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BC 단상]저 쓰레기들과 다르다. “뽀다구 나는 우파로 거듭나 보자”
[JBC 단상]저 쓰레기들과 다르다. “뽀다구 나는 우파로 거듭나 보자”
  • JBC까
  • 승인 2021.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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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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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한 우파 인사를 만났다. 그는 된장을 좋아해서 기회가 되면 된장집을 열고 싶다고 했다. 그랬더니 한 분이 농담조로 된장은 좌파의 전용 음식이다고 우스갯 소리로 말했다. "나이들어서 편히 살지 왜 고생스럽게 된장집을 열려고 하느냐"며 이를 만류하기 위해서 내뱉은 말이다. 

그는 기겁하고 된장 집 포기를 선언(?)했다.

사람들간 대화에서 좌우 프레임을 부치는 것이 일상인데, 음식에도 좌우가 통하니 얼마나 좌파가 보기 싫으면 이럴까 싶다. 상대가 호남이라면 우선 좌파로 경계한다. 한 특정 상표 소주를 마시면 "좌파꺼 왜 마시냐"고 쏘아부친다. "문재인이 준 코로나 지원금 잘썼다"면 당신 좌파요?”라는 질문이 속사포처럼 날아온다.

문재인과 좌파라면 신물이 나고, 꼴도 보기 싫어서 이런 일상에서도 끊임없이 나오는 대화중 하나다. 

이것은 단순히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새가 양 날개로 날 듯 사회의 건전한 발전은 좌우의 협력과 조화여야 한다. 문 좌파 정권이 얼마나 좌파색채로 국민들을 신물 나게 했으면 이럴까.

보통사람들의 이런 식의 좌파론을 보면서 문 좌파 정권이 진보와 좌파, 보수와 우파 사상과 이론을 왜 이렇게 누더기로 만들었는지에 대해 또 다른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좌파와 우파를 규정짓는 아주 복잡다단함 방식과 정치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 역사적 인식, 철학적 형태 등 다양함을 뒤로하고 이렇게 구분짓는 게 분명 한국사회에서만 가능할 법 하다. 미국 및 서구사회에선 택도 없는 구분법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식으로 좌파와 우파를 규정짓도록 한 것은 남북 분단도 한 원인이지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탄핵 당하기 전만 해도 한국 사회는 이토록 이분법적으로 좌우를 구분 짓지 않았다,

그런데 박 대통령 탄핵 후, 그 배후에는 문재인 정권을 잉태시킨 촛불쿠데타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또 이들이 북한과 연계 되어 있다는 것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현재 대한민국은 좌경화 클릭 상태이고, 점점 사회주의로 가고 있다. 그러니 보통사람들의 이런 식의 좌우 이분법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문제는 이런 식의 이분법으로 인해 정작 중요한 이데올로기의 뒤에 옹크리고 있는 현실로써의 문 정권 좌파 본성을 제대로 포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문재인 정권의 좌파주의 현실과 맞닥뜨릴 때마다, 북한 김정은 집단 밑에 완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공산주의를 보았고, 민노총, 전교조 등의 좌파 단체들의 분노에 찬 데모를 목격 할 때 마다 문 정권이 지향하고자 하는 사회를 읽었다.

이를 보면 20대 대학 시절 데모 현장에서 귀에 목이 박히도록 들었던 주사파들의 슬로건이 떠올려진다. 80년대 386 좌파들이 살아온 모습을 40년 넘게 가까이서 지켜본 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의 일상에서 현실의 모습은 참으로 찾기 어렵다.

이들의 삶은 이상의 영역에서만 눈부실 뿐, 40년 이들의 과거는 끊임없이 현실을 부정하면서 살아온 무모한 삶의 흔적들로 가득 차 있다.

말로는 늘 민중을 위한다였지만 이 민중이 국가를 지배하고 주인노릇을 할 수 없다는 그 평범한 사실을 끝까지 부정하면서 혁명을 꿈꾸고 있다. 이들이 만들고 하는 살고자 하는 세상은 모순어법으로 가득차 있다.

문재인과 민주당 지지와 옹호에 따라 좌파냐 우파냐로 구분 짓는 것도 우습지만, 세상은 ’, ‘영성세속’, ‘순수불순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다.

세상은 개인의 취미와 성향적인 호불호 경계는 정해져 있지만 이념과 사상의 호불호에서 경계를 지을 경우 결국 논리에서 패배자가 된다. 이것은 말빨이 좋은 사람이 이긴다는 것이 아니다. 그 논리의 외형성은 침묵하는 대중을 깨울 수 있고, 또 이끌 수 있는 힘이다.

현재 우파의 비극은 우파의 본질적 가치와 보수지향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데 있다. 우파가 젊은 층으로 접근 하지 못하는 것도 우파의 논리적 우격다짐이다.

뭉매한 우파는 정의로운 척 하는 좌파를 만들어 낸다. 이런 거짓 좌파는 결국 우파의 무능함을 먹고 자란다.

사회는 대립과 갈등 속에 얽혀 있다. 우파는 그 대립과 갈등을 너 편, 내 편으로 갈라 세우고 있다. 이 쪽 저 쪽 줄서기를 통해 편을 가른다. ‘우파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런 모습이 오늘날 대한민국 우파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그러나 좌파는 그 사회적 갈등과 대립을 공개적으로 이야기 하고, 어떻게 생산적으로 만들 수 있는가를 논하고 있다. 이 논의 속에 을 이끌어 내어 이것을 이론화 시킨다. 설령, 그 이론이 같잖은 내용과 속임수로 가득하다지만, 개의치 않는다.

좌파는 거짓말로 망한다는 것은 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도 고개가 끄덕여 진다. 좌파는 너무 너무 거짓말을 많이 한다. 좌파의 거짓말은 대의에서 비롯된다. 공산주의라는 위대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인류 역사의 진보를 위해서라면 작은 거짓말은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것은 큰 정의를 위해 작은 정의는 희생되어도 괜찮다는 식의 논리다.

흔히 정당화와 비정당화가 있지만 좌파의 거짓말은 정당화로 굳어져 있는 게 정설이다. 거짓말을 정당화 하는 상황 논리가 윤리와 도적적 원칙의 차원이 되면 이는 문제가 된다. 이것은 대의를 위한 거짓말, 선의를 위한 거짓말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

지난 10일 문재인 취임 4년 회견에서 국민들은 문재인의 입에서 나오는 거북한 거짓 자화자찬을 들어야만 했다. 코로나 백신에 대해 도입과 접종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고 계획대로 차질 없이 접종을 진행하는 것은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백신 접종 꼴찌국 만들어 놓고, 며칠이면 다 맞힐 물량을 찔끔찔끔 접종하는 눈가림 쇼를 해왔다.

최근 장관 인사와 관련 야당이 반대한다고 해서 검증 실패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장관이 아니라 하급 공무원도 못 할 사람들을 국민 앞에 내놓고선 잘못한 게 없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 등 소득 주도 성장을 강력히 추진한 것이 긍정적 성과를 거뒀다고 자화자찬했다.

“(최근) 우리 경제가 OECD 국가 중 가장 빠르게 위기 전 수준으로 회복했다고 밝혔다. 문재인은 자신 잘못은 없고 남 탓만 하는 모습 그대로다.

정권을 잡은 자의 입에서 나오는 거짓말은 국민을 속이고 사기 치는 행위다. 분명한 것은 권력집단의 거짓말은 진실이 되고, 국민들은 그것이 사기이고 자신을 속이는 줄 모른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역사의 진보를 위한 거짓말은 괜찮다고 주장한다. 이는 진보를 위해 인간이 사기의 거짓의 희생양이 되어도 괜찮다는 역설이다.

좌파의 가치관이 이런 거짓과 트릭에 잡혀 있는데도, 우파는 매순간 옳고 그르고, 맞고 틀렸고의 이분법에만 갇혀 있다. 늘 새로운 판단과 결단을 요청하는 복잡한 현실을 외면하고, “내가 옳고, 넌 틀려라는 이분법 사고에 안주한 것이 아닌지 부끄러울 뿐이다.

영웅주의와 교조주의에 빠진 듯 착각에 살기도 한다. 마치 자신이 기독교적 애수의 삶을 살고 실천하고, 마치 자신이 거룩한 성인전의 주인공 인 거처럼 착각하는 아닌가.

문재인 정권은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좌파쓰레기들이 살아온 그 과정이 이요, ‘사기. 그러면서 진실적인 척, 정의로운 척, 도덕적인 척, 윤리적인 척, 청렴결백한 척, 서민인 척, 국민을 위하는 척, 무금욕적인 척. 이들의 위선적인 척은 끝없다.

실은 이들만 그런 게 아니다. 위장 기회주의 기득권 보수 우파 쓰레기들도 마찬가지다. 한 때 태극기를 들었다가 이런 쓰레기들과 일직선에 선 자들도 이 부류에 속한다. 민노총에 민주가, 정의당에 정의가, 여성단체에 여성이, 태극기 우파 시민단체에 애국이 실종 된 지 오래다.

전부 척 인척 척척 할 뿐이다. 우리는 이런 위선과 가식, 한편의 연극이 뒤섞인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이중성, 정의로운 척, 진실인 척, 마치 마초 같은 스타일로 포장해서 현혹시킨다.

이제 좌파의 허물을 보는 게 일상이다. 일상이 아님이 일상이 되어 버렸다. 박준영 해수부장관 후보가 13일 스스로 사임했지만 문재인은 지난 11일 임혜숙 과기부·박준영 해수부·노형욱 국토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보고서를 14일까지 재송부하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세 후보자에 대해선 야당뿐 아니라 여당에서도 지명 철회 요구가 나왔다. 그런데도 아랑곳 않고 문 임명을 강행하겠다는 뜻이다.

문재인은 야당이 반대한다고 인사 검증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세 후보자에 대해 능력을 갖춘 전문가라고 추켜세우면서 능력은 제쳐두고 흠결만 따지는 무안 주기식 인사청문회라고 했다. 무수한 인사·검증 실패에 대해 사과부터 해야 할 자가 남 탓을 하며 강행 의사를 밝힌 것이다.

검증도 청문회도 다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이렇게 임명한 장관급이 지금까지 29명이다. 이런 적반하장이 어디 있나. 그런데도 이런 비리에 그 정도는 괜찮아하고 눈감는다. 그러나 이것은 너그러움이 아닌 그만큼 이론적 자기 정당화로 무장되었기 때문이다. 좌파가 더 깊이 타락한 권력의 추태를 보여주는 것은 사회 총체의 당연함일 수 있다.

자기 정당화가 자기 성찰을 가리기 시작한 순간 바로 정치적 부패와 도덕적 타락이 시작하는 것이다.

우파는 좌파 보다 더 악랄해야 하고 지독해야 한다. 오직 이분법적으로만 규정지으면 안되는 까닭이다. 우파의 논쟁은 미래여야 한다. 과거에 머무는 순간, 저들의 사악함에 육체와 정신이 썩어 들어간다.

지금 좌파는 낡은 상상력으로 사회를 속이고 있다. 미래를 향한 새로운 상상력은 보수의 힘이다. 어쩜, 문재인과 민주당을 지지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좌파냐 우파냐를 구분 짓는 거 자체가 낡은 것이다. 개새끼는 이미 개새끼다. 개는 개고, 호랑이가 될 수 없다. 왜 따지는가.

우파는 그 개새끼 이분법 논리에 빠져서 한탄 할 때가 아니다. 이런 이분적 논리로 좌파 VS우파 구도는 벗어던져야 한다. 보수주의는 이분법이 아니다. 보수주의는 사회정신의 상태이며 문명사회 질서를 보는 다양한 시각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보수적 시각은 매우 많은 주제와 관련해 다양한 견해를 포용해야 한다.

독일의 종교철학자 에릭 푀겔린은 근대 정치학의 거대한 경계선은 그 한쪽에 자유주의자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 전체주의자들이 있는데 그런 구획을 나누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한쪽에는 도덕적 질서와 인간의 본질, 종교적인 질서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 우파도 좀 더 세련되고 뽀다구 나는 우파로 거듭나 보자. 저 쓰레기들과 다르지 않는가.

지난 11일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가 당원인 매원 김희자 화가의 한복 그림 전시회를 찾아 기념촬영했다. 이번 전시가 우파의 격을 한차례 높여준 전시라는 평가다.
지난 11일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가 당원인 매원 김희자 화가의 한복 그림 전시회를 찾아 기념촬영했다. 이번 전시가 우파의 격을 한차례 높여준 전시라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