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길남 미스터리 7탄. 간첩이다
노길남 미스터리 7탄. 간첩이다
  • JBC까
  • 승인 2017.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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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길남은 종북 좌파도 아닌 간첩이다.

 

 

 

 

 

 

 

 

 

 

 

 

 

도대체 노길남(71·미국 LA거주)씨가 진짜인가, 가짜인가. 그렇다면 현재 미국에서 활동 중인 노 씨는 누구란 말인가. 노 씨의 인생을 역추적하면 할수록 진짜인지, 가짜인지 혼돈이 일어난다.

그는 1943년 강원도 강릉 임당동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 고향은 황해도 해주다. 그런데 왜 노씨의 본적이 ‘경남 부산’일까. 그가 부산 부산진구 양정동에서 살았던 이유가 무엇일까. 부산에서 초년기를 보낸 그는 다시 강릉초, 중학교를 졸업했다. 지금도 부산과 강릉은 승용차로 7시간 이상 가야만 하는 먼 곳이다. 그런데 태어난 곳은 강릉, 그 후 부산서 살았고, 소년기때 강릉에서 다시 살았다.

흥미로운 것은 또 그가 다닌 고등학교가 서울 신설동 D고등학교다. 1960년 입학했던 그는 1963년 이 학교를 졸업했다. 그런데 1963년 연세대에 입학해야만 하는 그가 왜 1964년 입학했을까. 연세대가 발급해준 그의 ‘학생증은 63학번’이다. 반면 그가 소지하고 있는 ‘기자증은 64학번’이다. 그는 몇 학번인가···.

 

그는 또 ‘1969년 연세대 교정에서 편집장 시절’ 제하의 제목을 단 사진을 공개했다. <사진 위>그런데 본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연세대 영자지 신문 편집국장 선임은 1970년 3월부터다. 그 전 까지 편집국장 제도가 없었다. 그런데 그는 1969년 편집장이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1970년 기자증에서 자신이 ‘제 8기 편집국장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본지가 확인한 결과 그는 편집자(Editors 사진 위)였다. 당시 편집국장은 오 모 씨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인생을 역추적하다보면 이처럼 아리송한 이력이 오간다.

본지가 서울 D고와 연세대측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가 두 학교를 졸업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이력을 잘못 기재해야 할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 지 미스터리다.

군입대 경력도 미스터리 연속이다. 그는 대학 입학 후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그로 인해 군대 입대했다고 밝혔다. 나르는 새도 떨어뜨리는 그 무시 무시한 중앙정보부로 연행되어 갔지만 그는 무사하다. 그리고 그가 군복무 한 곳이 미 8군 카투사다. 그는 미 8군 성조지 기자를 역임했다고 밝혔다. 이를 믿을 수 없지만 그는 카투사에서 근무했을 당시 찍은 몇 장의 사진을 통해 믿도록 했었다. 그러나 그 사진속 인물끼리 자세히 비교해 보면 사진속의 주인공 얼굴이 달라서 노길남인지, 아닌지 헷갈린다.<사진 아래>

노길남은 1973년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고 했다. 그가 유학 간 시점과 대학원 입학 시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는 또 미국 텍사스주립대학원에서 사회학 석사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미국의 명문 대학은 한국의 학부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어떻게 미국 명문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었을까.

그의 이념과 사상도 이중적이다. 미국으로부터 혜택을 많이 받았던 그는 현재 반미주의자가 되었다. 그가 미국을 향해 퍼붓는 저주의 발언은 섬뜩하기 하다.

노씨의 인생은 이중성으로 가득하다. 가장 친미적이면서도 가장 반미적이고, 가장 투명할 것 같지만 가장 불투명한 게 노씨의 인생이력서다.

그렇다면 진짜 노길남은 존재한단 말인가. 지금의 노길남은 누구인가. 연대를 졸업한 진짜노길남이 맞단 말인가. 아님 그 신분이 포장 세탁되었던 말인가.

재미교포들은 그가 쌍둥이 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쌍둥이 한명이 죽었기 때문에 다른 쌍둥이가 노길남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설은 북한에 진짜 노길남이 생존해 있다는 추론이다.

일흔 한살인 그는 62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특히 그는 폐기종을 앓았던 환자다. 페기종 환자가 장시간 비행을 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절대 비행기를 탑승할 수 없는 위험한 병이다. 그런데도 그는 미국과 평양을 62차례 오갔다.

흥미로운 것은 그는 2012년 2월 13일 노길남 특파원 현지보도 통해 확인, “북녘동포들은 슬픔을 용기로 바꿨다”는 제하의 글을 민족통신에 기고했다. 그런데 그 당시 노길남은 평양 친선병원에 입원 중 이었다. 입원중인 노길남은 누구이고, 특파원 현지 보도를 했던 노길남은 누구인가.

이를 뒷받침 할 만한 또다른 근거는 그는 아내와 함께 평양을 자주 간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그가 밝힌 사진 속 아내와 미국 현지에 있는 아내 얼굴이 다르다.

노길남이 자신을 미화 시키기 위해 공개한 사진은 시점과 장소 등 공간 배경까지 석연치 않다. 한 재미교포는 그런 노씨가 가짜라고 단언했다. 필라델피아에 거주하는 교포 박 모씨는 “진짜 노길남과 가짜 노길남은 분명히 존재하거나 아니면 노길남은 쌍둥이 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다.

특히 그는 노길남 부친생존설까지 거론했다. 그는 “노길남의 부친은 북한에서 생존해 있었고, 아마도 1982년 작고한 로일환 선생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배재고보와 보성전문 상과를 졸업한 노일환은 1949년 6월 20일경, 국회프락치사건으로 체포되었던 인물이다. 친일파 척결 조직인 특별감찰부 차장을 역임했던 노일환은 간첩으로 역공을 받아 6.25때 월북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북한에서 영웅대접을 받았다.

미국서 노길남에 대해 추적해 온 박씨의 주장이 신뢰성에서 다소 거리가 멀 수도 있지만 노길남의 행적으로 미루어 볼때 연관 추론도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본지가 노길남 연재를 통해 분명히 확인 한 것은 그는 문화간첩이다. 미국 시민권을 갖고 가장 반미적인 행위를 하고, 가장 반 대한민국적 행위를 하면서 북한 체제를 찬양해온 간첩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는 지금도 미국에서 북한 체제 선전 선동에 앞장서고 있다.

아주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노길남, 거짓과 날조 선동으로 가득한 노길남. 꼬리가 드러났지만 몸통을 숨기는 전형적인 간첩의 한 유형, 그가 바로 간첩 노길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