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청년 칼럼 '동굴 밖의 아베'
2030청년 칼럼 '동굴 밖의 아베'
  • JBC까
  • 승인 2019.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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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이병태 교수가 추천한 글
인구 일억 삼천 일본 `완전취업`
일본 아베 수상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어 하는 얘기다. 싱가폴이나 홍콩 같은 조막만한 도시국가도 아니고, 인구 일억 삼천만에 육박하는 대국. 그런 나라가 `완전취업` 상태라는걸 누구라도 이해되는 이는 설명을 좀 부탁 드린다. 대체 일본인들은 그간 어떤 선택들을 경로 삼아 현재에 당도한건가. 당대 일본 지도자들은 무슨 수를 써서 나라 경영을 하는가. 우리와는 뭐가 어떻게 달랐던가.

요컨대 대졸자 취업률 98퍼센트라는 수치는, 유효한 의미에서 자연실업률에도 미치지 않는 데이터값이다. 취업자 1명 당 일자리 1.63개. 일본 기업들은 지금 미친듯이 신사업을 찾고, 사업체를 신설하고 있으며, 국민 몫이 될 일자리를 잔뜩 퍼부어주고 있다. 최근 내 오랜 일본인 벗 한명이 했던 다음과 같은 말은 가슴 시리고 서글프다. `일본에서 정리해고라는 말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글로벌 동조화(coupling)라고, 세계 정세가 이런 것을 한국이라고 딱히 무슨 수가 있겠느냐, 뭐 그런 편리한 면피도 못할만큼 우리는 독자적으로 후진 기어 상태다. 그만치 세계는 자기 운명의 밝은 자리에 청사진을 그려넣고 있으며 일본이나 미국은 이런 글로벌 경제성장의 최일선에 서 있다.

아베노믹스는 완벽히 성공 중이다. 바로 옆나라가 강제적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인상 등 정책 `실패` 패키지로 자발적인 국운의 침하를 겪는데, 아베는 명료한 시장친화, 친미노선, 정확한 시점에서의 경기부양과 적극적 통화정책 등으로 손 대는 족족 게임에서 이기고 있다. 아베 내각의 정책지향은 지극히 시장경제적이면서도 그것을 설득력있게 국민들에게 잘 제시해왔다. 2012년에 첫 집권한 정부가 거진 7년을 집권하고 있는데, 그 끝을 아무도 예상 못한다. 어떤 나라, 모 정치인의 소위 `20년 집권론` 같은 파랑새 놀이 없이도 국민들이 알아서 밀어주고 인정해주는 셈.

나는 전에 아베라는 사람의 연설문을 어디선가 읽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듣기 좋고 예쁘장한 수사로 버무린 현대 정치가들 언변과 다른, 뭐랄까 확고한 일본적 리더상에 기반한 인물 같달까. 그는 자기 시대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며 그것에 관해 기꺼이 책임을 다하겠다는 투다. 달변은 아니지만 그걸 대중적 언어로 잘 담아 설득력있게 풀어낸다. 현 일본인들은 그런 리더의 이상(理想)에 자신들 운명까지 기꺼이 베팅하고 있는게 아닐까. 예컨대 아래와 같은 플라톤식 이데아론을 대중연설에 동원하는 한국 정치인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

"플라톤의 우화에 따르면 동굴 속을 사는 자는 결코 굴 밖의 실제를 상상도 못하고 오직 그림자만을 감각할 뿐입니다. 자신이 갇힌 줄도 모르고 실재를 인식할 노력도 못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그와 같았습니다. 이제 저와 함께 담대하게 굴 밖으로 뛰어나갑시다. 우리 정부가 일본국의 담대한 도약의 선봉이 되겠습니다." - 아베의 2기 내각 발표 연설

일본인들은 본질적으로 신념가를 추종한다. 인기 따위에 비굴하게 영합하려는 포퓰리스트들을 대략 소녀 취향으로 보고 깔본다. 이런 류의 신념지향 인간들은 뭔가 얻기 위해 기꺼이 뭘 희생시킬 것이 아는 부류다. 일테면 공짜가 없는 세계. 마키아벨리나 비스마르크 같은 부류에 근대 일본인들이 깊히 매료되었던게 다 까닭이 있는 셈.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일본 아베 수상이 골프를 치면서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일본 아베 수상이 골프를 치면서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잘 알려졌듯 아베는 미국 대선국면에서 힐러리 클린턴에 배팅했다 큰 낭패를 입었더랬다. 그는 트럼프 당선 직후 국제 사회 리더 중 맨 먼저 워싱턴으로 직행했다. 골프장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와 트럼프의 회동 광경을 잊지 못한다. 아베는 트럼프 곁에 달라붙어 되도 않는 영어농담을 연발하더니 뜽금없이 `어이쿠!`하며 잔디밭을 뒹둘었다. 그야말로 경악스런 슬랩스틱. 이 뻔뻔하고 낯뜨거운 연출에 트럼프도 살다살다 이런 건 처음이라는지 결국 피식 웃고 말았다. `아양`이란건 이렇게 떠는 것임을 전세계에 보여주는 듯한 광경.

생각해보면, 우리 한국인들은 매번 국가란 윤리적이고, 규범적 선택의 결과여야 한다는 성리학적 당위 비슷한걸 내면에 담은 듯 하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인식하는 세계의 상(像)이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다. 화산의 폭발, 주기적인 지진, 쓰나미. 그들은 자연의 공포에 짓눌린, 이를테면 영원한 `불안`의 세례를 받은 민족이다. 심지어 좀 살만해졌다 싶으니 방사능까지 뒤집어썼다.

그들에게 멸절의 공포와 불안은 사라지지 않고 영혼에 음각(陰刻되어 있다. 일본인들은 본성적으로 선악 대신, 폭력과 평안의 틈바구니로 세상을 이해한다. 종종 잔혹한 면모를 돌출하는 그들의 집단주의적 패턴도 난 그렇게 이해한다. 이들은 살갗으로 마주해서 아는거다. 삶이란 자연원칙에 기반하는 것이지 선악의 윤리적 규율과 무관하다는 것을. 그리고 살기 위해서는 때로 강자로 가득한 플레이어들 틈바구니에서 기꺼이 풍자와 조롱의 대상도 될 수 있음을. 혹 아베는 그런 일본적 사유의 정형화된 원칙을 정치 이론으로 삼고 있는게 아닐까.

가히 미국의 밑바닥이라도 햝겠다는 아베식 저자세. 자기네 일본 공동체를 보호하는 기민한 방법으로서 그는 실제 일본을 재건했고 먹여살렸다. 한국의 철부지 네티즌들은 이런 모습에 깔깔 거렸겠으나, 나는 이 골프장씬에 등골이 다 서늘했다.자기 나라의 안위와 존립에 뭐든 배팅할 수 있는, 그 서늘하고 실용적이며 예리한 영혼에 차라리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지금 일본은 실업률이고 뭐고 나쁜 지수는 거진1%에 육박하는, 완전고용에 닿았다. 같은 시간 한국의 리더는 각료들에게 실업률이 왜 이모양이냐며 으름장만 연출한다. 좋은 통계를 발굴하는게 관가의 핵심 과업이라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혹 우리는 믿고 싶은 대로 믿으려는 이데올로기적 동굴의 어둠안으로 기어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굴 밖으로 뛰어나가자는 아베식의 용맹한 비전을 설득할 수 있는 정치가는 우리에게 없는가. 과연 없는가.

글쓴이=경제지식네트워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