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죽어서도 朴 인사말 듣고 싶어했던 정조희 목사 1주기…하늘나라서 "잘 계시죠"
살아서, 죽어서도 朴 인사말 듣고 싶어했던 정조희 목사 1주기…하늘나라서 "잘 계시죠"
  • JBC까
  • 승인 2023.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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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3월1일 서울역 집회현장에서 사탕을 나누어주던 정조희 목사.
지난 해 3월1일 서울역 집회현장에서 사탕을 나누어주던 정조희 목사.

정조희 목사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흘렀다. 지난 1월 말 삼성서울병원에서 위암 4기 판명을 받았던 정 목사는 지난해 912일 하나님 곁으로 떠났다.

지난 2016년 말부터 태극기 집회에 참석해온 정 목사는 집회 현장에서 각종 전단지와 사탕을 돌렸다. 그는 사람들에게 달콤함을 선사해준다 해서 사탕목사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집회가 없는 평일에는 서울의 주요 대학가를 찾아서 사탕과 전단지를 돌렸다. 신림사거리 전철역, 홍대, 신촌, 강남역 일대를 번갈아 가며 돌면서 전단지를 나누어주었다. 그가 대학가에서 이를 돌린 것은 젊은층이 깨어나지 않으면 대한민국 미래가 암울해 지지 때문이었다.

지난해 1월 서울 신림전철역 입구에서 사탕과 전단지를 나누어주던 정조희 목사.
지난해 1월 서울 신림전철역 입구에서 사탕과 전단지를 나누어주던 정조희 목사.

정 목사는 암 진단 통보를 받고도 사탕과 전단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는 뼈마디가 다 보일 정도로 말랐다. 얼굴은 핏기조차 없이 하앴다. 암 진단 후 체중이 10kg 빠졌다. 그런데도 집회에 참석, 행인과 집회 참석자들에게 사탕을 나누어주었다.

하루 7시간 이를 돌리다 보면 끼니를 거르는 것이 일상이었다. 살아생전 그에게 식사는 언제 합니까라고 물었다. “아침에 나올 때 먹습니다.” “점심 저녁은 안 드십니까.” “~ 그런 셈이죠." 하루 한 끼 먹는 것을 애둘러 표현했다.

캐리어에 사탕과 전단지를 싣고 지하철을 타고 집회 현장으로 가는 정조희 목사.
캐리어에 사탕과 전단지를 싣고 지하철을 타고 집회 현장으로 가는 정조희 목사.

경남 마산이 고향인 그는 충남 천안의 한 상가에서 월세 30만 원을 주고 살았다. 천안은 아무런 연고가 없다. 결혼도 하지 않았다. 혼자 살았다. 기도 중 하나님이 천안을 지목해주셨다고 했다. 상가에 얹혀 있는 집이라 밥을 제대로 해먹을 수도 없었다. 사발면과 빵 우유가 그의 식사다.

추운 겨울철 그는 집으로 돌아와도 제대로 쉬거나 잠을 청할 수 없다. 보일러가 들어오지 않는 방이다. 집안에 우풍까지 더해지면서 방은 시베리아 벌판같은 냉골이다. 전기장판 하나가 추위를 이기는 버팀목이지만 영하 10도 떨어지는 날이면 방안 물이 얼 정도다. 추위에 전단지를 돌리고 집으로 가면 집이 더욱 춥게 느껴진다. 암은 그런 그를 비켜가지 않고 그의 몸을 파고들었다.

지난해 3월 지리산 보타암에서 암 치료중이었던 정조희 목사.
지난해 3월 지리산 보타암에서 암 치료중이었던 정조희 목사.

자신은 굶지만 행인들에게는 사탕을 나누어주고, 목회활동 외 특별한 직업이 없는 그의 시작과 끝은 전단지를 돌리는 것이다. 그에게 전단지는 대한민국 국민을 깨어나게 하는 힘이었다. ‘신앙심이 없었다면 이를 할 수 없었다. ‘애국심도 원천이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한 이후 이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일념으로 이를 해왔다. “나라가 무너지는 데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습니까.” 그는 비록 암이 발발했지만 자신의 삶은 전혀 부끄럽지 않고 떳떳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식사하기에 앞서 기도를 하는 정조희 목사.
식사하기에 앞서 기도를 하는 정조희 목사.

그는 이 자유대한민국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살아생전 그의 바람은 소박했다.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수고하셨습니다감사합니다라는 그 말을 듣고 싶어했다. 그러면 맺혀있던 6년 설움의 응어리가 풀릴 것 같다고 했다. 암세포마저 죽일 수 있다고 여겼다. 박 전 대통령의 이 한마디는 진실과 정의의 편에 선 국민여러분의 길이 옳았다는 증명이었다.

그러나 그가 하늘로 간 지 1, 박 전 대통령은 자유우파 국민 손을 잡아주기는 커녕, “고맙웠습니다인사말도 없었다. 그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감사의 인사말을 듣지 못했다그의 죽음이 더욱 허망하고 애석할 수밖에 없다. 다시한번 고개숙여 정 목사의 명복을 빌고 또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