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2년]끝나지 않은 체제 전쟁 '탄핵무효'
[탄핵2년]끝나지 않은 체제 전쟁 '탄핵무효'
  • JBC까
  • 승인 2019.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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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 파괴, 민중민주주의 전환 중

끝나지 않은 체제 전쟁, 침묵자도 공범이다

 

전직 KBS 간부 출신 한 분이 어제(8일) 저녁 전화를 걸어왔다.

“정 대표, 아니 글쎄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선고하기 전 8대0으로 이미 결정을 했다네. 선고하기 전 하야를 먼저 권유했다고 하는데…”그는 흥분한 채 이야기를 쏟아냈다.

사실 나에게 이 같은 '탄핵 거래' 뉴스는 새삼스럽지 않다. 탄핵 2주년이 되니 이에 맞춰서 으레 나오는 주목받고 싶은 보도중 하나다.  당시  “헌재가 8대0 선고를 할 것이다”고 줄기차게 외쳐왔던 나의 관점에서는 그렇다는 것이다.   

내가 특정 세력으로부터 사전에 탄핵 선고에 관한 정보를 은밀하게 제공받아서가 아니다.당시 권력층 집단 사이에선 이런 거래가 시도되고 있다는 소문이 암암리 나돌았다.

이미 탄핵 전 촛불광풍 사회가 되었고, 좌파의 혁명이 성공했다. 이런 마당에 재판관들은  탄핵보다는 '하야'가 더 적절 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하야보다는 '뻔한 판결'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했던 탄핵의 고통을 선택했다. 박 대통령이 탄핵의 고통을 선택한 것은 탄핵을 통해 대한민국의 근본악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란 해석도 나온다.

 

 

내일(10일)이면 박근혜 대통령이 헌재로부터 탄핵을 당한지 2주년이다. 우파 들은 3월10일을 ‘대한민국 법치 사망일’이라고 말한다. 또 진실과 정의가 사라졌고, 해가 지고 어둠의 달이 지배한 세상이 되었다고 토로한다.

나는 지난 2년 간 탄핵과정과 그 결과를 지켜 보면서 우리 사회의 본질악을 보게 되었다. 나는 탄핵찬성자들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각인시켜왔다. 이들은 인간에게 있어서 ‘근본악’을 가진 자들로 규정했다.

문제는 이 근본악을 지닌 인간들을 뻔히 알고 있지만 이 인간들을 처벌할 수 없는 난제성이다.

자기 이익, 탐욕, 시기성, 권력욕, 원안, 비겁함 또는 그밖에 있을 수 있는 악한 동기들에 뒤범벅 된 인간들이다.

태극기를 들고 분노에 대한 행동을 해도 지금은 복수를 할 수 없으며 진실을 외치는 그 자체가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어떤 법도 이들을 처벌 할 수 없다. 지금 우리는 근복악을 온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이 탄핵의 근본악은 '체제전복'이다. 박 대통령은 체제전복의 희생자요, 체제 전복은 자유민주주의 근간인 법치를 사망시킨 거다. 이것은 '민중민주주의' 시도다. 자유주의 법은 민중민주주의자들에게는 제거 대상이다. 촛불 좌파들의 체제전복은 탄핵을 통한 민중민주주의 변혁이다.

우리가 이해 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근본악이 바로 이를 알면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에서 기인한다.

돌이켜 보면 이것은 이 사회를 사회주의로 바꾸려는 자들의 시도다. 탄핵은 체제변화에 대한 시작이다.

이를 외면하는 것은 모든 악한 충동에 대한 방종이다. 이를 바로 잡지 않고선 더 많은 고통과 불행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경고도 주고 있다.

누가 감히 가능한 모든 것을 만들고, 또 불가능한 모든 것을 만들었는가. 어떻게 이 대한민국에서 용서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는가.

우리가 원치 않는데도 불구하고 탄핵의 근본악이 실행 될 수 있었을까. 이런 질문은 다음의 질문으로 압축된다.

 

 

“우리가 이 탄핵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고 우리가 진정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일까.”

탄핵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이를 부정하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탄핵이 시작되었기에 그 끝도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 끝자락을 향한 진실과 정의의 여정은 가시밭길이다.

이 고통의 길을 극복한 후 과연 탄핵의 부당성을 밝혀내고 마침내 탄핵 울타리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국가와 사회의 가장 평범한 보편성은 진실과 정의다. 진실과 정의가 사라지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진실과 정의가 인간에 의해서 규정되어 지고 좌지우지 당한다. 우리는 흔히 그 인간의 보편적 양심을 보면서 진실과 정의를 운운하기도 한다.

나는 처음 탄핵 사건 진실에 대해 인지를 한 후 헌재 재판관들을 봤다. 이들이 양심에 기초해서 진실과 정의의 판결을 내릴 것이다고 기대하는 그 순진함이 오히려 악하게 보였다. 이미 진실은 죽어 있었다.

2016년 가을부터 촛불을 든 수많은 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맹목적인 증오심을 보였다. 이것은 선동에 따른 마녀사냥이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선동 여론은 탄핵은 ‘선’이요, 기각은 ‘악’으로 확연히 구분지어졌다. 이 선동의 칼날에 서 있는 재판관들에게 영심과 진실과 정의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박 대통령은 ‘악의 화신’으로 단정되어 버렸다. 군중들은 그 분노를 쏟아냈다. 군중은 박 대통령을 천인공노 할 최악으로 봤다. 촛불 광풍에 의한 이런 분노가 진실로 교묘히 포장되고, 또 재판관들은 포장된 포장지를 정교하게 재포장 했다.

 

 

나는 탄핵 과정을 지커보면서 법치의 사망보다 법조인의 사망을 더 뼈저리게 지켜보았다. 탄핵 2년이 흘렀지만 이 땅의 법조인들은 “헌재의 판결이 잘못되었다”고 반박을 못하고 있다.

이들은 언젠가 또 다른 역사가 도래하면 그때서야 비로소 법치 파괴에 대한 양심고백을 할 수 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탄핵을 심판했던 재판관들만 법치를 사망시킨 게 아니다. 실은 침묵한 이 땅의 법조인 모두는 탄핵 공모자이다.

나는 “잘못됐다”고 용기 있게 말하는 재판관을 보고 싶었지만 끝내 볼 수 없었다.

많은 법조인들이 “대통령의 탄핵이 잘못됐다”고 술자리에서 이야기를 하지만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했다. 이는 체제에 대한 반역이요, 반동적 시각 때문이다.

촛불광풍에 맞설 만한 배짱과 그 용기는 이미 사라졌다. 편안함과 안락함 그 속에서 출세 지향주의와 인간의 탐욕이 대신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 사회 지식인층들은 틈만 나면 진실과 정의를 외친다. 하지만 그 진실과 정의를 교활하게 이용한 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박 대통령 탄핵은 대한민국 사회의 모든 근본악을 드러내게 해준 역설이다. 지식인들은 태극기를 든 사람들이 외치는 탄핵무효를 극우적 사람들, 또 법치를 부정하는 사람들이라고 매도한다.

이들이 외치는 탄핵무효가 법치를 살리는 구호이요, 자유대한민국을 다시 세우자는 구호이다. 그런데 이들은 무조건 매도한다.

어쩜 탄핵무효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동굴에서 빠져 나와 이데아를 보았다. 그러나 동굴에 갇힌 자들은 이데아를 알면서도 외면한다. 탄핵에 가담했던 언론과 지식인들, 정치인, 법조인들 그들의 머릿속에는 선과 악에 대한 이분법이 그럴 듯 하게 정리되어 있다.

박 대통령 탄핵은 법치를 떠나 이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전형들이 모두 복잡하게 얽혀 있다. 웬만한 지식인들의 상상력 속에는 촛불쿠데타를 통한 좌파들의 민중민주 선동, 그래서 마침내 이것은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민중민주주의로 가고자 하는 체제전쟁인 것을 잘 알고 있다.

 

 

진실과 정의란 그 양다리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면 언제나 드러내지 않고 숨어버린다.

지금 문재인 좌파 독재정권하에서 진실을 캐고자 한다면 그 진실은 서로에게 분노의 자국으로만 새겨질 뿐이다. 진실과 정의가 오히려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경각성이다.

진실을 외치는 것은 근거 없는 상상력이 아니다. 이것은 탄핵이후 벌어지는 민중민주주의 광풍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탄핵을 둘러싼 각종 지저분한 행위들이 뒤섞여 있는 근본악의 종합세트다.

이 선물세트에는 다양한 은폐들이 숨겨져 있다. 어느 법조인이 박 대통령의 탄핵을 법이란 이름으로 정당화 헤서 과학적으로 설명을 할 수 있을까. 검증도 없이 불확실한 것에 과학이라는 말이 쓰이던 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긍정적으로 대답하였을 것이다.

오늘날 주위 사람들이 이렇게 묻는다면 법조인이 망설이지 않고 오직 법해석만으로 탄핵의 정당성을 부정화 시킬 수 있을까. 탄핵은 선동과 예측과 추측으로만 된 가설에 의한 판결이었다. 진부한 이야기 이지만 그것은 증거주의를 중시하는 재판의 한 모습이 아니다.

이런 주장을 백 만 번 외친들, 받아들이겠는가. 이들은 못 받아들인다. 이들도 ‘탄핵공모세력’이기 때문이다.

자유가 무너지고 민중민주주의가 도래할 것이다는 사실을 애써 망각해버린 결과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과정을 지켜보면서 탄핵을 제기했던 자들과 이를 심사하는 재판과, 언론이 “촛불광풍” 조합을 엮어서 너무나 성급하게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다는 증거가 넘친다는 탄핵 내용도 이들의 주장이고, 그렇지 않다는 것도 이들의 역주장일 때 집행자들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이 탄핵을 통해 전형적인 진실과 정의의 외면, 위증과 은폐의 힘만 볼 뿐, 거기서 나아가 왜 그들이 그렇게 위증을 했는가를 과연 보았는지에 대한 의문점도 날렸다.

조합된 진실조작은 합리적이고 지식인척 인간들의 묵시적 거래다. 지난 2년간 이것을 지켜본 나는 내내 역겹고 끔찍했다. 박 대통령의 탄핵은 환상적인 본질이나 존재론적인 속성처럼 보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탄핵을 주장하는 자들의 변명이 진실인 것처럼 보이려는 상대적인 욕망이 결국 더 진실적이지 못하다는 것으로 치닫고 말았다.

우파들이 진실과 정의를 더욱 부르짖을수록 진실과 정의가 은폐되고 사라졌다. 집행자와 실행자들은 “탄핵무효”를 외치는 자들의 진실 구호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 야비한 상호간에는 탄핵무효에 대해 반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진실이 드러나서 두려워질 것이기 보다 그 거짓의 카르텔이 무너질 경우 모든 게 탄로날 것이란 우려다.

 

 

돌맹이를 물에 던졌을 때 풍덩 하고 빠졌는데, 나는 그 소리 말고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 돌맹이를 물에서 건져 올린 후 그 돌맹이를 준 사람이 그녀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법정 판단은 비대칭적인 두 개의 세력이 영향을 미친다. 하나는 법정 권력 기관이며, 다른 하나는 군중이다. 평상시에는 전자가 후자보다 힘이 세지만 군중의 분노가 야기될 경우 그 반대가 된다. 겉으로 보기에 아주 단단한 권력 기관이 군중으로부터 분노가 나올 경우 하나의 용광로로 되는 것이다.

군중은 공동체 전체를 다시 모을 필요가 없을 만큼 아주 막강하다. 이 두 사이에 오가는 일들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감정을 자극하기도 한다. 참으로 현기증나는 일들이다.

탄핵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건국을 외면하고 건국이념과 헌법정신에 반하는 정책과 이념으로 국민을 고통에 빠뜨리고 국가를 자멸로 내몰았다.  오만하고 타락한 좌파독재정권은 탄핵을 더욱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고 지식인들의 입을 막고 있다.  대한민국이 망국적 수렁에 빠지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뒤엎기 위해 좌파세력이 기획하고 조작하고 선동한 거짓탄핵과 권력찬탈을 결코 묵인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래서 탄핵무효는 자유물결 운동이어야 한다.  

이것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좌파독재정권의 거짓과 불의에 항거하는 운동이다. 

탄핵을 찬성한 공범자들은 자신들이 쌓아왔던 진실과 정의 삶이 가짜였음이 드러날 것이다.  우파들은 그들 앞에 새겨진 그 탄핵의 더러운 닉네임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이들은 절대 잊어선 안된다. 반드시 기억해서 역사의 재판에 이름을 올려야 한다.

탄핵무효는 이벤트가 되어선 안된다. 언론이 탄핵일을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씩 터뜨리는 뉴스의 메뉴가 되어선 더더욱 안된다. 탄핵은 뉴스의 일상이다.

이제 곧 탄핵의 역사적 2라운드 전쟁이 시작된다. 탄핵에 대해 침묵하는 자도 공범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