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탄- '문재인도 모르는 사노맹', 체제전복 노린 조국의 사노맹
-제2탄- '문재인도 모르는 사노맹', 체제전복 노린 조국의 사노맹
  • JBC까
  • 승인 2019.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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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해 목숨 건 투쟁
민족민주혁명론 내세운자들, 사노맹 출범준비위원회 구성
박노해씨가 1991년 3월12일 서울 중부경찰서에 구속되면서 '노동해방'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박노해씨가 1991년 3월12일 서울 중부경찰서에 구속되면서 '노동해방' 구호를 외치고 있다.

JBC까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연속 기획은 최근 전 청와대 민정수석 조국 씨가 사노맹은 “경제민주화를 추구했다”고 밝히면서다. 독자들이 이 연속 기획물을 읽은 후 사노맹이 ‘경제민주화’를 추구했는지, ‘체제전복’을 추구했는지 판단해주기 바란다. 이 기획물은 사노맹으로 중앙위원장 백태웅 씨가 쓴 내용과 당시 좌파들이 작성했던 자료를 토대로 액면 그대로 싣는다. 16일자 ‘문재인도 모르는 사노맹’ 1탄 기사는 ‘안기부의 수사발표 중 국민들의 눈길을 끈 것 중 하나는 대표적 민중시인인 박노해씨가 중앙위원직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었다’로 끝났다. 2탄 이어진다.<편집자주>

1991년 10월30일 안기부의 사노맹 수사발표가 있던 시점은 윤석양 이병의 보안사 사찰 폭로와 김영삼 민자당 대표의 내각제합의각서 파문으로 6공 노태우 정부가 벼랑 끝에 내몰리던 위기상황이다.

이 때문에 국민들은 사노맹 사건이 또 한 차례의 상투적인 조작사건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떨치지 못했다.

그런데 사노맹의 한 관계자는 “사노맹이 제작배포한 유인물을 소지했다는 혐의로 조직원이라고 조작 발표하는 등의 몇 가지 허위발표가 있지만 안기부가 발표한 사노맹의 정치이념이나 활동방식 등은 거의 사실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사노맹 중앙위원 중 유일하게 구속된 남진현 씨(27)는 가족과의 면회를 통해 언론매체가 사노맹 사건을 “조작이나 인권 차원의 문제로 한정시켜 다룰 것이 아니라 우리 혁명적 사회주의자의 사상과 신념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남진현 씨는 11월 9일부터 집필실 개방 등을 요구하면서 7일째 단식농성중인데(11월 15일 현재) 그는 흰 양말에 붉은 실로 "사회주의 만세”라는 글자를 새긴 머리띠를 두르며 지낸다고 한다.

사노맹이 공개적으로 국민들에게 선전 선동 하고자 하는 사상은 무엇인가. 이들은 자신들의 사상에 대하여 혁명성이 거세되고 개량으로 포장된 사회주의가 아닌 혁명적 사회주의임을 표방한다.

사노맹의 한 관계자는 사회주의와 혁명적 사회주의 경계선을 “비합법 전위당의 건설, 무장봉기, 민중연합내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를 인정하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사노맹은 92년까지 비합법 노동자당을 건설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들은 남한사회의 현 단계를 '대중적 계급투쟁의 시대, '당파성의 시대' '정치적 진출의 시대'로 보았다.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위해 투쟁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함께 남한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는 △노동자계급 대중투쟁과 사회주의의 결합 △노동자계급 대중투쟁의 지도 △민족민주투쟁의 지도 △이론투쟁전선에서의 노동자계급 당파성의 수호 △노동자계급 전위당의 건설과 같은 5대 핵심임무를 담당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현 시기 투쟁과제로는 NL 진영의 "국회해산, 조기총선"을 "부르주아 정치주의의 부활”이라고 비판하고 “노태우 정권 타도와 임시민주정부 수립”이라는 투쟁전술을 제시하고 있다.

사노맹의 뿌리는 제헌의회(CA)그룹(86년 5월 결성)에서 갈라져 나온 노동자해방투쟁동맹(노해동, 87년 4월 결성)에서 찾을 수 있다.

노해동은 1988년 초 민주연립정부를 주장하는 다수파와 민중집권을 주장하는 소수파로 갈라서는데 사노맹은 ‘선봉’ 편집부 중심의 소수파와 맥을 같이 하고있다.

1991년 10월 사노맹 사건을 발표하고 있는 정형근 안기부 수사국장.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 전 국장은 과거 행적으로 인해 김대중 정권 때 탄합을 받았다.
1991년 10월 사노맹 사건을 발표하고 있는 정형근 안기부 수사국장.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 전 국장은 과거 행적으로 인해 김대중 정권 때 탄압 받았다.

안기부 발표에 의하면 89년 2월경 CA그룹 당시의 간부와 민족민주혁명론(NDR)을 내세우는 노동계·대학 가의 140여명이 ‘사노맹 출범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1년 가까이 준비해왔다고 한다.

사노맹 출범 이후 안기부는 집중수사를 벌여 40명의 관련자를 구속했다. 그런데 안기부의 전면적 탄압이 한창이던 10월 12일 사노맹은 ‘특별성명 1호’를 배포하고 “안기부가 40년 대공수사경력과 최첨단 과학장비와 막대한 재정과 인원 동원력이 있어도 우리 사노맹의 핵심조직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 성명은 “설사 안기부가 우리 조직원 몇 명을 구속시키고 어떤 단위나 부서를 파괴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를 신속하게 복구해낼 불패의 조직”이라며 사노맹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는 결코 과대포장이 아닌 듯하다. 안기부 스스로 "전 수사력을 투입, 전면수사에 착수 했다“고 공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노맹 조직의 중앙은 경미한 '찰과상'을 입은 정도이다.

안기부는 수사발표문에서 “사노맹의 단선 점조직체계와 철저한 신분은폐 등의 수사장애가 있었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사노맹의 한 관계자는 “사노맹이 안기부와의 싸움에서 승리했다"며 사노맹은 강철조직임을 자부했다. 그는 “사노맹의 핵심, 거처, 동선은 실제로 오리무중이다. 안기부의 이번 사노맹 수사발표는 오히려 사노맹의 출범을 국민들에게 대대적으로 선전해준 셈이다“고 역공을 펼쳤다.

사노맹은 검거를 피해 잠적하면서도 특유의 선도투쟁을 방기하지 않았다. 민주주의학생연맹 중앙위원장 이수한씨(23‧ 새벽바람 편집장) 등 대학생 8명이 10월 22일 안기부 청사 앞에서 “안기부 해체" 등을 내세우고 기습시위를 벌인 것이다.

수사기관은 물론 사노맹의 노선에 동조하지 않는 타정과 운동조직들도 사노맹의 조직 보위력에 대해서 만큼은 인정하고 있는 듯 하다.

사노맹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조직보위력 '비법'이 재정확보를 위한 보급투쟁에 있다고 설명한다. 사노맹은 운동권에서 최초로 재정사상을 정립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재정(운동자금)이 운동의 수공업성과 대규모성· 과학성을 가르는 결정적 기준이라고 단언한다.

안기부의 발표에 따르면 88년 12월 결성준비단계에서 사노맹 지도부는 조직원들에게 보급투쟁에 대해 "사노맹의 사활을 좌우하는 것이며, 자금 부족으로 조직을 잘못 운영하여 와해될 경우 중앙위원은 사형, 조직원은 무기 1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질 것”이라는 방침을 전달했다.

1차 보급투쟁 목표액을 2억7천만원으로 책정했다. 조직의 1인당 300~1천만원씩을 할당했다고 한다. 이것의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사노맹이 보급투쟁을 계급투쟁의 주요영역으로 상정하고, 재정을 조직·사상과 함께 변혁운동조직의 3대 구성요소로 꼽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노맹의 보급투쟁은 적지 않은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특히 박노해 시인의 치료비에 쓴다고 모금해서 결과적으로 사노맹 활동자금에 사용한 것에 대해선 상당수의 진보적 문인들로부터 질타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보급투쟁에 의해 모아진 수억에서 수십억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운동자금은 사노맹의 활동과 조직보위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들은 십여 군데에 비밀안가를 마련하여 핵심조직원들의 은신처, 활동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노맹의 비밀인쇄소에서 발간한다는 ‘새벽바람’ 등은 인쇄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조직국으로 사용되던 강남구 호이동의 안가에서만도 워드프로세서퍼스널 컴퓨터 4대가 발견돼 이들의 재정상태가 풍족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중앙위원인 남진현 씨의 검거경위를 잠시 살펴보면 이들이 조직 활동에서 운용하는 현대적인 장비의 일단 파악할 수 있다. 사노맹 연락국장 현정덕씨 (27)는 9월 18검거될 당시 전자다이어리를 소지하고 있었다. 이 전자첩엔 암호처리된 약속장소와 연락처 등이 입력돼 있었다

현씨는 수첩에 입력된 메모를 지우지 못한 채 연행 당했고, 안기부는 컴퓨터로, 전자수첩에 입력된 삐삐 (무선호출기) 암호를 해독하고는 삐삐신청자를 찾아냈다. 남진현씨는 현씨 검거 이후 비상통신수단인 삐삐를 교체했다.

그러나 1월 1일 세운상가에 컴퓨터 수리관계로 들른 남진현씨는 장복중이던 안기부 수사관들에게 연행당했다. 안기부원들은 주로 세운상가에서 삐삐가 판매된다는 데 착안, 잠복 근무를 했던 것이다.

사노맹은 "안기부가 프로면 우리도 프로다”라는 방식으로 조직활동을 벌인다고 한다. 이들은 조직보위를 위해 심지어는 수사기관을 대상으로 정보를 탐지하기도 한다. 사노맹 사건으로 구속된 장오영씨(21)는 하부조직원이 수사기관에 근무하는 친지를 통해 입수한 '범민족대회 전우사노맹 등 조직원 검거계획’이라는 정보를 보고받았다.

그리고 사노맹과 관련된 한 동국대생은 서울시경 대공과에 근부하는 친지가 자기집에 들렀을 때 가방을 뒤져 사노맹 수사상황을 입수, 중앙위원회에 보고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사노맹은 수사기관의 미행·도청은 물론, 프락치 소매치기까지 동원한 정보수집에 맞서 정보투쟁을 벌일 것을 역설하고 있다. 이를 위해 주변의 군· 경찰 관계를 최대한 활용하고, 신분상 하자가 없는 조직원을 군·경찰 조직에 파견하라는 실천지침이 제시되기도 했다.

그리고 조직원들이 수사받는 과정에서 신문투쟁을 철저히 벌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국장 현정덕씨는 안기부 수사과정에서 숟가락으로 목을 찌르는 등 6차례나 자해를 기도하고 4일간 단식, 묵비권행사를 하며 신문투쟁을 벌였다고 한다. 이처럼 철두철미한 직업적인 혁명가로 양성하기 위해 사노맹은 '지옥훈련’ 이라는 집단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