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시게 푸르른날, K님의 눈물
눈이 부시게 푸르른날, K님의 눈물
  • JBC까
  • 승인 2017.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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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아침이다. 눈부신 햇살이 거실에 내려앉는다. 세상이 너무나 밝고 환하다.

오늘 같은 날 나도 모르게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미당 서정주의 시가 가수 송창식의 노래 가락이 햇살을 타고 들려온다.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초가을 햇볕따라 발길이 산으로 향했다. 나무 벤치에 누워 푸른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문득, 60대 중반의 K님이 떠올려졌다. 작달만한 키, 오똑한 코, 웃음이 가시지 않고, 배려와 친절함이 묻어나시는 분이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오늘 같은 날, K님은 무엇을 떠올렸을까. 아마도 그 노래 가사말 처럼 K님도 틀림없이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하고 있을거다.

K님, 그분과 인연을 맺은지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K님의 사랑 추억이 오늘같은 햇살처럼 맑고 밝게 다가왔다.

K님의 한마디 한마디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그가 아름다운 수필의 한 구절을 낭독해주시는 거 같다. 단어 하나 하나에, 연결되는 문장 마다 사랑과 행복,그리운 사연이 녹아있다.

“제가 아침에 눈을 뜨면요. 부지런한 제 남편이 ‘여보 여보’ 불러요. 저에게 꽃을 보여주세요. 늘 그 분은 저에게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어해서요. 얼마나 자상하고 다정다감하셨는데요.”

 

K님이 지난 시절 남편과의 알콩달콩을 이야기 할때면 보일 듯 말 듯한 이슬이 눈가에 고이곤 했다. 그런 K님의 이야기를 듣는 또 다른 분이 말한다.

“지금 언니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남편과의 추억이 새삼 떠올려질까.” 그래, 나이가 들었지만 남편 이야기를 할 때면, 눈가에 눈물이 고일만큼 아직도 남편에 대한 애틋함이 남아 있는 것일까.

나는 진한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K님이 남편과의 추억을 말할 때 왜 눈가에 이슬이 맺힐까."

남편을 너무 그리워 해서 일까. 남편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일까. 흔히들, 사랑은 청춘의 전유물로 여긴다.

고희를 앞두고도 이렇게까지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햇살처럼 영롱한 빛을 더하지 못하면 할 수 없는거다.

“우리 남편은요, 자상도 하지만 얼마나 매너가 좋은지 아세요.” K님이 남편 이야기를 할 때는 과거형 인데도 현재형 처럼 들린다. K님은 현재 시점에서 남편과 만났던 지난 시절을 떠올린다.

그 지난 시절은 과거인데도 그 추억이 현재 아지랑이 김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지난 시절 걸어온 발자국마다 하나의 깊은 추억과 그리움이 가슴속 깊이 박혀 있다.

그 분이 읊어주시는 남편과의 추억 수필은 묘한 여운으로 남는다. 그 여운 하나 하나가 차곡 차곡 쌓여지면서 마치 어떤 작은 물결의 그윽함이 가슴을 적신다.

그 분은 만날 때 마다 마치 추억의 서랍을 살며시 열고 있다. 그 분이 그 서랍을 열 때마다 그리움과 사랑이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그 서랍에는 또다른 그리움이 채워지는 듯 했다.

그 서랍속의 사연이 사라지면 자신도 사라지는 것을 아는지, 그 분은 사라지면 금새 그 추억을 주워 담는 거 같았다.

인생은 각자의 서랍속에 저마다의 추억이 묻은 사랑이 숨쉬고 있을 게다.

K님의 서랍속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옆에 K님의 남편도 있었다.  K님의 수필같은 추억을 들으면서 애틋한 미소를 짓곤했다. 

남편은 K님의 귓가에 입술을 대고 이렇게 말을 했다.

“나는 항상 당신 곁에 있어요. 당신과 함께 추억의 산을 올라요. 우리가 처음 만났던 우리들의 고향, 그곳은 우리들의 영원이 숨쉬고 있어요. 그 때 서울의 종로에서 처음 만났었지요. 꽃이 가득 핀 그 정원의 입구. 당신의 눈과 내 눈은 서로를 잡아주기를 갈망했지요···”

너무나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많아서 귓가에 이렇게 속삭인 것은 아니다.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이제라도 그렇게 해야만 했다. 그 분의 남편은 미안했다. 사랑한다는 말을 울먹거리면서 토해냈다.

그리고서 그는 눈부시게 푸르른날 스스로 빛어 아내 곁에 있어주기로 작정했다.

사랑이 그리움에게 묻는다. “지금 그곳에도 눈부신 햇살이 비치나요” 꽃이 피었던가 달이 떴던가. 추억에게 듣는다.

내 그리운 사람 못 잊을 사람. 아직도 나를 기다려 그곳에서 서성이고 있던가. 내게 불러줬던 노래, 아직도 혼자 부르며 울고 있던가.

K님에게 물었다. “남편분이 어디계십니까?”

K님은 대답 대신 눈물 고인 두 눈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웃었다. “하늘나라요~~”

K님, K님의 남편은 그곳에서 눈부시고 찬란한 햇살이 되어 늘 K님을 비추고 있을 겁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https://youtu.be/mKr5P78HaC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