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BC의 눈]33세 료마의 '삿초동맹'과 37세 이준석의 '내부총질'
[JBC의 눈]33세 료마의 '삿초동맹'과 37세 이준석의 '내부총질'
  • JBC까
  • 승인 2022.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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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 료마가 숨진 일본 교토 현장에서 취재중인 필자.
사카모토 료마가 숨진 일본 교토 현장에서 취재중인 필자.

18671115일 일본 교토. 일본 막부순찰대의 습격을 받아 교토에서 암살된 자가 있다. 그는 일본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함께 일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힌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당시 그의 나이는 33살이었다.

일본 에도시대의 무사였던 그는 대정봉환(일본 에도 바쿠후가 천황에게 국가 통치권을 돌려준 사건)을 주도해 일본의 근대화를 이끈 인물이다. 18663월 일본 에도시대 후기 사쓰마번(薩摩藩)과 조슈번(長州藩)은 정치적·군사적 동맹을 체결했다. '삿초(薩長)동맹' 이다. 에도 막부 시대 말, 정치계에서 영향력이 있던 사쓰마 번과 조슈 번은 막부를 토벌하자는 생각은 같았다. 하지만, 사쓰마는 1864년 조슈를 굴복시킨 이래 감정적으로 적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사번을 탈번한 사카모토 료마 등의 주선으로 양측은 동맹을 맺었다. 대정봉환(大政奉還)이 이루어졌다. 18671014일 에도막부는 천황에게 통치권 반환을 신청하였고 그 다음날 천황이 이를 받아들였다.

이 사건으로 일본역사상 최초의 무사정권인 가마쿠라막부(鎌倉幕府) 이래 675년 동안 계속되던 봉건시대가 끝나고, 료마는 일본이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을 통해 중앙집권적인 근대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일본이 제국주의를 거쳐, 선진대국이 된 것도 바로 33살 료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앙숙이었던 사쓰마 번과 조슈 번 간 삿초동맹을 맺게 해준 후 일본 애도막부를 무너뜨리는 데 큰 공헌을 한 사카모토 료마
앙숙이었던 사쓰마 번과 조슈 번 간 삿초동맹을 맺게 해준 후 일본 애도막부를 무너뜨리는 데 큰 공헌을 한 사카모토 료마

13일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 '내부대총질' 기자회견을 보면서 료마가 떠오른 이유다. 료마는 일본을 통합과 화합의 길로 이끈 후 숨을 거두었다. 서른 다섯에 국민의힘 당 대표로 등극한 이준석은 무엇을 했는가.

그가 당 대표로 등극할 당시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았을 때였다. 문재인 좌파 정권의 폭정까지 더해져 대한민국은 재앙으로 치닫고 있었다. 반체제세력의 선전의 포로가 된 국민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재앙속에 살았다. 문 좌파 정권은 대한민국 체제와 정체성 역사마저 부정했다.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질식사 시켰다.

우리 국민은 국가의 부름을 받아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 만나본 적도 없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받쳐 싸운 우리의 아들과 딸들의 명예를 기린다.”(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미국 워싱턴 DC 근교 알링턴 국립묘지 한국전 참전 기념 동판에 새겨진 비문이다. 이곳은 6·25전쟁 참전용사를 비롯해 미군 전사자와 그 가족 약 40만 명이 안장돼 있다.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인근 국립묘지에도 한국전에 참전했던 무용용사들이 잠들어 있다.

53,000명의 1,2차 세계대전, 한국전,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이 안장되어 있는 하와이 펀치볼 국립묘지. 이곳에는 한국전쟁에서의 공으로 미국 최고의 무공훈장인 메달오브아너’(Medal of Honor)를 수상한 르로이 멘돈카(LeRoy A. Mendonca)병장, 허버트 필릴라우(Herbert K. Pililaau)일병, 벤자민 윌슨(Benjamin F. Wilson) 소령이 잠들어 있다.

하와이 출신인 르로이 멘돈카 이름은 의회 옆 한국전쟁 기념물에도 새겨져 있다. 그는 195174일 지천리 고지전에서 적의 공격을 막아내어 한 소대를 살린 공을 인정받은 영웅이었다. 미국 독립기념일에 치른 이 전투에서 전사할 당시 그는 19살 이었다.

한국전에 참전한 이들은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몰랐다. 한 번도 자신의 고향 마을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젊은이들이었다.

한국전에서 사망한 미군과 카투사(미군 배속 한국군) 전사자가 43769명이다. 이들은 오직 대한민국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서 낯선 한국땅에서 전사했다. 지금의 이준석 동생 뻘 미군들이다.

1950년 김일성의 6.25 남침때 당시 이준석 한창 동생뻘 되는 청년들은 목숨을 던져서 공산의주의자로부터 나라를 지켜냈다. 이것은 목숨을 바꿔서라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기 위한 희생이었다.

1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 중인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연합뉴스
1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 중인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연합뉴스

이준석이 한 것은 대한민국 체제를 지키려는 외부총질이 아닌 오직 내부총질이었다. 얼마 전엔 친윤계를 향해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고 했다. 지난 대선 때도 그는 윤 대통령과 크고 작은 알력을 빚으며 두 차례 당무를 거부했다. 야권 통합 과정에서 안철수 후보에게 모욕에 가까운 언사를 해 일이 틀어진 적도 있다.

이준석의 내부총질은 당원권 정지 후 더욱 거칠어졌다. 이준석은 자신의 성 상납 의혹을 무마하려던 일이 당원권 정지의 원인이 됐다. 이준석은 당 전국위의 비대위 전환 결정에 반발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제출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른바 윤핵관을 비난했다. 그는 윤 대통령의 인식이 한심하다고 했다. 지금 국민의힘 상황에 대해선 바보들의 합창이라고 했다. 13일 기자회견에선 자신의 당원권 정지를 오직 윤핵관와 윤 대통령에게로만 돌렸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국민의힘을 넘어서 조직에 충성하는 국민의힘을 불태워 버려야 한다고 밝혔던 대목이다. 이는 보수우파를 불태워야 한다는 문재인의 보수궤멸 발언의 연장선상으로 읽힌다.

지금 국민은 수해로 인해 큰 고통을 겪고 있다. 고물가·고금리에 허덕이고 물난리까지 겹쳐 삶이 고달프다. 그는 이런 국민의 고통을 알까. 지난 한 달여 전국을 돌면서 마이크잡고 노래부르고 춤을 추고 유랑생활을 했었다. 

13일 오후 서울 중구 숭례문 앞에서 열린 ‘8·15 전국노동자대회광복 77주년 8·15 자주평화통일대회가 열렸다. 이날 이들은 전쟁 연습 반대’ ‘미국 반대’ “한미 전쟁 동맹, 노동자가 끝장내자” “이 땅은 미국의 전쟁 기지가 아니다라고 외쳤다. “이 땅은 우리 땅, 양키 고 홈(Yankee, go home)”이라는 구호도 여러 차례 나왔다.

민노총은 이날 북한 노동자 단체인 조선직업총동맹(조선직맹)이 보낸 연대사전문을 통해 미국과, 남조선의 윤석열 보수 집권 세력은 이 시각에도 하늘과 땅, 바다에서 각종 명목의 침략 전쟁 연습을 광란적으로 벌려 놓고 있으며, 얼마 후에는 북침을 겨냥한 대규모 합동 군사 연습을 강행하려 한다온 겨레의 치솟는 분노를 자아내는 내외 반통일 세력의 대결망동을 단호히 짓뭉개버려야 한다고 했다.

조선직맹은 미국의 무분별한 망동과 북침 전쟁의 하수인이 돼 날뛰는 (남한) 보수 집권 세력의 추악한 친미 사대와 북남 대결 책동에 준엄한 철추(철퇴)를 내려야 한다고도 했다.

이들은 이날 윤석열 퇴진 촛불을 다시 들 작정이었다. 바야흐로 보수 우파를 불태우겠다는 좌파세력들 난동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이준석은 내부총질 대신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이런 민노총과 좌익 세력들에 대해 외부총질을 한 적 있었던가.

오직 내부총질을 통해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지방선거 직전 일부 조직위원장을 사실상 교체하며 사당화를 꾀하는 모습은 더 이상 그가 대한민국 체제를 지킬만한 청년정치인이 아니라 노회한 정치꾼인 동시에 연예인병에 걸린 관심종자에 불과했다.

문재인에게 폴더인사를 하는 이준석.
문재인에게 폴더인사를 하는 이준석.

정치권에선 이준석을 바라보는 시각은 천차만별이다. 젊은 배신자, 혹은 기회주의 전형인 젊은이, 철새, 또 차세대 지도자 등 다양하다. 이준석은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영입됐다. ‘박근혜 키즈. 당시 그의 나이가 27세였다. 이준석은 박 전 대통령 후광에 힘입어 승승장구했다.

그런 그가 박 전 대통령 비난에 가장 앞장선 젊은이였다. 박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채 새누리당바른정당바른미래당국민의힘 당적까지 변경한 사람이 이준석이다.

그에게는 늘 청년배신자라는 호칭이 따라다녔다. 젊은 정치인 이준석은 왜 이토록 막돼먹었을까. 이준석의 약력을 보니, 그는 한국 사회에서 완전한 엘리트 코스를 거쳤다. 우수한 두뇌의 소유자인 그는 서울과학고에 하버드대 출신이다. 학력이 중시되는 한국사회에서 이준석은 많은 한국 부모의 롤모델이다. 영민한 머리, 현란한 논리와 말솜씨를 바르게 쓴다면 큰 정치인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는 내부총질에만 집중했다.

이준석은 젊다. 젊음의 태양, 젊음의 패기, 젊음의 기백. 젊은 앞에 이런 명사가 뒤따라 다녀도 아름답게 들린다. 늙음의 태양, 늙음의 기백은 어색하지 않는가. 젊음은 혈기가 왕성할 때다. 비록 성숙하지는 못하고 판단이 미숙하지만 젊은이다운 기백이 넘치는 것이 젊음이다.

젊음이란, 봄을 가리킨다. 고대 중국의 오행사상에서 봄은 청()에 해당되며, 여름은 적(), 가을은 백(), 겨울은 현()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이에 각 계절은 청춘(靑春), 주하(朱夏), 백추(白秋), 현동(玄冬)이라는 말로 각 계절을 나타내는 말이 되었다.

그러나 젊음 또한 인생에서 익어가는 과정이다. 젊은시절 그의 기록들은 훗날 자신을 평가하는 가장 객관적 자료가 된다. 이준석에게는 젊음 냄새는 나지만 젊음이 다운 냄새가 나지 않는다. 이는 그가 정치권에 빨리 들어오면서 젊음에 덧칠을 할 수밖에 없이 살아온 이력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흔히들, 가방끈(학벌)이 길면 길수록 증명된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오직 자신의 생각만이 옳고 그름의 잣대가 된다. 이준석이 이럴 수밖에 없는 것은 그의 또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특정한 세력이 그의 사상과 이념을 학습화 시켰기 때문이라 보인다. 그런 세력에게 그의 신념과 이념이 노예화 돼 버린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되면 지구를 떠나겠다는 이준석의 발언. 해당 유튜브 캡처
윤석열 대통령이 되면 지구를 떠나겠다는 이준석의 발언. 해당 유튜브 캡처

이준석은 2004년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실에서 인턴으로 근무했고, 유 의원과 이준석 아버지가 절친이다. 이는 이준석이 왜 박 대통령을 등졌고, 탄핵에 적극 찬성하고, 촛불을 지지했는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이준석은 유승민의 정치적 궤적과 함께해왔다. 유승민의 청년 아바타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필연성이다. 이준석이 차기 당 대표가 된 것은  유승민 작품이라는 것이다.

젊음으로 포장한 이준석을 당 대표로 만들어 정치판을 새롭게 짜고 권력의 상왕노릇을 하겠다는 유승민의 고도한 전략이 맞닿아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문제는 유승민만 닿아 있는 것이 아니다.

최대의 난적, 사탄파(사기탄핵) 등 위장된 우파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들은 이준석호에 재빨리 편승하면서 '시대정신론'을 강조하고 있다. 이준석을 자신들의 아바타로 내세워서 대한민국의 권력을 움켜쥐고 나아가겠다는 것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펼쳐지는 어린 이준석 한풀이 내부총질은 체제전쟁에서 우파전체를 궤멸시킬 수 있는 핵폭탄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는 변혁적 수준의 진보적 운동, 즉 체제를 바꾸는 혁명을 원했던 좌파들, 이들에게 이준석의 내부총질은 대한민국을 집어삼킬 수 있는 좋은 먹잇감이다.

료마는 일본이 메이지유신을 통해 중앙집권적인 근대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일본이 제국주의를 거쳐, 선진대국이 된 것도 바로 33살 료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37세 이준석은 왜 신구화합과 협력을 시키고 메이지유신에 버금가는 대한민국 청사진을 제시할 수 없을까. 오직 권력욕에 물든 눈앞의 탐욕때문으로 보인다. 참으로 자기밖에 모르는 젊은이다. 국민들은 이런 젊은이를 퇴출시켜야 한다. 이런 젊은이가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 것이란 생각에 등골이 오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