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발인 현장에서]34년 전 약속, ‘전두환 말로’
[전두환 발인 현장에서]34년 전 약속, ‘전두환 말로’
  • JBC
  • 승인 2021.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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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오전 전두환 전 대통령 시신을 실은 영구차가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27일 오전 전두환 전 대통령 시신을 실은 영구차가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을 빠져나오고 있다.

80년대 혹독한 전두환 정권 시절을 경험했던 386 세대들은 전두환 말로가 궁금했을 것이다. 필자도 마찬가지였고, 그 말로를 손꼽아 기다려왔다. 이것은 19875월 필자가 필자에게 했던 약속이었다. 34년이 지난 20211127일 그 말로를 마침내 보았다.

80년대 전두환은 권위와 폭압 폭정의 상징처럼 비쳐졌다. TV화면은 온통 전두환 얼굴로 채워졌고, 그 측근들의 권위적이고 국민위에 군림하는 모습들은 독재권력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386 세대들에게 전두환은 5.18 광주 학살자 원흉, 신군부를 등에 업고 권력을 찬탈한 자,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을 일삼은 자, 고문으로 박종철을 죽였고, 최루탄으로 이한열 마저 죽게 한 자, 신군부 하나회 조직을 통해 정권을 휘두른 자,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자로 비쳐졌다.

386 세대들은 전두환 퇴진만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되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80년 대학가는 암흑이었다. 캠퍼스에 나부끼는 붉은 깃발, 정권을 비판한 각종 대자보, 여기저기서 울려퍼지는 투쟁가요, 학생회관 앞은 집회장이었다.

전두환 화형식은 투쟁 레파토리였다. 전경과 백골단과 한판 싸움을 벌이는 것은 다반사였다. 캠퍼스는 늘 짙은 쾌쾌한 최루탄 가루와 지랄탄이 나 뒹굴었다. 눈을 제대로 뜨고 오갈 수 없었던 곳이 캠퍼스였다. 최루탄에는 치약이 특효라서 치약을 눈 밑 부근에 바르고 오가기도 했다.

학교 도서관은 저 먼 곳이었다. 속된 말로, “민주주의가 말살됐고, 독재권력이 강화되고 있는 데 공부를 해서 뭐 하냐는 자조가 한숨으로 흘러나왔다. 취업을 위해, 학점을 따기 위해 도서관에서 나오는 학생들을 기회주의자로 비아냥거렸다.

그렇게 전두환 죽이기투쟁을 했던 386 세대들. 4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386586이 되어 권력의 중심부에 서 있다. 이들이 입법, 사법, 행정, 지방자치, 시민단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이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실현시키고. 그들 스스로 다짐했던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일까.

국민들은 전두환 정권 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다고 이구성이다. 이는 전두환을 위한 변명이 아니다. 국민이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 빈소. 사진=송나오미 객원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 빈소. 사진=송나오미 객원기자

작금의 586 세대들은 어떠한가. 자신들이 절대적 정의를 독점하고 있다는 착각한다. 이들에게는 정의의 비정의성, 도덕의 비도덕성, 진실의 거짓 행위 등이 우위로 자리 잡았다.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문재인의 기조가 반칙과 특권이 되어버렸다.

도덕과 정직성만 먹고 산다는 온갖 은 한다. 이들의 척 행진은 역겨울 정도다. 진실적인 척, 정의로운 척, 도덕적인 척, 윤리적인 척, 청렴결백한 척, 서민인 척, 국민을 위하는 척, 무금욕주의자인 척. 그러면서 온갖 부정부패는 일삼는다.

집 없는 청년과 서민을 영원한 무주택자로 만든 부동산 정책’, ‘저소득층 일자리를 빼앗고’, ‘편법과 반칙을 식은 죽 먹듯 해대고’, ‘각종 특권과 특혜’, 끝없이 이어지는 문재인과 그 추종자들의 위선적 발언’, ‘자영업자를 죽이는 코로나19에 정책’. 실업률은 물론 국가 경제를 아사직전으로 몰고 간 각종 정책들. 좌우 진영의 편가르기와 계급론을 부추기고, 좌파카르텔을 형성시켰다. 북한의 천인공노할 짓에 입을 닫고 오히려 삶은 소대가리로 비아냥을 당했다.

문제는 이들은 정의, 인권, 평등을 선점했다고 우긴다. 인민에게 해방, 혁명, 평등을 외치면서도, 정작 지들끼리는 캐비어를 먹으며 프랑스제 명품을 두르고 호의호식했던 소련의 노멘클라투라(공산당 관료).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에 나온 돼지들이 바로 이들이다.

1980년대 운동 경력을 팔아 출세에 성공한 386세대 좌파들이 한국형 노멘클라투라의 핵심이다. 그들만 정의로운 것도 아니고, 그들만 인권을 주장하는 것도 절대 아닌데 마치 자신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우긴다. 자신들만 옳다고 여기는 것, 독선은 집단의 아집과 내로남불에 빠져 있는 자들이다.

필자는 80년대 이런 자들과 함께 전두환 독재정권 타도에 열을 올리면서 짱돌과 화염병을 던졌다. 또 마이크를 잡고 연단에 올라 전두환 독재 정권 타도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자들과 함께 밤을 세워가면서 전두환 독재 타도를 위해 청년 학도들이 어떤 투쟁에 임해야 하는가에 대한 사상 이념 교육도 받았다.

19875월 신촌역 앞에서 경찰에 체포된 필자는 경찰에 의해 상상을 초월한 폭행을 당했다. 전두환 정권의 폭정과 폭압이 거세질수록 전두환에 대한 증오심만 더해갔다. 그리고 폭압당한만큼 반드시 되돌림 해주겠다며 이를 갈고 기다려왔다.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해 있던 필자는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마르크스 레닌주의 사상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더 이상 사회주의다운 사회주의가 없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렇다고 전두환에 대한 증오심마저 버린 게 아니었다. 30년간 이어져왔다. 전두환에 대한 증오심이 멈춘 것은 20175월 문재인 씨가 권좌에 오르면서였다.

문재인과 당시 386들의 대한민국 건국 정신과 정체성, 역사 파괴 등을 지켜보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전두환 집권과정에 따른 논란, 그리고 그 폭압에 대한 악몽을 쓸어내린 것은 아니다.

역사란 묘하다. 위대한 지도자가 순식간에 제국주의 스파이로 몰리고, 혁명의 순교자가 배교자 인민영웅과 인민의 적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으로 뒤바뀌는 걸 지켜봐왔다. 역사는 예측 불가능한 불가사의다.

변증법적 유물론에 따라 인류 사회의 과학적 발전법칙을 꿰고 있는 우리는 미래가 어떨지 정확히 알고 있다. 문제는 과거다. 과거는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예측이 불가능하다.

문재인이 아니었다면 전두환의 역사는 달리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80년대 그 전두환에 머물렀을 것이다. 80년대 함께 그렇게 전두환 독재 타도를 외쳤던 386 그들이 이젠 으로 보이고, 전두환을 지지하는 자들을 적으로 간주했던 그들이 동지로 보였다. 참 아이러니다. 세상에 필자가 전두환을 이렇게 후한 대접을 할 줄이야 상상을 못했다.

거기에는 386 좌파 운동권 출신들의 이중성이 기여했지만 사실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좌든 우든 인간이랑 원래가 사악하고 이중적이지 않는가. 문제는 문재인의 역사와 정체성이다.

전두환은 역사와 체제를 지키기 위해 이에 반하는 학생과 재야세력들에게 억압통치 했었다. 문재인은 대한민국 체제와 역사를 파괴시켰다. 이것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킨 행위였고, 지금까지 구속으로 이어져오게 한 천인공노할 짓이다.

전두환 역사와 문재인 역사를 비교한다면 전두환은 자유민주주의 역사와 체제 지킴이요, 문재인은 역사 정체성 파기였다.

1948815일 건국절 부정, 대한민국 국군창설과 6.25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한미동맹을 굳건히 강화시킨 백선엽 장군을 홀대하고 6.25 남침 전범으로 북한훈장을 받은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라고 했다. 김일성을 찬양한 곡을 만든 작곡가 윤이상을 찬양하고, 사회주의 연방제 실현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문재인의 종북사관론은 좌파 역사관이고 대한민국 부정이다.

27일 오전 전두환 전 대통령 발인 장면. 우리공화당 당원과 지지자외에는 없다.
27일 오전 전두환 전 대통령 발인 장면. 우리공화당 당원과 지지자외에는 없다.

23일 전두환이 서거하자 문재인 청와대는 조문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조의도 표하지 않았다. 이재명은 학살자 조문은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체체 파괴자들이 체제수호자 조문을 간다는 게 가당찮은 일인가.

전두환 조문을 가겠다고 밝혔던 윤석열은 말을 바꿔 가지 않겠다고 했다. 대선 경선에 출마 젊은층으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는 홍준표는 젊은 지지층들이 가지 말라고 하니 마음만은 조문한다는 헛소리를 해댔다. 이것은 역적과 배신, 인간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저들만의 커밍아웃이다.

이런 정치권의 반응과 사회적 분위기가 더해지면서 국민들도 전두환 조문을 외면했다. 이를 깬 것이 우리공화당이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대선 후보와 당원들은 24일 대거 조문을 가면서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전두환 빈소에 조문객들이 늘어났다.

27일 오전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서는 전두환 발인이 열렸다. 이 발인은 마치 몰래 장례를 치르는 것처럼 빠르게 끝났다. 필자는 이날 새벽 세브란스 장례식장을 찾았다. 이날 34년만에 그 말로를 지켜보았다.

80년대 그 기백이 넘친 전두환의 죽음이 아닌 몰골한 노인의 쓸쓸한 장례식이었다. 정승이 죽으면 문상객이 오지 않고 정승개가 죽으면 문상객이 넘쳐난다는 세상사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전두환 밑에서 호의호식했던 그 인간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는가. 코배기도 보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전두환이 창당한 민정당 후신이다. 그 누구도 없었다. 우리공화당 당원들이 발인에 가지 않았다면 그야말로 파리만 날렸을 것이다.

이날 오전 818분 전두환 전 대통령을 태운 영구차가 장례식장을 빠져나갔다.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선 후보는 영구차를 향해 목례를 했다. 전두환 말로는 이 장면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날 전두환 말로를 보면서 필자는 다시 약속했다. 문재인의 마지막을 진짜 보고 싶다.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굿바이 전두환.

27오전 전두환 전 대통령을 태운 영구차량이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을 빠져나가자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선 후보가 목례하고 있다. 사진=송나오미 객원기자
27오전 전두환 전 대통령을 태운 영구차량이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을 빠져나가자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선 후보가 목례하고 있다. 사진=송나오미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