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BC의 눈]문재인 홍범도 집착, 그 관심 키워드 '공산주의'
[JBC의 눈]문재인 홍범도 집착, 그 관심 키워드 '공산주의'
  • JBC까
  • 승인 2021.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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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 중 트로츠키나 레닌과 단독 면담을 한 것은 홍범도
문재인은 6.25전범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라 칭송
민족 반역자 김일성을 칭송 윤이상 묘지 이전
살아생전 홍범도 장군 모습.
살아생전 홍범도 장군 모습.

문재인이 유별나게 홍범도 장군(1868-1943)에 대해 집착과 애틋함을 보이는 것에 대해 묘한 이목이 쏠린다.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을 하다가 중국에서 혹은 러시아 연근에서 목숨을 잃은 독립군들도 많은 데 왜 그토록 홍범도에 대해서만 각별한 관심을 나타낼까.

문재인은 20194월 카자흐스탄 국빈 방문 당시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을 요청을 했다. 마침내 문재인의 뜻이 이루어졌다. 광복절인 지난 15일 카자흐스탄에서 봉환된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18일 오전 1030분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3묘역에 안장됐다. 홍범도 장군이 별세한 지 78년 만이다.

문재인은 이날 안장식에 참여했다. 추념사를 통해 "독립전쟁의 영웅,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이 오늘 마침내 고국산천에 몸을 누이신다""홍범도 장군님, 잘 돌아오셨습니다. 부디 편히 쉬십시오"라고 밝혔다.

문재인은 "조국을 떠나 만주로, 연해주로, 중앙아시아까지 흘러가야 했던 장군을 비롯한 고려인 동포들의 고난의 삶 속에는 근현대사에서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온갖 역경이 고스란히 배어있다"는 대목을 떨리는 목소리로 읊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의 아내 김정숙 씨가 안장식 중간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는 모습도 포착됐다.

문재인은 지난해 7월 작고한 백선엽 장군에 대해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백선엽 장군은 북한군과 싸워서 한국의 자유 민주주주를 지켜낸 6.25 전쟁 영웅이다. 역대 주한미군사령관들이 백 장군을 가장 존경해왔다.

문재인은 그런 전쟁영웅은 뒤로 한 채 오직 홍범도 장군 안장식에 달려가서 추모하고, 광복절 기념식에선 그의 뜻을 기리는데 정성을 다했다.

이날 안장식에는 배우 조진웅이 사회를 맡았다. 조진웅은 영화 암살등에서 독립투사 역할을 맡았다. 문재인은 그런 조진웅에게 항일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홍 장군의 고귀한 생애와 뜻을 적극적으로 알리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문재인이 홍범도를 각별히 챙기는 것에 대해 묘한 눈길이 쏠리는 까닭이다. 이는 문재인식 역사관과 인물론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문재인은 전쟁영웅이었던 독립운동가였든 진영의 논리에 따라 한 사람을 영웅시, 다른 사람은 외면했었다.

문재인은 이미 대한민국 건국관과 역사관 정체성에 대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일각에선 그가 흥범도에 대한 집착과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 같은 진영 논리의 연관성이 아닐까 의구심을 나타냈다. 문재인의 이념과 사상, 역사관, 그 정체성은 늘 그런 의문을 던지게 했다.

한 인물에 대해 문재인이 덧칠만 하면 그 인물이 변질되고 거기에는 체제와 진영의 논리가 덕직덕지 붙어지면서 논란까지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독립군으로 비쳐진 홍범도가 문재인 손을 거치면서 공산주의 독립운동가로 다시 보여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홍범도 장군 활약기를 그린 영화 봉오동 전투.
홍범도 장군 활약기를 그린 영화 봉오동 전투.

홍범도는 문재인 정권 들어 부쩍 재평가된 인물이다. 지난 20198월 문 좌파 정권 시절 개봉한 영화 봉오동 전투를 통해 더욱 알려졌다.

19193.1운동 이후 만주 봉오동 일대에서 독립군의 무장항쟁이 활발해진다. 봉오동은 함경북도 위 두만강 위쪽에 위치한 우리에게는 간도, 북간도로 알려진 지역이다.

백두산과 만주 벌판을 누비며 일본군을 토벌해 '독립전쟁의 전설'로 통하는 홍범도는 일본군에게는 '하늘을 나는 장군'이라고 불릴 정도로 두려움의 존재였고, 한국 백성들에게는 '백두산 호랑이' '축지법을 구사하는 장군'으로 불릴 만큼 추앙받았다.

1868827(음력) 평양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홍범도는 제지소에서 일했다. 18863년치 임금을 체불한 고용주를 말다툼 끝에 살해했다.

그 후 홍범도는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전후 국경을 넘어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독립군 양성에 전력을 기울였고, 19193·1운동이 일어나자 북간도에서 대한독립군을 창설해 함경도 혜산진의 일본군 수비대를 습격하는 등 국내 진공작전을 전개했다.

1920년 독립운동사의 가장 빛나는 순간 중 하나인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일본군의 대대적인 토벌을 피해 19211월 만주에서 다시 연해주로 옮겨간 그는 소련군의 일원이 됐다.

19221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인민대표자회의에 김규식·여운형·조봉암 등 50여 명의 독립운동가와 함께 레닌(1970-1924)을 접견했다.

레닌이 트로츠키(1879-1940)를 통해 홍범도를 따로 불러 단독 면담을 한 다음, 금화와 홍범도라는 이름이 새겨진 은제 마우저 C96을 선물해주었다. 독립군 중 레닌, 트로츠키와 단독 면담을 한 사람은 홍범도가 유일하다.

홍범도 장군 러시아 입국 신고서.
홍범도 장군 러시아 입국 신고서.

홍범도는 그 후 1923년 연해주 남부에서 한인 콜호즈를 비롯한 지역 사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1927년 소련 공산당에 정식으로 입당했다. 이후 1937년 이오시프 스탈린에 의해 소련 영토였던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했다.

홍범도는 19416월 독소전쟁이 발발한 이후에는 물자를 아껴 전선의 병사들을 돕자는 선전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레닌기치를 읽고, 여기에 직접 글을 투고하여 젊은이들에게 참전을 독려하기도 하였다.

홍범도는 왜 그동안 남북한 사회에서 배척되었을까. 항일 무장투쟁에서 첫손에 꼽히던 그였지만, 해방 후 홍범도 장군은 남북한 모두에서 소외됐다. 정부는 1962년에 와서야 홍범도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고 그 뒤로도 한동안 외면했다.

반공이 국시인 대한민국에서 소련군의 일원으로 싸우고 레닌의 선물까지 받은 인물이 높이 평가될 수는 없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과 비교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홍범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공산주의 독립운동가임은 틀림없다. 문재인이 왜 홍범도에 집착을 보였는지 연관이 되는 대목이다. 만주 벌판을 누비며 독립운동을 펼친 그가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다.

레닌.
레닌.

레닌은 191711월에 볼셰비키 혁명을 일으킨 후 공산주의 국가를 기치로 내걸었다. 일본은 1876년 에도막부를 무너뜨리고 중앙 집권 통일 국가를 이루었다. 이후 자본주의 형성의 기점이 된 변혁의 과정과 자유주의를 받아들였다.

중국은 송나라 이후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 사상으로 성리학을 받아들였다. 조선도 성리학에 기반으로 둔 나라였다. 성리학은 인간의 마음과 사회 관계, 사물의 근본 이치와 우주의 원리 등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이 성리학은 조선에 수 천개의 마을을 합쳐놓은 수령통치 사회였다. 각 마을마다 사또라고 부르는 수령이 있었고 수령이 검찰, 경찰, 행정, 복지, 세금 징수 등등 모든 국가업무를 대리해서 다 하는 시대였다. 이런 측면은 공산주의 통치체제와 비슷하다.

반면 일본은 성리학과 전혀 다른 서구 선진문화를 받아들였다. 조선, 중국,러시아와 일본은 그 이념과 사상측면서 완전히 달랐다.

조선은 중국을 철저히 섬겼다. 그런 일본이 청나라를 상대로 1894년 청일전쟁을 벌였고, 19377월 일본은 중국의 전 국토를 침략, 일중전쟁을 일으켰다.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중국 대륙으로 가서 일본군과 맞서 싸운 것은 대한독립도 있었지만 실은 중국과 러시아를 일본 침략으로부터 막아주기 위한 종속주의 차원이라는 해석이다.

홍범도의 독립운동 무대와 활약, 그리고 이후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 등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홍범도도 그렇게 했을 것이란 추론이다.

성리학을 발전시킨 중국은 지금 중화사상을 내밀고 있다. 중화사상은 중국문화 중심주의적 사상이다. 중화(中華) 이외에는 이적(夷狄)이라 하여 천시하고 배척하는 관념이다. 그래서 성리학과 중화사상, 그리고 공산주의는 그 결이 같다는 지적이다.

지난 201712월 중국을 방문한 문재인은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 ‘대국이라고 치켜세우면서 한국을 작은나라라 했다. 그의 사상과 이념에는 중화사상이 물들어졌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레닌은 왜 홍범도를 접견한 후 그에게 금화와 권총을 주었을까. 문재인이 카자흐스탄의 별이 된 홍범도 유해를 왜 그토록 한국에 모셔오고 싶어 했을까. 여기에는 공산주의라는 키워드가 강하게 작동했을 것이란 묘한 시선이다.

김원봉(왼쪽)과 윤이상
김원봉(왼쪽)과 윤이상

흥미로운 것은 문재인은 6.25전범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라 칭송했다. 김원봉 역시 공산주의자다.

문재인은 윤이상까지 불러들였다. 문 정권은 20183월 작곡가 윤이상 묘지를 베를린에서 경남 통영으로 옮겨왔다. 윤이상은 민족 반역자 김일성을 우리 민족사 최대의 영도자'라고 칭송했다.

홍범도는 일제강점기 공산주의, 김원봉은 6.25 전쟁 공산주의, 윤이상은 반공주의가 낳은 공산주의자 였다. 문재인은 통혁당 간첩 주역 신영복을 존경한다고 했다.

좌파의 역사를 이식시키려는 문재인식의 전형적인 역사관이 홍범도를 통해 다시 드러났다. 보수 우파의 얌전한 논리가 공산주의자들을 추종하는 문재인식의 선전 선동 앞에서 무기력 하게 무너져내리고 있다.

독립군 홍범도에 매몰된 국내 지식인들은 문재인이 홍범도를 찬양하는 그 이유를 따지지도 묻지도 않는다. 독립군은 그 어떤 불법적 행위를 했을지언정, 비판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 약점을 문재인이가 이 사회에 이식시킨 셈이다.

문재인 정권의 좌파 역사주의는 시퍼렇게 살아 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