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한줌의 재로 변한 한 정보원의 쓸쓸한 죽음
일본에서 한줌의 재로 변한 한 정보원의 쓸쓸한 죽음
  • JBC까
  • 승인 2017.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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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가 될까 말까한 작달만한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눈매가 매서워 만만해 보이지 않는 인상.

바바리 코트 차림에 중절모를 푹 눌러쓰고 총총 걸음걸이로 나타났다가 바람처럼 사라진곤 했었다.

일본에서 활동했던 김예호씨다. 김예호씨라면 유명 인사쯤으로 짐직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는 보잘 것 없는 80대 중반의 노인이다.

사실 ‘김예호’가 그의 본명인지, 아닌지는 잘 모른다. 그에 대해 알려진 거라곤, 나이는 80대 중반쯤. 일본 동경 긴자에 사무실을 두고, 동경 인근에 살고 있다는 것 뿐이다. 한국에서 고향이 어디인지, 어느 학교를 졸업했고, 어떤 기관(회사)에서 근무 했었는지 조차 알 길이 없다.

그에게 신상을 물으면 “정 선생, 그냥 ‘동경 김 선생이다’만 알고 계세요.”라고 픽 웃는다.

일본 동경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그냥 편하게 ‘동경 김 선생’이라 밝힌 것이다.

50여 년을 동경에서만 줄곧 살았다는 그는 사실 일본 보다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등 구석 구석에 대해 더 잘 안다.

특히 그는 한국 정치사의 ‘백과사전’이었다. 한 정치인의 가족사는 물론, 삶의 궤적까지도 꿰뚫고 있다. 놀라운 것은 그 삶의 궤적을 파일로 보관하고 있었다.

입이 무거웠지만 가끔 그의 입을 통해 흘러 나오는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다.

경제인들도 예외가 아니다. 흔한 말로 기업 총수가 '지난 밤에 무엇을 했는지'도 알고 있었다.

일본에서만 살았던 그가 어떻게 해서 한국 정치인과 기업인 등 특정 인물의 성장과정과 삶까지도 파일로 갖고 있었을까.

그를 파악하기까지는 꼬박 3년이 걸렸다. 영어와 일어가 능통했던 그는 이승만 정권 시절 미국의 한 정보기관에서 근무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50년대 후반 우파와 좌파의 이데올로기 대립이 극심했을 때 그는 미국과 이승만 정권하에서 좌익 동향 파악에 주력했다.

이승만 정권 시절 소위, ‘빨갱이 잡는 귀신’이었던 김창룡 전 특무대장 뒤에는 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당시 그는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거나 북한의 김일성과 내통했던 인물을 찾아내 이승만 정권의 정통성을 지켜나갔다.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후에도 그의 임무가 계속됐다. 그러면서 60년대 초반 홀연히 일본으로 떠났지만 일본에서도 그의 임무는 계속됐다.

그는 한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 뿐만 아니라 조총련 조직 탄생 비화까지 꿰뚫고 있었다.

그는 "내가 갖고 있는 자료가 드러나면 한국이 엄청 시끄러울테니 국가를 위해 비밀을 유지해 왔다"고 밝혔다.

그랬던 그가 어느날 자신이 간직중인 모든 파일을 기자에게 전달하고 싶어했다.

2011년 11월 동경에서 만났던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았다. 당시 그는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는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역사적 가치를 위해 간직중인 파일을 정리 한 후 2012년 4월쯤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약속만은 칼 이었던 그는 2012년 4월이 지났는데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의 일본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면 ‘없는 번호’란 멘트가 흘러나올 뿐이다.

올초까지 연락이 닿지 않자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그와 가까웠던 미국에 사는 한 지인은 “작년 초 일본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고 전해주었다. 향년 86세.

그의 지인도 작년 말 수소문 한 끝에 그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에서 쓸쓸한 노년을 보내면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정보요원일 것이란 짐작은 가지만 그는 자신의 입에서 자신이 무엇을 했던 사람인지 끝까지 밝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총총 걸음 걸이로 나타나 영원히 이승과 작별한 그의 명복을 늦게나마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