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프레임, 박근혜 죄와 벌 [제5화]
소설 프레임, 박근혜 죄와 벌 [제5화]
  • JBC까
  • 승인 2017.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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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세상이 소설 투성이다. 현실이 소설, 소설이 현실이다. 이글은 소설이다. 오로지 소설로만 읽어야 한다. 글 속에 등장하는 개인, 기관의 이름은 모두 소설적 장치일 뿐이다.>

퇴근해 집으로 가던 정 팀장은 정노천 시인이 생각났다. 자연에 묻혀서 그저 사랑의 세태에 대해 글을 적고 유희낙락 살아가는 가난한 선비 같은 시인이다.

정 시인은 현실을 촌철살인화 해서 글을 적기도 했다. 그런데 6년전 서울이 싫다면서 고향인 지리산  노고단 가까운 곳으로 가버렸다.

정 팀장은 지리산 등반도 할 겸 해서 정 시인을 만날 작정이었다.  그는 작금의 박근혜 탄핵 정국을 어떻게 볼까. 세상을 꿰뚫어 보는 안목이 탁월해 그는 '박수무당'이란 별칭도 갖고 있다.

그는 이상한 인간만 보면 혀를 차는 습관을 갖고 있다. 그가 바라보는 이상한 인간은, 인간의 정도를 벗어난 자를 일컫는다. 요약하면 인간계와 동물계의 중간선에 있는 인간들이다. 짐작의 잣대가 애매모호 하기도 하지만 그의 잣대에 잡힌 이상한 인간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수긍이 절로 간다.

정 시인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정 팀장 요새 인간들 왜 그래, 참 이상하네 였다.”

어쩜 그는 이상한 인간이 싫어서 지리산 쪽에 틀어박혀 막걸리 한잔에 세상을 읽고 있는지 모른다.

세상을 쫄깃한 한줄로 표현해온 그는 여전했다.

그의 전화상 목소리는 이랬다.

“정 팀장. 지는 이런 저런 세상사 뉴스가 보기 싫어 지리산에 왔는데, 요즘 여기서도 눈만 뜨면 최순실이 어떻니 저떻니 귀가 따갑도록 듣고 있소. 언론이 미쳤소. 아무리 언론이 프레임에 갇혀 있다지만 해도 너무 해요. 모든 사람들이 언론이 내뿜는 공해된 오염의 프레임에 갇혀 있기 때문에 애당초 진실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이 사건의 전개 방향이 전혀 다른쪽으로 가는 까닭이 아니겠는교.”

금요일 오후 2시 정 팀장은 등산 장비를 챙긴 후 그가 있는 지리산으로 향했다.

노고단 정상과 뻗어 내린 지리산 산맥들이 손짓을 한다.

노고단 줄기가 차장의 화면을 가득 채웠다.

정 팀장은 5년 전 봄에 지리산을 다녀갔다.

지리산에 오면 모든 것을 내려놓아진다.

내려놓아야만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다.

산맥은 그대로인데, 왜 올때마다 새롭게 보이는 것일까.

눈도 쌓이지 않는 메마른 겨울 산이 포근함을 더해주는 거 같았다.

“뭔다고 여기까지 오는교…”

지라산 노고단 인근에 도작하니 정 시인의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정겹게 다가왔다.

정 시인의 집은 지리산의 전형적인 농촌가에 자리잡고 있었다..

“머리도 식히고, 겨울 지리산을 등반할 겸 해서 왔습니다.”

“요즘 최순실이고 뭐고 해서 정 팀장이 젤 바쁠텐데 회사 오래 비우면 안잘리는교?”

“잘리면 지리산 와서 농사나 짓고 살면 되죠---”

 대폿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거 함 마시보소. 서울서 파는 막걸리와는 확실히 다른 맛일게요, 급하게 마시면 팍 취하니 천천히 드이소.”

막걸리야 그 게 그 맛 일 게다. 어디서 누구와 함께 마시느냐에 따라 맛이 다르지 않을까.

“모두가 프레임에 갇혀 있는 거 같아요. 나라가 걱정입니다.”

막걸리 잔을 비운 정 팀장이 한마디 툭 내뱉었다.

“그러게요. 모두가 미쳤심더. 미치지 않고선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까. 지는 미치지 않으려고 세상과 담을 쌓았는데 텔레비 때문에 안되겠다라고요. 텔레비전만 켜면 온종일 박근혜 탄핵 탄핵 탄핵 뉴스 뿐이니---”

정 시인도 막걸리 잔을 비웠다.

“정 샘, 어쩌면 이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이 진보와 보수에 따라 이렇게 천지차이 일 수 있습니까?”

정 팀장이 정 시인 잔에 막걸리를 채워주며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모두가 자기중심적 사고의 틀에 갇혀서 이 사건을 바라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건 어쩔 수 없는 게 아닐까요.”

정 시인은 하나의 사건이 발생되면 모두가 자기중심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럼 정 시인의 관점은 뭡니까. 탄핵 반대 입니까. 지지 입니까. 아니면---.”

"하이고, 직구 질문 던지네예, 건데 제 관점이 어딨습니까."

그러면서 그가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정 팀장 관점은 뭔교?”

“기자가 뭔 관점이 있습니까. 애초부터 박근혜 탄핵에서 제 관점은 없습니다. 모두 촛불과 검찰, 특검, 법원, 헌법재판소 등 그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를 전달하는데요. 글쎄 굳이 말하라면 ‘전달자 관점’인 거 같네요.”

“그게 기자의 관점과 업 아닌교?”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금 탄핵 정국을 바라보는 기자의 관점이 이미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더욱 저의 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관점을 구성 짓는 요소들은 객관적 상황에서 취재를 한 것에 토대를 둔 관점입니다. 즉, ‘그러한 사실로 인해 이렇게 취재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난 이 사건의 객관적 사실을 모아 놓고 제 3자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시자 관점’이라고 합니다.”

“정 팀장의 관점도 중요하겠지만 정 팀장이 만나서 취재하는 취재원들이 정 팀장에게 사실을 말할 것 같은가요. 그들도 그들의 관점이란 틀에 갇힌 사실만 전달할 것이고, 때론 정 팀장에게도 왜곡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그들의 말만 듣고 전달할 때 정 팀장의 전시적 관점이 틀리지 않겠는교.”

정 팀장은 정 시인 막걸리 잔을 툭 건드렸다. 정 시인의 말에 수긍이 갔다.

“제가 내보낸 기사를 읽은 후 그게 '진실이다' '아니다' 판단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지 제가 그 판단까지 유도할 수는 없는 거 아닐까요.”

그는 현재의 언론 보도 행태에 혀를 찼다. 기자가 전달하는 기사를 읽어본 후 사실 여부를 판단케 하는 것이 애시당초 사라졌다. 독자들에게 어쨌든 무조건 왜곡된 기사라도 믿도록 강요한다.

“정 팀장,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는 말 알죠.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면 사람들은 이미 선동당해 있습니다. 현재의 선전 선동은 언론과 정치인 좌파가 합세한 가나 다름없습니다. 기존 신문·방송이 제공하는 뉴스와 이를 가공한 '2차 뉴스'는 더욱 팩트를 진실처럼 보도 합니다. 요즘 뉴스는 팩트를 살짝 바꾸거나 사실관계를 비튼 것이 수두룩 합니다.”

그의 말은 이어졌다.

“나치 선동가 괴벨스가 간파했던 것처럼, 대중은 사실과 거짓이 적당히 섞인 경우에 더 쉽게 속습니다. SNS에 사설 정보지까지 미디어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사람들은 점점 자기 구미에 맞는 뉴스만 찾을 뿐 '불편한 진실'을 감수하려 들지 않습니다.”

정 팀장은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정보를 적절히 취사선택해 원하는 결론에 도달하기는 훨씬 쉬워졌는데 길을 찾기가 무지 힘듭니다.”

“정 팀장님, 20세기 초 문예 이론가 죄르지 루카치는 '소설의 이론'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가야 할 방향을 알았던 시대는 행복했다’고 썼습니다. 그 옛날 깜깜한 밤하늘에 떠있는 북극성은 수많은 뱃사람에게 이정표가 됐습니다. 반면 현대인들은 GPS(위성 항법 장치)가 장착된 내비게이션까지 들고 있지만, 정작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 비유되곤 합니다. 이 지리산 산골에서도 뉴스·정보를 습득하기 쉬워졌습니디. 그런데 진짜 정보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정 시인은 촛불 시위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촛불 시위 왜 그런교?”

“왜 뭐가 잘못된 거 같아요?

“순수성이 사라지고 있심더. 순수성이 사라지면 그 순수가 의심을 받죠.”

정 시인의 한 마디 한마디에 막걸리 잔이 비워졌다.

“에이, 이 놈들 왜 촛불의 순수성을 이용하는지. 나쁜 놈들---”

그는 더 이상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막걸리나 드소. 제 입이 지저분해집니다.”

정 팀장은 그의 견해가 궁금했다. 듣고 싶었다.

“촛불 집회의 순수가 사라지고 있는 거 같은 데, 그 순수를 이용하는 사람이 문제가 아닐까요.”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자. 한반 보이소. 박근혜의 실정으로 야기된 '촛불사태'는 그 성격이 변질되고 있습니다. 촛불은 더 이상 박근혜 탄핵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애초 촛불은 ‘촛불 혁명의 힘으로 (세상을) 한번 제대로 바꿔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단순히 정권 교체에 그치지 않고 기존의 보수적 노선을 일거에 폐기하고 좌파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엊그제의 촛불이 박근혜 탄핵에 그치지 않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퇴진과 재벌 해체, 통진당 해산 철회,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등 까지 요구하고 있습니다. 마치 촛불을 이용 좌파 혁명의 길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섬뜩함이 더해 주는 거 같습니다.”

그는 혀를 찼다. 머리를 절레 흔들었다.

“지금 촛불 세력과 맞서는 반대쪽에는 애국 보수만이 보일 뿐입니다. 정치인들은 숨어버렸습니다.”

“모두가 촛불에 타 죽을까봐. 조용히 사라졌죠.”

정 시인은 비겁, 야비라는 단어를 수없이 내뱉었다.

그의 토로는 이어졌다.

“사실 저도 처음에는 박 대통령의 행동과 발언들에 실망하고 분노하고 질책하면서 그의 퇴진 요구에 공감했습다. 하지만 저는 어디까지나 권력 남용의 개선과 정치 구조의 개혁과 진척을 위한 것이었지, 법치를 넘어선 정치혁명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혁명으로 정부를 뒤엎자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촛불에의 동참은 그들이 원한 것이든 아니든 결국 혁명에의 동조로 인식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마도 애국 보수 세력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도 이 이유 때문일 겁니다. ”

정 시인은 요즘처럼 애국 보수 세력이 한데 모여서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드물었다고 말했다. 그는 보수의 결집을 강조했다. 그러나 보수는 썩었다는 말도 연신 내뱉었다.

“보수가 제대로 했다면 일케 까지 됐겠는교. 바보들이죠.”

정 시인은 사실 아주 진보적인 운동권 이었다. 그는 무림사건의 연루자였다.

1980년 학생운동이 지하 서클화되어 있을 무렵, 서울대에서 발생한 하나의 조직사건이 있었다. 조직 이름이 '무림'이 아니다. 일종의 서클 협의체적인 조직이었는데, 경찰 조사 과정에서 캐내도 캐내도 다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도대체 그 실체가 얼마만큼인지 수사 직전까지도 몰랐던 당황한 경찰들이 '안개 속에 있는 것 같다'고 하여 이들 세력을 '무림(안개숲)'이라 이름 붙였다.

정 시인은 이 일로 인해 경찰로 잡혀가서 대공조사실에서 고문까지 당했다.

그는 왜 보수를 향해 썩었다는 말을 내뱉었을까.

“지금 여론상 40%의 지지를 얻고 있는 민주당과 맞서 그들의 집권을 막고, 설혹 지는 경우라도 새 여당을 견제하고 좌파의 길을 막아야 하는 게 보수 정당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어떻게 됐습니까. 분열했습니다. 이 분열은 자기들만 죽는 것이 아니고 야당의 혁명 위협 앞에서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보수·중도층도 함께 죽습니다. 물론 지금 친박과 비박이 함께 갈 수 없는 지경 압니디. 그런데 이것은 친박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날 탄핵 사태를 유발한 정치적 공범입니다. 문제는 그들은 자기들 정치 생명을 걱정하기 이전에 세상판 뒤엎기의 위협 앞에 불안해하는 이 나라 보수·중도층의 생각을 대변할 더 큰 책무가 있습니다. 그 세월 좋은 때 오늘의 새누리를 만들어주고 먹여주고 키워준 국민이 허탈해 있는 상황에서 친박·비박이 서로 삿대질하며 사느니 못 사느니 하면서 결국 갈라섰습니다. 배은망덕도 유분수죠.”

술이 온 몸으로 퍼졌다. 그의 말은 거침없었다. 이따금씩 막말이 튀어나왔다.

그는 그동안 참고 있었던 말을 한꺼번에 토해냈다.

정 팀장은 아무런 토를 달지 않았다. 맞는 말이었다.

이제야 막혔던 대화가 뻥 뚫리는 거 같았다. 

지리산은 추웠다.서울에서나, 지리산이나 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이 여젼했다.

사람들은 봄을 찾고 있다. 봄은 아직도 길고 멀게만 느껴졌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