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프레임, 박근혜 죽이기 기획설 [제11화]
소설 프레임, 박근혜 죽이기 기획설 [제11화]
  • JBC까
  • 승인 2017.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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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두기=세상이 소설 투성이다. 현실이 소설, 소설이 현실이다. 이글은 소설이다. 오로지 소설로만 읽어야 한다. 글 속에 등장하는 개인, 기관의 이름은 모두 소설적 장치일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 목사는 어떤 관계인가.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후 믿거나 말거나 ‘카더라~’ 의혹들이 인터넷을 수놓았다. 모두가 허무맹랑한 이야기인 거 같은데 사실처럼 적절히 높낮이 조절을 잘했다.

이 카더라 뉴스는 박 대통령을 최태민과 엮음으로써 더욱 탄핵과 무능의 정당성을 더해갔다. 

정호윤 팀장이 건네 받은 박 대통령 최태민 관련 찌라시는 이같은 묶음의 완성판이었다.

지난 18대 대선 전 부터 나왔던 ‘박 대통령과 최태민은 뭐뭐 관계인 거 같다’ 이 소문은 박 대통령의 적극 해명으로 인해 해소되었지만 이것이 좀비처럼 다시 살아났다.

대중 속에서 죽었던 이 ‘카더라’ 의혹들이 좀비처럼 되살아난 것은 역시 최순실 이었다. 최순실의 부친이 최태민 이었다.

이 찌라시 문건을 입수한 정 팀장은 지난 대선 전 자신이 보았던 내용을 그럴듯하게 짜깁기 한 것이었다.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

문제는 다른 매체들이 이런 저런 것을 엮어서 호기심을 자극한 보도를 쏟아냈다. 대표적인 보도가 최태민이 박 대통령의 육체를 지배했느냐 여부였다.

죽은 최태민은 말이 없다. 그런데도 언론들은 자극적인 부분을 보도한 후 두 사람이 어떤 관계였을까 집중 파헤쳤다.

최태민이 “박근혜와 나는 영의 세계의 부부이지 육신의 부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런 보도 자체가 자극적이고 호기심에 편승한 것이었다.

‘최태민이 영애 박근혜를 청와대에서 만났을 때 육영수 여사의 표정과 음성으로 빙의했다. 육 여사 빙의에 박근혜가 놀라 기절했다가 깨어났다. 육 여사가 내 입을 빌어 딸에게 나(최태민)를 따르면 좋은 대로 인도할 것이다. 그때 박근혜는 입신(入神·신들림)한 상태였다.’

이 찌라시는 최태민이 박근혜를 알게 된 동기를 다음과 밝히고 있다.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난 뒤다. 그 무렵 박근혜에게 최씨가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 편지 내용은 죽은 육영수가 나타나 ‘내 딸 근혜가 우매하니 당신이 그녀를 도우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박근혜가 최씨를 청와대로 초청했다. 까만 승용차들이 최씨가 도를 닦는 곳에 왔다.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엄청난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는 박근혜 앞에서 최씨가 육영수의 영혼에 빙의됐다면서 그녀의 표정과 음성을 그대로 재연했다. 이것을 보고 놀란 박근혜가 기절하고 입신했다.”

당시 최태민은 대단한 위세를 누렸다.

“최씨는 칼잡이 6명을 늘 데리고 다녔다.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것 같았다. 박근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영애(이하 존칭 생략)와 함께 서울 강남에 나타나곤 했다. 최씨는 1993년 10월 종합총회 교단에서 쫓겨나 94년 1월에 죽었다. 한데 94년 5월에 죽었다고 발표됐다. 의문이다. 많은 목사들이 최씨에게 붙지 못해 안달을 했다. 왜냐하면 최씨가 돈을 물 쓰듯 썼기 때문이다.”

문제는 최태민에 이어 박 대통령이 최순실과 절친했다는 것이었다.

“최태민의 주술의 영을 딸 최순실과 사위 정윤회가 이어받았다. 선무당이 국가를 잡은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들의 주술에 홀렸다. 주술을 모르면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해석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사실 이런 내용은 밝혀진 게 없다. 구술이 수백번 구르고 해서 만들어진 카더라 찌라시다. 최태민이 목사냐 아니냐를 놓고도 뒷말이 쏟아졌다.

최태민은 목사라고 불렸지만 정식으로 신학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목사 안수를 받은 적은 있지만 승려로 활동하기도 했다. 영세교 교주로 활동하기도 했다.

다음은 최태민에 대한 종합 찌라시다.

영세교는 1975년 대한구국선교단으로 이름을 바꾸고 최태민은 총재로 취임한다. 대한구국선교단은 이듬해 구국여성봉사단으로 이름을 다시 바꾼다. 박근혜는 이 단체에 명예총재로 이름을 얹는데 최태민은 ‘퍼스트레이디’ 박근혜의 이름을 팔아 부정행위를 저질렀던 것으로 여러 기록이 전하고 있다.

박근혜는 1991년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최태민이) 우리 사회를 걱정하는 사람으로 느껴서 그분과 같이 일하게 됐다”고 말한 적 있다. 조선일보 2002년 인터뷰에서는 “사이비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정식 기독교 목사였고 그렇게 이상한 사람이면 상대도 안 했을 것”이라며 “나도 알아볼 것 다 알아보고 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최태민은 12·12 직후 사기 및 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돼 징역 1년6개월을 선고 받는다.

김재규의 항소 이유서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최태민이 여성봉사단을 조종하면서 이권개입을 하는 등 부당한 짓을 하는데도, 박 대통령은 김 피고인의 ‘큰 영애도 구국여성봉사단에서 손떼는 게 좋습니다. 회계장부도 똑똑히하게 해야 합니다’란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일도 있어서, 대통령 주변의 비위에 대하여 아무도 문제 삼지 못하고 또 대통령 자신 그에 대한 판단을 그르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김재규의 변호인이 법원에 낸 항소이유 보충서에는 “큰 영애가 관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 삼는 사람이 없었다”는 대목이 있다. “박 대통령이 직접 친국까지 시행했고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했으면서도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 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하고,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놓아 결과적으로 개악을 시킨 일이 있었다”는 대목도 주목된다.

박근혜는 최태민과의 관계를 부인한다. 1990년 육영재단 이사장 퇴임 기자회견에서는 “내가 누구에게 조종을 받는다는 것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라며 “최 목사는 88년 박정희 기념사업회를 만들 때 내가 도움을 청해 몇 개월 동안 나를 도와주었을 뿐”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최태민의 비서였던 정윤회가 최태민이 죽고 난 뒤 1996년부터 2002년까지 박근혜의 비서실장으로 일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윤회는 최태민의 사위다.

박근령은 1990년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편지를 쓴다.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진정코 저희 언니는 최태민씨에게 철저히 속은 죄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속고 있는 언니가 너무도 불쌍합니다.“ 같은 시기 박지만은 ”큰 누나와 최씨와의 관계를 그냥 두는 것은 큰 누나를 욕먹게 하고 부모님께도 누를 끼치게 되는 것 같아 떼어놓으려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언론들의 억측과 추측은 끝없이 이어진다. 청와대를 나온 이후의 박 대통령 행적도 짚고 넘어갈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박 대통령에게 불법통치자금 (현재 물가 기준으로) 수백억원을 건넸다”“이 중 박근혜가 챙긴 돈이 과연 6억원 뿐이었다.”

정 팀장은 이런 찌라시를 읽다가 멈추었다.

한국 언론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사를 적지 않는다. 한마디로 추리소설에 한해선 으뜸이다.

정 팀장은 박정희 정권 시절 청와대 부속실에서 근무했던 이제만을 만났다. 그는 매주 시청앞에서 열리는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다.

이제만은 자신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게 시청앞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거 뿐이다고 말했다.

한 때 박정희 대통령은 물론 박정희 대통령 일가를 보필했던 이제만이었지만 그는 이제 여든을 맞은 노인이었다.

그러나 정신만은 또렷했다. 그는 박정희 정권 시절 발생했던 모든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만은 정 팀장은 정 선생이라 불렀다.

“정 선생, 박정희 각하 시절엔 이렇게 언론들이 엉터리가 아니었습니다.”

이제만은 언론에 대해 강한 부정과 불만은 품고 있었다.

“최태민 이야기요. 제가 잘 압니다. 우리 박근혜 대통령님은 최태민과 아무런 관계가 아닙니다.”

정 팀장은 이제만의 이런 이야기가 웬지 껄끄럽게 들렸다.

아닌 뗀 꿀뚝에 연기가 안 날 수도 있지만 박 대통령과 최태민의 관계는 소문 이상이었다. 그 소문이 이미 굳어져 있었던 게 아닌가.

“시중의 카더라 소설이 더해진 거 봅니까?”

“네, 정확히 그겁니다.”

그는 자신이 나서서 박 대통령과 최태민과의 관계가 악의이고, 왜곡이라고 밝힌 들, 언론이 이를 바로 적어주겠느냐 반문했다.

“내 말을 바로 적어 줄 수 있는 언론이 있다면, 제가 지금 당장 말합니다.”

그는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고 했다.

그는 언론을 그 똥으로 지목했다.

그의 직감일까. 그 역시 이번 최순실 게이트는 누군가 집단이 오랫동안 기획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지금 언론들이 한결같이 일사불란하게 탄핵을 주도하고 있다. 신문과 방송, 특히 종편의 보도는 한곁같다.

허위, 왜곡, 추측 보도와 논평을 하고 미확인 허위사실 보도조차도 서슴지 않았다.

기획에 따라 움직이는 탄핵정국.

이제만은 이번 게이트 사태 보도 형태에 줄기차게 불만을 토로했다.

“진짜 언론보도에 불만이 많으신가 봅니다.”

“정말 언론보도에 환멸을 느낄 정도입니다.”

“저는 언론인이 아니지만 이런 무자비한 언론에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정 선생님, 언론이 이런 보도를 할 때 일반인들이 느끼는 것은, 과연 사회 정의는 어디로 간 것일까 느끼지 않을까요?”

최순실 게이트 보도는 사실이 실종됐다. 전부 의혹 제기였다.

언론이 그 같은 의문과 의혹을 부추겼다. 언론은 의혹을 제기한 후 그대로 사라졌다.

“정 팀장님 그래도 사회적 공인인 기자가 의혹의 칼날에 춤을 추면 되겠습니까.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을 통해 횡령했었는지 아닌지 검찰 조사를 통해 이미 드러났지 않았습니까. 금품 수수가 없었던 개 명백백히 나왔는데 마구잡이 칼날을 들이댑니다. 과연 언론의 자정능력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사실 저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게 JBC 방송의 테블릿PC 입수건입니다. 이것은 많은 의혹을 품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사실상 최순실 게이트 사태가 터졌는데 검찰은 이 테블릿PC 입수 경위에 대해 왜 조사를 안합니까. JBC는 이 테블릿PC를 절도 한 겁니다. 이는 통신비밀보호법과, 건조물 침입입니다.”

이제만은 한 발 더 나아갔다.

“JBC는 분명 이 테블릿PC를 조작 편집했을 겁니다. 이는 박 대통령을 마녀사냥으로 몰고 가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언론왜곡이라는 말은 잘 사용하지 않지만 왜곡보도라는 말과 동일한 말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오보는 넓은 의미에서는 왜곡 보도에 해당되지만 고의성이 없다는 의미에서 왜곡과는 조금 다릅니다. 오보는 주로 정보가 부족하거나, 또는 정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실수’, ‘무지’, ‘불성실’에서 비롯된 경우이지만 왜곡은 의도성, 고의성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는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해서도 깊숙이 알고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보도는 왜곡보도 못지않게 문제가 되는 것은 편파보도다. 왜곡보도 그 이상인 왜곡 편파보도 였다.

왜곡보도는 거짓을 사실로 또는 사실을 거짓으로 꾸민 경우에 해당된다.

그런데 작금의 보도는 ‘사실을 그릇되게 과장’, ‘전체 사실 중 일부분만을 부각해 특정 인상을 심어주고’, ‘한쪽의 주장만을 전달’ 이는 왜곡·편파 보도의 대표적 유형이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 보도는 왜곡 편파 보도에 가깝다.

이제만은 왜 언론인들은 이런 왜곡 편파 보도에 대해 입을 닫고 있는지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언론인들이 촛불과 여론에 휘둘려 침묵했다고 한탄했다.

“여론에 휘둘린 것이 언론인 뿐이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검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여론과 촛불에 따라 결론을 내릴 수 있다는 말입니까. 검찰이 박 대통령이 뇌물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건을 계속 몰고 가는 것은 비난 여론에 편승한 입장이 아니었겠습니까.”

이제만은 정치권 특히 야당이 혁명을 통해서라도 박 대통령을 탄핵하고 하야시키겠다고 밝힌 점을 상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야당의 박 대통령 탄핵은 혁명의 전초요, 연장선상이었다.

눈을 지긋히 감은 이제만은 아주 의미 심장한 말을 남겼다.

“박 대통령 탄핵에는 정치권의 거대한 음모가 숨어져 있습니다.”

그가 말한 음모는 정치권이 북한 김정은과 결탁해서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시키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듣기에 따라 다소 황당한 그의 이야기였다.

그는 정 팀장에게 한권의 문건을 건넸다.

그 문건에는 2016년 11월 박근혜를 날리자는 충격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 문건이 2014년 11월 작성됐다. 

정국은 이 문건의 예상대로 춤을 췄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