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BC추적]박근혜 무지와 집착이 낳은 현대사 비극…김재규 10.26도 불렀다
[JBC추적]박근혜 무지와 집착이 낳은 현대사 비극…김재규 10.26도 불렀다
  • JBC까
  • 승인 2023.1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환상이 하나씩 벗겨지고 있다. “국민과 결혼했다는 그가 진정 국민을 사랑하고 국민의 편에 서서 국정을 운영했느냐는 강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세간에는 유영하 변호사(이하 유영하)가 그녀에게 기대는지 그녀가 유 변호사에게 기대는지 알 수 없다는 입방아가 더욱 오르내리고 있다.

박근혜는 오직 유영하와 일심동체를 보이고 있다. 유영하가 언론인터뷰를 통해 여러 현안을 밝히면 박근혜가 맞장구를 쳐주는 형식이다. 모든 것이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닌 유영하만 바라보고 있다는 비아냥이다.

이런 가운데 박근혜 회고록을 둘러싼 논란과 의문도 증폭되고 있다. 왜 지금 이 시점에 뜬금없는 회고인가와 그 대상이 자신의 탄핵을 부르짖은 중앙일보인가다. 대개 전직 대통령 회고록은 3년에 걸쳐서 완성된다. 박 전 대통령은 탄핵과 구속을 당한 가장 격변기의 대통령이었다. 과연 그녀가 4개월 만에 회고록을 정리할 수 있단 것인가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이 제기된다. 누군가의 각본과 연출이 있었을 것이란 주장이다.

회고록 회수가 거듭할수록 비난과 논란도 가증되고 있다. 그녀가 중앙일보에 밝히는 회고는 아주 얕고 저급한 박근혜 정치 수준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중앙일보 11일자에 실린 박근혜 전 대통령 회고록 5편 제목.
중앙일보 11일자에 실린 박근혜 전 대통령 회고록 5편 제목.

11일 중앙일보에 박근혜 회고록 5회 편이 연재됐다. 중앙일보 이날 회고록 제목은 박근혜 떨어뜨리려 나왔다, 이정희 수준 참 어이없었다로 뽑았다.

그녀가 밝힌 회고록에는 대통령 당선 후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뒤 그날 오후에 김해 봉하마을로 가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했다. 내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모역을 간 건 처음이었다. 권양숙 여사도 만났다. 국민 대통합의 의지를 보여주려는 행보였다

대관절, 박근혜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하고 권양숙 여사를 만나면 국민통합이 이루어진다는 말인가. 한국은 특히 좌우 대립과 갈등이 심하다. 이로 인해 남북한이 갈라졌고 지금도 진영논리가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다.

박근혜가 이들 묘소를 참배하고 권양숙 이희호 여사를 만났는데 통합을 이루었는가. 통합은 커녕, 이들 지지자들에 의해 권력이 찬탈되었다. 박근혜의 문제는 통합의 인식과 방식이다. 박근혜는 대통령 당선된 후 김대중 동교동 이희호는 물론 김영삼 전 대통령 상도동 자택까지 예방했다. 하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 연희동 자택 예방은 외면했다. 이래놓고선 통합을 강조한 박근혜다.

정치권에선 박근혜에 한 번 찍히면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된다고 했다. 박근혜에 찍힌 사람들은 대분 쓴소리 내지 바른소리를 했다는 이유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바른소리를 한 전직 대통령이었다.

강원도 인제 백담사로 유배됐을 때의 전두환 전 대통령.
강원도 인제 백담사로 유배됐을 때의 전두환 전 대통령.

전 전 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박 의원(박근혜)이 지닌 여건과 능력으로는 대통령 출마는 무리한 욕심이라고 생각했다. 박 의원이 대통령이 되는 데는 성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는 어렵다고 봤고, 실패했을 경우 아버지를 욕보이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전하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전 전 대통령은 박근혜의 대선출마를 반대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박근혜를 바라본 전 전 대통령의 통찰력이 무릎을 딱 치게 한다.

이것만은 아니겠지만 문제는 그것이 전두환 죽이기이어졌다. 박근혜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을 추진케 했다. 이 법은 전 전 대통령과 그의 일가 재산까지 탈탈 터는 법이었다. 황교전 당시 법무부장관은 이 법이 위헌적 요소가 있다며 강하게 반대했지만 박근혜 집착은 꺾을 수 없었다. 20137월 국회 본회의에서 전두환추징법이 통과됐다.

이에 대해 이순자 여사는 우리가 존경하고 모셨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따님이 그렇게 했다는 것에 너무 충격을 받았다. 나는 진짜 죽으려고 했다. 이렇게 몰면 죽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전두환은 김재규 시해사건 전모를 밝혀낸 합동수사본부장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박정희 시해사건은 영원히 묻힐 수 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김대중·노무현 묘소를 참배하고 이희호·권양숙 여사를 만나면 국민 통합이 이루어질 것이란 생각을 가진 박근혜. 진작 자신의 아바지 사건 전모를 밝혀내고 백년 만년 고마워해야 할 전두환은 외면해버렸다.

이것은 지난 7년 간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들은 외면해버리고 자신을 탄핵시키고 구속에 찬성한 자들만 만나서 국민통합을 부르짖는 박근혜와 오늘 모습에 전두환이 오버랩 된다.

세상의 일은 우연이 없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20048월 박근혜는 김대중을 찾아가 아버지 시절에 많은 피해 입고 고생한 것을 딸로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박근혜는 나를 누구의 딸로 바라보지 말아 달라고 말했고, 그의 동생 박지만은 아버지가 독재를 한 것은 사실이라고 발언했다. 남매가 모두 아버지를 사실상 버린 것이다. 박지만은 대선 때 김대중지지 선언을 했다. 이것이 우연의 한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벅정희 암살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벅정희 암살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역사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해석되지만 김재규 암살이유 중 하나가 박근혜 때문일 것이란 상상을 해봐겠는가.

오는 26일이면 10.26 사건 44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사건을 둘러싼 논란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김재규는 박정희 저격에 대해 박정희 18년 장기독재를 끝내기 위해서라 밝혔다. 김재규는 항소이유서에 “5·1610월유신을 거쳐 완전하게 말살시켜놓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시켜놓기 위한 혁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10.26 혁명 동기 중의 하나는 박근혜 때문이었다고 항소이유서에서 밝혔다. 20161125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당시 김재규를 변론했던 강신욱 변호사는 김재규가 왜 박정희를 살해했는지에 대한 이유 중 하나가 더 있었다고 밝혔다. 김재규가 직접 쓴 추가 항소서에는 박 대통령 가족에 관한 것이라 공개된 법정에서 밝힐 수 없으나, 꼭 밝혀둘 필요가 있어 이 자리에서 밝히고자 한다고 적혀있다.

강 변호사는 김재규 부장이 사형당하기 4개월 전인 1980128일 면회를 갔더니 최태민 얘기를 처음 꺼냈다박정희 대통령을 쏜 이유로 구국여성봉사단의 망국적 전횡도 작용했다며 나라의 앞날을 생각하면 최태민은 교통사고라도 내서 처치해야 할 놈이라고 분개했다고 말했다.

이후 김재규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이 사실을 알리며 최태민과 박근혜를 떼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묵살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래는 김재규가 밝힌 10·26 혁명동기의 보충 설명서다.

본인이 결행한 10·26 혁명의 동기 가운데 간접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 한 가지는 박 대통령이나 유신체제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박 대통령의 가족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공개된 법정에서는 밝힐 수 없는 것이지만 꼭 밝혀둘 필요가 있으므로 이 자리에서 밝히고자 합니다.

구국여성봉사단과 관련한 큰영애의 문제

구국여성봉사단이라는 단체는 총재에 최태민, 명예총재에 박근혜양이었는 바, 이 단체가 얼마나 많은 부정을 저질러왔고 따라서 국민, 특히 여성단체들의 원성이 되어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영애가 관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 삼은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민정수석(民情首席) 박승규 비서관조차도 말도 못 꺼내고 중정부장인 본인에게 호소할 정도였습니다.

본인은 백광현 당시 안전국장을 시켜 상세한 조사를 시킨 뒤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던 것이나 박 대통령은 근혜양의 말과 다른 이 보고를 믿지 않고 직접 친국까지 시행하였고, 그 결과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였으면서도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하여,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 놓은 일이 있었습니다. 중정본부에서 한 조사보고서는 현재까지 안전국(6)에 보관되어 있을 것입니다.

지만군의 문제

육군사관학교는 전통적으로 honor system이 확립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육사에 입학한 지만군은 2학년 때부터 서울 시내에 외출하여 여의도 반도호텔 등지에서 육사생도로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오입을 하고 다녔읍니다. 그래서 본인이 박 대통령에게 육사의 명예나 본인의 장래를 위하여 다른 학교에 전학시키거나 외국유학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간곡하게 건의한 일이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러한 건의는 결코 받아들여지지 아니하였습니다.

위와 같은 문제는 아이들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박 대통령의 태도에서 본인은 그의 강한 이기심과 집권욕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자녀들의 문제이지만 이런 일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국민을 우매하게 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임은 물론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이런 기회에서나마 밝혀두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1980. 1. 28 김재규

김재규가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를 언급했던 가장 큰 동기는 최태민의 범죄 사실을 박정희에게 보고해 직접 심문까지 했다. 하지만 오히려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가 더 돈독해졌다는 것이다.

이것이 10.26 사건의 결정적인 이유는 될 수 없다. 하지만 김재규가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를 통해 이 정권을 더는 놔둬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로 보여진다.

박정희는 권력 2인자를 절대 두지 않았다. 박정희는 박근혜에게 권력을 물려줄 의도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 두 사람의 관계로 볼 때 대한민국이 최태민의 왕국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고민을 김재규가 했을 것이고, 김재규는 이를 항소이유소에 밝힌 것으로 짐작된다.

역사의 악순환일까. 박근혜는 최태민 딸, 최순실(본명 최서원)을 곁에 두고, 그의 남편 정윤회를 핵심 측근에 앉혔다. 국내 많은 언론은 최서원 문제를 집중 다뤘고, 이 과정에서 JTBC20161024일 최서원이 국정에 간여했다는 테블릿PC를 폭로했다.

20161025일 박근혜는 국민에게 드리는 말씀을 통해 최순실 국정개입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는 박근혜 정권의 몰락을 가져왔고, 박근혜와 최태민의 각별한 관계는 박정희 암살이유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지금의 박근혜는 어떤가. 그를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은 박근혜와 유영하의 아슬아슬한 관계를 보고 있다. 최태민과 최서원의 관계가 유영하로 재환생해서 지금 이어지고 있지 않는가 걱정이 태산이다.

한 특정 인간에 대한 집착이 박근혜 몰락으로 이어졌다면 그것을 교훈 삼아 다시는 특정인에 매몰되는 과오를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인간의 반면교사다. 박근혜의 DNA는 이런 집착증이 있는 것일까. 이것이 고쳐지지 않고 더 블랙홀로 빠져든다는 것이 지지자들의 한곁같은 지적이다.

"못다 이룬 꿈 대신 이뤄줄 것" 박근혜, 유영하 지지 영상 메시지 출처=MBN
"못다 이룬 꿈 대신 이뤄줄 것" 박근혜, 유영하 지지 영상 메시지 출처=MBN

박근혜는 특사로 풀려난 후 대구 달성사저에 온 지 보름 만인 20224월 첫 정치행보가 대구시장 후보로 출마한 유영하 후원회장과 공개지지 선언이었다. 박근혜는 유영하는 저를 대신해 꿈 이뤄줄 사람이다고 밝혔다. 이어내가 가장 고통스러웠던 지난 5년을 함께 했다며 저를 알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떠나가고 심지어 저와의 인연을 부정할 때에도 흔들림 없이 묵묵히 저의 곁에서 힘든 시간을 함께 참아냈다고 밝혔다.

그의 지지자들은 자신을 지켜준 국민에게 감사의 인사말을 먼저 전할 줄 예상했었는데 고작 유영하 후원회장 자처와 지지였다.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유영하는 보기좋게 3위로 떨어졌지만 박근혜의 유영하 집착은 사라지지 않았다. 박근혜는 언론과의 공개인터뷰에서 친박은 없다고 밝혔지만 세간에는 유영하만이 친박이다고 한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

이와 관련,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해석이 흥미롭다. 김 전 대표는 박근혜의 유영하 지지에 대해 이거는 내가 노코멘트하려고 해. 한 시간을 말할 수도 있지만 이야기를 안 하겠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김 전 대표가 각종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도 회자되고 있다. 김 전 대표는 20206월 말 미래한국과의 인터뷰에서 “20만 당원이 뽑은 당 대표인 나는 대통령과 독대하려고 해도 안 만나줬어요. 국가 중대사를 논하기 위해 한번만 만나달라고 요청했는데도 안 만나줬어요. 전화 한 통화만 하자고 해도 안 들어줬어요. 내가 그냥 청와대 간다고 만날 수 있습니까? 교환을 통해 대통령 바꿔달라고 해도 정무수석, 비서실장이 못 바꿔주겠다는데 바꿔줍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순실은 매 주말 만났단 말이에요. 그래서 국가 중대사를 논의했다는 거예요. 그게 말이 됩니까라며 분개했다.

김 전 대표는 자신을 향해 배신자로 공격하는 것에 대해 극도의 날카로움을 보였다. 김 전 대표는 과격한 사람들이 날 배신자라고 한다는데 내가 누구를 어떻게 배신했다는 겁니까? 박근혜가 국민을 배신하고 당을 배신하고 김무성을 배신한 것이지 나는 박근혜를 배신한 일이 없어요라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왜 배신자라는 등식이 나오느냐에 대해 그 사람들이 박근혜를 절대선으로 가정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박근혜가 옳은데, 김무성 너는 반대되는 길을 갔다, 그래서 배신자다”, 그런 수준 낮은 이분법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반박했다.

이어 그 사람들은 다 박근혜를 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박근혜를 절대선, 무오류라고 생각하고 그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나쁜 놈들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고 끌탕했다.

김 전 의원은 20191월호 발간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박근혜와 왜 갈라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나는 박 전 대통령을 동지(同志)’로 여겼는데, 자신을 여왕(女王)’으로 생각한 박 전 대통령은 나를 신하(臣下)’로 봤습니다. 여기서 모든 비극이 시작된 겁니다. 다들 박 전 대통령을 여왕으로 모셨는데, 나는 그러지 않으니까 결국 친박에서 몰아낸 거죠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은 정체성을 같이 하는 동지들끼리 잡아 나누는 겁니다. 권력은 나눠야 더 커집니다. 그런데 박근혜는 권력을 독점했어요. 그럼 청와대도 그렇고 당에서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하고 저항을 했었어야지 전부 다 끌려갔잖아요라고 비난했다.

김 전 대표의 발언이 이제와서 공감대를 얻고 있는 것이 묘하다. 한 때의 배신자가 충신이 되고, 한 때의 충신이 역적이었다는 역사의 관점에서 해석해야하는지에 대해 막막함이 더해진다.

한 특정인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은 집착과 근시안적 사고, 본질은 외면한 채 현상적 문제에 대해 절대선으로 규정하는 그의 얄팍함과 지적 수준들. 자신을 지지해주고 곁에서 지켜준 국민은 내치면서 국민과 결혼했다고 밝힌 그녀의 발언에 박근혜 허구성의 핵심이 묻어있다.

전두환 뿐만 아니라 김종필 전 총리까지 박근혜가 정치한다는 것을 기를 쓰고 말렸다. 이들이 왜 박근혜가 정치판에 뛰어드는 것을 반대했는지 시간이 지나니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에 대한 실망과 분노감을 보이고 있는 지지자 상당수도 박근혜는 대통령이 됐으면 안됐다고 내뱉는다.

작금의 박근혜 모습에서 박근혜가 1737일 동안 수감되어 고통받아서 현실감각이 무디어졌다거나 박근혜가 밝힐 수 없는 병에 걸려서 나타나는 과오였다면 차라리 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