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정인숙 혼외아들 그 닮은꼴
채동욱·정인숙 혼외아들 그 닮은꼴
  • JBC까
  • 승인 2017.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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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숙·임모 여인이 낳은 혼외자 아들 친부가 누굴까

정인숙 아들 정성일 씨

가물가물 하지만 1991년 6월쯤으로 기억난다.

한 남자와 서울 강남의 한 일식당에서 만났다.

그는 미국에서 온 이십대 중반 남성이었다.

그가 정성일이다.

정성일? 누군지 궁금해 할거다.

정인숙 아들이다.

이 블로그에 들어오는 분들 역시 '정인숙 누구지?' 할 것 같다.

정인숙은 1970년대 박정희 정권 최대 '성스캔들'에 휘말려 살해된 인물이다.

필자가 만났던 정성일은 바로 정인숙 아들이다.

그가 한국을 방문한 것은 친자 확인 소송을 위해서였다.

그는 친자확인소송을 냈다가 한 달 만에 돌연 소를 취하해 그 이유에 대해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었다.

필자는 그 과정에서 정성일을 만났었다.

왜 뜬금없이 70년대 정인숙 사건을 들추고 그의 아들 이야기냐면,

이번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식 논란 사태를 보면서 문득 정인숙 사건이 떠올랐다.

정인숙 사건과 채동욱 사건은 시대 상황과 환경이 다르다.

하지만 곱씹어 보면 권력층과 여성 등의 관계가 한국 정치사 권력사에선 땔래야 땔수 없는 연관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승용차에서 피살된 정인숙

우선 이 글을 읽기 위해선 정인숙 사건을 알 필요가 있다.

정인숙 사건은 1970년 3월 17일 오후 11시쯤 발생했다.

서울 마포구 강변대로 코로나 승용차 안에서 정인숙이라는 미모의 26세 여인이 목과 가슴에 두 발의 총알을 맞고 숨진 채로 발견됐다.

이 사건이 관심을 끈 것은 그녀가 고급요정 선운각의 얼굴마담인 데다 수첩에 정·재계 거물 26명의 이름이 적혀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였다.

자유당 정권 아래서 대구시 부시장까지 지낸 고위공무원의 딸로 태어난 정인숙은 타고난 미모와 매너로 고급요정의 요화로 소문나기 시작했다.

본인의 장래 희망은 배우와 모델이었던 정인숙은 당시 정계와 재계의 거물들이 드나들던 고급요정 선운각과 김 마담의 한남동 요정이 주 무대였다.

거기서 그녀는 재벌과 권력자들의 노리개감으로 전전했다.

게다가 여권발행이 힘들었던 시절에 복수여권까지 소지하고 있었다.

그런 정인숙은 1968년 6월 아들 정성일을 낳았다.

정인숙

그녀는 아들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일절 입을 열지 않았으나 소문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녀와 자주 접촉하는 고위인사들 중 한 명이 아이의 아버지라는 얘기가 확산돼 갔다.

누구의 이름도 기명되지 않았지만 아이의 아버지가 박정희 대통령, 아니면 정일권 국무총리 하는 등의 풍문만 무성했다.

그 과정에서 그녀가 죽자 이례적이게도 사건을 맡은 것은 검찰 공안부였다.

검찰은 일주일 후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

발표 내용인즉슨 범인은 친오빠 정종욱.

동생의 행실이 나빠 가문의 명예를 위해 동생을 죽이고 강도를 당한 것처럼 위장했다는 것이었다.

정종욱은 기소되어 무기징역을 언도받는다.

그리고 그는 1989년 5월, 모범수로 감형되어 석탄일에 석방되었다.

당시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당일 밤 11시 40분쯤 타워호텔에서 동생을 태우고 서교동 동생 집 골목을 들어서는 순간 남자 두 명이 '정 총리의 심부름'이라며 차를 세워 차문을 여는 순간 갑자기 범인이 뒷좌석의 동생을 향해 권총 두 발을 쏘았습니다. 그러고는 앞뒤로 탄 범인들이 절두산 쪽으로 차를 몰라고 했어요. 절두산성지 앞 공터에 지프가 세워져 있어 직감적으로 나를 죽이려는 것으로 판단, 허리춤에 대 있던 범인의 권총을 밀치고 차 문을 여는 순간 총을 쏘더군요. 범인들은 지프를 타고 달아났고요.”

그리고 2년 후인 1991년 미국에서 온 정성일은 당시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정일권을 상대로 친자확인소송을 하다가 돌연 취소하고 돌아간 적이 있다.

정인숙 오빠 인터뷰 동아일보

이와관련, 정일권·정성일간 '모종의 거래가 있었지 않느냐'는 소문이 나돌았다.

정인숙 사건은 여기까지다.

이 글을 읽으신 독자들은 채동욱 혼외자 사건 논란과 정인숙 사건이 얼핏 유사한 점이 있음을 짐작 할 수 있을 것 같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과 ‘권력’은 세상을 달구는 뜨거운 소재라는 사실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좀더 살펴보면, 일단 두 사건은 한국의 권력 남성들을 예기치 않은 곤경에 빠뜨렸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정리하면 대충 다음과 같다. ▲아들이 있다는 점, ▲친자확인 소송을 하는 이유와 방식이 다르지만 어쨌거나 친자확인 소송에 들어갔다는 점. ▲두 여인이 유흥업소에 종사했고 ▲ 여전히 친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 등이다.

다만, 드러나지 않았지만 두 여인과 질퍽한 사랑을 나눴던 권력 남성이 여전히 익명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는 점에서도 닮은꼴이다.

임 모 여인 보도하는 KBS뉴스 캡처

두 사건이 무척 흥미로운 것은 70년대 정인숙 사건도 막장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권력과 성의 기본 줄거리를 구성했다.

채동욱 논란 사건은 우리나라 사법기관의 최고 수장과 대통령 권력이 충돌하는 흥미로움까지 더했으니 사람들이 관심이 클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두 사건의 닮은꼴은 국민이 알고 싶은 진실은 보여주지 않은 채, 언론보도의 끝없는 의혹제기로 추측만이 난무했다는 것이다.

이는 사람들이 더 이상 보기도, 듣기도 싫어해 사건의 중심에서 이탈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차이라면 당시 정인숙을 죽였던 사람은 친오빠로 밝혀졌지만 사실은 아니다.

그런데  커녕 그녀의 죽음에 직간접으로 연관된 어느 누구의 이름조차 발설되지 않았다.

그것은 정인숙 뒤의 권력 남성들이 철저히 익명으로 숨을 수 있는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채동욱 문제는 아직까지 친자여부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언론에 의해 철저하게 까발려 졌다는 점이다.

채동욱 혼외 논란이 확대 재생산된 것은 채 전 총장이 정권의 말을 듣지 않고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사건 수사 및 기소를 강행했기 때문이라는 야권의 이유가 그럴듯 하다.

정권의 입장에서는 채 전총장은 ‘버리고 싶은’ 존재였을 것이다는게 야당의 주장이다.

그런 과정에서 채 전 총장의 스캔들이 느닷없이 터졌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것이 “그래 원리 원칙 채 전 총장 너 한번 당해봐라”는 그것이 아닐까.

 

둘의 차이점이라면 권력의 눈밖에 난 스캔들은 진실이든 아니든 이렇게 처참히 짓밟히고,

권력끼리 주고받은 스캔들은 돌통나지 않은 법이란 새삼스런 권력 불륜의 메시지를 던졌다.

또 정인숙 사건은 짐작과 확신은 가지만 물증이 없었던 관계로

그녀의 죽음과 친부가 드러나지 않은 영원한 미스터리 사건으로 남았다.

그러나 채동욱 사건은 채 전 총장이 유전자 검사에 응했기 때문에 친부가 누군인지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우리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관조적인 자세로 진실이 밝혀지길 기다려 한다.

그것이 정인숙 사건과 채동욱 사건이 다른 핵심이유다.

그리고 정인숙 사건은 성과 권력의 냉정과 온정이 오갔다.

바로 호랑이도 자식은 내치지 않는다.

정인숙은 죽였지만 권력이 자식까지 내치지 못한 평범한 교훈이다.

채동욱 혼외자 논란도 아들이 누구의 자식이든, 보호를 해줘야 한다.  

당시 언론은 정인숙 아들만큼은 감싸 안아줬다.

지금처럼 아들이 어쩌고 저쩌고 까발리지 않았다.

이제 겨우 열한 살 혼외자 아들.

솔직히 그가 무슨 죄인가.

정말 그의 미래가 너무 걱정돼서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