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 자살을 바라보며
경비원 자살을 바라보며
  • JBC까
  • 승인 2017.10.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죽긴 왜 죽어, 자살 이해 못해

몇 번 망설이다 글을 적는다. 주변에선 그런 글을 적으면 공격당할 수 있으니 가급적이면 적지 말았으면 바랐다.

그러나 할 말은 좀 해야겠다. 뭐냐면 입주민들의 비인격적인 대우에 격분해 지난달 7일 자신의 직장이었던 서울 압구정 신현대 아파트 주차장에서 인화물질을 자신의 몸에 뿌린 뒤 불을 붙여 전신 3도 화상을 입고 치료를 받아오다 지난 7일 패혈증으로 인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한 경비원 이야기다.

나는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도 그의 분신 자살이 납득, 용납, 이해도 되지 않는다. 그가 입주자들로부터 얼마나 인권 모욕을 겪었으면 자살까지 했을까. 그게 이해의 문제인가.

한번 따져보자.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남녀노소 불구하고 인권 모욕을 겪지 않은 사람 있으면 “저요”하고 나와봐라.

이 땅의 가장들은 아침에 회사로 출근할 때 몸에서 간과 쓸개를 꺼집어 낸 후 냉장고에 넣어뒀다고 저녁에 집으로 와서 그 간과 쓸개를 다시 몸속으로 넣는다. 이 땅의 가장은 그렇게, 또 그렇게 자본가로부터, 권력으로부터 모욕을 겪으면서도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는 가족과 자신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땅의 가장들에게 물어봐라. 삶이 지치고 고단해서 한 번 쯤 자살을 생각하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역시 “저요”하고 손들어봐라. 모두가 머릿속에 자살을 떠올리만, 가족을 생각하면서 ‘살자’로 다시 신발끈을 동여맨다.

유독 이번에 분신 자살한 경비원은 아파트 입주자들이 얼마나 인권 모욕을 했고, 비인간적 처우를 했길래, 자살까지 했을까 라는 동정적이고 이해적 접근에 나는 동의 하지 못한다. 경비원이라면 우리 사회에 하류 계층이고, 그들의 삶이 핍박받고 있다란 계급적 연장 선상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은 더욱 동의 못한다.

나는 민주노총이 억울하고 힘없는 노동자편에 서서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우리 사회에 경비원들의 노동인권에 대해 목소리 높이는 것에 대해선 적극 지지한다.

내가 진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 사회 인간쓰레기들이다. 아버지 같은 경비원을 막대하는 싸가지 없는 젊은애들. “아저씨, 몇혼데요. 택배 가져오세요”라면서 마치 하인 부리듯 하는 아주 못돼 처먹은 주부들. “이 물건 들고 절 따라 오세요”라는 아주 인간말종인 중년 여인들.

그 잘난 아파트에 산다고 폼 잡고 경비원 알기를 개보다 못한 존재쯤으로 여기는, 그 개보다 못한 인간들 양식의 문제다. 나는 그런 인간말종들이 존재하는 한 경비원의 처우와 인권개선은 멀고도 멀 것이다. 

나는 그 경비원이 자신의 고귀한 목숨을 던진 것이 못내 먹먹할 따름이다. 왜냐면 ‘인간의 목숨은 인권모욕 보다 상위’에 있다.

차라리 죽지 말고, 아니 죽을 용기가 있다면 인권을 짓밟은 인간쓰레기들에게 아구통이라도 한방 날리지. 죽긴 왜 죽어.

긴 한 숨만 나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