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허평환 “금성지구 전투 중공군 승리 아닌 국군이 승리”
[특별기고]허평환 “금성지구 전투 중공군 승리 아닌 국군이 승리”
  • 허평환
  • 승인 2021.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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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공화당 "월남 패망 모습을 보고 희열을 느낀 문재인의 ‘K-역사뒤집기’"
최재형 "중국 인민군을 영웅으로 묘사한 영화를 보여주는 의도가 뭐냐"

 

6·25 전쟁을 다룬 중국 영화 ‘1953 금성대전투’가 정부의 정식 상영 허가를 받아 논란이 되고 있다. 중국과 북한의 눈으로 바라본 6·25 전투를 그린 이 영화는 중국 공산당이 애국주의를 고취하기 위해 제작한 대표적인 프로파간다 영화(특정 정치 사상을 선전하기 위해 만든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6·25 전쟁을 다룬 중국 영화 ‘1953 금성대전투’가 정부의 정식 상영 허가를 받아 논란이 되고 있다. 중국과 북한의 눈으로 바라본 6·25 전투를 그린 이 영화는 중국 공산당이 애국주의를 고취하기 위해 제작한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6·25 전쟁을 다룬 중국 영화 ‘1953 금성대전투가 정부의 정식 상영 허가를 받아 논란이 되고 있다. 중국과 북한의 눈으로 바라본 6·25 전투를 그린 이 영화는 중국 공산당이 애국주의를 고취하기 위해 제작한 대표적인 프로파간다 영화(특정 정치 사상을 선전하기 위해 만든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1953 금성대전투는 중국에서 금강천(金剛川)’이라는 이름으로 지난해 1023일에 맞춰 개봉했다. 이날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최고 지도자로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항미원조 작전 70주년기념식에서 연설한 날이었다. 중국 정부와 공산당은 6·25 전쟁을 항미원조 전쟁이라고 부른다. 미국에 맞서 북한을 지원한 전쟁이라는 뜻이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소속 대선주자와 야권 정치인들은 7일 해당 영화에 대한 상영 허가 문제를 비판하고 나섰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청소년들에게 침략 전쟁에 가담한 중국 인민군을 영웅으로 묘사한 영화를 보여주는 의도가 도대체 무엇이냐라고 했다.

우리공화당도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전범 국가 중국의 역사 왜곡 영화 ‘1953 금성대전투의 심의 통과 중국에 굴종하고, 주사파의 역사의식이 지배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단면이다. 또한, 김원봉을 찬양하고, 월남이 패망하는 모습을 보고 희열을 느꼈다는 문재인의 또 다른‘K-역사뒤집기라고 비난했다.

이런 가운데 전 국군기무사령관 겸 우리공화당 상임고문 허평환 예비역 육군중장이 금성전투 관련, 본지에 글을 보내왔다. 허 전 사령관은 금성지구 전투 중공군 승리 아닌 국군이 승리였다고 강조했다.

 

전 국군기무사령관 현 우리공화당 상임고문 예비역 육군중장 허평환
전 국군기무사령관 현 우리공화당 상임고문 예비역 육군중장 허평환

 

중국이 6.25 전쟁 최후의 전투인 금성지구 전투를 국군 5만 명을 섬멸한 승리의 전투로 미화한 영화 '1953년 금성대전투" 원명 '금강천'의 국내 상영허가를 놓고 호국영령을 능멸하는 처사라며 비난여론이 들끓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이번 기회를 통해 금성지구 전투는 중공군이 승리한 전투가 아니라 국군이 승리한 전투라는 사실을 제대로 아는 계기로 삼자.

금성지구전투는 휴전을 앞둔 1953610일부터 18일에 중공군이 금성지구 돌출부를 점령하여 금성지구 전역을 장악하기 위해 20병단 예하 12개 사단으로 선제기습공격을 감행하면서 벌어진 전투다.

처음에는 중공군이 돌출부인 690고지와 485고지를 점령하여 금성지구 일대를 확보했다.

그러나 국군이 7152군단 예하 3개 사단으로 반격을 감행하여 719일 금성천 이남지역을 모두 재탈환하므로써 중공군이 기도했던 금성지구 전역 장악이 실패로 돌아가게 했다.

피해 역시 중공군이 국군보다 2배 이상의 심대한 피해를 입은 전투였다.

중공군은 피살 27216명 부상 38700 포로 186명 무기피탈 1428점등 이었다. 국군은 5만이 아니라 14373명의 손실을 입었다.

당시 김일성과 중공군은 중부지방 최대 곡창지대인 철원평야를 수복하기 위해 철의삼각지로 불리는 철원 금화 평강지구 등에서 마지막 발악을 했다. 국군이 이를 모두 물리치고 철원평야와 금화 평강일대를 지켜내었다.

특히 백마고지전투는 열흘 동안에 주인이 24번이나 바뀌면서 끝내 지켜낸 치열한 전투였다.

허평환 전 기무사령관이 6사단장 시절 만든 코인.
허평환 전 기무사령관이 6사단장 시절 만든 코인.

필자가 6사단장 시절에 중국 관광객들이 백마고지 전적기념관을 찾아와 김종오 장군이 누구냐고 묻기도 했다.

김종오 장군은 9사단장으로 백마고지 전투에서 9사단 예하 3개연대 2만여 명으로 중공군 38병단 예하 6개연대 4만 여 명을 섬멸하고 승리로 이끈 장군이셨다.

그만큼 당시 중공군은 철의 삼각지 전투 특히 백마고지전투에서 무참히 패배했고 한국군의 위용이 중국 인민들의 가슴속에 깊이 세겨질 정도였다.

우리국민 대다수는 중국을 대국이라며 은근히 두러워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렇지않다 활과 칼로 싸우던 시절에는 땅이 넓고 인구가 많은 중국이 대국이었고 두려운 존재일 수 밖에 없었다.

현대는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한 경제력과 군사력이 강한 가운데 싸워 지키겠다는 호국정신력이 강한 국가가 강대국이다.

우리는 과학기술력과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결코 중국에 뒤지지 않고 오히려 앞서있는 분야가 더 많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고 스스로 약소국이라며 주눅이 들어 있는면이 있다.

앞으로 중국을 대국이라며 두려워하거나 비굴할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과 경제력을 더욱 키우고 첨단과학무기를 더욱 발달시키며 호국정신력을 강화하여 우리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당당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매진 또 매진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당당하게 자신감을 갖고 대응하면 그 어떤 위협에도 우리를 지켜낼 수 있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중국이 우리를 침략하여 이긴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중국이 6.25 전쟁에서 참패한 전투를 미화하기 위하여 만든 영화 한 편을 갖고 중국을 두려워하거나 우리끼리 총질하지말자.

20219월 7

전 국군기무사령관 현 우리공화당 상임고문 예비역 육군중장 허평환

금성전투

1953713일부터 720일까지 옛 금성군(金城郡) 지역인 강원도 김화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휴전을 앞두고 713일에 중국군의 대규모 공격이 시작되었다고 해서 ‘7·13 공세라고도 하며, 한국전쟁에서 마지막으로 벌어진 대규모 전투이기도 하다. 현재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에 금성지구전투전적비가 세워져 있다.

김종오 전 6 사단장.
김종오 전 6 사단장.

김종오(1921-1966) 6사단장

6·25 전쟁 백마고지 전투의 신화로 불리는 장군이다. 충북 세종시 부강 출신으로 6·25 전쟁 사상 가장 치열한 백마고지 전투에서 중공군 3개 사단을 섬멸하고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한국 전쟁 개전 당시 육군 대령으로 제6사단의 사단장이었다. 6사단장 역임시 북한 낌새를 수상히 여긴 김 장군은 경태세 강화와 동시에 전 장병의 외출을 금지시켰다. 이에 조선인민군 24천 명은 625일 새벽 춘천을 기습공격했지만 40% 이상의 전력을 상실한 채 춘천지역 점령을 실패하고 말았다. 김 장군은 1952년 당시 9사단장으로 10일 동안 12번의 공방전 끝에 중공군을 패퇴시키며 철원을 거쳐 서울로 가는 길목의 백마고지를 지켜냈다. 중공군의 완패로 휴전회담이 가속화되었다. 19654월 육군 대장으로 예편 후, 1966330일 오전 925분 신당동 자택에서 폐암으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