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BC방송 11주년] JBC를 말하다…"비굴하지 않았고 당당했다"
[JBC방송 11주년] JBC를 말하다…"비굴하지 않았고 당당했다"
  • JBC까
  • 승인 2023.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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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C뉴스 진행자 JBC
JBC뉴스 진행자 JBC

19일 유튜브 JBC뉴스가 창립 11주년을 맞았다. 201210월 유튜브가 뭔지 몰라던 그 시절 JBC까로 첫 방송을 시작한 이래 이날 11주년을 맞았다.

내가 나에게 인사를 전하고 싶다. “JBC 흔들리않고 지금까지 와 줘서 고맙다.”

JBC뉴스 역사는 미디어의 새지평을 연 한국 유튜브 역사의 큰 획을 그은 것과 다름없다. 유튜브 방송이 전무했던 그 시절 첫 발을 내디었으니 말이다.

초창기 JBC뉴스
초창기 JBC뉴스

JBC뉴스 탄생은 한 후배로부터 시작됐다. 그 후배는 현역 국회의원이다. 20127월 쯤 그에게 전화가 왔다. “선배 나꼼수 아시죠” “나꼼수?” 나는 나꼼수가 방송인지 아닌지 잘 몰랐다. 뒤늦게 확인해보니 당시 나꼼수는 기존 방송의 틀을 깬 파격 그 자체였다. 거기에는 내가 아꼈던 후배가 나꼼수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후배는 선배가 그런 방송을 하시면 정말 대박 칠 겁니다라며 방송 할 것을 부추겼지만 나는 거절했다. 당시 나는 일간경기 신문사 대표이사를 그만둔 후 소설 프레임책을 집필중이었다. 그 과정에서 뜻밖의 한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가 "JBC 진가를 보여줘라"며 부추겼다. JBC뉴스 출발은 그렇게 해서 시작됐다.

JBC뉴스 진행자 JBC
JBC뉴스 진행자 JBC

초창기 JBC뉴스는 사회부조리와 비사 위주의 방송을 했었다. 그러면서 점차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종북좌파 척결 방송으로 자리를 굳혀갔다. 

JBC뉴스는 2016129일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 통과와 2017310일 헌재의 박 대통령 파면선고, 331일 구속으로까지 이어지면서 그 후 방송 포커스가 탄핵무효’ ‘무죄석방’ ‘문재인 주사파 타도’ ‘위장기회주의 퇴출’ ‘수박보수척결이었다.

탄핵은 불법 그 차제였다.  박 전 대통령 개인에 의한 탄핵이기도 하지만 핵심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찬탈 탄핵’, ‘국민에 대한 탄핵으로 보았다그 중심에는 종북세력들이 합심해서 일으킨 촛불난동이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1001째 수감중이었을 때 서울구치소 앞에서 방송을 하고 있는 JBC모습

나는 201612월 말과 20173월 중순에 쓴 칼럼에서 문재인이 이런식 탄핵을 당했다면 똑같이 탄핵무효를 외쳤을 것이다고 썼다. 나는 흔히들 말하는 '친박' '박빠'도 아니다. 박사모 출신은 더더욱 아니다.  지난 대선 때 박 전 대통령 출마를 만류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말한 대로,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 되면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욕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JBC
JBC

우려대로 박 전 대통령은 결국 탄핵과 구속을 당하고야 말았다. 이것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불법으로 자행됐다. 나는 그 후부터 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불법과 불의에 맞서왔다. 탄핵은 법치파괴였다. 탄핵은 국민을 속인 사기’ ‘거짓이다. 이런 사실을 알리면서 협박에 신체위협, 고소 고발에도 굴하지 않았다. 침묵의 안전지대로 피신하지 않았다. 비단길 대신 가시밭길을 택했다.

방송과 글을 통해 진실과 정의를 알려왔다. 이것이 반대한민국 세력과의 싸움이었다. 이것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지키는 투쟁이었다. 결코 묵과 할 수 없었다.

JBC뉴스 진행자 JBC
JBC뉴스 진행자 JBC

JBC뉴스는 타협하지 않았다. 불의와 거짓 사기는 타협의 대상이 아닌 타도의 대상이었다. JBC뉴스는 유혹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모가지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했다. JBC는 건방지게 보일 정도로 당당했다. 길이 아니면 가지 않았다. 옳은 길을 가기에 두렵지 않았다. JBC뉴스는 비겁하지 않았다. 부당한 권력의 부조리를 폭로하고 맞서왔다. JBC뉴스는 권력자와 자본의 비위에 맞추지 않았다. 국민의 편에 서서 방송과 글을 썼다. 

JBC뉴스는 돈에서 자유로웠다. 속된 말로 구린후원금은 받지도 않았다. 특정 정당과 후보를 지원해주면 방송국 다운 방송국으로 키워주겠다는 제안도 일말에 거절했다. 통근 후원도 조건이 붙어서 매섭게 거절했다. 각종 태극기 집회현장에서 남이 주는 돈을 받거나, 거둔 적도 없다. JBC뉴스는 이 자유대한민국을 지키고자 하는 국민, 불의와 불법에 눈 뜬 국민, 진실과 정의를 위해 가시밭길을 마다않고 가는 국민의 후원과 정성으로 11년을 버텨왔다.

갈 지자를 걷지도 않았고,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고 꺾이지도 않았다. 공갈과 협박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JBC뉴스 진행자 JBC
JBC뉴스 진행자 JBC

아픔과 싸워왔다. 2019년 말 코로나에 걸렸다. 그 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12월 9일이었다. 나는 탄핵 4주기를 결코 잊어선 안된다는 장문의 글을 써내려갔다. 그 후 반쯤 기절했었다. 정신을 차린 후 다시 사무실로 가서 방송을 하기 시작했다. 그 후 나는 의식을 잃었고, 119에 실려갔다. 당시 의사가 가족에게 장례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그 누구'의 힘에 의해 눈을 떴다. 여러분들의 기도와 성원이 없었다면 나는 그날 이후 영원히 잠들었을지도 모른다. 

코로나 사투를 벌일 당시 모습
코로나 사투를 벌일 당시 모습

두 번의 수술도 받아야만 했었다. 2018년 초 박정희 대통령 달력 제작 한 후 옮기다가 계단서 굴러떨어져 심하게 다쳤다. 수술 4일만에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국서 한국의 불의와 한국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미국 갔다온 후 다리가 썩어들어갔다. 그 통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펜을 놓지 않았다. 글은 '발'이 아닌 '손'으로 쓰는 것이었다. 방송은 '발'이 아닌 '입'으로 하는 것이었다. 방송을 하기 위해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3층 계단을 오르내렸다. 2개월 이렇게 방송을 했었다.

발목과 인대파열되었을 때 모습

 

미국 방문 후 힐체어를 타고 귀국길에 오르는 모습
미국 방문 후 수술한 부위가 악화되어 있는 모습

나는 한국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다. 자유 우방 국가인 미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아사' 직전 대한민국을 알렸고, 현지에서도 방송을 했다. 국내 시국 강연을 통해 국민을 일깨우는데 앞장섰다. 

미국 공화당 하원 후보 유진유와 강연중인 JBC뉴스 진행자 JBC

 

미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JBC뉴스 진행자 JBC
일본 도쿄서 방송중인 JBC뉴스 진행자 JBC

2021년 7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받았던 회전근개 수술도 받았다. 박 전 대통령 말처럼 칼로 베는 듯한 통증으로 인한 고통의 나날이었다. 그래도 방송을 쉬지 않았고, 펜을 놓지 않았다. 한 손으로 자판기를 두드리고 글을 써내려갔다.

2021년 7월 회전근개 파열로 인해 수술을 받았던 당시 모습
2021년 7월 회전근개 파열로 인해 수술을 받았던 당시 모습

나는 그 과정에서 애국 국민과 함께 'THE TRUTH OF 조원진' 책과 '한국의 진실' 일본판 책을 발간했다. 박 전 대통령 석방 즈음해서 그가 수감된 1737일간의 부당성을 알리는 책을 써내려갔다. 결코 멈출 수가없었다.

JBC뉴스 진행자 JBC

JBC뉴스는 역사에 당당하고 싶었다. 그 당당함으로 매일 글과 방송에서 기록을 남겼다. 시간이 지나면 이것이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이 길로 계속 걸을 것이다

이번 11주년을 계기로 JBC뉴스는 다시 한번 전환을 할 것을 다짐한다. 반역의 역사편에 선 자들을 반드시 심판하겠다는 각오다. 이들을 심판하지 않으면 반역의 역사가 정의의 역사로 기록된다. 반역자들이 정의와 진실자가 되고, 이 땅에서 애국을 실현했던 국민이 반역자가 되는 것이다. 

자유대한민국 호국영령의 이름으로 반역편에 선 자들의 기록을 남기고, 이들을 역사재판장에 소환시켜서 애국 국민 이름으로 심판받게 할 것이다. JBC뉴스 12년은 그렇게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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