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BC의 재팬터치⓶]한국의 약속과 일본의 약속
[JBC의 재팬터치⓶]한국의 약속과 일본의 약속
  • JBC까
  • 승인 2019.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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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약속을 너무 쉽게 하고, 그리고 잊는 경향
일본인들  ‘신뢰’와 ‘약속’을 목숨처럼 여긴다
출처=네이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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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6일 "한국이 일·한 청구권협정을 위반하는 행위를 일방적으로 하면서 국제 조약을 깨고 있다"며 "한국 측에 적절한 대응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말했다. 

아베는 이날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열린 원폭 투하 74주년 위령식에 참석한 뒤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의) 가장 큰 문제는 국가 간 약속을 지킬지에 관한 신뢰 문제"라며 이같이 말했다.

나는 누차 강조했지만 이번 한일간 갈등과 대립은 결국 한국의 약속 파기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해왔다. 2015년 국가간 맺은 위안부 합의 파기라든지,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 위반하는 행위 등은 한국인들 입장에선 불평등 한 합의 파기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일본 입장에선 이에 반하는 행위다. 

일본인들  ‘신뢰’와 ‘약속’을 목숨처럼 여긴다. 이를 깨는 사람들은 조직이든, 개인이든 상종 않는다. 그리고 반드시 그 대가와 책임을 지게 한다. 일본은 사무라이 문화다. 그 사무라이 문화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약속과 신뢰다.

그것이 깨어지면 사무라이간 전쟁이었다. 이를 깨뜨린 자는 때론 자결로서 잘못을 뉘우치고, 약속을 어긴 사람 집 앞에는 깃발을 걸게 해서 사람들이 상종 못하게 했다. 

지난 2011년 11월 일본 오사카에서 한일 기업간 모임이 개최됐다. 나는 그 모임을 주선해주었다.

그 때 한국의 기업 관계자가 일본 기업 관계자들에게 “일본이 자사 제품을 팔아주면 이런 저런 것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일본은 재차 물었고, 한국측은 “약속을 지키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것이 화근이었다. 한국측은 당시 상황에 대해 별 대수롭지 않게 말했는데, 일본측은 이 말을 철떡 같이 믿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비즈니스를 할 때 항상 노트를 들고 나와서 언제 어디서 누구와 만나서 어떤 대화를 했는가를 꼼꼼히 메모한다. 한국 측도 메모를 하지만 대충이다.

일본 측은 한국기업에 “몇 년도 몇 월 몇 일 몇 시에 이런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면 한국기업인들은 상당히 난감해 한다. 그럴 때마다 일본기업인은 나에게 “정상 한국의 대기업이 약속을 그렇게 지키지 않으면 앞으로 뭘 믿어야 하는가” 토로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나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난감하다. 한국인들은 약속을 너무 쉽게 하고, 그리고 잊는 경향이 강하다. 일본에서는 한 번 ‘말’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꺼풀 까고 들어가면 바로 그 때문에 책임지지 못할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 어느 누구도 리스크를 지려 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한번 약속을 하겠다고 밝혔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지켜야 한다.

약속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국가와 기업 간 약속은 물론, 사인 간 약속도 있다. 이런 약속 개념은 일본인 깊숙이 뿌리 박혀 있다. 일본인은 약속개념이 강하다. 약속은 나 혼자 만이 아닌 다른 사람과 정한 시간이다. 

내가 조금이라도 늦으면 상대방은 시간적 피해를 본다. 좀 친하다고 “이 정도 늦으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일본이 얼마나 약속에 민감 하느냐. 사실 한국인은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개념이 덜하다. 경우에 따라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게 약속으로 본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 해야 하는가. 나는 한국인의 문화와 습관적 형태로 진단한다. 많은 일본인들에게 아직도 한국인은 약속을 잘지키지 않는다는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

친구간 약속을 했을 때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어 저녁 7신데, 아무도 안왔네. 왜 아직 많이 안왔지.”
누구나 경험했던 이 상황은 틀린 말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한국인은 시간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그래서 한국인은 어떤 모임을 가든, 약속을 지키지 않고 모임에 늦게 간 사람이 대접 받는 풍조다.

보통 연장자나 지위가 높은 사람은 늦게 오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더 이상한 것은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고, 제일 마지막에 오는 사람을 일제히 더 반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내가 다른 약속이 잡혀 있어서 일찍 가봐야 한다고 먼저 자리를 뜬다. 

한국인은 이런 것에 대해 너그럽게 봐준다. 내가 아는 한 유명 변호사는 늘 이런식이다. 약속을 하면 정시에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나타나서 하는 소리가 다른데서도 약속이 있다면서 양해를 구한 후 소주 두 세잔 받고 횡하니 가버린다. 나는 그가 법정에는 정시에 맞춰 출석해서 변호를 하는지도 의심스럽다.

나는 이런 것을 참지 못한다. 그러나 많은 주변인들은 “급한 약속있겠지 그냥 이해하라”고 말한다. 마치 이해를 해주지 못하면 속 좁은 사람이 되는 이런 풍토. 이것은 한국인이 ‘정이 많은 민족’이라, 봐주기 문화로도 해석하는데, 나는 이런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 왜 약속을 하는가.

내가 상대보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데, 상사인데 그런 것을 이해 해주지 못하나 약속에 대해 계급적 시각에 대한 우월성이다.
사실 이런 것은 어렸을 때부터 훈련이 안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식교육이나 도덕교육은 한국인들에게 자주 강조되고 교육되어지지만 시간관념 교육은 덜하다.

그러나 이상하리만큼 일본인은 약속에 대해 철저하다. 일본은 시간관념에 대한 문화적 차이가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일본인들은 무심코 툭 던지는 말에 대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바로 그 때문에 책임지지 못할 말은 절대로 하며 안된다. 그 어느 누구도 섣불리 말을 했다고 문제가 발생하면 안된다는 사실을 잘 안다.
한국인은 지나가는 친구를 만났을 때 습관적으로 하는 말이 “다음에 소주한잔 하자”고 한다. 이것은 그냥 “바이” 하고 헤어지기가 서먹해서 한국인 특유의 정의 정서가  곁들여진 당연한 인사치례 정도다.

그러나 일본인들에게 그 말을 했을 경우 그들은 당장 이렇게 생각한다.
“다음이 언제지? 언제쯤 소주를 한잔하자는 것이지?” 그 다음을 기다린다. 다음은 정해지지 않은 막연한 시간 개념이지만 일본인은 무작정 그 다음을 기다린다.
그러다가 한 번 더 그를 만났을 때는 속으로 그 사람은 “신뢰해선 안 되는 사람”이라 여긴다. 그럴 때는 반드시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아, 우리가 소주를 한잔 하자고 했었는데, 그동안 내가 바빠서 연락을 못했다. 혹시 모일 모시 시간이 되는가?”

그러나 이런 것도 건너 뛴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그 일본인과 만나지 말아야 한다.
사적인 관계에서 반드시 지켜야 되는 약속,  일본 직장에선 더하다. 비즈니스를 하다가, “언제까지 자료를 줄 수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반드시 “이번주까지 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그건 하늘이 무너져도 약속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일본은 어떤 형태로든 “하겠다” 라는 답변이 나왔다면 “해 보겠다” 라거나 “할 수 있을 것 같다” 라는 답변도 무조건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지난 2005년 고이즈미 총리 시절 한일관계는 독도와 역사 문제로 갈등의 골이 깊었다. 나는 이런 갈등이 있기전 당시 일본 엔카 가수 K양에게 한국에서 공연을 한번 하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한일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자 망설였다. 

문제는 내가 “공연을 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한국의 무대에서 공연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고 하였다면, 이럴 경우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잘 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양해를 구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공연을 한번 하겠다”고 말한 것은 약속개념이다. 나는 한국 무대에 엔카 가수를 세웠다. 그 약속을 지킨 것이다.  

일본인은 약속을 금고옥조처럼 지키지만, 이것이 조직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국가로 연결되어 간다면 일본인의 약속은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지키지 않는 것 쯤으로 여긴다. 
일본인은 작은 약속에는 신뢰 운운하고 민감하지만, 넓게 본다면 자신들의 이익과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면 그 약속을 종이처럼 버리는 게 일본인이다. 

작은 약속에 인간의 신뢰성을 가늠해보고, 큰 약속엔 이익을 따진 후 이행하는 습성, 그래서 일본인과 약속했을 때 “저 친구가 이익을 염두에 둔 약속을 한다”는 것을 눈치 차려야만 덜 상처를 입는다.

그렇지 않고 일본인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민족이라는 당위성을 놓고 무작정 약속을 한다면 그것은 두고 두고 약속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고 상처를 입는다. 특히 정치인 약속은 더하다. 그것은 한국과 일본 정치인들 간 약속은 지키기 않아도 되는 것으로 굳어져 있다. 

지금의 한일 파탄은 이런 정치인들에서 비롯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