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가 왜 탄핵을 '각하' 해야 하는가
헌재가 왜 탄핵을 '각하' 해야 하는가
  • JBC까
  • 승인 2017.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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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일이 다가오면서 부쩍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기각 할 거 같습니까? 아니면 인용할 거 같습니까?”

“기각” 대답을 바라는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에게 “인용”이라고 말하면 펄쩍 뛴다. 왜, “인용이 된다고 봅니까?”, “인용이 안되게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태극기 집회자들이 더욱 똘똘 뭉쳐서 한 목소리를 내어야 합니까?”

또 촛불 집회자들도 묻는다. 이들에게 “기각된다”고 말하면, “정 선생은 아직도 촛불 민심을 모르군요” “정 선생이 언제부터 우파의 대변인 격이 되었는가.” 후배들은 “어찌 선배가 기각될 것으로 말합니까?”

내가 헌재 재판관이 아니고, 신이 아닌 이상 ‘기각’ 될 것인지, ‘인용’ 된 것인지 예측 할 수 없다. 

최근 술자리에서든, 친구 모임, 가정에서도 ‘기각’과 ‘인용’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또 이에 대한 의견차이로 부모 간 대립, 친구 간에 단절하기도 한다니, 탄핵이 인간 관계 마저 갈등으로 변화시켰다.

사실 나는 헌재가 탄핵을 ‘기각’할 것인가, ‘인용’ 할 것인가 관심밖이다. 탄핵 절차와 방식이 워낙 엉터리 이기 때문이다. 내가 왜 기각과 인용에 대해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는 이유와 까닭이기도 하다.

“당신이 생각하는 답은 뭡니까?”

첫째 “각하”, 둘째 “각하”, 셋째, “각하”다.

각하(却下)는 행정법상으로는 행정기관이 신청서·원서·신고서·심판청구서 등의 수리(受理)를 거절하는 행정처분이다. 즉, 헌재가 국회의 탄핵소추권을 심의한 결과 헌법에 위반되는 중요한 오류 투성이니, 거절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당신이 법 전문가가 아닌데 무슨 근거로 ‘각하’를 주장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법을 알고 모르고를 떠나 이는 지극한 상식이기 때문이다.

헌법을 보자. 헌법은 무엇인가. 국가통치체제와 기본권 보장의 기초에 관한 근본법규다.

헌법 제66조 제2항, 제69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헌법준수 의무가 있다.

이는 대통령, 국회의원, 헌법재판관, 판사, 검사, 기업인, 일반인 등, 모두가 이 헌법을 준수해야 한다.

국회가 대통령을 탄핵했을 때 정치와 법치의 오류가 넘쳐 나서 문제라는 지적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나아가 그런 대통령 진퇴 문제를 여야 정치적 타협 노력 없이 헌법재판소에 맡기는 것이 옳은 일일까. 

헌법재판소는 왜, 국회가 이런 엉터리 탄핵소추안을 던졌는데도 수리를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들였는가.

이 문제는 정치권이 주창해온 ‘촛불이 민심’이기 때문에 국회의 소추안을 거절하지 못한 것인가. 그렇다면 촛불 민심은 결국 헌법 위에 존립하는 것인가.

촛불민심이니, 혹은 ‘기각’이든, ‘인용’을 떠나 왜 각하이어야 하는지, 오직 헌법으로만 보자.

헌법재판소의 정원은 8명이 아니라 9명이다.

1월 31일 퇴임한 박한철 헌재 소장의 후임 재판관을 임명해야 한다. 정원 9인은 국회, 행정부, 법원이라는 최고 권력기관 세 개가 똑같이 3인의 동수(同數)로 재판관을 뽑는다.

이는 서로 균형을 갖고 견제하고 분립한다는 뜻의 3권 분립의 원칙을 구현하고 있는 특별한 숫자다.

이 9명의 재판관이라는 판결정원 숫자를 무시하고 임의로 8명 또는 7명의 재판관이 대통령 탄핵 사건을 처리하는 것은 그 평결 자체가 헌법상의 헌법재판 판결 요건을 갖추지 못하여 위헌적인 판결이 되는 것이다.

재판관 여덟 명 중에서 여섯 분이 찬성한다고 탄핵이 인용되는 것이 아니다. 8명 평결은 위헌이다.

또 법치는 근대국가의 필수 조건이다. 헌법은 대한민국 존립 기반이다. 법을 존중하고 준수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에서 법치 실현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 탄핵을 보듯이, 대한민국 국회는 헌법위에 군림하는 듯 하다. 법질서와 법치가 어느새 정치의 힘과 논리가 되었다. 이는 헌법 유린이자, 농단이다.

따지고 보면, 이 탄핵 소추건은 국회와 대통령간의 권력싸움이라는 정치적 면이 매우 강하다. 그런데 국회가 여소야대 우위를 살려 단 며칠 만에 후다닥 졸속으로 대통령 탄핵을 처리했다.

세계 역사에 유례가 없는 이 졸속한 대통령 탄핵이 아무런 토의나 진지한 반대의사 발언도 없었다. 정원 300명의 3분의 2를 훌쩍 넘는 압도적 다수의 의원들에 의하여 국회에서 단 하루 만에 통과되었다.

법적 성격이 전혀 다른 탄핵사유 13개를 일괄 표결한 것은 중대한 적법절차 위반이다. 대통령은 몇 개의 단편적인 위반을 통해 탄핵 한 것은 헌법을 위반한 것이다.

국회의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에 대해 “구체적인 탄핵사유에 대한 의결이 아니라 13개 탄핵사유를 참작, 고려한 탄핵찬성의결”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구체적인 탄핵 사유가 없는 탄핵소추는 헌법 제65조에서 말하는 탄핵소추의결이 아니라 헌법에도 없는 대통령 불신임결의안”이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국회가 대통령을 불신임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권한이 없으므로 설사 그 불신임안을 국회의원 300명 전원이 찬성했더라도 이는 법률상 무효의 의결이다.

지금 탄핵은 국회가 아무런 증거절차나 조사절차나 법리수준의 과정도 없이 심증만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정지하였다.

이번 탄핵이 적법 법치주의의 반하는 중대한 위헌을 범한 비정상적이다. 각하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이유다.

법은 양식에 의거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탄핵은 국회법에 의거하여 되어있다. 이 국회법이 오류투성이다.

국회가 제출한 증거가 이를 대신한다. 국회는 공소장 2개, 신문기사 15개, 판례 2개를 근거로 탄핵 소추를 했다.

그런데 소송법에서 혹은 대통령 탄핵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기사나 공소장은 증거가 될 수 없다.

우리나라는 3심 제도를 두고 있다. 한 사건에 대하여 세 번의 심판을 받을 수 있는 심급 제도다. 3심 제도는 재판을 공정하게 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다.

모든 국민은 유죄의 확정판결 시까지 무죄의 추정을 받으므로 제2심 또는 제2심 판결에서 유죄의 판결이 선고되었다고 하더라도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의 추정을 받는다.

유죄판결이란 형선고판결뿐만 아니라 형면제판결과 선고유예판결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면소, 공소기각 또는 관할위반판결은 확정되어도 무죄의 추정이 유지된다.

헌법재판소는 미결수용자가 수사나 재판을 받는 동안 재소자용 의류를 입게 하는 것은 무죄추정원칙에 반한다고 하고 있다.(헌재결 1999.5.27, 97헌마137).

그런데 검찰의 공소장이 증거가 되는가. 공소장은 형사재판에 한한 것으로, 검사가 법원을 상대로 재판해줄 것을 요구하는 양식이다. 유죄판결문이 아니다. 국회는 대통령 탄핵 소추권에 검사 공소장을 증거로 채택했다. 만약 공소장이라면 증거 불채택은 물른, 공소 기결을 해야 한다.

또 탄핵에서는 심판의 대상을 특정해야 한다. 심판의 대상이 특정되지 않았다. 방어하는 대통령 변호인단은 국회가 무엇으로 공격하는지 모른다. 탄핵심판에 있어서 심판의 대상을 특정 한다는 것은 법의 기본 원리에 입각한 것이다.

특히 이번 탄핵 심판은 범죄 행위가 되는 내용이 없다. 이 탄핵 소추문은 팩트도 없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여섯 가지의 ‘6하 원칙’도 없다.

탄핵소추문에는 심판도 받기 전에 대통령을 범죄자로 규정했다. 대통령은 무기 또는 징역 10년 이상 범죄자다. 또 추상적인 내용, 예컨대, 촛불 민심은 탄핵을 요구한다 등이다.

헌재가 이러한 탄핵 소추서를 적법한 것으로 받아 들이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당연히 헌재는 ‘각하’ 결정을 내려야 한다.

나의 이 주장은 박근혜 대통령을 위하고 변론해주기 위함이 아니다.

만약 이런 식의 탄핵이 결정되면 향후 대한민국 모든 대통령은 이런 엉터리 탄핵의 희생양이 되어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 총리, 장관 등 입법 행정 사법 수장들도 모두 탄핵 행위에 포함된다.

헌재가 헌법을 준수해야 한다. 대통령 탄핵은 보통의 사건이 아니다. 판결 결과에 따라 국가의 명운이 달라지는 사건이다.

만약 헌재가 각하를 하지 않을 경우 기각과 인용을 주장했던 모든 세력들은 ‘판결불복과 ‘원천무효’ 더욱 극심한 투쟁을 벌여 국론불열이 일 것이다.

헌재는 헌법에 기초해 국회가 보낸 탄핵소추를 다시 국회로 '뻥' 차면 된다.

왜곡된 정치가 왜곡된 법치를 낳는다. 

헌재가 그 왜곡된 법치의 ‘사생아’를 낳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