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카와 센바이 간빠레!
다치카와 센바이 간빠레!
  • JBC까
  • 승인 2017.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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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에서 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다치카와 마사키 씨.  출처=포커스뉴스

그러면 안 되는 데 나는 웃음부터 나왔다. 그의 고통을 희극화로 받아들이는 것 아니지만 살다 살다가 7,500원 때문에 한국에서 10개월간 억울하게 옥살이 한 일본인 다치카와 마사키(太刀川正樹·68) 일본 닛칸 겐다이 소속 선배. 솔직히 그의 말을 들을 수록 나도 모르게 웃음부터 터져 나왔다.

나는 그가 최근 포커스뉴스 기자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서대문형무소를 찾았을 때 함께 했다. 앞서 나의 이 블로그를 통해 70년대 다치카와 선배가 한국에서 겪었던 고초에 대해 이미 밝혔었다.

다치카와 씨가 서대문형무소 벤치에 앉아서 지난 시절을 떠올리고 있다.  출처=포커스뉴스

이번에 또 한번 더 7,500원 구속건과 관련해서 타치가와 선배 이야기를 들었더니 쓴웃음이 터져나왔다.

말이 그렇지 당시 언어가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말이라도 통하면 '변명'과 '항변'을 할 것인데 그는 꼼짝없이 당시 공안당국이 짜놓은 ‘민통학련 시나리오’의 희생자가 되었다.

그가 주장하는 자신의 논리는 아주 간단했다. 1974년 2월 운동권생들을 인터뷰 한 후 밥을 사먹어라고 7,500원을 건넸다. 그게 운동권 공작금이 되었다. 그 바람에 10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했다.

30대초반 때 다치가와 씨<오른쪽>

당시 그의 구속은 군사정권에 밉보인 게 더 컸다. 사정은 그랬다. 70년대 초, 유신 서슬이 시퍼렇던 때 그는 일본 기자신분으로 한국에 와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취재 했었다.

언론에 나가는 기사와 보도 조차 중앙정보부 검열 과정을 거쳐야 했던 시절, 그는 간도 크게 한국의 민주주의 운동을 상세히 보도했다. 당연, 그는 독재정권의 눈에 가시 같은 존재로 비쳐졌다. 그런 그가 1974년 2월초  당시 서울대학교에서 학생운동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이철(전 국회의원)-유인태(새정치민주연합 의원)를 인터뷰했다.

http://www.focus.kr/media_view.php?key=2015102303155953835&ncid=&fnm=field&page=2

두 사람은 경찰의 수배중 이었고, 몰골이 초라해서 끼니조차 거르고 있었다. 다치가와 씨는 이들이 너무 안쓰러워 보여 당시 통역관에게 줄 7,500 통역비 양해를 구한 후 두 사람에게 밥 사먹어라고 건넸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왔다.

재판을 받고 있는 민청학련 가담자들. 출처=구글 이미지

그런데 그 다음날 숙소에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들이닥쳤다. 그는 그들의 차에 강제로 태워진 후 남산쪽으로 갔었고, 그곳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조직 도표’가 그려져 있었다. 다치카와 씨가민청학련 자금총책. 그가 일본에서 가져온 돈으로 민청학련 공작금을 댄 배후 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다시 찾은 서대문형무소를 둘러보고 있는 다치카와 씨

딱 잡아 변명과 항변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서대문형무소에 구속 수감됐다. 지금으로선 상상 조차 할 수 없었던 시절 그는 이렇게 한국에서 구속됐다. 그는 구속 수감 후 지난 2010년 재심을 통해 36년만에 혐의에서 벗어났지만, 그로 인해 그가 치러야 했던 대가는 참혹했다.

세 살배기 아들은 죽었고, 한국인 아내는 우울증이 와서 결국 그와 갈라섰다. 한 가정이 풍비박산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을 사랑하다고 했다. “한국을 증오해야지, 왜 한국을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사랑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 그래서 사랑한다”고 했다.

 

다치카와 씨(오른쪽)가 전남명예시민이 된 후 이낙연 지사와 기념촬영

그렇게 한국을 사랑한 그는 지난 20일 전라남도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앞서 그는 지난 9월 18일 나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전남도민증을 받는다고 전해주었다. 나는 그가 전남도민이 된 것을 누구못지 않게 기뻐해줬다.

그는 슬픈 사슴마냥 늘 눈가에 촉촉한 이슬이 맺혀 있다. 나는 다치가와 선배의 그런 눈을 보면 그냥 미안해진다. 그의 눈가에 맺힌 이슬은 그만의 한(恨)이다.

내가 그의 7,500원 때문에 웃었다는 것은 어이없음에 대해 허탈이다. 이번에 포커스뉴스 조승희 기가가 타치가와 선배를 인터뷰 했다. 이 인터뷰 내용 하나 하나를 읽다보면 억장이 무너질 정도로 기막히다.

http://www.focus.kr/view.php?key=2015102300110102476

나는 다치카와 선배를 지난 2005년 만난 후 지금까지 친분관계를 맺고 있지만 그는 한국에 대해 단 한번도 “나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막걸리가 아닌 한을 들이킨다는 다치카와 씨. 출쳐=포커스뉴스

그는 나랑 만나면 늘 막걸리를 마신다. 그는 술을 많이 마셔 두 번 위가 펑크 나서 입원했다. 그런데도 그는 술잔을 놓지 않는다. 나는 그가 술잔을 놓지 않는 이유를 안다.

그가 마시는 술은 술이 아니다. 바로 자신의 한(恨)을 마신다.

 그를 향해 외치고 싶다. “다치가와 선배 이제 락(樂)을 마시소서."

그의 건투를 빈다.

"센빠이 간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