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표 은퇴식을 보면서
이왕표 은퇴식을 보면서
  • JBC까
  • 승인 2017.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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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표(사진)가 결국 링을 떠났습니다.  링위에서 호랑이보다 더한 호랑이였던 이왕표.

 큰 키에 딱벌어진 어깨, 근육질. 그런 이왕표가 사각의 링에서 설마 내려올 줄  몰랐습니다.  평생 링에서 거구의 사나이들과 피터지는 한판 승부를 펼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도 결국 링에서 내려왔습니다. 세월과 병마 앞에 장사가 없습니다.

  이왕표는 육십이  넘었습니다. 인생은 육십부터라지만, 사실 그는 진작 링에서 내려와서야 했었습니다. 혹시라도 육십 먹은 사람이 사각의 링에서 삼십대와 한판 승부를 펼쳐보십시오. 나이 먹은 사람이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아들 뻘 선수와 힘겨루기는 보기에도 안쓰럽습니다. 

 이왕표는 참으로 오랫동안 링의 사나이였습니다. 이왕표가 링에서 못내려온 것은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은퇴하면 그나마 명맥을 유지했던 프로레슬링이 무너진다는 절박한 때문에 버틴거죠. 한국 프로레슬링. 70년대 흑백 TV로 프로레슬링을 중계하면 죽은자도 벌떡 일어나서 관람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프로레슬링의 인기가 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습니까. 프로레슬링은 공짜로 관람할 수 있다고 선전해도 관중이 없습니다. 그나마 한국 프로레슬링이 명맥을 유지한 것은 이왕표라는 걸출한 스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왕표 본인도 내가 은퇴하면 한국 프로레슬링이 퇴색길로 접어들 것으로 예상 했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십이 넘었지만 링에 오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또 그가 은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병마'입니다. 과거 링에서 한판 승부를 펼쳤던 그는 지금은 병마와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왕표는 담도암에 걸렸습니다. 담도암. 그거 정말 지독합니다. 사망률이 가장 높은 암중 하나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암과의 싸움에서 절반의 승리를 했습니다. 그 승리 원천은 바로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입니다. 의사들은 "일반인 같았으면 벌써 이 세상 사람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왕표가 병원에서 병마와 싸울 때 네 번 면회를 갔습니다. 중환자실 면회에선 이왕표가 여기서 살아 돌아온다면 기적이다고 까지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은퇴직전 밥샵과 악수하는 이왕표

 그렇지만 링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필자는 이왕표와 아주 가깝습니다. 글 호칭에선 ‘이왕표’라지만, 사석에선 ‘왕표 형님’이라 부릅니다.

 그런 이왕표가 은퇴식을 하니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저는 이왕표가 은퇴식 했던 25일 장충체육관에 갔습니다. 공식 행사 전 선수대기실에서 이왕표를 만났습니다. 밥샵도 함께 했습니다. 검정 양복에 머리를 동여맨 이왕표. 그의 눈가엔 이슬이 맺혀있었습니다.

 40년 간 그 지겹기도 하면서 정든 링을 떠나면서 눈물 안 흘릴 사람 있을까요. 저는 이왕표 은퇴식을 장충체육관 3층에서 지켜봤습니다. 텅빈 관중석 3층에서 그가 흘리는 눈물을 보니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임진출 전 의원으로부터 소개받는 필자. 그 옆이 이왕표

 이왕표가 제 아무리 사내라지만 그 역시 인간입니다. 그가 흘린 눈물은 은퇴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일 겁니다. 저도 이왕표와 함께 했던 많은 추억이 새록 새록 떠올랐습니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추억은 역시 그의 스승이자 박치기왕 김일 선생입니다.

 2000년 김일 선생이 한국에서 은퇴식을 가졌을 때 이왕표를 후계자로 지목했듯이, 이왕표도 그날 은퇴식에서 누군가를 후계자를 지목해서 한국 레슬링의 명맥이 유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했습니다.

커튼뒤에서 물끄러미 링과 관중석을 쳐다보는 이왕표

 이왕표의 후계를 잇는 것은 역도산->김일->이왕표->? 그 대를 잇는 것입니다. 이제 이왕표가 다시 한번 레슬링 발전을 위해 제 2 인생을 살아간다고 하니 지켜보고 싶습니다.

박치기왕 김일 책 출판기념회장에서 왼쪽은 전 일간스포츠 이호형 사진부장

 

왕표 형님 욕봤심다. 이제 즐기십시오. 인생 뭐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