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철 가봉공화국 경호실장
박상철 가봉공화국 경호실장
  • JBC까
  • 승인 2017.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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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만남이란 참 묘한 것 같습니다. 2008년 후반 후배 기자가 가봉공화국으로 취재를 갔었습니다. 
  지난 1975년 한국을 방문했었던 가봉공화국 봉고 대통령이 당시 한국의 유명 연예인과 관계를 통해 그 사이에 자식이 있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의 공공연한 비밀처럼 전해져 왔기 때문입니다.  
 그 소문은 34년이 흘렀지만 여전했습니다. 당시 그 끝없이 이어진 소문 탓에 당사자인 여배우는  결국 브라운관을 떠났습니다. 진짜 그 소문이 사실일까. 지난 34년동안 이어져온 쾌쾌묵은 소문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가봉에 갔습니다. 그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 배우에 씌어진 소문의 주홍글씨를 씻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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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봉 현지 취재 후 일간스포츠는 그 기사를 크게 보도했습니다. 이 보도는 국내 언론계에도 비상한 관심을 모았습니다. 한 연예인을 둘러싼 소문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한국서 이틀이 걸린 가봉공화국까지 취재 간 것에 대해 놀라워 했습니다. 
 당시 취재는 여기자가 갔었습니다. 가봉공화국은 1인 지배국이라, 대통령의 말이 곧 법입니다. 저녁은 돌아다니지 못할 정도로 치안이 불안했습니다. 그 여기자는 가봉에서 납치될 뻔도 했습니다.
  그 때 그 후배 기자에게 나타난 '백기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봉고대통령 경호실장이었던 박상철 씨 였습니다. 박씨 입장에선 딸같은 여기자가 한 연예인의 소문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가봉까지 왔다는 것이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그러나 사실 확인을 위해 취재기자가 어디든 못가겠습니까. 박씨는 그 여기자의 당당함을 높이 싸고 측근을 보내 경호까지 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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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분에 그 여기자는 24시간 경호원을 대동하고 가봉 구석 구석 취재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박상철 경호실장이었습니다. 지구촌 곳곳에 한국인이 뿌리내리고 살고 있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이 아프리카의 한 조그만 나라의 대통령 경호실장이 한국인이란 게 정말 대단하고 놀라웠던 것입니다. 
현지에서 그를 취재했습니다. 저는 당시 국제전화를 통해 후배 기자를 도와준 것에 대해 고마워 했고, 한국으로 오시면 삼겹살에 소주 한잔 대접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지난해 4월말이었습니다. 의정부에 작업실이 있는 국내 용그림의 대가 정대봉 화백으로부터 한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정 화백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분입니다. 
 정 화백 왈, "아우에게 훌륭한 사람을 소개시켜주고 싶다. 지금 의정부로 올 수 있느냐"고 묻더군요. 저는 속으로 "어떤 사람이길래, 지금 당장 왔으면 좋겠다"할까 궁금했습니다. 
 누구신지 물었습니다. 
 "가봉공화국 봉고대통령 경호실장 박상철"이라고 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정 화백과 박상철씨 두분이 형과 동생 사이라는 게 놀랐고, 그 분이 정 화백 작업실에 있다 것도 의외였습니다. 
  만사제쳐 놓고 의정부로 달려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박상철씨를 만났습니다. 박상철씨는 외교관 100명보다 더한 분이었습니다. 당시 가봉에 취재갔던 여기자는 "그랜드 박의 나라에서 왔다"고 하니,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한국 입니다. 그는 가봉에서 대통령 다음으로 유명했던 분입니다. 그의 이름을 모르면 가봉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별칭이 '소통령'입니다. 
 지난 14일에도 정 화백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박상철씨가 한국에 왔으며, 지금 의정부 화실에 와 있다"는 것입니다. 후배 기자를 데리고 14일 오후 쏜살같이 달려갔습니다. 
 그래서 취재를 했습니다. 다음은 19일자 신문에 실린 내용 일부입니다. 

 "박상철씨는 아프리카 중서부에 위치한 인구 150만의 가봉 공화국의 수도 리브리빌에 있는 대통령궁에 근무한다. 비행기를 타고 20시간이 걸려야 도착하는 곳이다. 대통령 알리 봉고(51)는 그를 '친구', 국민들은 '마스터 팍'이라 부른다. 건장한 체격일 것 같다는 예상과는 달리 170cm의 크지 않은 키다. “태권도 공인 8단이라 ‘그랜드 마스터’라는 칭호도 있습니다. 가봉 사람 10명 중 6명이 태권도를 익히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죠. 그래서 이름 대신 '마스터'라고도 불립니다.” 
인생이란 게 참 묘하다. 그가 가봉으로 가게 된 것은 사소한 착오에서 비롯됐다. 가봉은 1962년 아프리카 국가 중 최초로 한국과 수교했다. 그런데 1982년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가봉을 방문하던 날 사고가 터졌다. 환영 행사 도중 가봉 군악대가 북한 국가를 연주한 것이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양국의 외교 관계가 깨질 수도 있는 치명적인 실수. 경위를 파악한 결과 당시 가봉 주재 북한대사관의 방해공작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 정부는 가봉 정부의 협의 끝에 한국의 요원을 경호실로 파견하기로 했고 그때 건너간 단 한 명의 경호원이 박 씨였다.
다음은 박상철씨 사진입니다. 가운데 분이 박상철씨 입니다.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들은 외국인에게 경호를 맡기지 않습니다. 치안이 불안전하기 때문에 그 나라 사정을 잘 아는 사람에게 임무를 맡깁니다. 더구나 대통령의 경호는 조건이 더 까다롭습니다. 대통령의 신변 보호뿐 만아니라 각종 행사의 의전까지 책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봉의 경우, 대통령이 41년째 장기집권을 하고 있어 대통령 경호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박씨는 봉고 대통령으로부터 국가훈장을 두 차례나 받았습니다. 현지 방송에선 그를 이 못브을 다큐멘터리로 방영해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박씨는 1996년부터 ‘박상철 챌린지’라는 태권도 대회를 열고 있습니다.


 박씨는 지난 14일 대통령에게 선물할 용 그림 한 점을 얻고자 고향 형님인 정대봉 화백을 찾았습니다. 용그림 하나로 예전같지 않은 한국과 가봉의 관계에 새로운 노둣돌을 놓겠다는 그의 깊은 뜻이 숨어 있습니다. 
 그는 “예전처럼 한국과 가봉이 친해졌으면 합니다. 이번에 가봉에 돌아가면 대통령에게 한국의 용 그림을 선물할 생각입니다. 외교 관계가 다시 탄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손에 든 용 그림이 더 소중하게 보였습니다. 박상철 씨는 한국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20일 가봉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그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