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 민초다]박 대통령 탄핵일 사표 던진 후, 곰 탈을 쓰고 투사가 된 방경환 씨
[대한의 민초다]박 대통령 탄핵일 사표 던진 후, 곰 탈을 쓰고 투사가 된 방경환 씨
  • JBC
  • 승인 2021.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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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 탈 인형을 쓰고 무죄석방 서명 받아
서명과 현수막 게첩, 직장인까지 1인 3역
방경환씨가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하면서 순박한 표정을 지으면서 웃고 있다.
방경환씨가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하면서 순박한 표정을 지으면서 웃고 있다.

하루 24시간 일을 한 후 그 다음은 내일을 위한 휴식이어야 한다. 남들이 그렇게 쉬는 그 하루가 그에겐 사치. 그는 그 하루, 다시 신발 끈을 동여매고 밖으로 향한다. 그는 자신의 차에 천막과 전단지를 싣고 사람들 왕래가 잦은 경기도 성남 한 곳에 천막을 설치한다. 이어 곰 탈 인형을 쓰고 서명을 받는다.

방경환(59)씨 이야기다. 방 씨는 아버지까지 돌보고 계신다. 어느 날 아버지가 노환으로 쓰려진 후 병간호와 수발 케어까지 하고 있다. 최근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어 서명대 활동이 뜸했다. 다행히 아버지 병세가 호전되어 그는 다시 천막을 설치하고 서명 활동을 이어갈 작정이다.

2017129일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하기 전 까지 그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건물 시설 관리 수리 분야에서 일해온 그는 딸 셋을 뒀다. 주변에선 딸부자라 부른다. 아버지까지 모시고 사는 그는 우리 시대 여느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런 방씨가 자유 우파 민초 투쟁가로 변신한 것이 지난 2017310일 헌법재판소가 박 대통령을 파면하면서였다. 그는 당시 큰 충격을 받았고,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201611월부터 본격 시작된 촛불시위가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는 것을 감지했다. 누가 알려줘서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히 촛불시위가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려 대한민국 자유 민주주의를 말살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세력들이 일으키는 난동으로 보는 게 당연하지 않았을까요.” 당시 그가 내린 촛불시위 정의였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달리 촛불시위가 더욱 국민 속으로 확산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촛불시위의 허구성을 알렸다. 거대한 촛불시위는 자신의 작은 외침마저 집어삼켰다.

이어 박 대통령 국회 탄핵 소추 통과와 헌재의 박 대통령 파면, 구속. 그는 이런 일련의 소용돌이가 대한민국 역사와 체제를 파괴시키려는 거대한 음모 세력의 역모라 판단했다.

그는 헌재가 박 대통령을 파면시킨 날, 회사를 뛰쳐 나왔다. 그날 바로 사표를 던졌다. “자유 민주주의와 법치가 무너졌는데 회사 다니는 게 무슨 소용 있었겠습니까. 나라 구하는 게 우선 아닙니까.”

곧바로 헌재가 있는 안국동으로 달려갔다. 거기서 헌재의 파면에 충격을 받고 쓰러진 분, 울부짖는 분, 또 죽어나가는 동지들의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그 아비규환 현장에서 그는 사람들을 부추겼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태극기를 들고 결기를 다지고 있는 방경환씨.
태극기를 들고 결기를 다지고 있는 방경환씨.

그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탄핵무효를 목놓아 외쳤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는 결심했다. 입으로 외침은 소용없었다. 행동하는 양심세력이 되겠다고.

그는 그 후부터 본격적으로 태극기 집회에 합류했다. 거기서 우리공화당 조원진 대표와 자신의 생각과 같은 동지들을 만났다. 조 대표와 당시 애국 시민들은 자신에게 큰 힘이 되었다. 조 대표가 연단에서 내뱉는 연설은 자신의 주장과 일치했다.

그는 조원진 대표가 201759일 대선에 출마하자 성남 조직위원장을 자신해서 맡았다. 대한민국을 지켜야겠다는 조 대표 같은 생각을 가진 정치인이라면 솔직히 목숨을 던져도 아깝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조 대표가 대선서 낙선했지만 그는 그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 대한애국당 창당에 앞장섰고, 지금은 우리공화당 성남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우리공화당 집회 때는 대형태극기와 박 대통령 석방을 촉구하는 대형현수막을 들고 행진한다.

그는 말이 조직위원장이지 모든 일을 도맡아서 하고 있다. 혼자서 서명대천막을 설치하고 서명받을 때가 많았다. 그 뿐만 아니다. 성남시 35군데를 돌면서 현수막 35개를 혼자서 게첩한 적도 있다. 혼자서 서명대 천막을 설치하고 전단지를 돌리고 현수막까지 게첨은 버거운 일이다. 그런데도 투덜거리지도 않는다. “모두가 바쁘니 혼자라도 해야하지 않습니까쑥쓰러워 하며 웃는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면서 분당에 사는 당원들이 달려와서 도움을 줄 때가 있다. 그는 이 분들이 있기에 하나도 힘들지 않다며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한번은 비바람이 몰아쳐서 천막을 붙잡고 있는 데 박근혜 대통령님 무죄를 알리는 전단지가 비에 젖고 바람에 날려가지 않습니까. 누군가 오셔서 전단지라도 날아가지 않게 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 대통령 얼굴이 새겨진 전단지가 비에 젖고 땅바닥에 떨어지는 것이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말이 13역이지, 한 사람이 현수막 한 개를 게첨하는 것이 쉽지 않다. 사람 손이 닿지 않고 눈에 잘 띄는 곳에 게첩해야 하기 때문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한 쪽을 게첩 한 후 또 다시 다른 쪽을 게첩한다. 교통사고 위험과 교통방해 주범으로까지 몰려서 비난을 듣기도 했다. 서명대 운반 차량 교통범칙금 딱지는 부지기수다. 그런데도 그는 불평 불만이 없고,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는 일을 하기에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곰인형을 쓴 후 본지와 인터뷰 한 방경환씨.
곰인형을 쓴 후 본지와 인터뷰 한 방경환씨.

그가 힘들 때 힘을 얻는 게 있다. 폰에 보관되어 있는 손녀 사진이다. 지난 해 8월 태어난 첫 손녀딸이다. “아 너무 제 손녀딸이 이뻐요.” 손녀딸을 보는 그의 얼굴에선 흐뭇한 미소가 가시지 않는다. 그는 애국운동을 하면서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게 미안하지만 딸들이 잘 커 줘서 너무도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는 가끔 사람들부터 오해를 받기도 한다. 사람을 쳐다볼 때 한쪽 눈을 심하게 찡그리고 보기 때문이다. “왜 사람을 째려보느냐는 수군거림도 당했다. 그는 시각장애인이다. 한쪽 시력을 상실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을 보는 초점이 흐려져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본다. 그래도 두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보다 더 이 세상을 올바르게 보고 있다.

서명대에선 곰 탈 인형을 쓰고 세상과 소통하는 그는 곰 탈 속의 세상과 안의 세상은 분명 다르다고 느낀다. 그의 곰 탈은 사람에게 다가가는 친근이요, 세상의 진실을 알리고 도구다. 밖의 세상은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하지만 안의 세상은 작은 우주다.

예전 다녔던 직장은 아니지만 다시 시설관리 일로 복귀한 그의 소박한 바람은 아버지의 건강회복이다. 그는 병마와 싸우시는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눈시울을 적셨다.

박근혜 대통령 석방과 탄핵 무효를 위해서도 중년의 삶을 던진 채 묵묵히 살아가는 방경환 씨. 그래, 그야말로 자유 대한민국 민초. 그가 있기에 대한민국은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