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영 전 주필 향응과 기자 향응
송희영 전 주필 향응과 기자 향응
  • JBC까
  • 승인 2017.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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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씨는 향응 제공을 받은 적 없었습니까?”

며칠 전 동우회 지인들과 식사를 하는 데 누군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아마도 최근 조선일보 송희영 전 주필의 초호화 VVIP 향응 문제가 여론의 도마위에 오르면서 궁금했던 모양이다.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해줬다. “향응 제공 많이 받았죠.” 내가 이렇게 대답하자 한 사람이 “그럼 그렇죠, J라고 향응 제공을 안 받았을 리가 있겠는가.”

옆에 앉은 사람이 맞장구까지 쳤다. “야, J씨는 기자 아니냐.” 이날 모인 지인들은 과일가게 사장, 개인택시 종사자, 자영업자, 보일러 수리공 등이었다.

아무리 송 전 주필의 향응이 파장이 커지만 , 우리 사회 평범한 직업군인 이들마저 기자는 향응과 접대에 길들여진 사람으로 여기는 것을 보고 약간은 놀랐고 어색했다. 

기자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각이 문제일까. 이들이 기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진지한 대화를 나눈 적은 없다. 그날 나온 것을 종합해 볼때 사회정의 추구자, 진실지향주의자, 권력을 비판하고 약자에 서는 사람은 아니었다. 공갈 협박 향응에 더 무게를 두는 거 같았다.

이들중 한명이 내뱉었던 말이 와 닿는다. "그래도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고 신뢰해왔던 조선일보가 이 정도면 다른 언론은 보나 마나 더 썩었을거야---"

기자가 그렇게 까지 비쳐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업자득 경향이다. 송 전 주필 향응을 기자 전체 전선으로 몰고가보자. 그리고 송 전 주필의 향응과 기자 향응은 차이가 없는 것일까. 

까놓고 이야기 해보자. 송 전 주필처럼 2억원대의 호화 여행은 아니지만 언론인 중 향응 제공을 받은 적 한번도 없다면 손들라. 그리고 업체 추천으로 해외는 물론 국내 여행을 간 적 없었던 자 있다면 고백하라.

나부터 까라고? 나는 있다. 해외로 많이 다녔다. 비행기 1등석에 몸을 싣고 캐나다, 호주, 동남아 등지를 오갔다. 캐나다에선 경비행기도 탔다. 카지노 출입도 해봤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취재를 가서는 요트를 타고 시드니 강변 야경을 즐겼다. 나의 향응 여행은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가 아니다.

솔직히 90년대 이런 투어가 일상이었다. 일명 기자 팸투어, 여행사 혹은 해외여행업체 초대로 기자들은 순번을 정해서 여행을 갔었다.

기자들이 그렇게 간 거나, 송 전 주필이 대우조선해양의 스폰서로 간 거나 뭐가 다른가. 대우조선해양이 몰락의 길을 가지 않았다면 송 전 주필 여행은 묻혔을 것이다. 

나는 언론사 선배들로부터 향응 여행 무용담을 많이 전해듣곤 했다. 기억에 남는 것은 80년대 초반 한 종교인 초청으로 미국에 갔다는 이야기다. 1등석을 타고 미국을 갔고, 미국서 여행을 즐긴 후 홍콩을 거쳐 오는데 당시 한 종교인이 언론인 간부들에게 1천만원씩을 줘서 쇼핑을 하게 했다는 무용담.

1천 만원을 받았는지, 아니면 뻥이 약간 섞였는지 모르겠지만 향응 여행을 간 것은 사실이다. 여럿명에게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전해들었으니.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는 것이 아니지만 이같은 말을 하는 것은 관례의 용인이다. 당시는 으례 그랬다는 것이다. 송 전 주필도 아마도 그 선배들도 기업 등 다른 기관으로부터 스폰서를 받았고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자신도 그렇게 해왔을 것이다. 언론인으로서 도덕 윤리 불감증 증발이지만 이는 으례와 관례의 윤회설이 근원이다.  

그런데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란다’고 지금 몇몇 언론사들은 송 전 주필을 마녀사냥하고 있다. 검찰도 그를 정조준하고 있다.

나는 언론이 각을 세우면서 그것을 까고, 검찰이 수사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속이 거북하고 한마디로 같찮다.

기자의 향응 세계로 와보자. 송 전 주필과 사정과 방식이 다르겠지만 지금도 기업들 중에는 기자들을 데리고 해외 취재를 나간다. 기업이 해외에서 자사 제품 내지 공장 오픈 등을 홍보 하기 위해서다.

이것은 향응이 아닌가. 기업들은 기자들에게 공장 혹은 제품 론칭 취재만 하게 한후 바로 귀국시킨다고? 골프 혹은 현지 여행은 생략한다고.

또 지금도 많은 기자들이 기업 혹은 자신과 연관 있는 기관의 후원으로 접대 골프를 즐기고 있다. 기자가 지방 골프를 갈 경우 자기돈으로 호텔을 잡는가. 그린피를 자기 돈으로 계산하는가. 물론 양심어린 기자도 있긴 있다. 어쨌든 9월 말 김영란 법 시행을 앞두고 이번주도 기업인과 기자들간 '굿샷' 소리가 필드에 울려 퍼질거다.

그런데 송 전 주필이 대우조선해양 스폰으로 일등석 탄 것은 문제이고. 골프를 즐긴게 문제이고. 요트를 탄 것만 문제인가. 기자가 기업 스폰으로 제주행 비행기를 타고, 골프를 즐기고, 요트를 탄 것은 문제가 안되는가. 다, 도찐개찐 아닌가.

또 어느 매체는 송 전 주필이 청와대 관계자에게 인사청탁을 했다고 폭로했다. 당신은 단 한번도 인사청탁 하지 않았다고?

우리는 기자가 정의와 진실을 추구하는 자라고 말하면 틀렸다라고 말하는 아주 추악한 넌센스 시대에 살고 있다고 본다.

80년대 국가 권력이 언론이 지배하고 있을 때는 그들의 눈치를 보고, 90년대 이후 자본이 언론을 흔들면서 언론은 자본의 발 밑에서 움직인다.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매체 환경이 개편되면서 새로운 플랫폼의 지배구조에 따라 웃고 운다.

정의를 위해 펜 글을 휘두른다는 것은 이미 저널리스트의 옛날 구전이다. '저널리스트의 가장 적은 저널리스트'다. 한 언론사가 특종을 터뜨렸을 경우 언론이 그 특종을 검증하고 의문을 제기한다.

나는 조선일보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비리건을 터뜨렸을 때 청와대의 역공을 예견했었다. 문제는 역공의 방식과 경로다. 송 전 주필 호화 향응 의혹을 제기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어디서 그 소스를 제공받았는가. 또 MBC는 기자간 SNS를 어떻게 통째로 입수해서 폭로했는가. 나는 이 두가지 미스터리도 함께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본다.

그러면서 나는 언론의 이런 폭로를 보는 순간, ‘저널리스트의 적은 바로 저널리스트’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공모자와 함정을 판 자들의 혼돈, 누군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

설령 조선일보 주필이라도 털면 털린다는 아주 무서운 시대에 살고 있다. 중이 제 머리 못깎 듯, 천하 글쟁이 송 전 주필도 자신의 앞날은 예견 못했다.

인생은 한치 앞을 알 수 없다. 자고나면 또 누가 저들이 파놓은 프레임에 갇힐지 모른다. 이미 언론사 주필, 검사장급 인사와 스타급 검사, 판사까지 인생의 종이 쳐졌다. 크고 작은 비리 혐의자들이지만 털어서 털렸다.

 

자고로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고 했다. 그런데 이번 싸움은 더 붙여야 하고, 갈데까지 가도록 해야 할 거 같다. 

2016년 9월 2일 까지 싸움의 승자는 좌로 불러도 우병우, 우로 불러도 우병우 민정수석이다. 송 전 주필이 진 게임이다.

이제 송 전 주필의 '타작'이 시작됐다. 그가 이제까지 적었던 수많은 글은 이미 돈 줄과 이권에 따랐다고 몰릴 것이다. 그의 글 하나 하나가 검증되고 마침내 그는 비리 언론인으로 낙인 찍힐 것이다.

이 재갈은 권력의 신종 언론 길들이기다. 상황이 이런데 누가 권력을 까겠는가. 그럴 경우 그 다음 당신이 재갈 물릴 것이다.

이 재갈에서 자유로운 것은 단 하나다. 향응과의 굿바이다. 그래야 시부리고 싶은 대로 시부리고, 까고 싶은 대로 깐다. 그리고 더 이상 기자의 불명예 키워드 '향응', 접대, '공갈', '협박', 스폰서'와 작별해야 한다.

지금도 수많은 기자들이 이런 키워드와 거리를 두고 진실과 정의를 추구한다. 내가 아는 허,차, 조-조, 곽, 최-최, 이, 손, 송 ,장, 박 기자 등. 이들은 오늘도 한점 부끄럽없는 글을 적고 있다.

때론 허무하기도 하지만 나는 이들에게 생색내기 곤란한 향응을 제공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나의 향응은 댓가가 없다. 그저 '방자'에서 삼겹살에 소맥이다. 

차야! 날잡거라. 방자가 손짓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