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Frame)에 갇힌 대한민국
프레임(Frame)에 갇힌 대한민국
  • JBC까
  • 승인 2017.10.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3년 한국 사회를 뒤덮은 프레임, 희생자는 바로 당신

2013년 ‘JBC- X파일’(JBC 까)을 애독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JBC- X파일은 나만의 독특한 시각을 가지고 감히 정치, 경제, 사회, 스포츠, 연예 등 문제에 접근했습니다.

나의 글에 대해 생각이 같았던 사람들에겐 공감이 형성됐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비공감이었던 글들입니다.

나는 나의 글에 대해 팩트에는 접근했지만 적었던 글이 진실인지에 대해선 답을 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과연 팩트였는가?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모두 옳은가?

난 나의 프레임에 갇혀 있지 않았는가.

내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해 옮고 그름을 나만의 프레임에 갇혀서 판단하지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그 물음표를 던져봅니다.

이는 내가 프레임에 갇힌 상태에서 팩트를 던지면 그것은 상대가 진실을 외친들 그 프레임에 갇힌 상대의 진실 고백은 이미 자신만의 변명적 메아리가 될뿐입니다.

똑같은 것을 보고도 어떤 마음을 먹고 어떤 시각을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같은 문제가 천지 차이의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2013년 많은 글을 적으면서 스스로 한계가 ‘프레임’ 즉, 틀이었음을 고백합니다.

프레임은 여러 의미가 있으나, 언론보도와 관련해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것 중 하나입니다.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세상을 관조하는 사고방식, 세상에 대한 비유, 사람들에 대한 고정관념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합니다.

저는 글을 통해서 착각과 오류, 오만과 편견, 실수와 오해가 ‘프레임’에 의해 생겨났음을 깨달았습니다.

30일 언론계 선·후배들과 낮술 송년회를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도 ‘프레임’이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대한민국에서 프레임에 갇힌 넘버원 집단이 바로 미디어라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한 후배는 “여기 계신 선배들이 프레임에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라며 돌직구를 날리더군요.

미국의 미디어 연구자인 토드 기틀린<위 사진>은 프레임 개념을 원용하여 매스미디어의 보도가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디어가 어떤 사건과 현상을 프레임속에 가두어 버리면 결국 그것이 여론화되면서 때론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됩니다.

그것이 인터넷과 SNS를 통해 급속히 확산되면 상대에겐 영영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로 새겨집니다.

이런 과정이 몇차례 숙성을 거치면 마치 그것이 진실인양, 국민적 공감과 공분이 축적되어집니다.

프레임은 그만큼 무서운 광기의 씨앗이기에 경계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습니까.

다 그렇지는 않지만 법을 집행하는 판·검사들은 진실보다 국민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판·검사들이 껄꺼러운 것이 ‘국민여론’, ‘국민공분’입니다.

국민이란 프레임에 갇히면 법의 집행은 법이 아닌 국민여론법이 집행자가 되어버립니다.

 

이번 철도노조 파업 슬로건도 뭡니까. <위 사진>

철도를 국민에게 즉, 국민의 편의와 안전를 위한 것이랍니다.

국민의 프레임은 만사형통의 악용입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입이다.

인터넷 조회수가 많고, 기사의 공감이 많으면 그 또한 국민여론이란 미명하게 신명나는 굿판의 글을 펼칩니다.

그것이 진실이건 아니든간에, 문제는 바로 그러한 언론보도의 ‘프레임’이 마녀사냥에 이어 상대에겐 주홍글씨로 새겨진다는 것입니다.

기틀린은 ‘프레임’을 “상징 조작자가 상례적으로 언어적 또는 영상적 담화를 조직하는 근거로 삼는 인식, 해석, 제시, 선별, 강조, 배제 등의 지속적인 유형”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미국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는 프레임의 실상을 가장 잘보여주는 책입니다.

레이코프는 “어떤 사람에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코끼리를 떠올릴 것이다”며 “상대편의 프레임을 단순히 부정하는 것은 단지 그 프레임을 강화할 뿐이다”고 주장했습니다.

프레임은 사회학적 통제적 수단의 한 방법으로 악용되어지곤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집단적 광기를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한 대상자를 프레임에 가두어 버리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군중성이 매우 강합니다.

미디어와 혹은 법의 집행을 통해 프레임에 갇혀버리면 인간의 정신이 말살당합니다.

여기에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의 SNS 발달과 맞물려 인터넷 안에서 다양한 관계가 프레임을 더욱 노골화 시킵니다.

이 광대한 프레임에 갇혀버림으로써 때로는 사람들에게 억압된 한국 사회의 분노 분출구가 되어 버립니다.

프레임에 갇히면 익명화된 인터넷의 미명 아래 소수의 사람들을 속죄양으로 지목하여 다수의 욕망과 분노를 해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하는 비정상적인 사회 기류가 형성됩니다.

 

  채동욱 전 검찰 총장

 

안티 영남제분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 자식 보도, 하양 사건을 통한 영남제분 마녀사냥, 야구선수 조성민 자살 사건 등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현대판 마녀사냥이자 민주사회에서 일어나는 속죄양의 희생의식인 것입니다.

인간사회에서의 ‘본질적 폭력’의 역할을 밝힌 프랑스 학자 르네지라르는 “인간은 모방욕망과 형이상학적 경쟁으로 비이성적 상태에 빠지기 쉽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폭력을 해소시킬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의 분노를 한 대상, 즉 희생양에게 집중시키는 것입니다.

희생은 폭력의 또 다른 이름 “대체 폭력”이며, 만장일치의 폭력입니다.

사람들은 광기어린 폭력에 빠져들면 급기야 마녀사냥 폭력을 가합니다.

채동욱·영남제분·조성민 등 프레임에 갇히면 사람들은 더 이상 진실이 무엇인지 중요시 여기고 있지 않습니다.

프레임에 갇히면 보이는 대로 보지 못하고,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들리는 대로 듣지 못하고, 듣고 싶은 대로만 듣는 흐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코끼리를 떠올리듯, 인간의 두뇌에서 한번 자리 잡은 프레임은 웬만해서는 내쫓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네모난 창을 통해 밖을 보면 네모로 보이고, 세모난 창을 통해 밖을 보면 세모로 본다는 것인데, 아무리 네모가 세모라 한들,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맥락입니다.

 

마녀사냥 그림

2014년, 바로 이 프레임에 대한 도전글을 적을 것입니다.

‘JBC-파일’은 프레임의 비이성적 판단에 갇힌 거품을 제거하고 이성이 자리잡는 미덕과 관용의 사회로 한발짝 전진하고자 합니다.

애독자 여러분의 많은 질책과 비난, 격려 기대합니다.

2014년 말띠해, 모두가 말처럼 광야를 질주하기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