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풍구 사고 정의(定義)
환풍구 사고 정의(定義)
  • JBC까
  • 승인 2017.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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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간 사람이 잘못인가, 설치된 게 잘못인가

위험의 공적 책임 범위 어디까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습으로 인해 사망한 이스라엘인 수는? 18일 현재 군인 56명, 민간인 3명이다.

올 들어 한국에서 사고가 나서 사망한 수는 몇 명일까.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세월호 침몰, 경기도 고양 버스 터미널 화재, 장성 요양병원 화재 등만 놓고 볼때도 350여명은 훌쩍 넘는다.  여기에 17일 오후 5시50분께 걸그룹 포미닛의 공연을 보기 위해 환풍구 덮개 위로 올라가 관람하던 사람들이 바닥이 무너지면서 20m 아래로 추락, 현재까지 총 1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크게 다쳤다.

어찌 전쟁중인 국가 국민 사망자수보다 사고로 인한 사망자수가 더 많으니 기가찰 노릇이다. 사망자 수만 놓고 볼때 중동이 위험지역 아니라, 대한민국이야말로 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적색국가’다.

선진국에서도 보기 드문 사고, 후진국에선 발생하지 않는 사건. 대한민국은 역시 ‘사고 공화국’ 만은 틀림없다.

자고나면 배 침몰, 체육관 지붕 붕괴, 공사장 붕괴, 이젠 환풍기 추락사까지. 사람들이 길을 걷는 것도, 차·기차·비행기 타는 것도 무서운 대한민국이다.

아무리 ‘인명이 제천’이라고는 하지만 환풍구 추락사 는 ‘제천’이 아니라 ‘인천’이다. 즉, 사람에 의해 죽었다는거다. 이런 사고가 발생하면 귀에 딱지가 붙을 정도로 듣는 소리가 ‘안전불감증’이다.

이 안전불감증 사고는 느슨한 관리 감독, ‘설마 사고 날까’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는 시민들의 복합적 사고가 원인이다.

출처=뉴시스

환풍구 사고가 발생하면서 많은 네티즌들이 안타까워 하면서 이런 지적을 했다.

“환풍구에 왜 올라가서 사고를 당했느냐.”

환풍구에 올라간 이유는 많은 관객들이 있다보니, 걸그룹을 좀 더 생생히 보기 위해 올라갔을 것이고, 또 환풍구 위에서 사진을 찍으면 앞에 걸리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위험 무릅쓰고 올라갔을 것이다.

이런 환풍구에 '올라가지 마라'는 법적 기준이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유리 위에는 올라서지 않는다. '유리위 올라가지 마라'는 법적 기준이 있어서 안올라 가는 게 아니다. 유리에 올라서면 깨어지고 다친다는 통념적 인식 때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환풍구도 마찬가지다. 환풍구는 공기를 정화시키기 위해 설치 한 시설물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채 지나가고 있다. 특히 많은 시민들의 의식에는 환풍구가 담배꽁초나 쓰레기를 버리는 휴지통 쯤으로 착각하는 거 같다. 도심속 지하철 부근 환풍기를 내려다보면 담배 꽁초 투성이다.

환풍구는 철제로 덮여져 있다. 그다지 단단하지도 않다. 그 환풍 철제 덮개 위로 30여명이 올라섰으니 그 무게만도 얼마이겠는가. 공연중 순식간에 '꽝'은 예견된 인재다.

나는 환풍구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을 탓하는 게 아니지만, 이들의 사적 책임과 우리 사회의 공적 책임에 대해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우리는 사건 사고가 발생만 하면 희생자들의 안타깝고 슬픈 사연만 소개하는 데, 사고의 원인을 놓고 냉정하게 집어볼 필요가 있다.

출처=연합뉴스

나는 이 사건을 보면서 '정의가 무엇인가' 책을 낸 미국 하버드 마이클 센델 교수가 이 사건을 보았을 때 '사고의 정의(定義)' 어떻게 해석할 지 궁금했다. 즉, 공적 책임이 문제인가, 사적 책임이 문제인가.

다시 말해 “설치 되어 있는 환풍구가 문제인가?”, “그런 환풍구 위로 올라간 사람들이 문제인가." 

많은 네티즌들은 "왜 굳이 환풍구 철제 덮개 위로 올라가서 사고를 당했느냐"고 지적한다. 이쯤되면 그 책임은 환풍구 위로 올라간 사람들의 잘못이지, 환풍구 설치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올라갔는지를 놓고 따진다면 희생자들의 잘못으로 몰고 갈수 있다.

 그러나 정부와 이 행사를 주최한 경기도 공적 책임은 무엇인가. 정부는 환풍기가 문제가 있다면 이를 알려줘여 하고, 법령을 정비해야 한다. 또 주최사측은 환풍구에 대해 최소한 안전조처를 취해야만 했었다.

 그런 것을 모르고 올라갔다는 것은 환풍구가 안전하다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환풍구에 대한 공적 신뢰가 이미 형성되어 있었고, 사고를 당한 사람들은 '환풍구는 안전하다'는 이런 공적 신뢰와 믿음이 있있기에 철제 덮개로 올라섰다.

환풍구가 위험한 시설물이라면 누가 그 철재덮개로 지나가고, 누가 그 위에서 공연을 보겠는가. 만약 정부든, 지자체 등에서 "환풍구는 위험한 시설물이, 안전은 국민이 각자 알아서 하라"고 했다면, 환풍구 철제 덮개로 올라가는 우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고, 행사 주최자들도 이에 대한 안전 조처를 취했을 것이다.

그러나, 환풍구에 30여명 이상이 올라서면 무너질 것이란 예견은 상식 범주다. 환풍구는 공연을 보는 장소가 아니다. 공기정화구다. 그 환풍구 철제 덮개로 올라간 것은 '설마 무너질까'라는 안전불감증과 공연의 들뜬 분위기로 인해 좀 더 걸그룹을 자세히 보고 싶다는 순간 망각이 빚어낸 참사다. 

 이런 상황인데도, 언론들은 난데없는 환풍구 시설물을 조지고 있다. 마치 환풍구가 '죽음의 늪'인 양,  안전 점검과 법령정비 운운하며 전문가를 불러놓고 온종일 ‘환풍구 타령’만 하고 있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고, 그 길은 위험하다.’

정부나 언론은 이런 계도를 해야 한다. 가지 마라고 하는데 가서, 올라가지 마라고 하는 데 올라가서 사고가 났다면 굳이 정부의 잘못만으로 돌릴 수 없다.

이런 원칙이 섰다면 행사를 주최한 자들은 설마에 초점을 맞춰 안전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행사의 성공 여부는 돈을 벌고 안벌고가 아니다. 사고가 나지 않은 행사가 결국 성공한 행사다.

나는 지난 2007년 7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한국에 초청되어 왔을 때 행사 전반 안전을 책임진 책임자였다. 당시 맨유 관계자는 서울월드컵 경기장에서 한 경기를 치르기 위해 3차례에 걸쳐 방한 한 후 서울월드컵 경기장 안전 점검을 했다.

맨유측은 경기장을 둘러보면서 선수들의 안전을 우선으로 둔 실사를 했었지만, 그 보다 더 맨유 경기를 관람하다가 사고가 나면 맨유 이미지에 막대한 손상을 주기 때문에 관중석 안전 검검 까지 했었다.

만약 사고가 났을 경우 어떤 식으로 대처할 것인지? 가장 가까운 병원이 어디인지? 경기장과 병원까지 이동거리는? 등. 또 관중들 입장과 퇴장 통로는 물론 스탠스 안전까지도 살펴봤다.

주최측이 이런 까다로운 점검은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공연을 한다면 공연장 주변의 안전점검을 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렇게 많은 관객들이 올 줄 몰랐다”니, “거기까지 미처 점검하지 못했다”는 등은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거 보다 못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공연 주최자들의 안전불감증 수준이다. 공연 주최자들은 공연만 잘 연출해선 안 된다. 공연을 하기 위해 어떤 안전 조처가 필요하고, 안전을 해치는 요소가 무엇인지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

눈앞에 시한폭탄과 같은 환풍구에 대해 주최사측도 또 행사를 함께 공동 주최한 경기도측도 아무런 체크와 대비를 하지 않았다. 이런 엉터리들의 조합이 결국 공연을 주최했다가 사람을 잡은 것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을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언론 보도를 보니, 이데일리TV와 경기도가 공동 주최했다는 데, 역시 큰 선무당이다.

언론사들에게도 당부하고 싶다. 제발 이벤트든, 뭐든 공기업과 관공서 뜯어먹고, 기업 스폰서 받고 행사를 하려면 제대로 해라. 오직 행사를 해서 돈만 벌면 된다는 그 저급하 ‘사고’가 ‘사고’를 불러 일으켰다.

세월호 이후 우리 사회는 사고 원인과 희생당한 자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보다 더 냉철해 질 필요가 있다. 이런 사고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안전은 역시 내가 알아서 책임져야 한다는 것. 가을철 붉게 물든 떨어지는 단풍도 조심해야 하는 세상이다.

내일은 또 뭔 사고가 터질지 불안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