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BC까를 말한다]우리공화당 멈춘날, 까방송도 멈춰
[JBC까를 말한다]우리공화당 멈춘날, 까방송도 멈춰
  • JBC까
  • 승인 2020.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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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저녁 유튜브 라이브 중단 통보, 자유공화당 출범
우리공화당 역사속으로 잠시 동행, 그 후 재탄생

2012년은 대통령 선거 해였다. 당시 대통령 선거는 박근혜 대통령 대 문재인 대결 구도였다.

좌파들은 문재인을 당선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박근혜 죽이기에 나섰을 때다. JBC까 방송은 20121018일 그 때 탄생했다.

당시 필자는 인천·경기 지역에서 발행하는 한 일간지 대표 이사를 막  사임했을 때 였다. 당시 뉴미디어 환경이 도래한 후 언론은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지만 기술적 변신에만 집착할 뿐 향후 언론환경 변화에 대한 대처는 부족했다.

언론은 인터넷 매체의 등장으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쳤지만 정작, 스마트폰이 뉴스를 지배할 것이란 예측을 읽지 못했다. 그저 신문 판형만 변화시키면 변화에 대응하는 것 쯤으로 보았다.

JBC까 방송 탄생은 이런 뉴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른 선택이었다. 여기에는 좌파들의 공격을 막아야 하다는 방어적 계산도 했었다.

당시  민노총, 전교조 등 좌파들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공격을 끊임없이 퍼부었다. 광우병 괴담 선동을 통해 이명박 정권을 무너뜨리려 했었던 이들의 그 다음 타깃은 박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보수 우파 인사들은 좌파의 선동과 공격에 치를 떨었지만 하나같이 이에 대한 대비는 하지 못했다. JBC까가 진실과 정의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이는 슬로건에 불과하다. 사실은 정치 사회의 실상을 고발하고 나아가 종북좌파들의 실체를 알리기 위함이었다.

까방송이 탄생했지만 뚜렷한 수입원이 없는 상황에서 방송이 주업이 될 수 없었다. 주요 사건과 이슈가 발생했을 때만 그 때, 그때 상황에 따라 방송을 했다.

재미 좌파 노길남이 박 대통령을 창녀에 비유했다. 30여 차례에 걸려 노길남을 깠다. 작가 공지영이 박 대통령 당선을 나치에 비유하자 미친X’라고 깠다. 이로 이해 모욕죄로 고소를 당해 벌금까지 물었다.

그 외도 광주 사태의 진상, 민노총, 전교조, 세월호 뒤의 검은 좌파 실체에 대해서도 깠다. 이들로부터 고소와 고발 협박은 일상이었다. 그래도 단 한번도 굴하지 않았다.

지금이야 많은 유튜브들이 버티고 있지만 당시 까방송은 외롭게 투쟁했고, 사실상 홀로였다. 2014년 당시 구독자가 5천명 쯤이었다. 시사를 다루는 유튜브 중 구독자 랭킹 3위에 들 정도였다.

JBC까가 주목받고 빛을 발했을 때가 2016년 탄핵정국 때였다. 당시 탄핵에 대한 부당성을 끊임없이 지적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95%가 탄핵과 퇴진을 지지했을 때 였다. 까방송은 이것은 좌파의 선동이라고 깠다. 전 언론이 과 지식인, 법조인까지 탄핵에 공감하고 동조했을 때 목소리를 더 높이고 깠다.

당시 필자는 일본 뉴미디어 회사를 운영하면서 한 통신사 간부로 재직했을 때다. 언론들이 박근혜 죽이기를 표방하고 기자들도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더 이상 회사를 다닐 수 없었다. 미련없이 그만두었다. 한 인터넷 경제지와 다른 매체에서도 편집국장 내지 사장 제의를 했었지만 거절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부당성을 알리고 대한민국 자유를 지켜야 하다는 그 어떤 사명감이 끌어당겼다. 당시 나와 함께 방송을 했던 선배가 구속 된 것도 영향이 컸다.

까방송 출발은 다른 유튜브 창간과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지만 정작 까방송은 항상 제자리였다.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정신을 강조했고, 변화와 혁신에는 뒷전이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투자가 이루어져야 했다.

그러나 투자도 거부했다. 그 투자가 훗날 약점이 잡히거나 위장 기회주의 우파의 종속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경제적으로 힘들고 그만두고 싶었지만 박 대통령이 차디찬 감방에 계시는 데 이를 외면하는 것이 비겁했다. 박 대통령 실상을 알리고 문재인 좌파독재저권에 맞서기 위해 20179JBC까 인터넷신문까지 창간했다.

그러나 혼자서 신문을 제작하고 방송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포기 하지 않았다. 지난 3년간 까 인터넷신문을 통해 약 12천 건 기사를 쏟아냈다. 매일 방송을 해왔고 글을 써왔다.

방송은 늘 노란 딱지가 붙었고, 신문은 광고와 협찬 조차 없었다. 방송과 신문은 수익조차 없었지만 자유 국민들의 알곡같은 작은 후원으로 버티고 버텨왔다.

너무 버거워 손을 놓고 이젠 이 현실에 눈을 감고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태극기 들고 자유를 외치는 국민과 아직도 영어의 몸 박 대통령, 저 사악한 문재인 좌파가 대한민국 역사와 정체성을 삼키고 있는데 갈 수 없었다. 다시 신발을 동여 매고 전진 또 전진했다.

지금은 체제전쟁이다. 태극기 집회서 사람을 만나서 밥도 먹고 싶었고, 이들과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싶었지만 자제했다. 밥도 혼자, 술도 혼자, 나는 늘 혼자였다.

그 시간에 뉴스 보도를 감시했고, 또 글을 쓰고 깠다. 갓 시작한 유튜브들이 방금 10만명 이상 구독자를 돌파했지만 부러워하거나 구독자를 늘리려 하지 않았다. 6일 현재 까방송 구독자가 95천명이다.

까방송이 투자를 받고 지금처럼 자유공화당 지지를 드러내지 않고, 자유한국당 지지로 돌아서고, 투자를 유치했다면 달라졌을 것이다.

비록 구독자가 적지만 까방송 구독자는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가득한 분들이다. 지난 3일 저녁 유튜브는 까방송에 대해 라이브 방송 중단 결정을 내렸다. 저작권 침해가 이유다.

까방송은 저작권 침해로 수차례 경고를 받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음악을 틀었다. 딱 한가지 이유가 문 좌파 독재로부터 고통받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힐링을 선사하기 위함이었다. 도요새, 홍시, 해야떠라, 여러분 등 숱한 명곡을 틀었고, 또 틀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영혼에 휴식을 선사하는 음악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타이타닉 선상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음악을 들려준 오케스트라처럼, 까방송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혹사당했던 까방송도 쉬고 싶었나 보다. 나는 까방송에 3개월 휴식을 줬다. 그 휴식이 3개월만일지, 아님 더 길어지 질지 아님 역사속으로 사라질지 모른다.

그러나 까방송 정신은 여기서 멈출 수가 없다. 방송을 접기엔 아직은 때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석방된 것도 아니고, 탄핵무효가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문 좌파 독재의 사악함은 더해가고 있다. 위장기회주의 우파들은 국민을 속이고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다.

우리는 움직였지만 그들은 그대로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 까방송을 역사속으로 보낼 줄 수 없는 이유와 까닭이다.

그러고 보니 까방송 라이브 중단 결정을 받은 3일 우리공화당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우리공화당이 혼자 자유의 역사속으로 사라지는 게 아쉬웠는지 까방송도 함께 동행해준 것 같다.

4일 박근혜 대통령 옥중 메시지가 나왔다. 까방송의 편지에 박 대통령이 화답한 셈이다.

이날 까방송은 ‘JBC옥동자를 또 낳았다. 당분간 JBC다에서 라이브를 하고, JBC까는 녹화분만 올릴 것이다.

여러분들의 성원에 다시한번 고개 숙여 고마움을 전합니다. 앞으로 쭉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