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아이러니]야마구치현 출신 쇼인 제자 이토, 계승자 아베 각각 총격 사망
[역사의 아이러니]야마구치현 출신 쇼인 제자 이토, 계승자 아베 각각 총격 사망
  • JBC
  • 승인 2022.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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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안중근에 의해 저격, 아베 전직 자위대원이 쏜 총에 사망
쇼인은 야마구치현 정신적 지주, 이토가 제자, 아베는 계승자
(나라 로이터=연합뉴스) 8일 일본 나라현에서 참의원 선거 유세를 하던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괴한에게 총격을 당해 쓰러져있다. 아베 전 총리는 목 두 곳과 심장에 손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나라 로이터=연합뉴스) 8일 일본 나라현에서 참의원 선거 유세를 하던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괴한에게 총격을 당해 쓰러져있다. 아베 전 총리는 목 두 곳과 심장에 손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190910월 중국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 의사 총격으로 암살당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8일 일본 나라 선거 유세 도중 전직 자위대원의 총격에 의해 아베 신조(安倍晋三·68) 전 총리가 숨지자 역사의 아이러니가 재조명되고 있다.

일본 역대 총리 중 두 사람이 나란히 총격에 의해 사망한 데다 두 사람은 일본 보수 정치의 산실 야마구치현(山口縣) 출신이며, 일본에서 정신적으로 가장 추앙받는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183084~ 18591027) 정신을 계승 발전시켜온 인물이다.

요시다 쇼인.
요시다 쇼인.

쇼인은 일본 에도시대(江戶時代)의 존왕파(尊王派) 사상가이자 교육자로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이론가다. ‘유수록(幽囚錄)’이라는 저서를 통해 정한론(征韓論)과 대동아공영론(大東亞共榮論) 등을 주창하여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에 큰 영향을 끼쳤던 인물이다.

아베와 이토, 쇼인은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일본 열도 최남단에 있는 야마구치현은 에도시대에 조슈번(長州藩)이라고 불렀다. 조슈번은 에도시대의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발원지이다. 쇼인은 야마구치의 정신적 지주로 평가받고 있다.

조슈번 하급 무사 시절의 이토 히로부미.
조슈번 하급 무사 시절의 이토 히로부미.

쇼인의 정치 사상에 영향을 입은 이토와 아베는 여러 가지로 닮았다. 이토는 일본 역사상 최연소(44) 총리이며, 유일하게 네 번 총리를 역임했다. 아베는 야마구치현이 배출한 8번째 총리 이자 2차 세계대전 후 최연소(52), 최장수 총리다. 90대와 96~98대 총리를 지내며 총 89개월 재임했다. 20122차 집권 이후 6번의 중의원 및 참의원 선거에서 대승하는 등 2020년 총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아베 1독주 체제를 구축했다.

아베 가문은 쇼인의 갈래를 이어오고 있었다. 이토는 쇼인이 직접 가르친 문하생이었으며, 아베는 그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 야마구치현에는 쇼인 역사관과 쇼인 신사가 있다. 쇼인 역사관에는 야마구치현이 배출한 역대 총리 7명이 밀랍인형으로 재현돼 있다. 쇼인이 직접 기른 이토, 야마가타 외에 아베 총리의 외조부이자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 그의 동생인 사토 에이사쿠 등이다.

일본 야마구치현 출신인 이토 히로부미(왼쪽)와 아베 신조 전 총리는 공교롭게도 총탄에 의해 사망했다. 이토는 요시다 쇼인의 문하생이고, 아베는 계승자다.
일본 야마구치현 출신인 이토 히로부미(왼쪽)와 아베 신조 전 총리는 공교롭게도 총탄에 의해 사망했다. 이토는 요시다 쇼인의 문하생이고, 아베는 계승자다.

아베는 이토의 사상을 계승시킨 정치인이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중국 정부가 하얼빈역에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설립하자, 아베가 안중근은 사형판결을 받은 인물이라고 망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두 사람은 정치지향점도 비슷했다. 이토는 한반도 지배가 일본 안전의 필수 요건이라 믿었다. 청일 전쟁의 주역으로서 한반도 병탄의 길을 열었다. 그 후 일본은 한반도의 식민지화를 통해 근대 제국주의의 반열에 올랐다. 이토를 근대 제국주의 국가 일본을 만든 사나이라 일컫는 이유이다.

8일 피격으로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연합뉴스
8일 피격으로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연합뉴스

아베의 정치 슬로건은 아름다운 일본이다. 그의 아름다운 일본은 2차 대전 이전의 군국주의 일본이다. 이토가 닦아 놓은 아시아 침략을 미화시킨다는 비난도 없지 않다. 헌법 개정과 국가주의 교육을 통해 그는 2차 대전 이후의 평화국가 일본을 전쟁국가로 만들려고 했다.

도쿄의 헌정기념관에는 역대 총리들의 좌우명이 걸려 있다. 아베의 좌우명은 쇼인이 그토록 강조했던 지성(至誠)’이다. 쇼인의 학생이었던 이토 히로부미의 좌우명도 그것이었다. 일본의 우익사상과 역사 인식을 상징하는 야스쿠니 신사의 원래 이름은 조슈신사였다.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쇼카손주쿠 학생들과 조슈에서 태어난 인물들이 주도해 18698월 도쿄의 지요타구에 조슈신사를 세우고 요시다 쇼인과 다카스기 신사쿠 등의 위패를 가져다 놓은 것이다.

요시다 쇼인 묘소를 참배중인 아베 전 총리.
요시다 쇼인 묘소를 참배중인 아베 전 총리.

아베가 아웃 국가의 반발에 불구하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와 까닭이다. 아베 사망 후 일본이 어떤 길로 들어갈지도 관심이 모아진다. 이토의 죽음이 미친 파장은 컸다. 약소국가는 안중근의 의거를 대서특필하며 일본의 팽창정책이 저지당할 것이라 기대했다.

무엇보다 한일합병 방침을 정해놓고 기회를 엿보던 일본의 강경파는 합병을 적극 추진할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일본은 이토가 죽은 지 10개월 만인 1910829일 강제로 합병조약을 체결했다.

아베는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강경 매파 노선을 걸었다. 재임 중 미국과 긴밀하게 협력하면서도 보통국가를 추구하는 강경 우익 노선으로 이웃과는 불편했다. 2차 집권 이듬해인 20131226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면서 한국과 중국의 강한 반발을 불렀다. 2015814일엔 일본의 침략 책임을 언급하지 않은 전후 70주년 담화를 발표했다.

 

(도쿄 AP=연합뉴스) 일본 도쿄에서 8일 시민들이 아베 신조 전 총리(67) 피격 사실을 전하는 요미우리신문 호외판을 읽고 있다.
(도쿄 AP=연합뉴스) 일본 도쿄에서 8일 시민들이 아베 신조 전 총리(67) 피격 사실을 전하는 요미우리신문 호외판을 읽고 있다.

한국과의 관계는 역대 최악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죽창외교와 반일 적대시가 큰 영향을 미쳤다. 201512월 박근혜 정부와 한·일 외교장관 위안부 합의를 발표했으나 문재인 정부 들어 합의가 뒤집혔다. 아베의 강경 노선도 한일 관계를 최악으로 빠뜨렸다.

아베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과 편지를 보내는 것은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반발했다. 한국 대법원이 일본 기업의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을 내리자 반발해 반도체 수출규제 조치로 보복해 한일 갈등이 더욱 격화되기도 했다.

아베의 사망이 한일관계와 아시아 정세에도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국제정세가 강대 강 싸움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중국의 팽창주의가 한국과 일본은 물론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당장 10일 예정인 일본 참의원 선거가 추모 선거로 치러지며, 아베 전 총리가 이끌어온 자민당 내 강경파가 대거 당선된다면 그 목소리가 더욱 강해질 수 있다. 이럴 경우 평화헌법의 핵심인 9조를 바꾸고 자위대 역할을 명시하는 개헌이나 방위비 대폭 증액 등 일본 군비 강화의 동력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