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세에게 들려주는 고향 이야기
정대세에게 들려주는 고향 이야기
  • JBC까
  • 승인 2017.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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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세 할아버지, 아버지 본적은 경북 의성군 금성면 운곡리

'인민 루니' 정대세(29.수원삼성).

정대세는 자신의 고향이 어딘지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정대세는 재일동포 2세인 한국적의 아버지와 조선적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재일동포 3세이다.

2007년에 북한대표선수가 된 경력을 가지고 있다.

2일 정대세가 FC서울과의 경기에서 전반 선제골을 터뜨렸다.

그가 골을 넣자 "북한 사람 정대세가 골을 넣었다"고 수군거림이 시작됐다.

그러나 오해없으시길 바란다.

정대세 '뿌리'가 남한이다.

6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두개의 여권을 들고 있는 정대세

경북 의성군 금성면 운곡리.

일제강점기 시절 이곳은 가난한 농가가 많았다.

먹을 거, 입을 것 조차 없었던 당시 정대세 할아버지는 이 마을에서 농사 일을 했었다.

정대세 할아버지 이름은 정삼출.

마을 사람들은 정대세 조부 정삼출씨에 대해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 마을 김윤호옹은 "정삼출은 1930년 초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정삼출씨가 일본으로 건너 간 이유에 대해 김옹은 "당시 먹을 거, 입을 거 조차 없던 너무 가난한 시절이라 먹고 살기 위해 일본에 갔다"라고 회고했다.

이 마을 김태환씨(76)는 "정삼출씨 형님 친,인척들도 운곡리에 살았지만 지금은 살지 않는다. 소문에 의하면 경북 구미시 선산읍에서 사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마을 원로들에 따르면 정삼출씨가 출생한 곳은 경북 청송군 현서면이다.

정삼출씨는 열댓살 쯤 운곡리로 이사왔다고 전했다.

정삼출씨 본관은 동래 정씨.

운곡리에는 동래 정씨 사당이 있을 정도로 동래 정씨가 많이 살아 이곳을 터전으로 삼았다.

정대세 조부 정삼출씨가 처음 정작했었던 집은 꽤 컸다.

그런데 가세가 기울면서 그 집은 팔고 100여 미터 떨어진 허름한 초가집으로 이사 갔다는 게 마을 사람들의 회고다.

정삼출씨가 1930년초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까지 살았다는 집은 아직도 보존돼 있다.

운곡리 이장 김원호씨는 "정삼출씨가 처음 정착했던 집은 슬레트가 지붕이 덮여져 바뀌었지만, 두 번째 살았던 초가집은 원형 그대로"라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일제강점기 시절 운곡리 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유별나게 일본으로 많이 건너갔다고 전했다.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정대세 국적이 북한인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하고 있다.

금성면사무소에서 정대세 부친 정길부씨 호적등본과 제적등본을 확인해 본 결과 본적지가 경북 의성군 운곡리 였다.

그러나 정길부 출생지가 일본 애지현 동춘승군 고장사정 대자출천 2167번지. 정대세 부친 정길부씨는 이곳에서 1941년 2월22일 출생 했다.

정길부씨는 1984년 3월 리정금씨와의 사이에 정대세를 낳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호적에는 아내와 자식이 등재된다.

그러나 정씨의 호적에는 리정금씨와 정대세가 등재돼 있지 않다.

한국의 호적에는 부친 정길부와 조부 정삼출씨만 등재돼 있다.

정대세가 한국 호적에 등재 돼 있지 않았다는 것은 정대세가 모친 리정금씨의 국적인 조선(북한)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정대세는 조총련계 학교를 다녔다.

경북 의성군 운곡리 전경

문제는 일본 정부는 북한을 주권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 않고 있다.

따라서 조선을 국적으로 선택한 일본 교포들은 현재 '무국적자'다.

만약 정대세가 모친을 따라 조선 국적을 선택했다면 현재 무국적자 일 가능성이 높다.

어쨌거나 정대세는 한 민족의 아픔과 슬픔을 간직한 우리 민족의 후손이다.

정대세 뿌리는 남한, 그러나 현재는 북한 국적. 그리고 일본서 출생.

그것은 일제강점기 시절을 거친 우리 민족의 비극적 가족사의 한 단면이다.

더 이상 정대세에 대해 북한으로 돌아가라니는 등 그를 국가보안법으로 고소하겠다는 등의 언행은 삼갔으면 한다.

정대세도 이제 남한 국적을 선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