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길남 미스터리 5탄. 인생스토리
노길남 미스터리 5탄. 인생스토리
  • JBC까
  • 승인 2017.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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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길남 인생공식은 제로

 

 

 

 

 

 

 

 

 

 

 

 

 

인생은 항상 높,낮이가 있는 거 같다. 이 말인즉, 자기 뜻대로 풀리지 않는 게 인생이다. 나는 25년째 기자생활을 해오면서 그동안 각양 각층의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 했었다.

이들을 인터뷰 하면서 느꼈던 공통점은 모두가 “내가 원하는 대로 인생이 풀렸다”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저마다 ‘내 살아온 길을 묻지를 마라, 비바람을 헤치고 왔다’고 회상했었다. 사실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살았던 삶이라면 훗날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인생은 ‘스토리’로 본다.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인생 스토리를 엮으면서 살아가는 게 또한 인생이다.

그런데 나는 아무리 명작이든, 석학들의 책을 읽든, 그 스토리에 인생을 덮어쓰기 하는 것은 역겹다. 인생이 스토리의 ‘합집합’이어야지, 부분집합이 되어선 안된다는 논리다.

스토리에 인생을 끼어 맞추는 것은 인위적이다. 또 작위적이다. 그래서 그런 인간은 대부분 노길남 같은 자뻑에 가깝다.

 

#인생 스토리

인생은 타고난 팔자가 있다. 그 팔자대로 물 흐르는대로, 순리대로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게 인생이다. 그 순리를 거스러거나, 그 흐름을 역행하는 자들. 이들을 일컬어 나는 인간파괴자, 나아가 이중인격자, 더 나아가 사악한 악마로 본다.

그런 인간에게 굳이 인간은 태어 날 때 부터 성선설이니, 성악설이라는 이중적 잣대는 들이대고 싶지 않다. 성선설, 성악설이 적용되지 않는 인간은, 인간의 궤적에서 이탈 한 자, 이단아 임에 틀림없다.

나는 지금 ‘노길남 미스터리’를 연재하고 있다. 노길남을 연재하면 할수록 느끼는 점은 그의 인생은 인위적이고 너무나 작위적이다. 머리에서 그의 전력이 꿰맞추기, 짜맞추기란 생각이 가시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살아 온 인생을 타인에게 더욱 멋들어져 보이게 싶어 한다. 이것은 인간의 보편적 심리다. 이런 심리를 가진 사람들의 특징은 어릴적부터 뭔지 모르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경우다. 그렇지만 열등감은 미래지향적 시각으로 보면 자신을 분발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오스트리아 출신 정신분석학자 알프레드 아들러(1870년-1937년)는 “인간의 이러한 열등의식 이면에는 보상심리가 있기 때문이다”고 역설했다. 이 보상심리 의식이 강하면 인간은 또라이가 된다. 그 또라이는 소영웅주의에 사로잡히고, 왜곡과 삐뚤어진 사고의 인간으로 마침내 탄생된다. 나는 그렇게 해서 탄생했던 사람을 감히 노길남이라 부른다.

#인생 포장

그런데 대개 이런류의 인간들은 자신을 화려한 이력으로 포장시킨다. 그런데 그 포장을 한꺼풀씩 풀면 그 비밀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우리가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은 정답을 맞추기 위함이다. 수학문제는 반드시 정답이 있다. 정답 없는 수학 문제는 없다.

노길남을 수학 문제에 비유해보자. 노길남의 이력과 전력, 사회생활 등 이제까지 타인이 본 노길남의 인생 수학은 답이 있었다. 그리고 그 노길남의 인생공식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내가 본 노길남의 인생 수학은 다르다. 정답이 없다. 그가 살아온 인생을 수학 공식에 비유해보자. 그의 인생 공식은 상황과 환경에 따라 숫자가 다르다. 또 그의 이력과 학력에선 상대성 이론이 묻어난다.

그의 인생 공식이 맞지 않다는 것이 결국 ‘노길남=미스터리’로 귀결되는 원인이다. 노길남의 인생 수학 공식 의심의 핵심은 출생에서부터 삐걱거렸다.

#인생을 수학공식에

1944년 4월 3일 강릉시 임당동에서 출생했던 노길남. 그의 인생 공식 과정은 그가 임당동에서 출생만 했고, 살았는지 안 살았는지 그것이 불투명하다.

그의 가족관계도 봐도 그렇다. 그가 강릉에서 언제 서울로 올라왔고, 그는 왜 60년 대광고에 입학했을까. 그 후 그는 64년 연세대로 진학했다. 그렇다면 그가 스스로 밝혔듯이 그의 학번은 64학번이다.

 

그런데 그의 학생증<사진>에는 1965년 3학년으로 적혀 있다. 그 학생증에는 본적이 ‘경남부산’으로 적혀 있고, 또 그가 적었는지 아닌지 모르지만 한문으로 적혀 있다. 학생증 얼굴은 살이 쪄서 노길남 얼굴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것은 둘째 치고 64학번인 그가 왜 갑자기 63학번으로 바뀌었을까.

나는 그 해답을 풀기 위해 머리를 싸쥐고 고민했지만 그 답은 항상 제로(0)로 귀결됐다. 그래서 그의 인생 수학공식이 곳곳에 오류가 있었음을 짐작했다. 물론 내가 노길남을 상대로 풀고 있는 그의 인생은 어떤 가설에 대한 일반적인 예측일 뿐이다.

#가설과 검증

그렇다면 그 가설에 대한 검증이 문제다. 검증을 위해선 우선 그의 기자증을 상기해야 한다. 노길남은 “나는 1964년 연대세 입학을 했다. 1965년 말 군대를 갔다”고 밝혔다. 이는 대학 2학년을 마친 후 군대를 갔다는 것이다.

당시 군복무기간이 3년이다. 68년 말 제대, 69년 대학교 3학년 복학, 70년 대학교 4학년. 그 기자증은 노길남이 ‘64학번’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의 학번을 학생증으로 계산하면 63학번이 된다. 왜냐하면 그 학생증에는 1965년 대학 3학년이 적혀 있다. 그는 몇학번인가. 학생증이 잘못기재 된 것이라면 기자증이 엉터이일게고, 기자증이 잘못 기재된 것이면 학생증이 엉터리다. 노길남의 가설적 검증은 이거 하나 만으로도 입증이 가능하다.

#까는 이유

혹자들 중 나에게 “왜 노길남을 그렇게 까고 물고 늘어지느냐, 이제 그만하라”고 다그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이 "이제 그만"을 강조하는 것은 내가 노길남을 그렇게 까발리다가 해코지나 당하지 않을까 우려스럽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웃고만다. 그 펜을 놓을 수 없다. 노길남은 지난 40여년 동안 대한민국 사회는 물론 교포사회에서 민족주의자임을 자처했던 자였다. 그리고 그는 그 민족주의를 이용해서 통일주의자로 급부상했다.

그런데 그 과정을 거치면서 그가 대한민국을 향해 내뱉었던 저주의 막말과 욕지꺼리, 거짓왜곡 날조 선동.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런 거짓 선동에 놀아난 것은 다른 게 아니다. 철저히 세탁된 그 인생 스토리 때문이다. 당신은 신문팔이 구두닦이 소년이 막말을 하면 박수치고 환호하는가. 아닐 것이다. 노길남의 남다른 이력이 결국 신뢰성을 더해주는 거다. 

문제는 그 기생충에 오염된 많은 이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또 다른 날조된 통일관 북한관, 대한민국을 향한 저주관을 갖는다. 나아가 좀비같은 기생충을 낳고 또 낳을 것이다. 노길남의 실체를 벗긴다는 것은 남·북한이 대립이 아닌 화해와 협력으로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 염원이다.

남·북 분단 이후 지난 60년 동안 남북한은 늘 적대적 관계였다. 신뢰는 무엇인가. 상대를 존중해주는 거다. 그런데 노길남은 어떤 인물이었는가. 몰상식한 종북이론과 종북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대한민국 사회에 대해선 저주스런 비난의 말을 쏟아내고 있다. 반면 북한에 대해선 체제 찬양을 하고 있다. 그 선두주자가 바로 노길남이다. 그래서 그는 통일 지향주의자가 아닌 통일 방해꾼이다.

그를 추적하는 이유다. 다시 노길남 인생 공식을 계산해보자.

#노길남 사칙연산

노길남의 인생공식은 소위, 덧셈 뺄셈 위주 사칙연산에만 의존했다. 그래서 답이 보인다. ▲성장기=홀 어머니 슬하에 삐뚤어짐 없이 굳굳이 공부해서 잘 자랐다. ▲청소년기=비록 어린 고등학생이었지만 나라를 위해서는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정의심이 바른 학생이었다. (1960년 4월 18일 시위참여) 그리고 공부도 잘해서 연세대학에 입학을 할 정도로 우등생 이었다. ▲대학시절=장남으로서 어려운 집안 사정을 감안해서 열심히 공부만 하는게 우선이 아니라 이 나라의 아들로서 불의에 가득찬 나라를 바로잡는 대한민국의 아들을 택한 선천적 혁명 투사의 정신을 가졌다.(어떠한 고문과 박해를 다 이겨내었다) ▲직장시절(3년)=탄탄한 직장생활을 하였지만 정의를 향한 뜨거운 피는 여전히 끊어올라 더 이상 참지 못해 유학을 선택하였다. ▲유학시절=이역만리 미국에서 수많은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 미국 명문대 대학원을 졸업하는 의지의 한국인 이었다. ▲미국 대학원 졸업 후=독재자의 치하속에 사는 한국 사람들을 위해 미국서 기자가 되어 그들을 해방 시켜주기위해 전 세계에 대변하는 일을 하였다. ▲현재=골프를 즐겨 했지만 나라를 위해 포기했고 나라를 위한 맘으로 돈도 안되는 민족 사업 하면서 마누라가 가족을 먹여 살리고 있다. 그러나 동생도 가족들도 다 조국을 위한 위대한 일을 하기에 원망하지 않고 다 이해하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노길남 기자

이것이 사칙연산으로 풀어본 노길남 인생 수학 공식이다. 이쯤되면 누가 그의 인생이 틀렸다고 태클을 걸 수 있겠는가. 그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살았던 그의 인생에 큰 박수를 보낼 것이다.

문제는 그 인생 수학공식의 답이 너무도 쉽게 풀리는 데 의문이 있었다. 노길남은 지난해 자신이 손수 제작한 ‘노길남 기자의 70년 인생사’ 그리고 ‘노길남은 누구인가’라는 자뻑 인터뷰를 했었다.

그는 이 인터뷰를 통해 마치 자신이 연예인이 된 듯 한 착각적 행동을 했었다. 이것이 바로 노길남 의혹을 양산시켜던 동시에 발등을 찍게 만든 원인이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한 단계만 더 파고들어가 보자. 노길남이가 수집가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가 연세대 영자지 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했었다는 ‘기자증’을 46년 지난 지금도 보관중이다.

그는 기자였던 사실을 무척 자랑스러워 하는 거 같다. 예전에도 그렇지만 지금 나이가 이른 한 살 쳐먹었는데도 주변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각종 취재현장에서 취재하는 모습을 자랑삼아 인터넷에 올려놨다.

우리는 여기서 또 다른 한 공식을 염두에 둬야 한다. 물리학적 이론이다. 우선 자연법칙이 관성계에 대해 불변하고, 시간과 공간이 관측자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상대성 이론에 그를 대비해보자. 이것은 지금의 관측이 아닌 그 시간과 공간을 60~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이해된다.

1. 연대 학보사 편집국장

예컨대, 그의 기자증을 보면 대학 4학년 때 연세대 영자신문 편집국장으로 적혀 있다. 여기서 착시는 "노길남은 대학 4학년때 편집국장을 역임했다"로 보면 안된다. 당시 "대학 4학년인데도 편집국장을 할 수 있었는가" 의구심로 접근해야 한다. 

당시 연대 학보사든 다른 대학 학보사든 간에 대학교 3학년이 편집국장을 하는 것이 관례다. 지금도 대학 3학년이 학보사 편집국장을 역임한다. 당시 연세대쯤 되면 대학 4학년이 되면 1학기만 마치고 대부분 취업을 했었다. 따라서 대학교가 4학년생을 학보사 편집장으로 임명하는 거 자체가 넌센스다.

또 당시 대학신문은 주간 교수가 다 검열해서 박정희 정권을 비난하는 글을 게재할 수 없도록 했었다. 특히 노길남은 경찰 수배를 받아왔고, 64년 6·3시위 후 65년말 군대에 입대했다.

연대 학보사가 그런 자를 편집국장으로 앉혔을까. 지금은 모르겠지만 당시 연대 연세춘추(신문사) 규정을 보면 편집국장 임기가 한 학기로 규정 되어 있다. 물론 기자 신분증은 1년 짜리 편집국장이다.

기자의 임기는 편집국장 재임시간 한 학기 포함해서 5학기 즉 2년 반이다. 이를 볼때 노길남이 편집국장을 역임했었다면 3학년 1학기 즉, 69년 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의 기자증은 그가 대학교 4학년 때(70년) 편집국장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2. 남산중앙정보부

노길남은 툭 하면 한국의 인권문제를 거론한다. 자신의 투쟁경력을 강조하기 위해 남산 중앙정보부 연행 고초라는 말을 잘 사용해왔다. 아마도 지금의 시각으로 본다면 이해를 못할 것이다.

만약 중앙정보부 후신인 국정원이 과거처럼 학생을 연행 체포해간다면, 국정원은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을 것이다. 지금 국정원은 간첩도 체포 못하는 기관으로 추락한 지 오래지만 당시에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이다. 노길남은 거기에 연행됐다고 밝혔다.

노길남은 “1969년도에 3선 개헌 반대 운동을 하다가 중정에 연행되었다”고 밝혔다. 당시 그는 학보사 기자였다. 기자는 글로 투쟁한다. 펜을 놓는 순간 기자가 아니다. 그런 노길남이 중정에 연행되었다.

그 중정이 얼마나 무시 무시한 곳인데. 거기 연행되어 가는 순간 뼈도 못추린다. 없는 것도 있는 것으로 만드는 기관. 그 기관에 붙잡혀 갔는데 무사히 풀려놨다.

만약 중정에서 노길남이 풀려놨다면 미 8군 사령관이 보증을 했다든지, 아님 미대사관 CIA 소속 ‘백’ 쯤이 있어야 가능했다. 중정 연행 후 그 다음 코스가 ‘감방’이다. 그가 중정에 연행되었다면 틀림없이 감방에서 썩어야만 했다.

나는 그의 기자증과 학생증을 비교할 때 졸업연도와 학년이 달라서 혹시 그가 중정에서 끌려가서 감방에 살았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그렇지 않는 거 같다.

노길남과 한명숙

3. 노길남 자뻑

노길남은 자뻑에 심취되어 있는 자다. 자신의 투쟁 전력을 훈장쯤으로 여기면서 뻐기는 노길남. 만약 그가 중정에 끌려서 가서 고문 후 감방 생활을 했었다면 그는 그 전력을 최대로 포장 한 후 과시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학생증과 기자증의 미스터리를 그 연장선상에서 고민을 했었지만 아니었다. 나아가 중정에서 조사를 받았던 범죄 경력 있으면 자기 말대로 유학 시험쳐서 미국 가는 건 불가능하다.

1년 6개월 수배 받다가 군대 갔으면 그것도 범죄 기록에 남아서 미국 이민을 가든 유학을 가든 불가능하다. 그의 군복무지가 카츄사다.

지금의 관점이 아닌, 과거의 관점에서 노길남 인생공식을 계산하면 문자의 값에 따라 참이 되기도 하고, 거짓이 되기도 하는 방정식이 떠올려질 것이다. 그런데 노길남은 자신의 인생을 사칙연산도, 방정식도 아닌 애초부터 스토리를 인생에 담아서 '부분집합'으로 풀었기 때문에 그 한계와 오류가 드러난 것이다.

내가 많은 사람을 인터뷰 해 본 결과 인생스토리를 인위적, 작위적으로 억지로 엮어서 만든 자들은 대부분 노길남과 비슷했었다. 그것은 짧지않은 나의 경험수칙에서 나온 판단이기도 하다. 

나는 그의 인생 스토리를 계산한 나의 공식이 잘못되길 바란다.

나 또한 그의 스토리를 가장한 비난적 역공이었고, 내 글이 아주 모순이고, 편협이었으면 좋겠다.

설마 노길남은 가짜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