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BC의 재팬터치⑥]동방예의지국 일본
[JBC의 재팬터치⑥]동방예의지국 일본
  • JBC까
  • 승인 201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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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어른에 대한 공경은 이미 무너져
일본인 예의와 친절함이 몸에 배어 있어

일본을 갔다 온 사람들의 이구동성은 “너무 친절하고, 예의가 바르다. 거리가 깨끗하다.” 나 역시 처음 일본을 갔다 온 후 느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친절함과 예의바름은 그래도 동방예의지국 한국의 모습인데, 지금은 과연 그럴까 의구심이 든다. 흔히들 한국에선 예의가 물구나무 섰다고 말한다. 한국의 친절함과 예의 범절이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일본이 진짜 예의범절의 국가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내가 본 일본은 솔직히 한국인보다 더 예의가 바르다.

때론 일본을 두고 '동방예의지국'이라 하지 않는가 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일본의 예의문화가 나를 감명시켰다.

일본에서 시위 취재를 하면서 느낀 점은 아무도 한국인을 적대시 하지 않았다. 그들은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시위를 왜 하는지에 대해 이해하려고 했었다.

처음 일본에 가기 전만 하더라도 일본이 한국에 대한 적대시 때문에 시위 등을 하면 곧바로 잡혀 가거나, 일본 우익들에게 폭행을 당히지 않을까 우려가 있었다.

이것은 나의 기우였다. 전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온 후 일본에서 본 여러 가지가 뇌에서 가시지 않았다.

전혀 색다른 경험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런 일본이 너무 궁금했다. 도쿄가 아닌 시골의 사람들도 그럴까. 나는 간 크게도 혼자서 일본 여행을 떠나기로 작정했다.

일본인이 차를 따르고 있다.

주변에선 “일본어도 모르는 데 혼자서 어떻게 일본을 가려고 하는가”라며 만류했다. 그러나 일본도 사람 사는 곳이다. 세계 공용 언어가 몸통이다. 모르면 손짓 발짓 하면 되는 ‘몸통 언어’로 하면 된다고 믿었다.

나는 그래도 혹시 몰라서 서점에서 기초일본어 회화책을 갖고 갔다.

2001년 7월 초 무작정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오사카를 거쳐 도쿄까지 가는 여정이었다. 나는 일본의 친절함이 그 어떤 과식에서 나오는 것이란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여정 기간에도 일본인 특유의 친절함은 변함이 없었다. 내가 일본어를 모르니 그들도 답답했을 것이다. 단순 영어를 사용해도 그들은 알아 듣지를 못했다. 몸통 언어의 한계를 여실히 느꼈다.

그런데도 그들은 길을 물으면 정말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손짓과 발짓을 보면서 친절함의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일본인들은 매너와 예절이 좋았다. 일본 여행을 갔다 온 사람들은 알지만 일본인들의 예의범절은 어릴때부터 몸에 배인 것 같다. 아주 절제된 일본인들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싫어했다. 나는 도쿄와 오사카, 후쿠오카에서 무례하거나 불편한 일본인을 본 적 이 없었다.

나는 마치 어릴 때 반공교육에 길들여져 공산당은 늑대 얼굴, 자유민주 국민은 양의 얼굴로 여겼었다. 일본하면 ‘원숭이’, ‘쪽바리’, ‘사무라이’, ‘야쿠자’, ‘변태’, ‘사이코패스’, ‘이지매’, 일명 일본 카카무라 순사의 악랄한 등이 연상되었다.

나의 이런 인식은 일제 36간의 일제 식민 지배가 낳은 부정적 생각들이었다. 나는 솔직히 그동안 한국인들의 피해의식으로 인해 일본에 속고 살았다는 생각도 했다.

“왜 진작 일본에 안왔지”, “왜 내가 일본을 비하했고” “왜 내가 일본 천황궁 앞 반일 시위를 주도했는지”, “왜 내가 후지산에 저주스런 글을 파묻었을까.”

너무나 바보같은 나를 발견했다. 그러나 겉으로 본 일본과 속으로 들어가서 본 일본은 다를 수도 있었다. 나의 단편적인 일본의 모습이 전체를 규정지을 수 없었다. 나는 그때부터 일본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일본 여행을 떠났다. 일본의 역사에도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일본과 친하게 지내는 ‘친일(親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교의 범위와 반경이 어디까지 인지는 몰라도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한국과 일본이 국가이익을 위해 화해와 협력을 도모하는 국가가 되길 바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