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BC의 재팬터치⑨]일본 천황, 백제 왕실 후손
[JBC의 재팬터치⑨]일본 천황, 백제 왕실 후손
  • JBC까
  • 승인 20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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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부친에 이어 일본 천황에 즉위한 나루히토(왼쪽)와  부친 아키히토가 손을 흔들고 있다. 출처=네이버 이미지
지난 5월 부친에 이어 일본 천황에 즉위한 나루히토(왼쪽)와  부친 아키히토가 손을 흔들고 있다. 출처=네이버 이미지

일본 극우들이 “조센진을 죽이라”는 말은 결국 자신들의 천황을 향해 죽어라는 것과 같다. 일본 천황은 과거 백제에서 건너간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본 극우세력들이 재일한국인을 향해 퍼붓는 살해 협박과 증오는 자신의 천황에게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 야만적 시위를 왜 ‘천황궁’ 앞에서 하지 못하는가. 만약 앞으로도 이들이 시위를 계속 한다면 시위의 타깃은 천황이어야 한다고 본다. 이외에도 일본인 중 한국인 피가 상당수 많다.

역으로 따지자면 나는 재특회가 하는 시위를 지지한다. 이들의 시위가 증오와 복수로 더욱 가득 할수록, 자신들의 천황을 더욱 욕되게 하는 것이라 본다.

반한·혐한 시위와 헤이트 스피치 문제는 국제적인 이슈로까지 부상했다. 유엔이 나서서 경고했다.

그런데도 일본 아베 정부는 이를 특졀히 막지 않는다. 과거 아베는 오히려 이들 단체 임원과 사진을 찍었으니 말이다.

천황을 신으로 받들어 모시는 일본, 그 천황은 그들이 말하는 조센진의 피가 흐르고 있다.

그런데도 “조센진을 죽여라”고 외치는 극우세력, 여기에 나몰라 하는 일본정부. 참 웃기는 일본이다.

천황의 뿌리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일본 교토를 가보면 그 유례를 확인할 수 있다.

교토에는 백제왕족의 터전이 있다. 백제 여성 야마토노 니가사(和新笠, 후일 高野新笠, 다카노노 니가사로 성씨 만을 바꿈, 생년 미상∼789) 왕후의 능묘를 볼 수 있다.

이곳의 위치는 일본인도 좀처럼 찾아가기 힘들다. 교토시 서쪽 외곽지대(京都市 西京區 大枝沓掛町)로서 ‘한큐 아라시야마선’ 전철의 가쓰라(桂)역에서 내려 시(市)버스 니시5계통(西5系統)으로 갈아타고 ‘가쓰라사카구치’ 버스정류소에서 하차해야 한다.

여기서 다시 도보로 약 15분 거리의 라쿠사이(洛西) 주택단지 인근의 야산인 이세코산(伊勢講山) 정상에 자리한다.

많은 한국인들이 일본 교토를 방문하지만 일본 ‘교토관광 안내’ 책자 등에는 ‘다카노노 니가사 오에릉’을 밝히고 있지 않다. 다카노노 니가사 왕후 능묘의 묘비 명칭은 ‘고닌천황 황후 다카노노 니가사 오에릉’(光仁天皇皇后 高野新笠大枝陵)이다.

그런 능묘에서 장장 1220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두고 일본 왕실에서 직접 제사를 모시고 있다.

다카노노 니가사는 일본 ‘헤이안 문화’의 창시자인 제50대 간무(桓武·781∼806 재위) 일왕을 낳은 백제 왕족이다.

서기 794년에 지금의 교토 땅을 고대 일본의 새로운 왕도 ‘헤이안경’(平安京)으로 개창한 인물이 간무일왕이다.

현재 일본의 천황은 나루히토(德仁)다. 그는 지난 5월  부친 아키히토(明仁)에 이어 126대 천황에 즉위했다. 1988년 즉위한 아키히토가 간무 천황의 생모인 백제 여성 다카노노 니가사를 천황의 뿌리라고 밝힌 적 있다.

2001년 12월 23일, 아키히토 일왕은 68회 생일을 맞아 황거(도쿄의 천황궁, 千代田區千代田1-1)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었다. 일왕은 일본 왕실의 뿌리가 고대 한반도와 연결돼 있음을 작심하고 발언했다.

요지는 이랬다.

“간무(桓武·737~806) 천황의 생모(生母)가 백제 무령왕(462~523)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記)에 쓰여 있는 데 대해 한국과의 연(緣)을 느끼고 있다. 궁내청(일본 왕실을 관장하는 관청) 악사(樂師) 중에는 당시 한국에서 이주해온 자손이 대대로 악사를 하고 지금도 가끔 (한반도에서 전래된) 아악(雅樂)을 연주하는 사람이 있다.”

당시 이를 보도한 아시히신문 내용이다. (2001. 12.23)

“나 자신으로서는 간무일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武寧王·501∼523 재위)의 자손이라는 것이 ‘속일본기’(續日本紀, 서기 797년 일본 왕실 편찬)에 기록돼 있기 때문에 한국과의 연고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날 황거에서 거행된 아키히토 천황의 기자회견 내용은 일본의 일간지 중에서 오로지 아사히신문에서만 천황이 자기 자신을 가리켜서 백제왕실과 한 핏줄로 이어왔다는 사실을 꾸밈없이 밝혔다는 내용을 생생하게 보도했다.

역사학계에선 다 인정된 사실이지만 천황 스스로 한국과의 혈연관계를 고백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천황의 언급을 아시히신문만 보도했을 뿐 일본의 유력지 요미우리신문이나 마이니치 신문과 다른 매체도 보도하지 않았다.

아키히토 천황이 밝힌 천황가와 백제왕실과의 진솔한 혈연 내용이 일본인들에게 큰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일본인들의 자존심과도 직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