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 그후 ---
미네르바 그후 ---
  • JBC까
  • 승인 2017.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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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시달려 체중 40kg 빠져, 완전 달라진 미네르바 

 구글 이미지

벌써 4년6개월전이다.

필자는 2개월 동안 그와 함께 생활하다시피 했다.

이틀에 한번 꼴로 만났고, 술도 같이 마셨다.

강연도 기획했고, 그의 이모 저모와 속사정까지 다 파악했었다.

그가 인터넷상에서 '미네르바'란 필명으로 명성을 떨쳤던 박대성씨다.

당시 필자는 한 매체에 '단독, 미네르바 경제아야기'코너를 신설 그와 함께 한달간 연재했었다.

 그의 연재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미네르바가 요즘 다시 화제의 선상에 올라 있다.

그가 여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는 이유가 2009년 ‘미네르바’ 사건으로 기소되었다가 무죄 선고를 받은 박씨가 검찰 수사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법원이 원고패소 판결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은 “무죄판결이 확정됐다는 것만으로 검찰의 공소 제기가 위법하다고 할 수 없다”며 박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2008년 3월 포털 다음 ‘아고라’에 처음으로 등장한 미네르바.

그는 8월 말 세계적인 투자회사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예측했다.

같은 해 9월 중순 리먼 브러더스는 파산했다.

특히 그가 8월 자신의 블로그에 쓴 환율급등, 국내 증시폭락,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의 경제 위기 시나리오는 섬뜩하리만큼 적중시켜 온라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논객으로 떠올랐다.

 

포차에서 막걸리 마시는 미네르바

#미네르바가 적중시킨 예측

당시 미네르바가 적중한 예측 5가지다.

1.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 한국 불똥 예언

7월부터 주장, 미네르바라는 필명 알려짐

2. 리먼 브라더스 파산 예언

9월 10일 리먼브라더스 파산 5일 전 리먼 파산과 이후 시나리오 예측

9월 14일 리먼 브라더스 파산 신청

:미네르바를 알린 결정적 주장. 이후 예언자 대접

3. 환율 1400원 예측

10월 6일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해 300억 달러 이상 안 가져오면 환율 1400 간다.”

10월 23일 환율 1400원

4. 한·미 통화 스와프 체결 예상

미네르바 10월 초부터 줄기차게 스와프를 주장

10월 30일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환율 하루만에 151 급락해 1200대 진입

5. 50위권 건설사 1~2곳 부도

9·10월 하도급 순위 50위 안에서 1~2곳 부도처리 가시화

11월 12일 시공능력 평가 41위 중견 건설업체 ‘신성건설’ 부도

그는 이런 예측의 글을 올리는 바람에 관련 전기통신기본법 위반으로 2009년 1월 9일 검찰에 구속됐다.

4월 20일 1심 재판에서 무죄로 풀려났다.

그가 유명세를 치르자 ‘가짜 미네르바’까지 등장,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모았다.

미네르바 박대성씨

# 독서광 미네르바

경제학도 전공하지 않았던 미네르바는 어떻게 경제예측을 할 수 있었을까.

답은 독서였다.

그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칠 정도다.

그는 인터넷 활동을 한 이유가 “뭔가를 바꾸고 나를 찾고 싶은 의지의 표현이었다”고 토로했다.

인터넷에서 경제문제에 특히 관심을 가진 것에 대해 “한국 경제의 초고속 성장과 함께 사회변화가 결정적인 영향을 줬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경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중학교 때부터였다”고 말했다.

“1997년 IMF 때 아버지가 부동산 보증을 서는 바람에 피해를 봤다. 친구 아버지는 주식 실패로 자살까지 했다. 많은 사람들이 부도와 파산이 났다. ‘나도 당할 수 있겠다’는 위기의식을 느껴, 경제 잡지와 신문·서적 등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이어 “IMF를 겪으면서 거시경제와 세계경제에도 관심을 가졌다”고 덧붙였다.

IMF 발생 원인에 대해 “김영삼 정부의 외환시장 개방 자율화 조치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난 사실주의자”라고 표현했다.

기관이나 특정단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과는 다른 개인의 관점이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첫째 거시경제, 둘째 수치, 셋째 개인적인 자산 방어다.

특이한 것은 ‘국가나 전체의 이익보다 개인이 살아야 조직이 산다’는 관점이었다.

존경하는 경제학자로 존 케인즈를 들었다.

“정부 주도의 경제정책과 복지라는 사회 안전망이 확대돼야 정책 결과를 극대화하는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이 자신의 관점과 맞아 떨어져서다.

자신의 경제적 스승으로 ‘경제학원론’을 쓴 이준구 서울대 교수와 DJ 정부시절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를 꼽았다.

그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너무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그는 “산업화가 진행된 현재는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펼칠 당시와 많이 다르다. 유물론적 시각은 요즘 시대에 공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포차에서 술을 마시며 환하게 웃었던 미네르바(앞줄 오른쪽 두번째)

 

 #화가를 꿈꾼 미네르바

어릴 적 꿈이 화가였던 그는 미술, 특히 서양화에 관심이 많다.

미네르바는 잠이 별로 없다.

하루 3시간도 안 잔다.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서다.

당시 그를 만났을 때가 출감 100일이 지났었다.

그런데도 그는 사람을 경계했다.

온라인에서는 ‘경제 대통령’이지만, 오프라인에서는 30대 평범하고 예의 바른 청년이다.

그런 그가 검찰 마약수사대에 의해 연행되고, 독방에 100일 이상 수감된 것이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는 “죽고 싶었다” “두번 다시 갈 곳이 못 된다”고 했다.

박씨는 오랫동안 우울증과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는 등 정신적 신체적 피해를 입었다.

당시에도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었다.

최근 언론에 비친 그의 사진을 보고 놀랐다.

몸무게가 40㎏이나 빠졌다.

5년전과 완전히 다른 미네르바다.

그는 대체 어디에서 피해를 보상받아야 하는가.

조만간 그를 만나서 소주한잔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