 활동

정종소(42·화장품수금원·양정중졸) 이일재 박점출등과 북괴지하당조직모의 김종태에게 포섭되어 교양을 받고 공작금12만원수수 그중 이장원에게 3만원을 주고 동인을 포섭(당소조책)

이장원(31·농업·남성현고등공민교졸) 정종소에게 포섭되어 당에가입 공작금3만원 수수 ③「마르크스경제학을 교양받고 4H구락부에 침투할목적아래 동회원 김모포섭활동

이영윤(28·공군정훈장교·서울사대졸) 신영복에게 포섭 이대서클 청맥회원8명을 서해말도에 인솔 사회주의교양실시 주한일본대사관폭파음모 게릴라전술연구 (북괴대남공작)(당소조책)

오병현(28·무직·월북중·중졸) 오병철에게 포섭되어 통일혁명당원으로 활동 68422일 간첩 김종태와 함께 월북(현재북괴에서 특수전술 훈련 중)

임영숙(37·김종태의 처·동국대화학과2년 중퇴) 644월경부터 남편 김종태가 북괴간첩으로 활동함에 있어 김종태와 같이 북괴A-3방송을 수신, 해문하고 무전송신작업협조 및 공작금을 관리하고 접선지점 현지경찰 등 적극 방조

김상도(54·신민당제14지구당위원장·대구교남학교2년증퇴) 실제 김종태가 북괴간첩이라는 것을 알면서 불고지 6768일 신민당경북 제14지구(영천)에 입후보하여 반국가단체 구성원인 김종태로부터 전후3회에 긍하여 68만원수수

신영복(27·육군중위·서울상대졸) 662월 김질락에게 포섭 학생 청년지도책을 맡고 이종태 노인영 박성준 이수인 이영윤 등을 포섭 (민족해방전선조직비서)

박성준(28·서울상대3년재학중) 676윌 신영복에게 포섭되어 처 한명숙 및 박경호 김국주 은철수등을 포섭 (당소조책)

이수인(28·무직·서울상대졸) 6610월 신영복 포섭되어 처 김인자 윤동명 지기영 이호조 등을포섭(당소조책)

김병권(47·상업·대구수창국민교졸) 권재혁과접선 남조선 해방전략당조직을 모의코 활동 671월 및68133차에 긍하여 당전체회의에 참가

심재주(26·견습기자·서울문리대졸) 671월경부터 북괴간첩 김종태의 하부선인 재남지하당학생·청년지도책 신영복과 접선, 사회주의국가수립에 동조 신영복으로부터 불온신문편집 및 기사작성의 지령수락

신남휴(25·해군소위·서울상대졸) 한일회담반대데모가담 6612월 이종태와 북괴재남 지하당간부 신영복과 접선, 동인의 주장에 동조고무 북괴간행물등 탐독

김국주(22·외환은행원·서울상2년중퇴) 657월부터 북괴재남지하당간부 박성준과 접선, 동인의 사회주의국가수립선전에 동조 북괴불온서적탐독

은철수(23·한국은행원·서울대대학원재학중) 679월부터 북괴재남지하당간부 신영복 박성준 등과 접촉, 동인등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이론에 공오동조 북괴불온책자탐독

박경호(23·서울문리대정치과3년재학) 673월부터 북괴재남지하당원 박성준과 접촉, 가칭 통일혁명당에 가입 사회주의국가현실에 동조 공산서적탐독

김진환(39·상업·동국대정치과4년중퇴) 64·3월 북괴간첩 김종태에게 포섭 64·6월 북괴지령하의 청맥지 대표로 취임 648676월간 45천부발간 반포 646676월간 간첩김종태로부터 청맥지 발간운영금150만원수수

양동림(·41·무직·전남여고졸업) 648월경 간첩 김종태와 접촉 간첩의 정을알면서 불고지 674685월간 김종태가 소지남하한 공작금 4달러를 수차에 긍하여 한화로 교환해주고 수고비조로 금10만원을 수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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