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대해부 [3]
아베 신조 대해부 [3]
  • JBC까
  • 승인 2017.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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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탄/아베의 정신 지주

나는 아베의 이중성과 그 꼼수를 꿰뚫어 보기 위해선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을 알아야 한다고 본다. 요시다는 일본 에도시대(江戶時代)의 존왕파(尊王派) 사상가이자 교육자로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정신적 지도자이자 이론가다. ‘유수록(幽囚錄)’이라는 저서를 통해 정한론(征韓論)과 대동아공영론(大東亞共榮論) 등을 주창하여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에 큰 영향을 끼쳤던 인물이다.

요시다는 1830년 9월 20일(文政 13년 8월 4일) 나가토 구니(長門國)의 하기성(萩城) 쇼카촌(松下村)에서 조슈번(長州藩) 하급무사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요시다는 홋카이도의 개척과 오키나와의 일본 영토화, 조선의 식민지화, 만주와 타이완, 필리핀의 영유 등을 주장한 인물이다. 요시다 쇼인의 사상은 일본의 대외정책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오늘날 아베 우익화에도 일정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아베는 그와 어떤 관계일까. 아베의 고향은 야마구치현이다. 일본 열도 최남단에 있는 야마구치현은 에도시대에 조슈번이라고 불렀다. 조슈번은 에도시대의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고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킨 발원지이다.

당시 조슈번이 낳은 대표적 사상가가가 요시다다. 쇼인은 정한론(征韓論) 등을 주창하며 조선 식민지화를 포함한 일본의 제국주의 정책에 이론을 제공했다. 쇼인은 열강들의 개항 압박을 목격하면서 제국주의에 눈을 떴다. 열강을 직접 경험하겠다며 미국으로 밀항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옥살이를 했다.

이후 쇼인은 쇼카손주쿠라는 사설 학원을 세우고 후학을 양성했다. 그의 제자들은 메이지유신과 제국주의 정책을 주도한 주역들이다.

쇼인은 도쿠가와 막부가 미국과 수호통상조약을 맺자 이에 분노해 거사를 모의하다 다시 투옥돼 처형됐다. 쇼인이 25세 때 쓴 ‘유수록(幽囚錄)’에는 “조선을 속국화하고, 북으로 만주 점령, 남으로 대만, 필리핀 루손 일대를 노획한다"라는 대목이 있다.

정한론은 이 책에서 비롯됐으며, 제자들에게 그대로 계승됐다. 쇼인의 제자들을 보면 일본 초대 총리이자 조선 초대통감인 이토 히로부미, 막부 타도의 선봉 다카스기 신사쿠, 조선주둔군 사령관과 총리를 지낸 야마가타 아리토모, 명성황후 암살의 배후 이노우에 가오루, 한일병합 당시 총리였던 가쓰라 다로, 초대 조선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등이 있다.

야마구치현에는 현재 쇼인 역사관과 쇼인 신사가 있다. 쇼인 역사관에는 야마구치현이 배출한 역대 총리 7명이 밀랍인형으로 재현돼 있다. 쇼인이 직접 기른 이토, 야마가타 외에 아베 총리의 외조부이자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인 기시 노부스케, 그의 동생인 사토 에이사쿠 등이다.

야마구치현이 배출한 8번째 총리인 아베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바로 국수주의의 원조인 쇼인이다. 아베는 2013년 8월 쇼인 신사를 찾아가 참배했다. 당시 아베의 참배는 참배로만 볼 게 아니다. 아베는 참배를 통해 자신이 제국의 옛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었다. 아베가 태평양 전쟁의 A급 전범을 처벌하도록 결정한 극동군사재판까지 검증 대상으로 삼은 것은 우경화 본편이다. 중국 정부가 하얼빈역에 조선 침략의 원흉인 이토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설립하자, 아베가 “안중근은 사형판결을 받은 인물”이라고 망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베는 1997년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의원들 모임’을 결성하고 초대 사무국장을 맡았다. 아베는 역사교과서가 일본의 과거 잘못된 점만을 들추어낼 뿐 국가 발전이나 미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이 단체는 그동안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연행을 인정한 고노담화 폐기와 역사교과서 개정 등을 요구하는 운동을 벌여왔다.

아베는 총리가 되면 고노담화를 비롯해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 총체적인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한 무라야마 담화를 수정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실제로 아베는 총리 취임 이후 교과서를 개정하고 정부내에 검증팀을 만들어 고노담화를 수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그러자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중국 등 국제사회가 아베 총리의 의도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결국 외교적으로 갈수록 고립되자 아베는 고노담화를 수정하지 않겠으며 역사인식과 관련한 역대 정부의 입장을 계승한다고 말을 바꿨다. 아베는 그러면서도 고노담화에 대한 검증은 계속 하겠다고 밝혔다.

 아베는 지금까지 일본군이나 관헌이 위안부를 강제 연행했다는 증거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중적인 모습이다. 일본인은 흔히들 ‘혼네’(본심)와 ‘다테마에’(겉심)가 다르다고 말한다. 아베가 고노담화를 수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다테마에다. 일종의 외교적 레토릭에 불과하다.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저서 '국화와 칼'에 지적했듯이 일본은 평화(국화)와 전쟁(칼)을 동시에 숭상하는 이중성을 보여 왔다.

아베의 혼네는 ‘쇼인’이다. 쇼인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으려는 아베가 역사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한일 관계 정상화는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