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선수 여친 자살이야기
스타 선수 여친 자살이야기
  • JBC까
  • 승인 2017.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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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

 출처=구글 이미지

인터넷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이른바 ‘사법연수생 불륜사건’.

이 사건은 A 씨가 유부남 신분을 속이고 B 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

A 씨의 아내 C 씨(30)가 남편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뒤 지난 7월말 경기도 고양시의 한 아파트에서 자살했다는 내용이다.

이 사건을 보면서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2001년 9월말 인터뷰 했었던 한 여인의 가슴아픈 사랑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왜냐하면, 그녀는 불륜의 충격으로 자살하지는 않았지만, 가슴저린 헤어짐의 후유증을 극복못하고 결국 30대 초반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 남자를 만난 것은 여고 2학년때였다. 당시 남친도 고교 2학년. 동네 편의점에 갈때마다 우연찮게 자주 눈이 마주친 둘은 시간이 지나면서 친해졌다.

 

 영화 클래식의 한 장면

남친은 불우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훗날 대형스타를 꿈꿔왔다.

여친은 남친이, 남친에겐 여친이 첫사랑이었다.

비록 고등학생 신분이었지만 두사람은 훗날의 사랑을 약속하며 사귀었다.

그녀는 남친을 헌신적으로 사랑을 했다.

남친의 뒷바라지를 위해 대학 진학도 포기했다.

남친은 대학을 진학했다.

그녀는 새벽에는 우유배달, 낮에는 피아노 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켰고,

저녁엔 동대문시장 상가에서 장사까지 했다.

그녀의 별명은 ‘억순이’ 였다.

남친도 그런 그녀의 헌신적 사랑과 뒷바라지에 힘입어서 큰 어려움 없는 대학생활을 해나갔다.

마침내 남친은 대형 선수로 성장했다.

그녀는 남친을 위해 차도 사줬다.

아파트 사는데도 보탰다.

남친의 집안에선 그녀를 사실상 며느리로 받아들였다.

그녀는 남친과 남친의 가족까지 정성껏 모셨다.

그런데 청천벽력이었다.

어느날 남친이 다른 여자를 사귀었고,

결국 남친은 그 여자와 결혼을 해버렸다.

그녀는 남친의 결혼에 너무나 큰 쇼크를 받아 병원에 입원했다.

그 어머니도 딸의 남친 결혼소식에 쇼크를 받은 후 길을 걷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출처=구글 이미지 사진. 본 내용의 사람이 아님

2001년 9월 말 부슬부슬 가을비가 내리는 가운데 신촌의 한 카페에서 가졌던 인터뷰 내내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그러면서 끝까지 남친을 걱정했다. “만약 기사가 나갈 경우 남친의 앞날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했었다. 필자에게 “남친의 앞날을 위해 제발 기사를 적지 말아주세요”라고 호소했다.

그녀가 필자를 만나 어쩔 수 없이 인터뷰 했었던 것은 한 지인을 통해 그 여친의 순애보같은 사랑이야기를 전해들었고, 그후 그 내용에 대해 취재를 했었다.

당시 필자는 그 남친의 가족과도 인터뷰를 했었다. 그녀와 결혼 약속했다는 이야기도 전해들었다.

이어 그 여인의 집까지 방문해서 그 남친과 찍은 사진까지도 확보했었다.

그리고 보도하기 전 남친의 여친, 그 여인을 만나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싶었다.

수차례 걸친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던 그녀가 “그렇다면 그 사실만 보도를 하겠다”고 밝히자 그제서야 인터뷰를 허락해줬다.

가날픈 그녀는 누가 봐도 미인상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 떨렸고, 남친의 이야기를 하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기자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그녀의 눈물이 가슴 찡한 팩트를 전달해왔다.

당시 보름여에 걸쳐 취재를 했었던 필자는 마침내 기사를 작성했다. 그런데 보도가 되지 못했다. 그 여인의 간곡한 요청도 있었고, 이 내용이 보도될 경우 엄청난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또 연애를 한 사람과 굳이 꼭 결혼을 해야하는가에 대한 분분한 의견과 그가 결혼후 불륜을 하지도 않았다는 너그러운 판단에서다.

그런 저런 이유로 보도되지 않았지만 그 기사는 아직도 필자의 머릿속에 메모리 되어 있다.

그녀와 인터뷰 한 후 필자는 가끔씩 안부전화를 하곤 했었다.

그녀도 남친의 쇼크에서 어느정도 벗어났는지 목소리가 무척 밝았다.

그리고 “남친과의 사랑은 추억으로 묻어두고 자신도 열심히 살겠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어느날 전화를 걸었더니 전화기에서 ‘없는 국번’이란 멘트가 나왔다.

그후부터 필자의 머릿속에서도 그녀가 지워졌다.

 

그런데 그로부터 7년이 지난 2008년 어느날.

2001년 취재당시 인터뷰를 했었던 또다른 한 여인을 우연히 만났다.

대뜸 그 여인이 “기자님 혹시 D씨 근황 알고 있나요”라고 물었다.

7년이 흘러 그 이름이 가물가물해서 “D가 누구죠”라고 되묻는 순간 기억이 나서 “아하” 하며 “D씨는 잘 살고 있죠”라고 물었다.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D가 자살을 했답니다”

필자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녀가 말한바에 따르면 남친과 헤어진 후 D도 결혼을 했었는데 결국 그 사귐과 헤어짐의 후유증이 너무 컸는지 순탄한 결혼생활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생을 마감한 것 같다고 전했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네티즌들은 “그 남친이 누굴까” 무척 궁금해 할 것같다. 그러나 밝힐 수 없다.

(부탁하고 싶은 것은 괜한 억측과 추측의 댓글은 달지 마세요^*^) 

그가 결혼 후 사법연수원생 처럼 불륜을 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그녀가 얼마나 그 남친을 사무치게 사랑했으면 자살로 생을 마감했을까.

안타까울따름이다.

 

2001년 9월말 그녀가 흘렸던 사랑의 눈물이 아직도  아련거린다.

새삼 그녀를 떠올리면서 김광석의 노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 노랫말이 그녀의 사랑이야기처럼 들린다.

정말 그녀에게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던 것 같다.

뒤늦게나마 그녀에게 국화꽃 한송이를 올린다.

그리고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