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투표 '한다' '안한다' 그래도---
나는 투표 '한다' '안한다' 그래도---
  • JBC까
  • 승인 2017.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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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하루 앞이다. 나는 13일 ‘투표’를 할 지, 아님 ‘기권’을 할 지, 투표를 하면 정상 후보에게 할 지, 추잡한 양아치 후보에게 할 지 결정 하지 못했다.

내 지역구에 어느 후보가 출마했는지 몰라서 그런 게 아니다. 모두가 ‘그 나물에 그 밥’인데다 누가 뽑힌 들, 역시 도찐개찐이 아닌가.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인간들을 공천하고, 그런 인간들이 설치고 있으니 '정책'이 있을 리 있겠는가. 아무리 지역구 일꾼을 뽑는 게 총선이지만 나는 정책이 실종된 총선은 처음 봤다. 예전에는 그래도 정책은 있었다.

이번엔 여야의 정책은 ‘주디' 뿐이다. 소위, '주디 경제론'으로 선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국제적, 안보적, 대북 문제 등의 정책이 사라진 총선. 정책을 대신해 정파적 이전투구만이 판치는 총선. 추잡한 인간들의 추잡한 쇼 총선.

'친박' '친노' '패권'이 정책을 대신하는 총선. '비빔밥 쇼', 무릎 꿇고 사죄 ‘읍소 쇼’. 노 정치인의 꼴불견 춤추기에 노래하기 총선. 송해 씨만 무대로 등장하면 '전국노래자랑' 총선이 따로 없다. 

그래도 전국노래자랑 출연진은 진정성은 있는데, 이들에겐 진정성도 없다. 야비함과 비굴함만이 보일 뿐이다. 아무리 정치인 얼굴판이 '철판'이라지만 그야말로 철면피가 따로없다.    

이런 꼬락성이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 데  ‘투표는 국민의 권리다'라고.  솔직히 권리고 지럴이고, 투표 할 마음이 '싹' 가신다. 이런이들에게 이런 권리를 행사하는 게 진정 권리인가. 

그래도 꾹 참고 후보자를 가려서 투표해야 한다고. '그 나물에 그 밥'인데 뭘 가려?

'둘 다 꼴 보기 싫다. 뽑아줄 사람이 없다' 싶으면 기권을 하는 것도 권리 행사가 아닌가.

그래 '둘 다 문제지만 어느 게 더 문제냐' 하는 걸 선별해야 한다고.  '차악'과 '최악' 중에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일 때는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고. 그렇게 해서라도 국민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그런데 어쩌랴, 아무리 까 뒤집어 봐도 최악과 차악 후보자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투표하면 나의 권리가 살아나고, 투표를 안하면 나의 권리가 죽는 단 말인가.

내일이 투표라 지도층 인사 뿐만아니라 연예인 까지 총 동원되어 투표를 독려 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7일 “투표로 말하라, 욕도 칭찬도 투표로 하자”며 시민들에게 투표 참여를 독려했다.

맞는 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며, 그러한 민주주의에서 소수의 정치집단이 아닌 대부분의 국민들이 가장 직접적인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방법은 간접민주주의의 하나인 바로 선거참여다.

아무리 정치가 개판이더라도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개혁의 희망을 저버리는 거라고. 그런데 내가 앞서 지적했듯이 '최악'과 '차악'도 차이가 없으니 뭔가 차이가 나야만 신명나게 한표를 행사하지----

우리는 선거 때만 되면 국민의 권리 행사란 논리로 '그래도, 그럼에도, 그렇더라도 투표해야 한다'는 말을 한 두번 들었는가. 매번 그런 달콤한 국민권리 행사 유혹에 넘어가 투표를 한 후 그 다음 깨달은 게 "또 속았다"였다.

프랑스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1805~1859)은 '모든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고 말했다.

그 수준에 맞지 않는 정부를 갖기 위해서라도 투표는 하자. 한표를 반드시 행사하자.

그런데 국회로 입성만 하면 그들은 돌변한다. 그 후 부터 그들은 국민을 얕잡아 본다. 나는 그럴바엔 '양아치'에게 한표를 던지는 게 오히려 홀가분하다.

그 양아치 기준은 부정·비리에 연루됐고, 거수기 역할만 해온 후보다. 이런 양아치에겐 애초부터 기대가 없기에 실망 따위도 없다. 그래서 그에게 한표를 던지더라도 미련이 남지 않는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후보들을 공천했으니, 나는 내가 설정한 그 공천 기준에 걸맞게 한 표를 던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리 짜증부터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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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