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BC시론]태영호의 입 “제주 4·3 사건 김일성 지시로 촉발”
[JBC시론]태영호의 입 “제주 4·3 사건 김일성 지시로 촉발”
  • JBC까
  • 승인 2023.02.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태영호 국회의원(서울 강남구갑)이 13일 제주4·3평화공원을 찾아 참배하는 모습. 출처- 태영호 의원 페이스북
태영호 국회의원(서울 강남구갑)이 13일 제주4·3평화공원을 찾아 참배하는 모습. 출처- 태영호 의원 페이스북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 후보가 지난 13일 북한 대학생 시절부터 제주 4·3 사건을 유발한 장본인은 김일성이라 배웠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태 의원은 이 같은 발언으로 뭇매를 맞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윤리위에 제소하겠다 밝혔고, 4.3 유족들은 의원직 사퇴를 촉구했다.

탈북민 출신인 태 의원이 북에서 배운 것을 말했다고 하지만 4·3 사건을 김일성 지시로 촉발된 사건으로만 못 박을 수만은 없다. 좌우익은 4.3 사건의 발생원인과 과정, 성격을 두고 아직까지 끝없이 논란을 벌이고 있지만 보수정치인들은 대개 좌파적 시각에 동조하고 있다.

국가 공식 기록에 따르면 4·3 사건은 194843일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와 미 군정의 강압이 계기가 되어 제주도에서 일어난 민중항쟁이다.

태 의원 주장대로 김일성이 이를 지시해서 촉발했다는 것인데 19484·3 사건이 일어날 당시 김일성의 나이가 36세였다. 제주 4·3 사건은 소련공산당의 사주, 남로당 당수 박헌영의 개입과 남로당 제주 총책 김달삼이 주도했다는 시각이 많다. 본명이 이승진(李承晉)인 김달삼은 제주 4.3 사건의 막을 연 남조선로동당의 선동가이자 반란 수괴 중 한명으로 지목당하고 있다.

제주가 고향인 김달삼은 일제강점기 일본서 활동했다. 김달삼은 194612월 경북에서의 대대적인 좌익검거 선풍을 피해 고향 제주도로 몰래 잠입해 대정중학교 상업과 교사로 재직하며 학생들과 교사, 귀환 제주도민들을 상대로 사회주의 사상을 가르쳤고, 마르크스-레닌주의 소조를 이끌며 좌익세력 규합에 나섰다.

김달삼은 194731, 제주북국민학교에 남로당, 민주주의민족전선, 민주주의청년동맹, 부녀동맹, 인민위원회에서 동원한 17,000명의 군중과 기타군중 8,000명 등 총 3만 명의 군중이 모여들어 3.1절 기념식을 열었다. 제주 경찰은 3.1절 경비 활동을 하고 있었고, 기념식을 마친 3만여 군중은 가두 시위에 들어갔는데, 이때에 기마경관이 탄 말에 어린이가 채여 작은 소란이 발생하였다.

기마경관이 어린이가 채인 사실을 몰랐는지 그대로 가려고 하자 주변에 있던 3만여 군중들이 "애를 치어놓고 사과도 없이 어디 가는 거냐"며 몰려들어 기마경관에게 돌을 던지고 야유를 보내며 경찰서까지 쫓아갔다. 경찰이 이를 경찰서 습격으로 오인하여 시위대에게 발포하는 바람에 6명이 사망하고 6~8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 김달삼은 남로당 제주도당책에 임명되었고 본격적인 지휘부를 구성하여 군사부장까지 겸임하였다.

194843일 새벽 2, 350여 명의 남로당 무장대가 제주도 내의 전 경찰지서 24개 중 12개를 공격했다. 이로인해 경찰관과 서북청년단,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등 우익 단체 요인들이 사망했다. 당시 4.3 사건은 김달삼 등이 독단적으로 감행한 무장폭동이었다고 하지만 남로당 당수 박헌영 지시가 없을 수 없었을 것이고, 여기에 북한 김일성과 연관을 지을 수 있다. 하지만 태 의원 주장대로 김일성 지시로 촉발됐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4.3 사건의 성격을 편협된 시각으로 해석할 우려가 있다.  

북에서 4·3 사건을 김일성 지시에 의해 발생했다고 가르치는 것은 김일성 업적을 찬양하거나 우상화 작업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김일성의 항일유적대 활동도 과장됐거나 왜곡일색이다. 북한에서는 3·1 운동도 김일성이 일으켰다고 선전하고 있다. 북한은 그런 김일성의 우상화 작업을 끝없이 이어지게 했고, 지금은 김정은 우상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태 의원 주장대로 4·3 사건이 김일성 지시에 의해 일어났다면 4·3 사건의 본질과 역사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김일성 지시에 의해 4·3 사건이 일어났다면 이는 명백한 좌익 반란 사건이 되는 셈이다.

논란의 태 의원은 14일 입장문을 통해 북한 대학생 시설부터 4·3사건을 유발한 장본인은 김일성이라고 배워왔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해방 후 혼란기에 김일성은 유엔(UN)의 남북한 총선거 안을 반대하고, 대한민국에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며 5·10 단독선거를 반대하기 위해 당시 남로당에 전 국민 봉기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남로당 제주도당은 무모한 무장 폭동을 주도했고, 그 과정에 이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많은 주민이 억울하게도 국가권력과 극우단체에 의해 희생당했다한 때 김씨 일가 정권에서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억울한 희생을 당한 분들과 유가족에게 용서를 빈다. 나의 용서 구함을 부디 순수하고 진실하게 받아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